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도 낭비없는 서머인턴, 정글을 체험하다

68호 (2010년 11월 Issue 1)

필자는 GSB에 오기 전, 1주일에 100시간 이상 일을 시키는 뉴욕 월가의 투자은행을 다녔다. 피 말리는 월가의 생활과 비교하면 MBA 생활이 당연히 수월할 거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는 완전한 착각이었다. 직장 생활할 때보다 더 늦게까지 글을 읽고, 공부를 해야 했다. 그룹 프로젝트를 준비한다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샌 적도 많았다. 수재들과 경쟁하면서 그들의 창의적이고 기발한 두뇌에 주눅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MBA 1학년 생활이 가치있었다고 평가하는 이유는 내 자신에게 많은 질문들을 던지면서 정체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MBA에 오기 전 가장 고민했던 질문인 “과연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나?”에 대해 실마리를 찾았다는 점이다.
 
흥미롭게도 필자는 정규 수업보다 방학 때 여름 인턴을 수행하면서 이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필자는 처음 9주 동안 Bank of America Merrill Lynch(BAML)의 뉴욕, 샌프란시스코 지점에 근무했다. 이후 학교가 제공하는 Global Management Immersion Program(GMIX)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중국 경험도 쌓았다. GMIX는 학생들을 국제 사회의 진정한 리더로서 키우고자 하는 GSB의 목표가 잘 담겨있는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은 GMIX를 통해 지금껏 자신이 알지 못했던 국가의 공공 및 민간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새벽 3시에 일어나는 트레이딩 플로어의 생활
BAML의 세일즈 및 트레이딩(Sales and Trading) 부서에서 일하기 위해 뉴욕에 닿는 순간, 필자에게 든 생각은 ‘정말 정글에 왔구나’ 였다. 크레디트 스위스에서 일했을 때도 트레이딩 플로어(trading floor)는 인정사정 없고 정신 없는 곳이었는데 막상 내가 그 자리에서 일하게 되다니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익숙해지자 트레이딩 플로어에서의 일이 즐거워졌다. 특히 사무실 책상에 앉아있을 때와 달리 회사에 있는 동안 단 1초도 낭비하는 시간이 없다는 점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필자는 매일 6시15 출근해 뉴욕 주식시장이 끝나는 시간까지 단 한 순간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 매매는 그야말로 엄청난 집중력과 멀티 태스킹 스킬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 최소 4개가 넘는 컴퓨터 스크린, 주위의 트레이더나 세일즈 담당자들이 외치는 광대한 정보를 빠른 속도로 읽고 걸러내며, 고객들을 상대하다 보면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때가 허다했다.
 
미국 서부 금융의 중심지인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동부와 서부는 3시간의 시간 차이가 있지만 서부에서도 무조건 뉴욕 시간에 맞춰 일을 한다. 때문에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새벽 4시까지 출근을 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기 위해 아무리 늦어도 오후 7시 반이면 잠자리에 들었다. 때로는 군대에 와 있는 기분도 들고, 진작 이렇게 일찍 자고, 일어나는 모범적인 생활을 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갑을 관계보다 중요한 건 정체성 확립
GMIX 프로그램을 위해 베이징 행 비행기를 탄 필자는 미국계 펀드 오브 펀드(Fund of Funds, 개별 기업이 아니라 펀드에 투자하는 재간접 펀드)인 모건 크릭(Morgan Creek Capital Management)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필자가 GMIX를 택한 이유는 과거의 경험 때문이었다. GSB에 오기 전 고객 서비스 위주의 셀 사이드(sell-side, 금융 상품 중개 및 위탁을 담당하는 쪽) 분야에서만 일했던 필자는 금융권에서 소위 ‘갑’의 위치에 있는 바이 사이드(buy-side, 금융 상품 운용을 담당하는 쪽)에 대한 환상이 컸다. IB 분야에서 일할 때 입사 동기의 절대 다수는 “빨리 셀 사이드 생활을 청산하고 바이 사이드로 옮겨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필자는 두 업무에 대한 특별한 선호는 없었지만 왜 모든 사람들이 바이 사이드에 가기를 원하는지, 그 업무가 그렇게 화려하고 많은 특권을 지니는지 알고 싶었다.
 
필자는 중국 관련 펀드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는 모건 크릭에 오기 전 금융산업은 일종의 피라미드 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금 집행의 주체인 바이 사이드 쪽에서 궁극적인 협상력을 가질 수밖에 없고, 이들이 가장 높은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선입견이었다. 바이 사이드의 최정점에 있는 펀드 오브 펀드에서 일해보니 필자가 금융계의 흐름을 포괄적으로 보지 못했다는 점을 알게 됐다. 4주 동안 여러 차례 고객과의 점심 및 저녁 자리를 가졌다. 필자는 바이 사이드 관계자들은 셀 사이드와 달리 ‘우리 회사에 투자해달라’는 식의 호소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모건 크릭 매니저들은 주 고객인 세계 각국의 연기금을 대상으로 놀라울 정도로 열정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셀 사이드에서도 거의 보지 못한 수준의 호소로 고객의 마음을 얻으려 애썼다.
 
셀 사이드의 갑이 바이 사이드, 바이 사이드의 갑이 연기금이라면, 결국 금융기관의 궁극적 갑은 개인들이다. 필자와 같은 개개인의 작은 돈이 이 거대한 금융계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금융계는 한쪽이 절대적 협상력을 지닌 피라미드 시스템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결국 돌고 도는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힘은 얼핏 보면 가장 약해 보이는 개인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신선했다. 바이 사이드 업무를 경험해보기 전 금융계에 뚜렷한 갑을 관계가 존재하며, 바이 사이드와 셀 사이드의 업무에 엄청난 간극이 있을 거라고 여겼던 필자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건 바로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나의 정체성을 어떤 식으로 확립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한국 학생이라는 점을 안 모건 크릭 관계자들은 아직 모건 크릭이 직접 투자하지 않고 있는 한국 사모펀드 및 벤처 캐피탈에 대한 심도 있는 리서치를 주문했다. 필자는 그 결과물을 모건 크릭 아시아 팀 전체 앞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필자의 발표가 한국의 외자 유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애국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그야말로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일했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서울, 베이징을 오가며 정신없이 보낸 시간들이었지만 조금의 미련이나 아쉬움 없이 해보고 싶었던 모든 일들을 해봤고, 학교에서는 얻지 못했던 깨달음까지 얻었기에 매우 행복했다. 앞으로 내 인생에 이런 기회가 다시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 시간들이 그리울 것 같다.
 
진윤정 스탠퍼드대 GSB Class of 2011 Jin_Cindy@GSB.Stanford.Edu
 
필자는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국제 경제를 전공했고, 크레디트 스위스(Credit Suisse) 뉴욕 지점에서 IB(Investment Banking), 홍콩 지점에서 전략 업무를 담당했다.
 
편집자주DBR이 세계 톱 경영대학원의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MBA 통신’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 스쿨,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LBS), 중국 유럽국제공상학원(CEIBS) 등에서 공부하고 있는 젊고 유능한 DBR 통신원들이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통신원들은 세계적 석학이나 유명 기업인들의 명강연, 현지 산업계와 학교 소식을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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