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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무기력의 늪에서 탈출하는 방법

최명기 | 53호 (2010년 3월 Issue 2)

얼마 전 대기업 이사가 과중한 업무 때문에 자살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결정은 아니더라도 똑똑하고 합리적인 사람이 평소와는 달리 엉뚱한 결정을 할 때가 있다. 자살은 엉뚱한 결정 중에서도 최악이다. 살아 있는 생물에게 있어서 죽는 것보다 더 최악의 상황은 없다. 일이 많으면 그만두면 되는데, 일을 그만두는 대신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면서 죽음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합리적인 믿음
우선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데서 오는 목표 상실이 원인이 될 수 있다. 사람이 한 조직에 오랫동안 있다 보면 조직 안에서는 점점 영향력이 커지지만 조직 밖에서는 시야가 매우 좁아진다. 특히 회사 안에서 부장이 되면 이사가 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목표가 되고, 이사가 되면 부사장, 부사장이 되면 최고경영자(CEO)를 꿈꾼다. 너무 일이 힘들어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는 승진을 포기하기 어려워진다.
 
더 높은 지위와 이에 따르는 돈도 결국은 행복한 삶을 위해 있는 것이지만 나중에는 주객이 전도된다. 왜 자신이 CEO가 되고자 하는지 진정한 의미는 잃어버린 채 그냥 CEO 자체가 목표가 된다. 자신의 위치가 CEO로부터 점차 멀어진다고 느껴지면 추락하는 것만이 유일한 운명이라고 여긴다. 그때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낭떠러지에 몰렸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존재들이 자신을 압박해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서다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이 온다. 그는 이러한 존재들의 압박에 못 이겨 떨어져 죽을 바에는 차라리 스스로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면서 자신을 궁지에 모는 존재를 타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존재의 본질은 올라가려는 ‘멈출 수 없는 욕망’이 빚어낸 자신의 그림자인 셈이다.
 
목표 상실과 함께 인지 왜곡도 엉뚱한 결정을 하게 되는 원인이다. 땡볕이 내리쬐는 여름, 밖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다 안경을 낀 채로 실내에 들어갈 때가 있다. 순간 실내가 어둡게 느껴지는데 선글라스를 벗으면 즉시 밝아진다. 흔히 색안경을 쓰고서 본다는 말처럼 선글라스를 마음의 눈에 끼고 세상을 바라볼 때가 있다. 이때 마음의 선글라스를 인지 왜곡이라고 한다.
 
이러한 인지 왜곡은 왜 생기는 걸까. 무언가를 읽거나 듣거나 보면 그 정보가 뇌에 들어가서 판단을 거친 후 결정이 내려진다. 기억을 참고해 심사숙고한 뒤 그 내용이 말, 글, 행동의 형태로 표현된다. 이러한 사고(思考·thought) 모델에 대비되어 요즘에 대두되고 있는 것이 직관(直觀·intuition) 모델이다. 짧은 시간 안에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사람들은 직관 모델에 의존한다. 말콤 글래드웰의 베스트셀러인 <블링크>에서 주장했듯이 사람들은 오랫동안 쌓아온 경험에 입각해 순간적으로 결정을 할 때가 더 많다. 이런 직관을 심리학자들은 믿음(belief)라고 표현한다. 믿음에는 합리적인 것도 있고 비합리적인 것도 있다. 한 번 비합리적인 믿음에 사로잡히면 합리적인 사고를 하기가 어려워진다. ‘나는 능력이 없어서 이 일을 감당할 수 없다’, ‘이사 자리에서 물러나면 나는 끝장이다’라는 비합리적인 믿음으로 생각이 쏠리면 아무리 옆에서 합리적으로 생각을 교정하려고 시도해도 소용이 없다. 비합리적인 믿음이야말로 가장 대표적인 인지 왜곡이다.
 
