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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프로페셔널의 조건

선명한 꿈, 광기 어린 도전! 토종인재도 세계 흔들수 있다

한국에서 프로가 되기는 쉽지 않다. 뛰어난 개인 역량을 갖춘 톡톡 튀는 인재보다는 조직과 잘 융화하는 성실한 인재를 더 선호하는 문화 탓이다. 하지만 척박한 토양에서도 개인 역량을 쌓아가면서 ‘세계 최고’자리를 차지한 한국인 프로페셔널도 많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 LG경제연구원은 전문가 및 일반인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최고의 글로벌 프로페셔널이 된 한국인 20명을 선정, 이들의 성공 비결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운이나 타고난 재능만으로 프로가 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가난이나 예상치 못한 불행으로 나락에 떨어진 사례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고난 앞에서도 꿈을 잃지 않았고 ▽고집스럽게 자신을 담금질했으며 ▽작은 성공에 만족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인 특유의 거침없는 도전 정신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세계무대에 우뚝 선 한국형 프로페셔널의 성공 비결을 살펴보자.
 
크고 선명한 비전을 가져라
코이’라는 비단잉어는 어항에 넣어 두면 7~8㎝밖에 자라지 못한다. 조금 더 큰 수족관에 넣어두면 15~20㎝까지 자란다. 하지만 큰 강에서는 무려 1m이상 자란다. 한국형 프로페셔널들은 코이와 마찬가지로 어항이 아닌 넓은 강과 같은 원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

프로골퍼 최경주는 골프장 하나 없는 전남 완도의 섬마을에서 자랐다. 시골 마을의 8타석짜리 골프연습장에서 거친 바닷바람과 맞서며 연습을 해야 했지만 그는 세계무대에 도전하겠다는 확고한 꿈을 갖고 있었다. 카펫 같은 골프장에서 화려한 대접을 받는 미국 프로 골퍼들의 모습을 보고 반드시 미국에서 성공하겠다는 비전을 가진 것이다. 물론 주위 사람들은 최경주의 꿈을 허황된 ‘치기(稚氣)’로 생각했다. 실제 최경주가 1999년 미국 PGA투어에 도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대부분은 “일본에서 두 어 번 우승하더니 간이 부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꿈을 버리지 않았고 기필코 미국행을 강행했다.
 
세계 최대 중국음식점 ‘하림각’을 세운 남상해 회장도 어렸을 때 가난의 굴레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마음속으로 커다란 기와집을 꿈꿨다. 자신이 일하는 중국집보다 훨씬 더 큰 중국집의 사장이 된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힘겨운 그의 삶을 지탱해준 원동력이 됐다. 그리고 그의 선명한 꿈은 그대로 현실에서 실현됐다.
 
세계 최고의 산업 디자이너로 꼽히는 김영세 이노디자인 사장은 중학교 3학년 때 친구 집에서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라는 미국 전문 잡지를 보고 벅찬 감정을 느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됐고 결국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먼저 인정받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다.
 
할리우드 스타 김윤진도 2002년 영화 ‘밀애’에 출연,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충무로에서 러브콜이 쇄도했다. 하지만 더 큰 목표에 도전하기 위해 과감하게 미국행을 택했다. 그리고 2년 후 그녀는 미국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ABC방송의 프로그램 ‘로스트’에서 ‘선’이란 배역으로 출연하며 당당하게 세계 시장에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아마추어는 평생 다른 사람의 꿈을 실현하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에 그친다. 하지만 프로는 자신의 꿈을 현실로 이뤄낸다. 많은 사람들이 꿈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꿈이 너무 커서가 아니다. 장애물을 만났을 때 현실과 타협하며 꿈을 포기하기 때문이다. 생후 19개월에 시력과 청력을 잃은 헬렌 켈러는 "맹인으로 사는 것보다 더 불행한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앞을 보면서도 꿈이 없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경영 연구가 짐 콜린스는 ‘성공하는 기업의 8가지 습관’이란 책에서 초우량 기업들은 모두 ‘크고 담대한 목표(B.H.A.G., Big Hairy Audacious Goals)’를 갖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프로페셔널의 길은 크고 선명한 꿈과 비전을 갖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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