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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기본 가치

眞|善|美 위대한 가치, 경영에 혼을 불어넣다

김상근 | 86호 (2011년 8월 Issue 1)
 

 
권여현 - 디오니소스의 숲(Dionysus in bricolage forest) 227x181cm, oil on canvas, 2010
 
“아이와 대화하다 보면 많은 것을 배워요. 세상을 바라보는 유연함과 순수함이죠.” 석남미술상, 하종현미술상 등을 수상한 중견작가인 권여현 국민대 교수는 초등학생 자녀로부터 종종 작품 영감을 얻는다. 그가 만들어낸 마법의 숲에는 규정하기 힘든 여러 상황과 코드들이 혼재한다. 고대 신화 등 어디선가 한번은 봤음직한 친근한 이미지들을 작품에 녹여 재미를 유발한다. 그가 창조해낸 숲을 보면서 우리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은밀함, 신비로움, 생경함을 느낀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처음으로 인문학(Humanitas)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인물입니다. 키케로가 강조했던 인문학은 중세 암흑기에 잊혀졌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부활합니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종교적 의미가 배제된 인간의 학문을 재발견하고 이를 인문학(Studia Humanitatis)이라고 불렀습니다. 인문학은 시대의 경직성에 저항하면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시도합니다.
 
몇 년 전부터 인문학에 관심을 갖는 CEO들이 많아졌습니다. 경영자들이 인문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당장 기업 성과가 좋아지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경영자에게 인문학적 성찰은 기업의 존재 이유 및 장기 생존과 적지 않은 관련이 있습니다. 경영은 결국 인간의 문제입니다. 경영자, 직원, 고객 모두 인간입니다. 그 어떤 학문보다 오랫동안 인간에 대해 깊은 성찰을 추구해온 학문이 바로 인문학입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은 재단법인 플라톤아카데미와 함께 인문학과 경영의 깊이 있는 만남을 시도했습니다. 탁월함을 추구하는 인문학의 위대한 가치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재)플라톤아카데미(www.platonacademy.org)는 국내 최초로 설립된 순수 인문학 연구 지원 공익 재단이다. 인격의 탁월함(Arete)을 추구하는 ‘성찰의 인문학’을 심화, 확산시키려는 목적으로 2010년 10월에 설립됐다. SK그룹과 애경그룹에서 출연한 기금으로 운영되며 인문학자 연구 및 인문 학술대회 개최를 지원한다. 인문학 세미나, 인문 영재 교육 사업 등 인문학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집단 비명에서 즐거운 비명으로
2006년 9월15일 <한겨레신문>에 자극적인 기사가 실렸다. ‘인문학자 117명, 처음으로 집단 비명’이란 제목의 글이었다. 고려대 인문대학 교수 117명 전원이 인문학의 학문적 위기를 우려하며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선언문을 발표했다는 보도였다. 기사의 앞부분은 이렇게 시작된다.
 
“대학교수들이 인문학 위기 극복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채택해 발표했다. 인문학자로서의 성찰과 함께 인문학의 부활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선언문을 현직 교수들이 집단적으로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수들은 선언문에서 인문학의 위상에 대해 ‘인간의 진정한 가치와 삶의 궁극적 의미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 내렸다. 곧이어 인문학 위기의 실체와 관련해 ‘무차별적 시장 논리와 효율성에 대한 맹신 때문에 존립 근거와 토대마저 위협받는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대학의 상업화로 말미암아 연구 활동과 교육 행위마저 계량적 평가의 대상과 상업적 생산물로 변질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문학자들의 이런 집단 비명이 터져나온 지 5년쯤 지났다. 그런데 지금 항간에 들려오는 소문은 인문학자들이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최고위 과정은 인문대학에서 개설한 최고지도자 인문학 과정(Ad Fontes Program)이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기업의 경영자들이 이 과정에 들어가지 못해 안달이고 입학 경쟁률이 3대1을 넘는다고 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세리CEO 프로그램에서도 인문학 관련 주제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매월 오프라인으로 열리는 인문학 조찬모임에도 많은 사람이 몰린다. 각종 기업체 임원 강의, 각 경영대학의 AMP 과정에서도 인문학 과정은 필수다. 이전 같으면 경영학자나 컨설팅 업체의 대표가 도맡았던 기업체 강연에서 인문학자들이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거리의 노숙자들에게 인문학을 소개해 스스로 거리의 삶을 청산하게 만드는 프로젝트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렇게 대한민국 최고 기업의 CEO에서부터 노숙자까지 인문학에 목말라 하니 인문학자들에 대한 수요가 가히 폭발적일 수밖에 없다. 인문학자들의 집단적인 위기 선언이 발표된 지 채 5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들려오는 것은 강연 스케줄에 쫓기고 있는 인문학자들의 즐거운 비명이다. 집단 비명에서 즐거운 비명으로 갑작스러운 전이가 일어난 배경은 무엇일까? 아직 대학의 인문학은 위기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경영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폭발적인 인문학 열풍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인문학의 속성은 부활
대학과 기업 현장에서 느껴지는 인문학에 대한 현격한 온도 차이는 사실 당연한 현상이다. 인문학 자체가 그러한 상이한 반응의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쉽게 말해서 ‘인간에 대한 학문’인데 모름지기 모든 학문은 연구의 역사가 깊어지면서 연구 방법론이 경직되는 현상을 나타낸다. 기존 학문 이론에 대한 유연한 해석이나 혁신적인 접근 방식은 연구의 엄밀성을 유지하려는 전문가 집단의 자기 방어 논리에 의해 보수화되고 배타적이 된다. 엄밀한 전문가적 연구가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이런 고난도의 연구 방법론은 학문의 전문성을 점차 심화시키면서 일반 대중이 갖고 있는 인간에 대한 관심, 삶과 앎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가치와 도덕의 기준점에 대한 기대심리를 점차 외면하게 된다.
 
