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기가 어느 자리에 있는지를 늘 고민해봐야 한다. 공직에 있는 사람이 이익을 탐해 사적인 결정을 내린다거나, 성직자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이 세속의 권력을 넘본다면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알지 못한 행동이다. 세상에는 자신의 자리를 명확하게 판단해 명예를 소중히 여겨할 자리가 있고, 이익을 탐해야 할 자리가 있다.
이렇듯 자기 자리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조명시리(朝名市利)’라는 사자성어를 자주 쓴다. 국가 조정에서는 명예를 소중히 여겨야 하고 저잣거리에서는 이익을 논한다는 뜻이다. 이 사자성어는 <전국책(全國策)>에 나오는 말로 중국 전국시대 국제적 외교관이었던 장의(張儀)가 진(秦)나라 혜문왕(惠文王)에게 올린 진언(陳言)에서 유래됐다. 천하의 패권을 논의하면서 일부의 땅을 침략해 빼앗고자 했던 진나라 왕에게 더 큰 패업을 위해 조그만 이익에 눈이 멀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조명시리’라는 말을 올린 것이다. 세상의 큰 꿈을 도모하는 사람이 조그만 이익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맹자는 인간에게 늘 두 가지 선택이 놓여 있다고 전했다. 하나는 고난을 각오해야 하지만 인간이 가야 할 바른 길(義)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는 생존(生)이다. 이 두 가지 모두를 선택하면 좋겠지만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하라면 구차한 생(生)을 포기하고 고난의 길(義)을 선택한다는 것이 ‘사생취의(捨生取義)’의 결단이다. 목숨을 부지하고 어려움을 피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본능이다. 그러나 인간은 구차하게 살려고 하지 않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맹자는 생존(生)과 옮음(義)의 선택을 이렇게 비유한다.
‘생선 요리와 곰발바닥(熊掌) 요리가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당연히 생선요리를 포기하고 곰발바닥 요리를 선택하지 않겠는가? 살고자 하는 것도 내가 하고자 하는 바요(生亦我所欲也), 의롭게 행동하려는 것도 내가 하고자 하는 바인데(義亦我所欲也),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없다면(二者不可得兼) 사는 것을 포기하고 의를 선택하겠다(舍生而取義者也).’ 곰발바닥은 맹자 시절에도 고급 요리였을 것이다. 생선 요리보다 곰발바닥 요리가 좋다는 것을 알고 선택하면서 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선택하지 못하는가? 구차하게 사는 삶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의롭게 살고자 하는 인간의 위대한 선택이다. 세상에는 경중(輕重)이 있고 귀천(貴賤)이 있다. 중요한 것을 우선하고 귀한 것을 선택하는 게 인간의 당연한 선택 기준이다.
명예와 이익, 의와 생,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중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섰을 때는 반드시 잘 따져봐야 한다.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을 꿈꾸는 대기업이 문어발식 확장을 통해 사소한 이익을 탐하고 공직에서 명예를 생명처럼 여기고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이 퇴직 후 이익을 위해 자신의 명예에 금이 가는 일을 선택한다면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모르는 적절치 못한 선택이라고 할 것이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아는 것을 지지(知止)라고 한다.
<도덕경(道德經)>에 ‘지지불욕(知止不辱)’이란 구절이 있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제대로 선택해 그칠 줄 안다면 평생 욕을 먹지 않고 살 것이란 뜻이다. 조정에서 명예를 추구하고 저잣거리에서 이익을 추구한다는 ‘조명시리’의 인생철학이나 구차한 삶보다는 고난의 의(義)를 선택하겠다는 ‘사생취의’의 결단이 재조명돼야 한다. 이익이 중요하지만 탐해서는 안 될 이익이 있다. 부귀가 인간의 욕망이지만 부귀에 눈이 멀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 있다. 살아야 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지만 때로는 삶을 놓아야 할 때도 있다. 내가 어디서 그쳐야 할지를 아는 ‘지지(知止)’는 만져서는 안 될 것을 만지려고 할 때마다 어머니에게 수없이 들었던 위대한 가르침이었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질문, 답변, 연관 아티클 확인까지 한번에! 경제·경영 관련 질문은 AskBiz에게 물어보세요. 오늘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Click!
회원 가입만 해도, DBR 월정액 서비스 첫 달 무료!
15,000여 건의 DBR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