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d Management

사람, 사람을 얻어야 큰다 - 인생의 코너를 도는 12가지 방법 <11>

54호 (2010년 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사람은 사람을 통해 성숙한다. 때때로 누군가의 인생에 한 사람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사람은 서로 연루되고 결합되면서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다. 자신의 삶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할 누군가를 얻지 못하는 것은 비극이다. 사람을 얻어 진정한 관계 속에 놓일 때, 그의 결정적 지지와 도움으로 새로운 세계로 도약한다.



좋은 제자는 스승을 빛나게 한다

극작가 이은성은 허준과 그 스승 유의태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얼음골에서 스승은 죽고, 유언에 따라 허준은 울며 스승의 주검을 해부한다. 스승의 사랑으로 그는 의술을 넘어,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심의(心醫)가 되고 결국 신의(神醫)의 경지로 도약한다. 허준의 스승 유의태는 실존 인물이 아니고 이야기도 허구지만 사제지간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후대에 남았다.

소크라테스와 그의 두 명의 제자인 플라톤과 크세노폰의 이야기도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스승에 대한 두 사람의 견해가 너무 달라 진짜 소크라테스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논란의 진위를 가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크세노폰은 군인인 동시에 역사가였다. 지력이 뛰어나지 못해 스승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고 따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세 사람들은 그가 스승의 이야기를 꾸며낼 만한 재주가 없고 고지식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가 쓴 <소크라테스에 대한 추억>을 사실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아둔한 제자가 위대한 스승의 진의를 잘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크세노폰이 만들어낸 소크라테스의 사상이 왜곡되었을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반대로 플라톤은 누가 보더라도 상상력이 풍부한 천재였으며 문학적 재능이 탁월하다는 점에서 그가 전한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는 의심받는 경향이 있다. 가령 그가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실제 사건인지 플라톤이 스승의 이름을 빌어 자기 견해를 대변한 것인지 좀처럼 판단하기 어렵다.

상상력과 추론이 뛰어난 천재, 그리고 우직하고 고지식한 군인. 이 두 사람이 같은 스승을 두고 다른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누가 더 역사적 진실에 근접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좋은 스승은 역사가 되고 때때로 전설과 신화가 되어 제자들에게는 물론 인류의 유산으로 남게 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스승은 제자의 정신적 골수와 심장으로 보존된다. 제자들은 스승의 가르침으로 도약하고, 진화한다. 오직 좋은 제자만이 눈부신 성장으로 스승을 빛나게 한다.

동료의 지지와 격려는 인생을 바꿔놓는다

스승만이 제자의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료의 격려와 관심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20세기 영시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이 큰 작품 중 하나는 T. S. 엘리엇의 ‘황무지’이다. 특히 봄이 되면 여기저기서 사람들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시구를 입에 담는다. 엘리엇은 책을 좋아하고 문예에 밝고 기지가 풍부한 ‘하버드 맨’이었다. 대학을 마칠 때까지 그는 가족이 마련한 각본대로 살아왔다. 그러나 이후 엘리엇은 편안한 미국 엘리트의 삶을 버리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아 유럽으로 가게 되었다. 유럽에 체류하는 동안 엘리엇은 유럽에 먼저 와 있던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를 만나게 된다. 파운드는 젊은 엘리엇의 재능을 금방 알아보았고 굉장한 호감을 나타냈다. 훗날 엘리엇은 파운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14년 에즈라 파운드를 만난 일은 내 삶을 바꾸어놓았다. 그는 내 시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고, 오래전부터 받기를 단념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엘리엇은 이때부터 긴 장시를 쓰기 시작했고, 1921년 드디어 ‘황무지’의 초고를 파운드에게 보여주었다. 파운드는 초고에 대해 ‘막연하고 장황하다’라는 조언과 함께 산만하고 과장된 부분을 직접 고쳐줬다. 결과적으로 훨씬 간결하고 힘찬 시가 탄생되었다. ‘황무지’에 대해 ‘잡설이 많은 시시한 시’라는 평가를 한 비평가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황무지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시’, ‘폭과 깊이와 아름다움을 갖춘 위대한 시’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에즈라 파운드의 결정적인 도움으로 엘리엇은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시인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천재이며 유아독존의 오만한 피카소조차 혼자일 수만은 없었다. ‘아비뇽의 처녀’ 이후 늘 대중과 게임을 벌이던 젊은 피카소는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에 싸여 있었다. 고독은 그의 스케치북 속으로 고스란히 빨려 들어갔다. 이 고독은 화가인 조르주 브라크와 만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대중에게는 외면과 침묵을 받았던 피카소의 작품에 대해 브라크는 “누가 휘발유를 마시고 불을 뿜어내는 느낌이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피카소는 경계를 넘어서는 모험에 대해 지지하고 격려하는 동지를 얻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운명적인 공동 작업자가 되었다. 그들은 몽마르뜨에 살면서 거의 매일 만나 대화를 나눴다. 브라크는 둘의 우정을 “같은 밧줄에 몸을 묶고 함께 산을 오르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이 관계는 브라크가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할 때까지 몇 년간 지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피카소는 노트 기록을 거의 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협력자 겸 동지 겸 비평가를 만났기 때문에 홀로 자신의 생각을 적어두고 다듬어간 고독한 일지가 필요 없었으리라. 그들은 함께 입체주의(큐비즘)라는 새로운 미술 양식을 창안하고 실험했다.