이른바 세계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이런 (인문)학계의 전문화 현상은 더욱 강화돼갔다. 이제 국내 대학끼리의 우위 경쟁은 무의미해졌고 아시아 10대 대학, 세계 100대 대학 등의 구호가 한국의 캠퍼스에 등장하면서 학자와 교수 집단의 전문성은 더욱 강화됐다. 자연스럽게 일반 대중의 인문학적 관심과 요구는 전문가들로부터 논외의 대상이 됐다. 이런 학문의 전문성과 경직성이 정점에 달했을 때 학문은 이른바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인문학의 역사도 그러했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이 전문가들에 의해 도외시됐을 때 역설적으로 인문학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게 된다. 지금 한국의 경영계에서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은 경직된 전문가 집단의 인문학 연구에 대한 반발이란 측면도 있다.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문학적 요구는 기원전 5세기 철학자 플라톤이 운영했던 아테네 근교의 ‘아카데미아’에서 처음으로 충족됐다. 최초의 대학이라고 불릴 수 있는 ‘플라톤 아카데미’가 존재했던 이유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파이데이아(Paideia), 즉 인간됨의 본질을 교육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리스인들은 수사학, 문법, 수학, 음악, 철학, 지리학, 자연의 역사, 체육을 통해서 인간됨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스인이 추구했던 이상적인 삶의 덕목은 파이데이아를 통해서 아레테(Aret?, 탁월함)의 삶을 사는 것이었다.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통해 거듭 강조했던 것이 바로 아레테의 덕목이다. 발이 빠른 아킬레우스의 용기와 지혜가 뛰어난 오디세우스의 판단력과 자제력은 모두 그리스인들이 본받아야 할 인간됨의 이상(理想)이다. 용기와 지혜로 탁월한 삶을 사는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의 정신은 빛을 잃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 이후 그리스 제국은 사분오열됐고 위대한 철학자와 문학자들의 존재는 잊혀졌다. 향연(饗宴)과 같았던 그리스의 지적 세계는 폐쇄적으로 변했고 풍성했던 학문의 잔치는 편협한 자기주장에 묻혀버렸다. 창조적이었던 그리스 학문이 폐쇄적이며 배타적으로 변해갔을 때 이에 대한 반기가 로마에서 일어났다. 바로 키케로의 인문학이다.
 
키케로는 처음으로 인문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사용한 인물이다. 그는 ‘Humanitas’라는 개념을 통해 로마 사회의 지도자가 갖춰야 할 리더의 덕목을 제시했다. 그리스의 수사학적 전통을 로마 공화정의 교육에 접목해 일반 대중을 설득하고 이끌어야 할 정치가나 법률가들이 갖춰야 할 탁월함의 덕목을 제시했다. 여기서 다시 탁월함이라는 개념이 요구되는데 이는 그리스어의 아레테(Arete)를 라틴어의 비르투스(Virtus)로 확대 적용한 것이다. 그리스어의 아레테가 모든 존재하는 것의 최고 상태를 지칭하는 탁월함이었다면 라틴어의 비르투스는 용기와 남성다움의 덕목이 추가된 탁월함의 다른 이름이다.
 
키케로는 <시인 아르키아스를 위한 변론>에서 탁월함을 추구하는 인문학(Humanitas)의 효용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아르키아스는 그리스 출신이었지만 로마 시민권을 획득해 로마에서 유명한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원전 62년 아르키아스가 취득한 로마 시민권이 불법이라고 고소를 당하자 키케로가 변론에 나선다. 이 유명한 변론에서 키케로는 시()를 포함한 인문학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설명한다. 키케로는 로마 왕정과 공화정의 위대한 인물들을 열거한 후 이런 인물들은 모두 탁월함(Virtus)을 습득하고 훈련하기 위해 인문학의 도움을 받았다고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인문학의 궁극적인 목적을 설명한다.
 
