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인문학의 기본 가치

眞|善|美 위대한 가치, 경영에 혼을 불어넣다

김상근 | 86호 (2011년 8월 Issue 1)
 

 
권여현 - 디오니소스의 숲(Dionysus in bricolage forest) 227x181cm, oil on canvas, 2010
 
“아이와 대화하다 보면 많은 것을 배워요. 세상을 바라보는 유연함과 순수함이죠.” 석남미술상, 하종현미술상 등을 수상한 중견작가인 권여현 국민대 교수는 초등학생 자녀로부터 종종 작품 영감을 얻는다. 그가 만들어낸 마법의 숲에는 규정하기 힘든 여러 상황과 코드들이 혼재한다. 고대 신화 등 어디선가 한번은 봤음직한 친근한 이미지들을 작품에 녹여 재미를 유발한다. 그가 창조해낸 숲을 보면서 우리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은밀함, 신비로움, 생경함을 느낀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처음으로 인문학(Humanitas)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인물입니다. 키케로가 강조했던 인문학은 중세 암흑기에 잊혀졌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부활합니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종교적 의미가 배제된 인간의 학문을 재발견하고 이를 인문학(Studia Humanitatis)이라고 불렀습니다. 인문학은 시대의 경직성에 저항하면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시도합니다.
 
몇 년 전부터 인문학에 관심을 갖는 CEO들이 많아졌습니다. 경영자들이 인문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당장 기업 성과가 좋아지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경영자에게 인문학적 성찰은 기업의 존재 이유 및 장기 생존과 적지 않은 관련이 있습니다. 경영은 결국 인간의 문제입니다. 경영자, 직원, 고객 모두 인간입니다. 그 어떤 학문보다 오랫동안 인간에 대해 깊은 성찰을 추구해온 학문이 바로 인문학입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은 재단법인 플라톤아카데미와 함께 인문학과 경영의 깊이 있는 만남을 시도했습니다. 탁월함을 추구하는 인문학의 위대한 가치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재)플라톤아카데미(www.platonacademy.org)는 국내 최초로 설립된 순수 인문학 연구 지원 공익 재단이다. 인격의 탁월함(Arete)을 추구하는 ‘성찰의 인문학’을 심화, 확산시키려는 목적으로 2010년 10월에 설립됐다. SK그룹과 애경그룹에서 출연한 기금으로 운영되며 인문학자 연구 및 인문 학술대회 개최를 지원한다. 인문학 세미나, 인문 영재 교육 사업 등 인문학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집단 비명에서 즐거운 비명으로
2006년 9월15일 <한겨레신문>에 자극적인 기사가 실렸다. ‘인문학자 117명, 처음으로 집단 비명’이란 제목의 글이었다. 고려대 인문대학 교수 117명 전원이 인문학의 학문적 위기를 우려하며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선언문을 발표했다는 보도였다. 기사의 앞부분은 이렇게 시작된다.
 
“대학교수들이 인문학 위기 극복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채택해 발표했다. 인문학자로서의 성찰과 함께 인문학의 부활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선언문을 현직 교수들이 집단적으로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수들은 선언문에서 인문학의 위상에 대해 ‘인간의 진정한 가치와 삶의 궁극적 의미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 내렸다. 곧이어 인문학 위기의 실체와 관련해 ‘무차별적 시장 논리와 효율성에 대한 맹신 때문에 존립 근거와 토대마저 위협받는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대학의 상업화로 말미암아 연구 활동과 교육 행위마저 계량적 평가의 대상과 상업적 생산물로 변질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문학자들의 이런 집단 비명이 터져나온 지 5년쯤 지났다. 그런데 지금 항간에 들려오는 소문은 인문학자들이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최고위 과정은 인문대학에서 개설한 최고지도자 인문학 과정(Ad Fontes Program)이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기업의 경영자들이 이 과정에 들어가지 못해 안달이고 입학 경쟁률이 3대1을 넘는다고 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세리CEO 프로그램에서도 인문학 관련 주제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매월 오프라인으로 열리는 인문학 조찬모임에도 많은 사람이 몰린다. 각종 기업체 임원 강의, 각 경영대학의 AMP 과정에서도 인문학 과정은 필수다. 이전 같으면 경영학자나 컨설팅 업체의 대표가 도맡았던 기업체 강연에서 인문학자들이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거리의 노숙자들에게 인문학을 소개해 스스로 거리의 삶을 청산하게 만드는 프로젝트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렇게 대한민국 최고 기업의 CEO에서부터 노숙자까지 인문학에 목말라 하니 인문학자들에 대한 수요가 가히 폭발적일 수밖에 없다. 인문학자들의 집단적인 위기 선언이 발표된 지 채 5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들려오는 것은 강연 스케줄에 쫓기고 있는 인문학자들의 즐거운 비명이다. 집단 비명에서 즐거운 비명으로 갑작스러운 전이가 일어난 배경은 무엇일까? 아직 대학의 인문학은 위기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경영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폭발적인 인문학 열풍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인문학의 속성은 부활
대학과 기업 현장에서 느껴지는 인문학에 대한 현격한 온도 차이는 사실 당연한 현상이다. 인문학 자체가 그러한 상이한 반응의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쉽게 말해서 ‘인간에 대한 학문’인데 모름지기 모든 학문은 연구의 역사가 깊어지면서 연구 방법론이 경직되는 현상을 나타낸다. 기존 학문 이론에 대한 유연한 해석이나 혁신적인 접근 방식은 연구의 엄밀성을 유지하려는 전문가 집단의 자기 방어 논리에 의해 보수화되고 배타적이 된다. 엄밀한 전문가적 연구가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이런 고난도의 연구 방법론은 학문의 전문성을 점차 심화시키면서 일반 대중이 갖고 있는 인간에 대한 관심, 삶과 앎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가치와 도덕의 기준점에 대한 기대심리를 점차 외면하게 된다.
 
