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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8. 13년 만에 날개 접을 위기 ‘이스타항공’

전문성•책임감•윤리의식 ‘3無’ 경영진
코로나 앞서 내부 부실로 몰락 위기

허희영 | 311호 (2020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2013년부터 자본잠식 상태가 이어지던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9월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같은 해 12월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이 추진되면서 회생의 여지를 엿보았지만 올해 7월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이스타항공의 몰락은 코로나19로 인한 항공업계 전반의 불황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쌓여온 비(非)전문가 경영진의 항공 사업 이해 부족, 외적 성장에만 치중해 소홀히 했던 재무관리, 전 회장으로부터 비롯된 오너 리스크 등이 겹쳐진 것이다. 이 같은 위험 요소들이 쌓이면서 13년의 비행은 결국 막을 내릴 위기에 처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기획과 윤문에는 조지윤 동아일보 인턴기자(성균관대 글로벌경제학과 4학년)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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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저비용 항공사(LCC) 이스타항공이 출범 13년 만에 날개를 접을 위기에 처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블랙 스완(Black swan, 절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만을 탓할 수는 없다. 이스타항공은 사업 초기부터 악화된 재무구조를 회복하지 못했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회사의 자본잠식 상태가 계속될 정도로 재무적 부실이 이어졌다. 미지급금 등 유동부채가 대부분인 부채 규모가 2019년 처음으로 2000억 원을 넘어서면서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져들었다.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은행, 증권회사들에 6차례나 신청했던 대출과 채권 조달이 모두 거절되면서 회사는 지급 불능 상태에 빠졌다.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제주항공의 인수도 올해 7월23일 끝내 백지화됐다. 이스타항공은 새로운 인수자를 찾고 있지만 업계의 예상은 비관적이다. 최악의 업황 속 빚더미에 놓인 기업을 떠안을 사업자가 나타날 것 같지 않아서다. 게다가 창업주 이상직 의원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심각한 노사 갈등도 빼놓을 수 없다. 운항이 전면 중단된 3월부터 계속된 휴업으로 이미 적지 않은 직원들이 스스로 직장을 떠났고 희망퇴직과 해고가 이어지면서 1680명이었던 직원이 3분의 1로 줄었다. 정리해고를 조종사 노조가 반발하는 가운데 직원 전체를 대표하는 근로자대표단과의 노노 갈등까지 발발했다. ‘추억을 파는 국민 항공사’라는 슬로건으로 출발했던 국내 대표 LCC 이스타항공이 몰락의 위기를 맞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위기의 항공업계

지금 국내 항공업계에는 대형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외에 6개의 LCC가 영업 중이고, 두 신설 항공사가 취항을 준비 중이다.

상황이 심각한 것은 이스타항공만이 아니다. 그동안 잘나가던 항공사들 모두가 위기에 직면했다. 아시아나항공도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져 있다. 이 회사 역시 누적된 재무적 부실로 공개 매각에 나서 작년 12월 HDC현대산업개발과 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하지만 결국 올해 9월 매각이 무산되면서 11월 산업은행의 관리 체제로 넘어갔고 이제는 대한항공과의 M&A를 통한 회생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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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업계 전반의 불황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예고됐다. 2016년 7월 사드(THH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줄면서 항공업계는 고전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여름엔 일본 불매운동으로 한일 노선의 승객이 급감했다. 여기에 코로나19라는 직격탄이 더해진 것이다. 어쩌면 이스타항공의 몰락 역시 이런 맥락 속에서 불거진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스타항공의 몰락의 원인은 업황 너머에 있었다.

이스타항공은 왜 몰락했을까?