“이런 공부(인문학, Studia)는 젊은 사람들의 마음을 바르게 지켜주고 나이 든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준다. 또한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역경 속에 처해 있을 때 마음의 안식과 평화를 준다.”
 
로마 시대의 키케로가 그렇게 강조했던 인문학의 존재 이유와 필요성은 중세 시대에 다시 잊혀졌다. 이른바 암흑의 시대(Dark Age)가 유럽 전체에 도래함으로써 인간됨의 본질에 대한 성찰은 개인의 종교적 책무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키케로가 추구하던 지도자의 덕목을 위한 인문학적 교육의 중요성도 교회 지도자인 사제 교육의 중요성으로 대체됐다.
 
폐쇄적으로 변한 중세의 인문학을 다시 부활시킨 사람은 르네상스 인문주의 운동의 아버지로 불리는 페트라르카(1304∼1374)와 <데카메론>의 저자 보카치오(1313∼1375)였다. 피렌체 출신인 이 두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정신을 르네상스 시대에 부활시킴으로써 르네상스 인문학의 초석을 놓게 된다. 보카치오는 그리스 출생의 인문학자 레온티우스 필라투스(Leontius Pilatus)를 피렌체로 초청해 유럽 최초로 그리스어 교수로 임명했다. 유럽 역사상 처음으로 그리스 사상이 그리스인에 의해 소개되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레온티우스 필라투스는 최초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라틴어로 번역(1360년대 초)해 아레테를 추구하던 고대 그리스의 정신을 부활시켰다. 그는 보카치오와 함께 파두아에 체류하고 있던 페트라르카를 만나 자신이 번역한 호메로스 책의 라틴어 번역본을 증정했고, 페트라르카가 그를 콘스탄티노플로 보내 그리스 원전을 수집하게 했다.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던 레온티우스 필라투스는 베네치아에 거의 다 와서 벼락을 맞아 사망(1366년)했지만 그가 처음으로 번역한 호메로스의 두 책은 유럽인들에게 그리스의 인문학을 부활시키는 계기가 됐다.
 
키케로의 인문학, 즉 ‘Humanitas’를 르네상스 시대에 부활시킨 것도 페트라르카의 공헌이다. 그는 베로나에서 우연히 키케로가 쓴 <아티쿠스에게 보낸 편지>를 발견해 고대 로마의 정신을 재발견했다. 키케로의 인문학이 부활하게 된 계기이다. 피렌체 출신의 레오나르도 브루니(Leonardo Bruni, 1369∼1444) 같은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인문학을 ‘Studia Humanitatis’로 명명했다. 이 이름은 중세 스콜라 철학의 교조주의와 폐쇄성에 도전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스콜라 철학은 중세시대 말기에 등장했던 자폐적이며 배타적인 학문 방식을 말한다.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라는 표현이 상징하듯이 학문이 교회의 필요와 신앙의 증진을 위해 활용되면서 신에 대한 학문이 대세를 이뤘다. 중세는 그야말로 종교과잉의 시대, 즉 암흑의 시대였다. 사실 중세를 암흑의 시대로 처음 지칭한 사람이 바로 페트라르카다. 그를 포함한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키케로의 인문학을 재발견하고 신의 학문(스콜라 철학)이 아닌 인간의 학문이라 하여 인문학(Studia Humanitatis)이란 용어를 사용했다.1
 
 
 

인문학이 추구하는 기본가치: 眞善美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인문학의 역사는 Paideia, Humanitas, Studia Humanitatis의 순서로 그 개념이 발전돼왔다. 그리스 시대(Paideia), 로마 시대(Humanitas), 르네상스 시대(Studia Humanitatis)에 인문학은 각각 주어진 시대의 경직성에 저항하면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시도했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목격되고 있는 대학 인문학의 급격한 쇠퇴와 이와 반대로 폭발적으로 증대하고 있는 일반 대중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우리 시대의 학문의 경직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경직성에 저항하는 인간에 대한 관심 증대도 함께 보여준다.
 
그렇다면 시대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졌던 인문학은 어떤 기본 가치와 목표를 추구할까? 모든 시대를 관통하며 요구되던 인문학적 성찰의 본질은 무엇일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본질적인 인간에 대한 관심은 어떤 내용을 포함하고 있을까?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학자들은 인간됨의 덕목을 획득하고 지도자가 되기 위해 기본적으로 역사, 도덕철학, 문법, 수사학, 시를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분류는 고대 로마 시대의 인문학, 즉 Humanitas가 요구하던 기본 과목과 일치한다. 키케로를 포함한 로마의 인문학자들도 역사(History)와 도덕적 판단력(Moral Judgment), 대중을 설득시키고 효과적으로 정책을 설명하기 위해 잘 쓰고 잘 말하는 법(Speak and Write Well)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학 기본 과목인 문법, 수사학, 시는 모두 잘 쓰고 잘 말하는 법을 세부학문으로 분류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학 기본 과목은 로마 시대의 부활, 즉 ‘르네상스’인 셈이다. 인문학의 기본 분야를 이렇게 크게 세 분류로 나누던 방식은 이른바 문사철(文史哲)이라는 현대의 인문학 기본 분야와도 일치한다.
 
