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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기의 국가경영

‘權’을 행하더라도 ‘道’에 부합해야

김준태 | 385호 (2024년 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인조 집권 기간은 ‘권도론’이 대두한 시대였다. ‘권도’란 보편 원칙이자 고정불변의 가치 기준인 ‘경도(經道)’가 시대 상황과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경도를 고집하기엔 나라가 처한 환경이 위태로웠기 때문에 인조 대 주요 정치인들은 권도를 주장했다. 인조 시대의 권도론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교훈을 준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실의 요구를 능동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기존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은 현대의 우리에게 더욱더 필요한 자세다. 권도가 인간 마음의 역량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임시방편의 ‘권’을 행하더라도 궁극적으로 ‘도’에 부합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정치든 경영이든 옳고 그름이나 맞고 틀림 중에서 선택이 이뤄지지 않는다. 각자 나름의 명분과 필요성을 갖춘 것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선택하는 순간부터 정답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의 가치관과 비전에 따라 선택을 한 뒤 그 선택이 정답임을 증명해야 한다. 선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인 셈이다.



인조(仁祖, 재위 1623~1649)의 집권 기간은 전후 복구, 폐정(廢政) 개혁, 정책 쇄신과 같은 시대적 과제 해결을 요구받음과 동시에 전쟁, 역모, 대기근1 등 비상 상황이 지속된 시기였다. 여기에 ‘오랑캐’라 업신여겼던 청나라를 상국(上國)으로 모시게 된 병자호란(丙子胡亂)의 패배는 조선인들의 세계관과 윤리 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이제 기존의 방법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인조 대에 ‘권도(權道)’론이 전면에 등장한 이유는 그래서다. 권도란 보편 원칙이자 고정불변의 가치 기준인 ‘경도(經道)’가 시대 상황과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유교에서는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경(經)’이라 해 반드시 따라야 할 준칙으로 간주하는데 아무리 경이 보편타당하고 올바르다고 해도 현실 세계의 변화와 다양한 변수를 모두 감당할 수는 없다. 보편성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특수성이 있고 원칙만 가지고서는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임시방편으로 경도를 잠시 유보하거나 혹은 현실에 맞게 변용하는 것을 허용한다. 이것이 바로 권도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변칙과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 권도는 유학의 핵심 가치인 ‘인시제의(因時制宜)’2 에 부합하는 개념으로 공자와 맹자가 제시한 이래 주자에게서도 그 필요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어떤 유학자도 권도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권도를 강조하다 보면 자칫 경도와 분리될 우려가 있다. 심지어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권도로 합리화하고, 개인의 사사로운 욕망을 권도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 있다. 더욱이 권도는 상황에 대한 주관적인 숙고를 전제로 한다. ‘지금이 권도를 시행해야 할 상황인지’ ‘지금 시행하는 권이 궁극적으로 경도에 부합할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하는데 이를 판단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따라서 올바른 인식·판단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권도를 행할 경우 남용하거나 오용할 소지가 크다. 그래서 주자는 “권도는 부득이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대개 사용해서는 안되는 때가 많고” “털끝만 한 차질이 있어서도 안 된다”라며3 성인(聖人)만이 행사할 수 있다고 경계한 바 있다.4 그런데 당장 권도가 시급히 요구되는 급박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경도를 고집하다간 골든타임을 놓쳐 나라가 위태롭게 생겼다면? 이때 권도를 행하는 사람이 성현의 수준에 도달했느냐 아니냐를 두고 논쟁할 겨를은 없을 것이다. 지금이 과연 경도가 아닌 권도를 써야 할 상황인가, 권도를 써야 한다면 어떤 권도가 가장 적합한가를 두고 고민할 시간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머뭇거리지 말고 당장 행동해야 하는데 인조의 시대가 바로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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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대에는 주요 정치가 대부분이 권도를 거론할 정도였다. 인조반정의 1등 공신이자 이조판서를 지낸 이귀(李貴, 1557~1633)는 권도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지금 망국이 눈앞에 닥친 상황이며 이러한 때에는 기존의 법질서나 관행에 구애받지 말고 비상(非常)한 계책을 통해 나라를 되살려야 한다”라고 주장했다.5

좌의정을 지낸 이정귀(李廷龜, 1564~1635)는 “경(經)으로 이끌면 인심이 흩어지고 권(權)으로 이끌면 사람들의 마음이 진정되며, 경으로 다스리면 이 재앙과 난리를 해결하기 어렵고 권으로 다스리면 국가의 회복을 기대할 수 있으니, 이러한 때에 경에 집착해 변통할 방도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되겠습니까?”라며 경도를 고집하지 말고 권도를 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6