출발은 순조로웠다. 이스타항공은 2007년 10월 설립 후 2009년 1월 국내선 운항을 시작하고 12월에는 국제선 취항도 시작했다. 그해 7월엔 중국 최대 LCC인 춘추항공과 공동 운항 협정을 체결했다. 후발주자로 나섰지만 이스타항공은 LCC 업계에서 승승장구했다. 2015년에는 자회사로 지상조업사인 이스타포트㈜를 설립했고, 8월엔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고(故) 이희호 여사의 방북을 위해 특별 전세기를 띄웠다. 이듬해 7월 국내 LCC로선 처음으로 ‘유플라이 얼라이언스(U-fly Alliance)’에 가입했으며 10월 남북노동자축구대회에도 특별기를 운항했다. 2018년 3월에는 평양축전 특별 전세기를 세 차례나 운항했다. 이상직 전 회장의 정치적 수완은 다른 항공사들보다는 늘 한발 앞선 행보를 가능하게 했고, 국제노선이 늘면서 항공기는 작년까지 23대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스타항공의 화려한 이력 뒤에는 참담한 민낯이 있었다. 항공업에 대한 경영진의 몰이해, 재무 상태와 경영 성과의 개선보다 양적 성장에 치중한 경영 실패, 창업주 이 전 회장의 오너 리스크, 위기 상황에서 보여준 ‘나 몰라라’식 대처법 등이 더해지면서 몰락에 이르게 됐다.

1. 대표이사의 잦은 교체와 전문성이 부족한
경영진의 무리한 사업 확장

이스타항공의 CEO는 2007년 법인 설립부터 취항 초기까지 양해구 대표가 맡은 이후 현재 최종구 대표까지 10년 동안 5명이 교체되면서 평균 재직 기간이 2년에 불과했다. 회사가 사업 기반을 다져야 할 초기 정착기에 CEO가 연이어 바뀌면서 경영 철학과 비전, 전략으로 견고한 기업 문화를 구축하지 못했다. 내실을 다지는 대신 외형적 성장과 과시적 사업에만 집중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항공업에 대한 경영진의 몰이해였다. 창업 당시에는 운항과 회계 전문가였던 양 대표를 비롯해 항공 사업과 운항에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을 영입했다. 그러나 시장 진입이 마무리되고 사업에 대한 자신감이 붙자 이들은 경영에서 밀려났다. 이스타항공그룹을 만들어 오너로서 경영을 지휘했던 이 전 회장 역시 현대증권 출신으로 항공 사업 경험이 없었다.

이 전 회장은 19대 국회의원과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임기를 제외하곤 창업 이후 약 7년간 경영을 직접 챙겼다. 하지만 국회의원 시절 자신의 보좌관과 실세 정치인들의 비서와 보좌관, 친인척을 속속 핵심 부서에 배치하면서 창업 초기 때 형성된 조직문화에 균열이 생겼다. 지금의 최 대표 또한 이 전 회장의 친형 이경일이 차명 대표인 중소기업 KIC의 임원으로 이스타항공에 합류해서 2017년부터 대표이사를 맡았다.

항공업은 항공사의 핵심 투자인 기재 도입, 노선 개설과 마케팅에 대한 전문성과 경영자의 판단이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글로벌 비즈니스다. 경영진의 몰이해가 사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스타항공은 작년 3월 에티오피아 항공기 추락사고로 안전성 논란에 휘말린 B737-Max 8 기종을 국적 항공사 중 유일하게 2대를 운영하고 있었다. 물론 사고 원인이 기체 결함으로 드러나 운항 중단 피해를 보잉사로부터 배상받기는 했다. 하지만 사고 기종인 B737-Max 8 기종을 선택한 것은 무리한 기재 도입 경쟁의 결과였고 결국 운항 차질로 이어졌다.

유플라이 얼라이언스 가입도 실익을 따지지 않는 ‘보여주기식’ 경영의 사례였다. 유플라이 얼라이언스는 세계 최초의 LCC 항공 동맹체라곤 했지만 실제로는 중국 하이난항공의 계열인 홍콩익스프레스, 우루무치항공, 럭키에어, 서북항공 등 4사의 협력체에 불과했다. 이스타항공이 여기에 끼어든 셈이었다. 중국 노선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잠시였다. 네트워크 공유의 시너지를 내기도 전에 중화권 항공사들과의 운임 차이로 회원사들은 각자도생에 나섰고 얼라이언스는 이미 해체에 들어가 있다.