요약하자면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인문학적 성찰의 기본정신은 ‘탁월한 진선미(眞善美)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리스 시대(), 로마 시대(), 르네상스 시대()가 그 탁월함의 예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탁월한 진선미의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그리스 시대, 로마 시대, 르네상스 시대로 돌아가서 인문학의 첫 샘물을 길어 올린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진실로 나 자신의 본질을 깨닫고자 했던()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메로스, 도덕적인 삶의 의무를 강조했던()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 위대한 아름다움의 흔적을 남겼던() 르네상스의 천재예술가 미켈란젤로가 바로 우리를 진정한 인문학의 세계로 인도하는 안내자들이다.
 

호메로스의 인문학: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통해 인간됨의 본질에 대해 묻고 있다. <일리아스>가 트로이전쟁에서 영웅들이 펼쳤던 용기의 아레테에 대한 글이었다면 <오디세이아>는 10년 트로이전쟁을 마치고 또 다른 10년간 온갖 고난과 위험을 극복하며 고향 이타케로 돌아가는 영웅의 이야기다. 영웅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보편적 인간의 고뇌를 담고 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2800여 년 전에 쓰여진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동시에 지금 고뇌하고 있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인 셈이다. 나는 도대체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고민하는 우리 자신을 향한 서사시이다. <오디세이아>는 이렇게 시작된다.
 
“들려주소서, 무사 여신이여! 트로이의 신성한 도시를 파괴한 뒤 많이도 떠돌아다녔던 임기응변에 능한 그 사람의 이야기를!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도시들을 보았고, 그들의 마음을 알았으며 바다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전우들을 귀향시키려다 마음속에서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제 1 권 1-5 절)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의 첫 구절부터 영웅 오디세우스가, 아니 우리가 마음속에서 많은 고통을 당하는 존재라고 밝힌다. 이 세상의 모든 리더는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다. 높은 지위에 올라갈수록 그 고통은 깊어진다. 리더가 아니라면, 남을 따라가기만 한다면 그렇게 큰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된다. 직장에서 적당하게 처신하고 퇴근시간에 맞춰 칼같이 퇴근하는 것도 리더가 아닌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러나 리더는 스스로 몸과 마음의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마음의 아픔도 인내로 다스려야 하고 속으로 눈물을 삼키더라도 겉으로는 웃음을 지어야 하는 것이 리더의 숙명이다. 그래서 리더는 고통 받는 것을 묵묵히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영웅 오디세우스는 고뇌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미 너울과 전쟁터에서 많은 것을 겪었고 많은 고생을 했소. 그러니 이 고난들에 이번 고난이 추가될 테면 되라지요.” (제 5 권 223-4 절)
 
리더로서 이미 수많은 고통을 경험해왔으니 새로운 고통이 내게 닥쳐온다고 해도 나는 그것을 회피하거나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렇게 리더는 많은 고통을 묵묵히 참아야한다.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케로 돌아가더라도 고통은 계속될 것이란 불길한 예언이 떨어진다.
 
“그대가 그대의 잘 지은 집에 가서도 얼마나 많은 고난을 참고 견뎌야 할 운명인지를 그대에게 말해주기 위함이다. 그대는 억지로라도 꾹 참고 남자든 여자든 어느 누구에게도 그대가 떠돌아다니다가 왔다는 말은 하지 마라. 그대는 오히려 남자들의 행패를 감수하며 많은 고통을 묵묵히 참도록 하라.” (제 13 권 306-310 절)
 
이런 고난과 시련 앞에서 리더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 오디세우스는 10년 동안 죽을 고생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또 다른 시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쯤 해피엔딩이 나올 줄 알았는데 다시 시련이 이어진다. 이 계속되는 난관 속에서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다스린다.
 
“참아라, 나의 마음아, 너는 전에 퀴클롭스(외눈박이 괴물)가 전우들을 먹어치울 때 이보다 험한 꼴을 참지 않았던가! 이미 죽음을 각오한 너를 계략이 동굴 밖으로 끌어낼 때까지 너는 참고 견디지 않았던가!” (제 20 권 18-21 절)
 
