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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엽편 소설: 우리가 만날 세계

“나는 평행우주의 너야!”

이경 | 367호 (2023년 04월 Issue 2)
오늘 아침 토스트를 구울 때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늘 하던 대로 말랑말랑한 흰 식빵 두 장을 오븐형 토스터에 넣고 굽기 조절 다이얼을 2에 맞춘 다음 어떤 캡슐을 넣을지 고민했다. 도쿄 에스프레소? 이스탄불 룽고? 상하이 아르페지오? 그러다 시애틀 라떼를 먹기로 했다. 어제 마신 와인 때문인지 아직 속이 쓰려서 부드러운 커피가 마시고 싶었기 때문이다. 분홍색 캡슐을 커피머신에 넣고 추출을 시작한 사이 토스터에서 띵, 하는 알림음이 났다. 다 구워졌다는 알림이었다. 추출 중인 커피머신에서 물 끓는 소리가 요란히 났다. 겉면은 살짝 연갈색으로 변했으나 그 속의 식빵 결은 촉촉하게 살아 있는, 굽기 2로 구워진 식빵에서 피어난 맛있는 냄새가 작은 원룸 전체에 솔솔 퍼지고 있었다. 거기에 낱개 포장된 이즈니 버터를 반만 발라 그날 고른 커피를 곁들여 먹는 것. 요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침 루틴이다.

이변은 오븐형 토스터의 뚜껑을 열었을 때 발생했다. 잘 구워진 식빵 두 장이 나와야 할 곳으로부터 웬 여자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 얼굴이 다 튀어나온 것은 아니었다. 내 주방에서 제일 비싼 가전인 토스터는 돈값을 확실히 하는 물건이었지만 사람의 머리통이 들어갈 만한 크기는 절대 아니었다. 식빵을 차곡차곡 쌓아 넣으면 열 장 정도나 들어갈까? 하여튼 온전한 사람 얼굴이 그 안에 숨어 있다 튀어나올 수는 절대로 없었다. 지금 좀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그 얼굴은 단단한 축구공 같은 물질이 아니라 홀로그램같이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입체 화상(畫像) 느낌이었던 것 같다. 너무 생생히 잘 보이는 귀신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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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그에 대한 기억이 불분명한 건 당연하다. 먼저, 나는 너무 놀라 뒤로 자빠진 상태였다. 토스터에서 아침거리로 먹을 식빵 대신 웬 여자 머리를 끄집어낸 내 심정이 어땠겠는가? 솔직히 그 자리에서 기절하지 않은 나 자신이 용할 지경이다.

게다가 그 얼굴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나타났다 사라져버렸다. 어떤 느낌이었냐면…. 번개가 내리친 아주 잠깐 동안 내 비싼 토스터가 잠시 다른 차원으로의 통로가 됐던 것 같다. 마블 영화 ‘토르’를 봤다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바이프로스트 말이다. 아스가르드의 수문장 헤임달이 열어주는, 다른 세계를 이어주는 무지개다리. 아주 먼 우주의 이곳저곳을 자유자재로 이어주는 웜홀이라는 것 같은데 자세한 건 모르겠다. 어차피 허구의 장치인데 모르면 좀 어떤가? 몰라도 이야기를 즐길 수 있으면 그만인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바이프로스트를 검색했다. 위키백과도 읽고, ‘토르’ 시리즈를 자세히 리뷰한 블로그도 읽고, 헤임달의 황금 눈을 열쇠로 하는 팬픽도 읽고, 마블 영화가 하드 SF로서 얼마나 허접한지 까는 유튜브도 봤다.

별 소득은 없는데도 뭐가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튀어나와 보다 보니 어느새 네 시간이 지난 후였다. 일요일의 귀중한 네 시간이 그렇게 날아가 버렸다. 침대에 누워만 있어 아픈 허리를 두들기며 일어나 라면을 하나 끓여 먹었다.

라면을 다 먹은 다음, 이번엔 머그컵에 얼음을 가득 담고 이스탄불 룽고를 내려 노트북 앞에 앉았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라는 영화를 봐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블 영화를 너무 띄엄띄엄 봤기 때문에 ‘평행우주’라는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는데 그렇게 영화 리뷰 블로그를 찾다 보니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라는 영화에 그 이야기가 자세히 나온다는 평이 있었다.

“나는 평행우주의 너야! 우주선 ‘천라’의 엔지니어! 내일 아침 6시30분 이 기계로 토스트를 구워, 두 장, 빠아아아아아아아싹!”

분명 토스터에서 튀어나온 여자가 그렇게 소리쳤다. 모르는 여자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게, 내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오늘 아침 화장실 거울에서 본 내 얼굴.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 여자의 한쪽 눈은 파랗게 점멸하는 헤드라이트 같은 형태였고, 와, 지금 또 생각났다. 머리 옆에서 나를 향해 뻗은 손의 반절이 분홍색 실리콘 같은 물질로 덮여 있었다. 그건 절대 사람의 피부가 아니었다. 야광인 것 같았고.

그런데 만일 그 얼굴이 거기까지만 말했으면 기절하고 말았을 것을,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내 눈을 똑바로 보며 토스트를 바싹 구우라고 소리친 다음 “안 그러면 세계가 멸망”까지 얘기한 순간 얼굴이 팟 사라졌기 때문이다. 마치 누군가 재미없는 채널을 돌려버린 듯 한순간에 팟 하고 사라져 버렸다. 화장실 문이 등에 닿는 좁은 원룸 주방 바닥에 주저앉은 채였지만, 그래도 나는 똑똑히 보고 들었다.