항공 운송업은 분야별로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업이다. 다양한 업무가 유기적인 시스템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것을 이스타항공 경영진은 간과한 것이다. 오너 경영인의 지나친 자신감, 사적 인맥의 경영진 구성, 이에 따른 항공업의 전문성 부족이 경영 실패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2. 현금 흐름 관리 능력 부족

기업의 재무는 자금의 조달과 투자를 현금 흐름에 맞춰 결정하는 일이다. 이스타항공은 2018년까지 항공업계의 흑자 행진이 계속되는 동안 사업 초기의 적자로 취약해진 재무구조를 개선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재무관리에 소홀했고 결국 지속가능한 수익 구조를 견고하게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

이스타항공의 부채비율을 살펴보면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자본 총계가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완전 자본잠식 상태였다. 업계에 호황이 찾아왔던 2017년, 2018년 동안은 재무구조가 개선됐지만 여전히 부채비율은 각각 1314%, 484%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마저도 2019년 다시 자본 총계가 -632억 원으로 돌아서면서 완전 자본잠식의 늪에 빠졌다. 부채비율이 기업의 재무 건전성과 안전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라는 점을 놓고 보면 이스타항공의 부실한 재무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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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수년간 계속된 업계의 호황기에도 이스타항공의 영업 성과는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제주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티웨이항공 등 국내 LCC들이 연평균 5.85%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하는 동안 이스타항공도 흑자를 내긴 했지만 평균 2.92%에 머물렀다. 항공시장의 최대 호황기였던 2017년, 2018년 경쟁사인 제주항공은 영업이익률 10.9%. 8.1%를 각각 기록한 반면, 이스타항공은 각각 3.2%, 0.9%에 머물렀다. 지난해에는 794억 원의 영업이익 적자로 영업이익률은 -14.3%를 기록했다.(그림 1)

취약한 재무 상태와 낮은 경영 성과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은 오히려 경쟁적으로 기재를 늘리는 결정을 반복했다. 항공기 리스에 따른 금융 비용의 증가로 영업외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과적으로 경쟁사인 제주항공이 처음으로 2015년 코스피시장 상장에 성공한 데 이어 진에어(2017), 티웨이항공(2018)과 에어부산(2018)이 상장하면서 자금 조달 창구를 확보하는 동안 이스타항공은 상장 조건 미달로 유상증자의 길을 닦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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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전의 재무구조 악화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회사 규모와 노선 구조가 비슷해 종종 비교됐던 티웨이항공은 항공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정홍근 대표가 2015년 말 취임하면서 경영 능력을 발휘해 이듬해에 흑자로 전환했다. 심지어 코로나19 이전까지는 진에어와 에어부산을 능가하는 수익률도 실현했다. 이는 현금 흐름과 수익 구조를 관리하는 경영 능력의 문제가 부실화의 원인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재고상품 없이 운송 서비스를 생산•판매하는 항공 운송업은 ‘현금으로 하는 장사’에 가깝다. 정상적인 운항 상황에선 고객이 카드로 결제한 좌석 운임이 다음 달이면 현금으로 유입되고 수입으로 실현된다. 하지만 운항에 차질이 생기면 환불 요금은 미지급 채무가 된다. 전체 영업비의 50%에 달하는 인건비와 항공기 리스료 등 고정비 부담도 지렛대처럼 커진다. 이스타항공은 국제선이 닫히자 선제적으로 김포∼제주 노선 등 국내선의 좌석을 9900원에 파는 ‘가격 파괴’를 했다. 하지만 값싼 항공 서비스 이미지로 부정적인 효과만 오히려 더 커졌다.