리더는 고통을 묵묵히 견디는 사람이다. 남들보다 더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요하고 솔선수범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혹사시켜야 하며 필요하다면 앞장서서 위험의 실체와 대면해야 한다. 유혹하는 요정 사이렌의 노랫소리는 치명적인 속삭임으로 다가와 우리를 파멸로 이끈다. 그 달콤한 노랫소리를 따라가면 모두 파선을 당하게 된다. 이때 리더인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돛대에 꽁꽁 묶었다. 스스로를 고통 속에 옭아매고 전진해 가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대(부하 선원)들은 돛대를 고정하는 나무통에 똑바로 선 채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못하도록 나를 고통스러운 밧줄로 묶되 돛대에나 밧줄의 끄트머리들은 매시오. 그리고 내가 그대들에게 풀어달라고 애원하거나 명령하거든 그때는 그대들이 더 많은 밧줄로 나를 꽁꽁 묶으시오.” (제 12 권 160-164 절)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리더가 걸어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아내 페넬로페와 감격의 재상봉을 했을 때 오디세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여보! 우리는 아직 모든 고난의 끝에 도달한 것이 아니오. 앞으로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노고가 있을 것이고, 그것이 아무리 많고 힘들더라도, 나는 그것을 모두 완수해야만 하오” (제 23 권 247-250 절)
 
이것이 호메로스가 <오디세이아>를 통해 말하고 있는 자기 성찰의 결론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을 해야 한다. 호메로스가 내린 결론은 ‘우리는 고통을 견뎌야 하는 사람’이란 사실이다.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운명을 사랑해야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이러한 리더의 자기 성찰을 아모르 파티(Amor fati,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로 설명했다. 진실로 참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고통을 견뎌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해놓은 목표에 도달했을지라도 다시 ‘앞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노고’를 향해 전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호메로스 인문학의 요체이다. 당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그리고 다시 전진하라.
 
키케로의 인문학: 내가 지켜야 할 도덕적 의무는 무엇인가?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 변호사, 철학자였던 키케로(Cicero, 106∼43 BC)는 제1차 삼두정치의 혼란과 카이사르의 반란과 피살의 와중에서 집정관과 원로원의 리더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키케로가 추구한 인문학적 삶의 자세는 그가 생애 말년에 쓴 <의무론>에 반영돼 있다. 책 제목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키케로는 불한당과 같은 시대에 인간이 지켜야 할 사회적 의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권력과 욕망이 충돌하는 살벌한 시대에 인간이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쓴 책이 바로 <의무론>이다.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해 최초로 인쇄한 책은 물론 <성서>다. 구텐베르크가 두 번째로 인쇄한 책이 바로 키케로의 <의무론>이다. <의무론>은 그만큼 중요한 책이며 구텐베르크 이래로 유럽인들의 도덕적 지표가 됐다.
 
원래 키케로의 <의무론>은 아테네에서 유학 중이던 아들 마르쿠스에게 보낸 편지 형식으로 쓴 글이다. 그리스에서 유학 중이던 아들은 아버지 키케로와 다른 철학 사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러한 아들의 지적 관심에 대해 아버지는 철학 사조의 차이를 뛰어넘는 인간의 보편적 의무가 있다고 역설한다. 바로 지혜로운 사람, 정의로운 사람, 용기를 가진 사람, 그리고 적절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키케로는 먼저 지혜(Sapientia)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체하며 맹목적인 동의를 하지 말라. 그리고 사물을 숙고하라”고 조언한다(의무론, 1: 18). 또한 “애매하고, 어려우며, 필요치 않는 것들에 너무 많은 정력과 노력을 쏟지 말라”고 권고하면서 참된 지혜의 자세를 알려준다(1: 19). 키케로는 사물을 숙고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며, 모르는 것을 아는 체 하며 무조건 동의하지 않는 것이 인문학적 성찰의 첫 출발이라고 말한다.
 
정의(Iustiti)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키케로는 세 가지 원칙을 지키라고 요구한다. 자신을 해치지 않는 이상 남을 해치지 말 것, 공공물은 공공을 위해 사용할 것, 개인의 사유물은 자신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이다. 이른바 ‘정의로운 사회’란 남의 것을 탐내지 않고 자기 것에 만족하는 것에서 출발하며, 계약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자세에서 완성된다. 그래서 키케로는 “각자에게 할당된 것은 각자가 소유하게 하자. 만약 누군가가 자기 몫보다 더 많은 것을 탐낸다면 그는 인간사회의 법을 위반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1: 21).
 