이른바 세계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이런 (인문)학계의 전문화 현상은 더욱 강화돼갔다. 이제 국내 대학끼리의 우위 경쟁은 무의미해졌고 아시아 10대 대학, 세계 100대 대학 등의 구호가 한국의 캠퍼스에 등장하면서 학자와 교수 집단의 전문성은 더욱 강화됐다. 자연스럽게 일반 대중의 인문학적 관심과 요구는 전문가들로부터 논외의 대상이 됐다. 이런 학문의 전문성과 경직성이 정점에 달했을 때 학문은 이른바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인문학의 역사도 그러했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이 전문가들에 의해 도외시됐을 때 역설적으로 인문학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게 된다. 지금 한국의 경영계에서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은 경직된 전문가 집단의 인문학 연구에 대한 반발이란 측면도 있다.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문학적 요구는 기원전 5세기 철학자 플라톤이 운영했던 아테네 근교의 ‘아카데미아’에서 처음으로 충족됐다. 최초의 대학이라고 불릴 수 있는 ‘플라톤 아카데미’가 존재했던 이유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파이데이아(Paideia), 즉 인간됨의 본질을 교육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리스인들은 수사학, 문법, 수학, 음악, 철학, 지리학, 자연의 역사, 체육을 통해서 인간됨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스인이 추구했던 이상적인 삶의 덕목은 파이데이아를 통해서 아레테(Aret?, 탁월함)의 삶을 사는 것이었다.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통해 거듭 강조했던 것이 바로 아레테의 덕목이다. 발이 빠른 아킬레우스의 용기와 지혜가 뛰어난 오디세우스의 판단력과 자제력은 모두 그리스인들이 본받아야 할 인간됨의 이상(理想)이다. 용기와 지혜로 탁월한 삶을 사는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의 정신은 빛을 잃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 이후 그리스 제국은 사분오열됐고 위대한 철학자와 문학자들의 존재는 잊혀졌다. 향연(饗宴)과 같았던 그리스의 지적 세계는 폐쇄적으로 변했고 풍성했던 학문의 잔치는 편협한 자기주장에 묻혀버렸다. 창조적이었던 그리스 학문이 폐쇄적이며 배타적으로 변해갔을 때 이에 대한 반기가 로마에서 일어났다. 바로 키케로의 인문학이다.
 
키케로는 처음으로 인문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사용한 인물이다. 그는 ‘Humanitas’라는 개념을 통해 로마 사회의 지도자가 갖춰야 할 리더의 덕목을 제시했다. 그리스의 수사학적 전통을 로마 공화정의 교육에 접목해 일반 대중을 설득하고 이끌어야 할 정치가나 법률가들이 갖춰야 할 탁월함의 덕목을 제시했다. 여기서 다시 탁월함이라는 개념이 요구되는데 이는 그리스어의 아레테(Arete)를 라틴어의 비르투스(Virtus)로 확대 적용한 것이다. 그리스어의 아레테가 모든 존재하는 것의 최고 상태를 지칭하는 탁월함이었다면 라틴어의 비르투스는 용기와 남성다움의 덕목이 추가된 탁월함의 다른 이름이다.
 