3. 오너 리스크

매각 과정에서 오너 리스크와 윤리 경영의 문제점도 드러났다. 이스타항공의 지배구조를 살펴보면 지주회사인 이스타홀딩스가 최대주주이고, 특수 관계회사인 비디인터내셔널이 8.16%를 보유하고 있다. 2015년 10월 이 전 회장의 자녀들 이름으로 세워진 회사 이스타홀딩스는 단 두 달 만에 향후 ‘인수 예정’인 이스타항공의 주식을 담보로 100억 원을 차입했다. 이후 이스타항공의 지분 68%(524만2000주)를 매입하면서 대주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상속 재산에 대한 탈세 의혹이 드러났다. 이스타항공의 2대 주주인 비디인터내셔널 또한 이 전 회장의 친형이자 비디인터내셔널의 대표인 이경일 씨 차명에 의한 재산 신고가 누락된 혐의를 받고 있다. 게다가 배우자 재산 은닉을 위한 위장 이혼, 해외 법인 타이이스타제트에 대한 300억 원 이상의 지급 보증 등 의혹이 연이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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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경영이 위기에 처한 가운데 자사 노조가 오너를 조세 포탈 및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흔치 않은 상황까지 몰렸다. 이스타항공 경영의 윤리적 문제는 회사의 매각 실패와 경영 부실화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4. 고용 문제에 대한 미흡한 인식과 대처

회사 경영진과 이 전 회장이 막판에 보여준 위기관리 능력은 이스타항공이 왜 실패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회사를 믿고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직원들이 무급휴직과 길거리로 내몰리고 마침내 강제 해고의 상황으로 몰리는 동안 이 전 회장은 이스타 가족들과 ‘거리 두기’에 충실했다.

리스료, 유류 대금, 공항 시설 이용료 등의 채무불이행 상태인 회사가 수개월째 임금까지 체불하는 상황에 몰리자 이 전 회장은 대리인을 내세워 지주회사의 자녀들 지분 포기로 책임을 다한다고 발표하면서 인수를 망설이는 제주항공을 오히려 압박했다. 창업 때부터 고락을 함께해 온 직원들에겐 대주주로서 유한책임을 다했다고 했지만 조종사와 정비사, 승무원, 관리직 등 전문직 종사자들은 모두 일자리를 잃게 됐다. 실패에 책임지지 않는 이 기업가에게 회사의 노조는 분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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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업계 최초의 M&A로 기대를 모았지만
결국 무산

2019년 9월부터 비상 경영 체제에 들어갔던 이스타항공에도 일말의 희망은 있었다. 같은 해 12월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인수합병(M&A)에 나서면서다.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는 특별한 관심을 끌었다. 항공업계의 첫 M&A 사례였고 산업 개편의 신호탄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도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올해 7월 M&A는 무산됐다. 양측이 작년 12월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올해 초부터 코로나19로 업계가 급격하게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제주항공은 재협상을 통해 당초 인수가격 695억 원을 545억 원으로 낮춰 3월 말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그러나 2월부터 밀린 이스타항공의 체불 임금의 책임 문제가 불거졌다. 이 전 회장 측은 지주회사인 이스타홀딩스의 지분 38.65%를 이스타항공에 헌납할 의사까지 밝혔지만 제주항공 측은 계약을 백지화했다. 심각한 경영난에선 파는 쪽이 더 조급하지만 계약을 파기하는 매수자 쪽도 부담이다. 그러나 계약 이후 상황이 더 악화되면서 제주항공도 생존의 위기에 빠졌다.

‘노딜’에 대한 제주항공 측의 공식적 이유는 SPA 계약 당시 실사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우발 채무, 체불 임금, 그리고 계약상 기밀 유출 등이었다. 계약 파기의 책임을 놓고 양측 간의 법정 다툼이 시작되겠지만 쟁점은 모두 표면적인 내용이 될 것이다. 청와대 인사와 주무부처 장관까지 나서 성사를 독려했던 M&A를 제주항공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제주항공은 당시 “정부의 지원 의지와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상황에서 인수를 강행하기에는 제주항공이 안게 될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는 이유를 들었다. 바로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시장 회복이 예상보다 늦어질 거라는 불확실한 미래, 그리고 부실기업 인수를 위해 정부로부터 받게 될 금융 지원이 훗날 특혜 시비의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게 부담이었다. 각종 의혹을 받는 매각 기업의 오너가 여당 정치인이라는 점이 가져올 부작용도 인수자 측은 우려했을 것이다. 정부의 구제 금융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민주당 소속(현재 무소속) 국회의원인 이 전 회장이라는 ‘정치적 리스크’로 더해진 셈이다. 이스타항공은 운항 재개를 위해 재매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매각 성사는 미지수다.