키케로는 정의로운 사회를 남을 돕는 사회라고 설명했다. 정의로운 사회는 강자가 초법적으로 군림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강자가 약자를 돌보는 사회라고 봤다. 이런 사상을 담고 있는 아래 구절은 키케로의 <의무론>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부분이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자에게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마치 자신의 등불로 다른 사람의 등에 불을 붙여주는 것과 같다. 남에게 불을 붙여줬다고 해서 자신의 불빛이 덜 빛나는 것이 아니다.” (1: 51)
 
그렇다면 용기(Fortitudo)를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키케로는 용기, 즉 “불굴의 정신이란 역경에 처했을 때 당황하지 않고, 자기중심을 지켜 나가며, 계획과 이성에서 이탈하지 않을 때 나타난다”고 강조했다(1: 80). 불굴의 정신을 가진 용기를 가진 인간이란 힘이 센 사람이 아니라 정신의 근력이 강한 ‘계획과 이성에서 이탈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키케로는 끝으로 적절(Temperantia)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데코룸(Decorum)의 원칙을 지키라고 강조했다. 이 적절함은 보통 절제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한국어에서 절제는 절약 혹은 감정의 조절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으므로 적절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키케로는 적절함이 도덕적 삶의 근본이라고 말한다. “데코룸(Decorum)한 것이 도덕적으로 선한 것이고, 도덕적으로 선한 것이 데코룸하다”고 강조한 부분에서 이런 강조점이 드러난다(1: 94). 도덕적 삶은 우리가 데코룸을 지킬 때 구현되는데 데코룸한 것은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부여한 것이다. 데코룸하게 산다는 것은 자연의 질서에 부합하는 삶이고 인간의 본질에 따르는 삶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일관된 성격, 중용, 절제, 수치심의 속성을 부여했고 바로 그 자연이 우리에게 어떻게 행할지에 대해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1: 98).
 
결국 적절한 인간이 되기 위해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받은 인간 본성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이성을 소유한 상태로 자연으로부터 생명을 받았으니 그 본성(데코룸)의 원칙에 따라 “욕망을 이성에 복종케 하라”고 키케로는 조언하고 있다(1: 102). 키케로는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삶의 목표를 직시하라고 강조했다.
 
“자연은 본래 우리에게 게임이나 농담을 하라고 이 세상에 내보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절제된 삶을 통해 더 중요하고 큰 어떤 일에 열중하라고 우리에게 생명을 부여한 것이다.” (1: 103)
 
적절함을 위한 두 번째 원칙은 각 개인에게 주어진 데코룸을 반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각자에게 가장 고유한 것이, 각자에게 가장 데코룸한 것”이기 때문이다(1: 113). “각기 각자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고유한, 각자의 데코룸을 지켜주는, 우리 자신의 고유한 본성을 따라야 한다”는 키케로의 교훈이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1: 110).
 
마지막으로 각각의 상황과 기회가 주는 데코룸을 따라야 한다. 키케로는 사업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 즉 오늘날의 경영자들에게 주어진 고유한 데코룸이 있다고 말한다. 2000년 전 로마에서 이런 글이 쓰여졌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를 놀라게 한다.
 
“첫째, 정말 그럴 필요가 있다면 우선 재산을 획득하되 추하고 가증스런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착실한 방법을 통해서 하라. 둘째, 그 재산을 지혜와 근면, 절약으로 증식시켜라. 마지막으로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면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이용하도록 하며 말초적인 관능의 욕구와 사치를 충족시키려 하지 말고 오히려 호의와 자선을 베푸는 데 쓰도록 하라. 이 세 가지를 지키면 도량이 넓고 중후하며 품위가 있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며 신의를 지키는 진실한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될 수 있다.” (1: 92)
 
키케로의 인문학은 인간이 삶을 통해 추구해야 할 도덕적인 자세를 설명하고 있다.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은 지혜, 정의, 용기, 적절함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인간이 지켜야 할 인문학적 의무이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의 인문학: 나는 어떤 아름다움의 흔적을 남길 것인가?
진()의 세계를 다뤘던 호메로스의 인문학이 개인의 성찰을 위한 것이고, 선()의 세계를 다룬 키케로의 인문학이 사회적 존재로서의 윤리 문제였다면, 르네상스 시대의 미켈란젤로가 남긴 미()의 세계는 우리가 남기게 되는 삶의 무늬, 아름다움의 흔적을 추구한다. 참된 인간은 자기 존재에 대한 성찰이나 사회적 윤리의 문제로만 인문학적 관심을 제한하지 않는다. 진()과 선()을 추구하는 인문학적 성찰은 미()의 추구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인간만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아름답지 않다고 해서 살아가는 데 문제가 되는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금수(禽獸)와 같은 존재이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음악을 듣지 않고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를 보고 감동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무시하거나 예술이 추구하는 탐미정신을 도외시하는 인간들에게서 우리는 역한 동물의 냄새를 맡게 된다.
 
모두가 예술가로 생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가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다움의 궁극적인 발현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적 삶에서 나타난다. 당신은 지금 어떤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당신은 어떤 아름다운 삶의 흔적을 남기고 갈 것인가?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이며 인간됨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이다. 우리는 잠시 왔다가 대부분 100년이란 세월을 넘기지 못하고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되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한 뒤에 우리 뒤에 남게 되는 삶의 무늬는 어떤 모습일까? 그것은 아름다울까? 아니면 추한 모습일까?
 