키케로는 <시인 아르키아스를 위한 변론>에서 탁월함을 추구하는 인문학(Humanitas)의 효용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아르키아스는 그리스 출신이었지만 로마 시민권을 획득해 로마에서 유명한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원전 62년 아르키아스가 취득한 로마 시민권이 불법이라고 고소를 당하자 키케로가 변론에 나선다. 이 유명한 변론에서 키케로는 시()를 포함한 인문학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설명한다. 키케로는 로마 왕정과 공화정의 위대한 인물들을 열거한 후 이런 인물들은 모두 탁월함(Virtus)을 습득하고 훈련하기 위해 인문학의 도움을 받았다고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인문학의 궁극적인 목적을 설명한다.
 
“이런 공부(인문학, Studia)는 젊은 사람들의 마음을 바르게 지켜주고 나이 든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준다. 또한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역경 속에 처해 있을 때 마음의 안식과 평화를 준다.”
 
로마 시대의 키케로가 그렇게 강조했던 인문학의 존재 이유와 필요성은 중세 시대에 다시 잊혀졌다. 이른바 암흑의 시대(Dark Age)가 유럽 전체에 도래함으로써 인간됨의 본질에 대한 성찰은 개인의 종교적 책무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키케로가 추구하던 지도자의 덕목을 위한 인문학적 교육의 중요성도 교회 지도자인 사제 교육의 중요성으로 대체됐다.
 
폐쇄적으로 변한 중세의 인문학을 다시 부활시킨 사람은 르네상스 인문주의 운동의 아버지로 불리는 페트라르카(1304∼1374)와 <데카메론>의 저자 보카치오(1313∼1375)였다. 피렌체 출신인 이 두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정신을 르네상스 시대에 부활시킴으로써 르네상스 인문학의 초석을 놓게 된다. 보카치오는 그리스 출생의 인문학자 레온티우스 필라투스(Leontius Pilatus)를 피렌체로 초청해 유럽 최초로 그리스어 교수로 임명했다. 유럽 역사상 처음으로 그리스 사상이 그리스인에 의해 소개되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레온티우스 필라투스는 최초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라틴어로 번역(1360년대 초)해 아레테를 추구하던 고대 그리스의 정신을 부활시켰다. 그는 보카치오와 함께 파두아에 체류하고 있던 페트라르카를 만나 자신이 번역한 호메로스 책의 라틴어 번역본을 증정했고, 페트라르카가 그를 콘스탄티노플로 보내 그리스 원전을 수집하게 했다.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던 레온티우스 필라투스는 베네치아에 거의 다 와서 벼락을 맞아 사망(1366년)했지만 그가 처음으로 번역한 호메로스의 두 책은 유럽인들에게 그리스의 인문학을 부활시키는 계기가 됐다.
 
키케로의 인문학, 즉 ‘Humanitas’를 르네상스 시대에 부활시킨 것도 페트라르카의 공헌이다. 그는 베로나에서 우연히 키케로가 쓴 <아티쿠스에게 보낸 편지>를 발견해 고대 로마의 정신을 재발견했다. 키케로의 인문학이 부활하게 된 계기이다. 피렌체 출신의 레오나르도 브루니(Leonardo Bruni, 1369∼1444) 같은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인문학을 ‘Studia Humanitatis’로 명명했다. 이 이름은 중세 스콜라 철학의 교조주의와 폐쇄성에 도전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스콜라 철학은 중세시대 말기에 등장했던 자폐적이며 배타적인 학문 방식을 말한다.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라는 표현이 상징하듯이 학문이 교회의 필요와 신앙의 증진을 위해 활용되면서 신에 대한 학문이 대세를 이뤘다. 중세는 그야말로 종교과잉의 시대, 즉 암흑의 시대였다. 사실 중세를 암흑의 시대로 처음 지칭한 사람이 바로 페트라르카다. 그를 포함한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키케로의 인문학을 재발견하고 신의 학문(스콜라 철학)이 아닌 인간의 학문이라 하여 인문학(Studia Humanitatis)이란 용어를 사용했다.1
 
 

가입하면 무료

인기기사
NEW

아티클 AI요약 보기

30초 컷!
원문을 AI 요약본으로 먼저 빠르게 핵심을 파악해보세요. 정보 서칭 시간이 단축됩니다!

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