왜 똑똑한 사람들의 생각이 이렇게 한쪽으로 쏠리는 것일까? 뇌에서 팔씨름이 벌어지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팔씨름을 시작할 때는 양쪽이 팽팽하게 맞선다. 그러나 한 번 힘이 한쪽으로 쏠리게 되면 손목이 확 꺾이면서 승부가 난다. 버틸 수 있는 최종 각도에서 밀리게 되면 삽시간에 상대방의 힘에 밀려서 손등이 바닥에 닿게 된다. 우리가 결정을 하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뇌의 영역에는 다양한 생각과 기억이 분산되어 있다. 다양한 판단 가치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으로 확 쏠림 현상이 벌어지면 비합리적인 믿음에 사로잡힐 수 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나 일본 전국시대에 다양한 세력들이 이합집산을 하면서 균형을 유지했듯이 정상적인 뇌 안에서는 여러 생각과 가치가 평형을 이루고 있다. 대뇌의 수많은 신경세포들은 어떤 점에서 모두 한 표씩을 갖고 있는 유권자에 비유할 수 있다. 자살 혹은 포기와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에 뇌는 다양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힘들다’, ‘괴롭다’, ‘차라리 죽고 싶다’, ‘끝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대뇌의 모든 네트워크를 평정하면서 부정적 믿음, 비관적 예상이 마치 공포 정권처럼 뇌를 장악하기 시작한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군소 네트워크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그래선 안 돼’라고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겠지만 절망이 네트워크를 잠식한 상태에서는 소용이 없다. 이런 상태에서는 뇌의 사고 네트워크 다양성이 사라지고 승리 아니면 패배 둘 중 하나밖에 없다는 흑백논리에 사로잡히게 된다. 사고의 양극화 현상이 벌어진다. 최후 순간에 대뇌 전체가 절망으로 천하통일이 되면 그때는 어떻게든 생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본능적 뇌가 ‘그건 아니야’라고 아무리 외쳐도 죽고자 하는 대뇌피질의 기세를 이기지 못한다.
긍정 콤플렉스의 자생력을 길러라
한 번 죽음 혹은 포기와 같은 극단적 상태로 마음이 기울면 돌이키기 어렵다. 따라서 예방이 중요하다. 예방이란 마음속의 자그마한 네트워크들이 서로 자기 몫을 하면서 경쟁과 견제를 통해 균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은 신경 네트워크라는 말로 표현되지만 20세기 초 아직 뇌의 해부학적 구조를 모르던 때 융은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무의식적인 사고방식을 ‘콤플렉스’라는 말로 표현했다. ‘학력 콤플렉스가 있어’, ‘작은 키가 나의 콤플렉스야’라는 말에서 우리가 쓰는 콤플렉스란 용어는 열등 콤플렉스(inferiority complex)다. 이러한 부정적인 콤플렉스에 사로잡히면 남보다 못하다는 열등감이 매번 고개를 쳐들어 아무리 노력해도 제어할 수 없게 된다.
 
반면 긍정적인 콤플렉스도 있다. 우리가 부정적인 생각으로 쏠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다양한 긍정적 콤플렉스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절망적이더라도 잘 될 거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희망 콤플렉스’, 너무 괴로울 때는 잠을 자는 ‘게으름 콤플렉스’, 힘들 때는 지난번 휴가에 다녀온 남태평양을 생각하는 ‘회상 콤플렉스’도 있다. 일을 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이러한 긍정 콤플렉스들을 하나씩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제거할 때마다 절망과 포기로부터 나를 지키는 힘도 하나씩 사라지게 된다. 평소에 다양한 긍정 콤플렉스의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난초가 예쁘고 고귀해 보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잡초가 생태계의 생존을 위해서는 더 필요하듯이 말이다.
 
자신과는 다른 가치를 가진 사람들을 많이 접하는 것도 극단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 방법이기도 하다. 대기업 간부들은 회사에서 승진해서 많은 보수를 받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회사는 다를지 몰라도 이들이 사업상 이유로 만나는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가치관을 갖고 있을 때가 많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와 인생관은 저마다 다르다. 필자만 해도 정신과 의사였을 때는 프로이트, 칼 융, 에릭 캔들, 어빈 얄롬 같은 학자들이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비즈니스 스쿨을 다니면서는 마이클 포터, 필립 코틀러, 워런 버핏 같은 이들이 중요했다. 어느 한 곳에서 매우 중요한 사람이 생각, 가치가 다른 곳에서는 큰 의미를 주지 않을 수 있다. 친구, 스님, 목사, 단골 술집 주인이든 나와 다른 가치를 갖고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접하는 것은 때로 도움이 된다. 만약 문득 인생이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옆의 부인 혹은 남편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곰곰이 이야기를 들어봐라. 나와 세대 차이가 나는 자식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들어보는 것도 좋다. 이때 내 생각을 강요하기보다는 그들이 어떤 가치를 갖고 사는지 들은 뒤 이를 체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스스로 자정 능력을 잃었다고 생각이 든다면 뇌의 균형을 인위적으로 돌려놓는 수밖에 없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은 항우울제, 항불안제를 비롯한 정신과 약물 치료다. 절망과 무기력의 늪으로 점점 빠져가는 뇌의 상태가 바로 우울증이다. 우울증으로 인해서 무기력과 절망에 빠진 사람 중 대략 열 명 중 여덟 명은 한 달 동안 매일 한 알의 알약을 먹는 것만으로도 절망에서 어느 정도는 벗어날 수 있다. 따라서 죽고 싶을 정도로 업무가 과중하다고 생각이 들 때는 혹시 자신이 우울증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봐야 한다. 일의 양은 변함없지만 자신의 뇌가 부정적으로 변하면 일이 지옥처럼 느껴질 수 있다.
 
편집자 주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기업을 운영하거나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계신 독자 분들에게 상담을 해드립니다. 최명기 원장에게 e메일을 보내주시면 적절한 사례를 골라 이 연재 코너에서 조언을 해드릴 예정입니다. 물론 소속과 이름은 익명으로 다룹니다. 이번 글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가상의 인물들입니다.
  • 최명기 | - (현) 정신과 전문의·부여다사랑병원장
    - 경희대 경영대학원 의료경영학과 겸임교수
    myongki@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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