르네상스 시대는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의 시대였다. 미켈란젤로는 이러한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를 조각, 회화, 건축이라는 조형예술의 3대 장르를 통해 최종적으로 완성했다. 미켈란젤로는 아름다움의 추구라는 인문학의 마지막 목표를 완성한 인물이다. 89년간의 긴 생애를 통해 미켈란젤로가 추구하고자 했던 예술의 목표는 바로 참된 인간으로서 어떤 삶의 흔적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고뇌였던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일개 장인(匠人)이 아니었다. 그는 당시 기준으로는 보기 드물게 귀족가문에서 태어났으며 메디치 가문에 입양돼 당대 최고의 인문학자들로부터 플라톤의 사상을 교육받았다. 그가 추구했던 예술의 목표, 아니 남기고 싶어 했던 아름다움의 흔적은 아레테(탁월함)의 추구였다. 미켈란젤로가 20대 초반에 완성한 조각 <피에타>는 로마 예술계에 큰 충격을 줬다. 인간이 조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너무나 완벽하게 대리석으로 재현했기 때문이다. 축 늘어진 아들(예수)의 시신을 무릎에 누인 어머니(성모 마리아)는 처연함이란 단어로 설명될 수 없는 슬픈 얼굴 표정을 짓고 있다. 가히 ‘이 세상 모든 모정(母情)의 아레테’로 부를 만한 걸작이다. 20대 후반에 완성해 베키오궁전 입구를 지키고 서있었던 걸작 <다비드>상은 또 어떤가? 5m가 넘는 거대한 순백(純白)의 대리석에 미켈란젤로는 생명을 불어넣었다. 차가운 대리석에 몸의 온기를 부여하고 깊이 파인 눈에서는 광채가 뿜어져나오게 만들었다. 많은 예술사가들이 “조각이란 예술장르는 이 작품으로 끝이 났다”는 평가를 내릴 만큼 탁월함의 모범을 보여준 작품이다.
 
30대 후반의 미켈란젤로는 처음으로 붓을 들고 그림을 그렸다. 1508년 우르비노 출신의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조각가인 미켈란젤로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지시했다. 로마 교황청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인 시스티나예배당의 천장화가 맡겨졌다. 조각가였던 미켈란젤로는 처음으로 붓을 들었지만 그가 4년 반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한 작품은 인류가 지금까지 그린 그림 중에서 가장 위대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거대하고 위대한 작품 아래에 서면 모든 인간은 왜소해짐을 느끼게 된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은 그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비추는 거대한 거울이다. 탁월함이 무엇인지를 거대한 그림으로 표현했던 미켈란젤로의 작품 아래서 우리는 자신의 왜소한 모습을 발견한다. 열심히 인생을 살지 못한 잘못, 자기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게으름, 탁월함을 추구하지 않고 대충대충 살아온 지난 삶에 대해 후회하는 우리의 모습이 그곳에 반사돼 조용히 고개를 숙이게 된다. 미켈란젤로가 남긴 삶의 무늬는 아름다움의 극상을 보여줬다.
 
미켈란젤로의 탁월함은 동시대와 후대 예술가들의 격렬한 도전을 유발했다. 미켈란젤로가 조각의 대표였다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회화라는 장르를 대표하던 예술가였다. 이 두 명의 피렌체 예술가들은 평생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아레테의 자웅(雌雄)을 겨뤘다. 미켈란젤로가 구도 중심의 피렌체 예술을 이끌었다면, 베네치아 출신의 티치아노는 색채 중심주의로 미켈란젤로와 경쟁했다. 미켈란젤로가 선이 굵은 그림으로 르네상스 미학의 방향을 그렸다면, 동시대의 라파엘로는 섬세한 그림으로 승부했다. 다빈치, 티치아노, 라파엘로가 성취한 예술적 업적은 모두 미켈란젤로라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강력한 경쟁 상대를 넘어 아름다움의 본질에 도전하던 미켈란젤로가 있었기 때문에 동시대의 예술가들이 자극받고 도전하고 싶은 의지가 생겼다. 이러한 미켈란젤로의 존재감은 그의 죽음(1564년) 이후에도 계속됐다. 카라바조와 엘 그레코 같은 16세기 후반의 예술가들은 미켈란젤로를 넘어서기 위해 발버둥치다가 자기 시대를 뛰어넘는 위대한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한번 주어진 인생을 끝마쳤을 때 후대의 사람들이 우리를 기억하며 “저 사람을 뛰어넘고 싶다”는 도전을 불러일으킬 것인가? 아니면 기억도 없이 사라지는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
 
미켈란젤로의 예술은 아레테를 추구했다. 궁극적인 아름다움의 탁월함을 지향했던 그의 작품은 결국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미학의 한계에 도달함으로써 종결됐다. 놀라운 것은 그가 인간이 이룩할 수 있는 아레테의 최고봉에서 역설적으로 ‘인간의 한계’를 깨달았다는 사실이다. 정상에 올라 본 사람만이 그 산()의 전모를 알게 되는 것처럼 미켈란젤로는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단에서 인간의 한계를 발견하고 겸허하게 삶과 죽음의 성찰을 하게 됐다.
 