인조반정의 2등 공신으로 우의정에 올랐으며 학자이자 문장가로 명성을 날린 장유(張維, 1587~1638)도 “반드시 옳은 일이 아니더라도 만약 그것이 시세에 합당하고 인심에 순응하는 것이라면 행하여져서 이루어지지 않은 바가 없었고 나라도 안정되어 견고해졌다”7 라며 권도를 중시했다. 장유는 성리학자들이 부정적으로 보는 오패(五霸)8 나 법가의 사상가 상앙(商鞅)과 신불해(申不害)에 대해서도 실천적인 마음으로 실질적인 일들을 행하며, 계획을 잘 세워 공효를 거두었으니, 차원의 높고 낮은 차이는 있을지언정 뜻을 세워 성취했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9 라며 높이 평가했다. 경도에서 벗어나더라도 나라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성과를 거둔다면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인조반정의 핵심 브레인으로 영의정에까지 오른 최명길(崔鳴吉, 1586~1647)은 “역경을 만나 어찌할 수 없는 곳을 만나게 되면 능히 변통해야 한다”10 며 “권도를 행해야 열매를 거둘 수 있고, 경도를 따르다간 아무것도 남지 않는 때도 있다”11 라고 말할 정도로 권도의 효용을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경향은 성인(聖人)이 아니면 함부로 권도를 행하지 말라는 주자의 경고에 짓눌려 권도를 거론하기 조심스러워했던 다른 시대와는 달랐다. 그만큼 혼란하고 위기가 극심했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관행에 얽매이거나 한 가지 방법에 고착되지 않고 혁신적인 해결책을 모색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권도를 일상화함으로써 현실의 변화에 주목하고 능동성을 체질화한 것이다. 실제로 이 시기 위정자들은 기존의 틀을 과감히 바꾸고 각종 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토지 조세제도, 공납, 양전, 군역, 호패법, 은광 개발, 염철(鹽鐵)12 , 동전 유통, 구휼제도, 관제 개편, 국방력 강화 등 다방면에서 진전이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선왕지제(先王之制)13 를 뒤흔든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기득권의 저항이 있었지만 ‘권도’를 논리로 돌파해 갔다. 물론 실패한 정책도 있었다. 하지만 효종 대의 대동법 개혁 등 훗날의 성과들, 한국 역사상 최악의 재난이라는 경신대기근(1670~1671)을 단기간 내 극복한 위기 대응 역량과 회복탄력성은 인조 시대 권도론자들이 쌓아 놓은 노력에 힘입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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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인조 시대의 권도론자들이 오로지 ‘권’만을 외쳤던 것은 아니다. 지금 행하는 권도가 현재 상황에서 경도를 구현하는 가장 적합한 방법이 되고, 경도에서 벗어나 임시방편으로 선택한 권도가 궁극적으로 ‘정답’이 되려면 1)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2) 지금 권도가 정말 필요한 상황인지를 제대로 판단하며 3) 알맞은 권도를 채택하고 4) 시행한 권도가 올바름을 잃지 않고 도에 합치되도록 만드는 사후 노력이 모두 충족돼야 한다. 유학에서는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이라고 보았다. 일찍이 맹자가 “마음이라는 것은 사람의 신령하고 밝은 것이니 온갖 이치를 구비해 만물에 대응하는 근거가 된다”14 라고 했는데, 즉 사람의 마음 안에는 최선의 판단과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조 대의 권도론자들은 양명학자라는 오해를 사면서까지15 바로 이 ‘마음’을 중시했다. 특히 장유는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정일(精一)’ 공부를 역설했고 최명길 또한 판단과 실천 주체로서 마음의 위상을 강조하며 “신이 힘쓰는 것은 실(實)이며 신이 믿는 것은 심(心)입니다”16 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권도를 주도해야 할 인간의 마음을 먼저 확고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올바른 인식과 판단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마음을 밝고 투명하게 유지해야 하는 법이다. 내 마음이 혹시라도 치우쳐 있거나 사적 욕망에 조금이라도 물들어 있다면 나의 선택 역시 잘못된 길로 빠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평소 수양에 힘쓰고, 나의 마음이 투명하고 올바르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항상 주시하고 조심하라는 것이다. 그리되면 비록 성현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채 권도를 행하더라도 오용하거나 남용하는 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 인조 시대의 권도론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교훈을 준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실의 요구를 능동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기존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은 현대의 우리에게 더욱더 필요한 자세다. 권도가 인간 마음의 역량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중되는 불확실성과 다양한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평소 그 사람의 가치관이 올발라야 하고 사고 체계가 객관적이며 투명해야 한다. 마음이 편견과 선입관으로 물들어 있고,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치우쳐 있는 사람이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판단을 잘할 리가 없다. 더욱이 일의 흐름을 읽고 성찰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응용할 줄도 모른다. 인조 시대 권도론자들이 강조했던 것처럼 평소 수양을 통해 마음공부에 힘써야 그런 힘을 얻을 수 있다.

아울러 임시방편의 ‘권’을 행하더라도 궁극적으로 ‘도’에 부합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정치든 경영이든 옳고 그름이나 맞고 틀림 중에서 선택이 이뤄지지 않는다. 각자 나름의 명분과 필요성을 갖춘 것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선택하는 순간부터 정답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병자호란 때 척화와 주화가 대립하고, 코로나 사태 때 국가의 방역 안보와 개인의 자유가 부딪히고, 기업에서 보수적 경영과 공격적 경영이 충돌할 때 우리는 각자의 가치관과 비전에 따라 선택을 한 뒤 그 선택이 정답임을 증명해야 한다. 선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인 셈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특히 내가 선택하지 않는 쪽의 내용도 고려하고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 권도론이 주는 교훈이다.
  • 김준태 |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초빙교수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한국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 유교문화연구소, 유학대학 연구교수를 거치며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현실 정치에서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군주와 재상들에 집중해 다수의 논문을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왕의 공부』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akademie@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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