세계가 멸망한다니…?

그게 진짜 신경 쓰이는 말이었다. 솔직히 3개월 할부로 산 비싼 토스터에서 귀신이 나왔다는 전개면 소금을 뿌리든 태우든 당근에 내놓든 하면 될 것 같았다. 공포영화에서는 많이 그러니까. 그런데 ‘세계가 멸망’한다지 않는가. 이건 영화로 따지자면 장르가 다른 것이다. 영화도 만날 ‘리틀 포레스트’ 같은 힐링물만 찾아보는 소심한 직장인에 불과한 나로서는 정말이지 신경 쓰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 때문에 세계가 멸망한다잖아…. 그게 내 세계인지 아니면 한쪽 눈을 헤드라이트로 교체한 내 얼굴을 한 여자의 세계인지(정황상 후자겠지?), 하여튼 세계가 멸망한단다.

오늘은 평화로운 일요일이었다. 솔직히 이따 저녁을 먹고 나면 다가올 월요일 생각에 어느 쪽 세계가 멸망하든지 내가 알바냐 하는 마음이 들겠지만…. 이 여자는 내가 아직 평화를 지키고 싶은 일요일 아침에 나타나 그런 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봤다. 다행히 구독 중인 OTT 플랫폼 중 하나에 들어와 있었다.

눈물 콧물을 쏙 뺐다. 엄마한테 괜히 사랑한다고, 그러니까 엄마도 이 영화 좀 보라고 카톡을 남겼다.

부은 얼굴도 가라앉힐 겸, 찌뿌둥한 몸도 풀 겸 해서 편의점에 다녀왔다. 네 캔에 만 원 행사 중인 맥주를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사고 말았다. 맨날 사지 말아야지, 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결국 사고 마는 나를 오는 길에 반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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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우주란 내가 살고 있는 우주와 평행선상에 놓인 또 다른 우주를 말한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이 평행우주 간의 관계를 선택의 문제로 풀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이 선택을 했다면 이 우주로, 저 선택을 했다면 저 우주로, 그 선택을 했다면 그 우주로 갈라져 나간다는 식으로.

영화에서는 그렇게 무수히 분기한 우주 사이를 기괴한 행동을 통해 ‘점프’하며 돌아다닐 수 있었다. 이 상황에 전혀 개연성이 없는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행동, 즉 일촉즉발의 대치상황에서 챕스틱을 먹는다든가 하는 행동을 하면 그게 다른 우주에 사는 나와 연결되는 통로를 연다는 설정인 것 같았다. 솔직히 마블 영화와 마찬가지로 어떤 기제인지 정확히 이해는 안 되지만, 하여튼 그런 식이었다.

그러니 그런 식으로 이해해보자면, 오늘 아침 내 토스터는 바이프로스트 아니면 ‘점프대’ 같은 역할을 한 것 같다. 그리고 평행우주에 사는 내가 그걸 이용해 이 우주에 사는 내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평화롭고 또 생각할 시간도 많은 일요일 아침을 골라서. 타이밍은 우연이었을까?

나는 햇반을 돌리고 스팸을 구워 신김치와 늘어놓고 저녁을 먹었다. 영화 감상으로 감정적 소모가 많아서 저녁을 먹을 땐 유튜브만 틀어놓고 봤다. 맥주도 한 캔 마시면서 한참 웃고 나니까 내일이 월요일인데 세계가 멸망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는 비관적인 기분도 좀 희석됐다.

마지막으로 숙면을 위한 30분 스트레칭 영상을 따라 한 다음 평소처럼 잘 준비를 하면서 나는 토스터 뚜껑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6:30, 식빵 두 장, 굽기 8.’ 내 토스터의 굽기 모드는 1부터 8까지였기 때문에 나는 8이라는 숫자를 빨간색으로 특히 강조해서 적었다. 시간이야 원래 내가 평일 아침을 먹는 시간이므로 신경 쓸 것 없었지만 늘 굽기 2로만 먹었던 터라 내일 아침 비몽사몽인 채로 무심코 평소처럼 2로 맞출까 봐 조금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불을 다 끈 방에 눕자니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나는 인내심을 발휘해 반듯이 누워 눈을 감았다. 눈 건강도 버리고 수면 시간도 버리고 나면 내일 아침 기분이 정말 좋지 않을 것이었다.

누군가의 세계를 구해야 한다면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구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눈을 감고 누워 바다에 뜬 해파리가 됐다고 상상했다. 나른해지는 몸에 솔솔 잠이 밀려왔다.

이 모든 게 단지 아침잠에 취한 나의 착각이었다면 어떤가. 그 착각 덕분에 나는 세계를 구할 준비를 하며 오늘을 보냈고, 내일 아침엔 세계를 구할 터인데. 착각이 아니었다면 진짜 구할 것이고, 착각이었다면 뭐, 일요일을 알차게 채운 재미있는 착각이었으니까 됐다.

… 그런데 그 여자, 우리 편은 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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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 | 소설가

    필자는 서울대 국문과에서 현대소설을 공부하고 신소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소설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로 2022 문윤성SF문학상 중단편가작을 수상했다.
    plumkyung2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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