미켈란젤로는 <최후의 심판>에 자화상을 남겼다. 작품을 주문했던 교황 바오로 3세가 <최후의 심판>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교황조차 <최후의 심판> 그림 앞에서 참회의 시간을 가질 만큼 노년의 미켈란젤로는 충격적인 작품을 그렸다. 이 작품에 남긴 미켈란젤로의 자화상은 더욱 충격적이다. 한 선지자의 손에 들려 있는 미켈란젤로의 흉측한 모습은 살가죽만 남은 시신의 모습이다. 교황조차 고개를 숙이던 위대한 작품을 그린 당사자가 살가죽만 남은 시신의 모습으로 자신을 그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 그림을 그린 자신도 결국 최후의 심판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회환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1554년에 쓴 미켈란젤로의 소네트 283번은 이 위대한 예술가의 자기 성찰을 담고 있다.
 
내 인생 여정은 모두 끝났으니
거친 항해를 통해
나약한 육신을 통해
정박할 평범한 항구를 통해
모든 행동의 원인과 이유를 통해
선함과 악함을 통해.
예술을 통해 이룩한 열정적인 환상은
나 자신과 형상을 위한 절대 권력을 만들었지만
확신하는 것은 죄로 가득했던 나의 삶,
모든 사람의 바람과 반대되었던 삶!
내 탐미로운 생각 중에 다가오는 것은
한때는 즐거웠으나 또 다른 때는 허망한 것.
죽음을 향해 내가 나아가니
한때는 확실했으나, 지금은 두려운 것…
내 작품과 조각은 모두 헛된 것일 뿐,
거룩한 사랑 앞에서는 무의미한 것
우리를 안아 주시는,
십자가에서 벌린,
그 분의 팔에 비한다면!
 
아름다움의 극단까지 자신을 밀고 올라갔던 미켈란젤로는 결국 자신도 죽음 앞에서는 무기력한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됐다. 우리 모두는 죽음이라는 마지막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 인문학적 성찰의 마지막이며, 이를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과 소네트로 표현했다.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데 우리는 어떤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분량을 다했을 때 뒤에 남게 될 인생의 무늬는 진정 아름다울 것인가? 아니면, 추할 것인가?
 
경영과 인문학의 만남에 관해
사실 경영과 인문학이 만났을 때 실질적으로 기대되는 결과는 별로 없다. 경영자들이 인문학적 성찰을 한다고 해서 당장 기업의 성과가 개선되거나, 주가(株價)가 상승하거나, 소비자들의 반응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경영자는 인문학과 반드시 만나야 한다. 그 이유는 경영도 인간의 문제이고 경영자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경영자는 운영하는 회사를 직()의 수단으로 보지 말고 업()의 목표로 봐야 한다. 경영자가 인간의 업()을 다하기 위해 일할 때 그곳에 보람이 있고 함께 이루는 성취의 기쁨이 있다.
 
인간의 업을 다하는 경영자는 ‘고난 받을 운명’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그 운명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2800년 전부터 인류에게 계속해서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호메로스 인문학의 핵심 메시지이다. 진정한 인문학적 성찰은 우리를 ‘나는 누구인가’와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끈다. 권력의지와 개인의 욕심이 지배하던 로마 공화정 말기의 모습은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위기와 닮았다. 이런 야수와 같은 시대를 향해 키케로는 지혜로운 사람,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용기를 가진 사람, 적절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키케로는 지금도 선()을 위한 인문학적 성찰을 계속하라고 가르친다. 경영자에게 키케로의 <의무론>을 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경영자는 미켈란젤로로부터 배워야 한다. 탁월함의 극단까지 밀고 감으로써 미켈란젤로는 미()의 인문학, 즉 아름다움의 추구라는 경영의 궁극적인 목표를 보여줬다. 다른 업체가 감히 따라할 수 없는 완벽한 결과물을 산출하라고 미켈란젤로의 유작은 우리에게 웅변하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조각 <다비드>의 불꽃 튀는 눈빛은 모든 경영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경영의 목표이다.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최종의 탁월함을 향해 쉼 없이 전진했던 미켈란젤로의 인문학에서 우리는 남겨질 경영의 업이 아름다운 작품으로 남기를 바란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희망하는 경영과 인문학의 만남, 즉 경영자를 위한 진선미(眞善美)의 인문학이다.
 
 
김상근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재단법인 플라톤아카데미 연구교수 skk@yonsei.ac.kr
김상근 교수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 및 에모리대에서 석사 학위를,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 신과대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재단법인 플라톤아카데미의 후원을 받아 르네상스 시대의 창조적 영감을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르네상스 창조 경영>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 등 15권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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