예술가에게는 고독의 쓰라림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누군가와 그 고독을 나눠 세계의 일원이 되는 친밀한 격려와 이해의 시간도 있어야 한다. 사람은 고독만으로는 견디기 어렵고, 고독만으로 스스로 모든 것을 체득할 수는 없다. 같이 있는 부담 때문에 나중에 피카소는 결국 브라크와 결별하지만 피카소의 인생 중 한 부분, 적어도 입체주의라는 중요한 실험을 한 시기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극이었고, 숨을 쉴 수 있는 통로였고, 버틸 수 있는 지지대였다. 그들은 비평가들이 그들 작품에 대해 “기괴하고 야만적이며 우스꽝스러운 고의적 충격” 등의 비난을 퍼부었을 때 그 언어적 논란과 모멸을 나누어 가졌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건너뛴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 성숙한다. 그 관계가 스승과 제자이든, 선배와 후배이든, 예술가와 후원자이든 아니면 서로를 이해하는 동료이든 간에 사람은 사람을 통해 영향을 받는다. 때때로 누군가의 인생에 한 사람의 영향력은 절대적이고 압도적이다. 그 시기에 그 사람은 진정한 스승의 역할을 해준다. 스승이 제자에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필자는 아주 멋진 예를 알고 있다. 중국의 걸출한 선승(禪僧)으로 남전(南泉)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에게는 조주(趙州)라는 훌륭한 제자가 있었다. 조주는 처음에 절의 화부로 일했다. 어느 날 그는 부엌문을 꼭꼭 닫고 연기가 가득하도록 불을 피운 뒤 큰 소리로 외쳤다. “불이야 불, 사람 살려!” 이 고함 소리에 절이 발칵 뒤집혀 모두들 부엌문으로 몰려들었다. 조주가 부엌 안에서 소리쳤다. “그대들이 바른 말을 하지 않는다면 이 문을 열지 않겠다.” 대중들은 놀라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때 스승 남전이 다가와 말없이 문 틈 사이로 열쇠를 건네주었다. 그러자 조주는 문을 열고 나왔다. 이 일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이 일화를 통해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행위였다면 대략 그 뜻을 유추할 수 있을 것 같다. <선의 황금시대>를 쓴 중국 법철학자 오경웅(吳經熊)은 이 사례를 이렇게 설명한다.

“문이란 마땅히 안에서 열어야 한다. 이 이야기를 가만히 보면 조주는 열쇠가 없더라도 제 손으로 혼자서 열고 나오면 된다. 스승이 문틈으로 열쇠를 건네주기는 했지만 그것은 사실상 문을 열고 나오는 데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한다. 스승의 행위는 마음의 소리에 대한 상징적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문이 안에서 열리듯 모든 배움과 깨달음은 안에서 스스로 익어 터지는 것이다. 좋은 스승이란 제자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많은 역할을 수행하지만 스스로 공로를 자랑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제자가 스스로 안에서 깨우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렇게 서로 연루되고 결합되면서 삶의 도약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만일 이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해줄 누군가를 얻지 못한다면, 비록 재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고독은 그저 극도의 고독으로 끝나거나, 내부와 외부가 갈등하는 파괴적 불화나 구제불능의 미숙으로 그치고 말지 모른다. 새로운 세계로 건너뛰고 싶은가. 그렇다면 사람을 얻자. 그 사람과 진정한 관계 속에 놓이면 그의 결정적 지지와 도움으로 새로운 세계로의 도약이 가능해질지 모른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소장 bhgoo@bhgoo.com
필자는 서강대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1980∼2000년 한국IBM에 근무하면서 경영 혁신의 기획 및 실무를 총괄했다. 1998년부터 변화경영 전문가로서 매년 인문학과 경영학을 접목한 저서를 출간해왔으며 활발한 강연 활동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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