항공업계 최대의 사건으로 기록될
이스타항공 사태, 변화 불러올까

이스타항공이 처한 현실은 우리 항공업계가 처음 경험하는 최대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유행처럼 번진 LCC 설립 붐이 10년 넘게 이어지면서 성장 일변도의 시장에 나타나는 변화의 전조다. 국내 업계에서 항공사의 파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기업의 출자로 창업한 제주항공과 진에어, 에어부산, 에어서울은 모기업과 함께 지금까지 생존과 발전을 지속해 왔지만 단독 기업으로 창업했던 항공사들은 비운을 겪은 경우가 많았다. 이들이 세간의 무관심 속에 소멸한 것은 사업 초기 단계에서 시장과 사회에 주는 충격이 작았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의 LCC로 청주공항을 거점으로 2005년 8월 첫 운항에 나섰던 한성항공은 두 차례 주인이 바뀐 끝에 2013년 예림당으로 인수되면서 지금의 티웨이항공으로 재탄생했다. 울산 기점 소형 항공사였던 코스타항공은 소형 여객기인 Fokker 100을 도입한 후 시험 운항 단계에서 2008년 파산했다. 김해공항을 거점으로 설립됐던 영남항공도 같은 기종으로 국내 노선에 취항했지만 누적된 재무적 부실로 역시 같은 해 파산했다.

50인승 미만의 여객기로 사업면허 심사 없이 운항허가심사(AOC)만으로 영업이 가능한 소형 항공업의 경우는 아직 성공한 사례가 없다. 2005년 설립된 소형 항공사인 코리아익스프레스항공은 지자체의 보조금으로 연명해오다 올해 초 휴업에 들어갔다. 최근 시장에 진입했던 포항공항 거점의 에어포항과 무안공항 거점의 에어필립도 작년에 모두 파산했다. 김포공항을 거점으로 작년 말 취항을 시작한 하이에어가 유일한 소형 항공사다. 지금은 청주공항 거점의 에어로케이와 인천공항을 거점으로 하는 에어프리미어가 취항을 준비 중이다.

국내 LCC의 잠재적인 성장 한계 요인은 협소한 국내 시장이다. 경쟁 대상인 중국과 일본, 동남아 국가들과 달리 전체의 10%도 안 되는 국내 시장을 가진 우리 국적사들은 국제노선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이스타항공 사태는 우리 항공업계에도 새로운 플레이어의 등장과 소멸, 인수와 합병이 더욱 활발해질 것을 예고한다. 정부의 시장 규제가 풀리면 ‘자유로운 시장 진입 → 공급 과잉과 경쟁의 심화 → M&A를 통한 시장의 재편’으로 이어지고 산업의 성숙 단계에선 과점 시장이 형성된다. 어느 산업이건 경쟁 체제의 전환으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시장 현상이다. 해외에서는 이 같은 업계의 구조조정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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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세계 항공 시장을 경쟁 체제로 바꾼 규제완화법(Deregulation Act)이 의회를 통과하자 미국에는 수많은 신설 항공사가 경쟁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2018년까지 지난 30년간 203개의 항공사가 파산을 신청했고, M&A를 통해 지금은 커뮤터 항공, 지역항공사와 소형 항공사를 포함해 70여 개 항공사로 재편됐다. 여객과 화물 시장의 12개 메이저의 산업 집중도는 더 높아졌다. 2000년대 들어 미국에선 US항공, 노스웨스트항공(NW), 콘티넨털항공(CO), ATW 등 대형사들이 속속 파산하면서 지금은 아메리칸(AA), 델타(DL), 유나이티드항공(UA), 그리고 대표 LCC인 사우스웨스트항공(SWA) 등 4사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유럽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유럽의 구조조정은 2000년대 들어 국적사 간의 ‘빅딜’로 항공그룹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에어프랑스와 네덜란드 KML항공의 합병(2004), 독일 루프트한자의 스위스항공(2005)과 오스트리아항공의 인수(2009), 영국항공과 스페인 이베리아항공의 합병(2010) 등으로 거대 그룹들이 탄생했다. 심지어 유럽의 항공사들은 국적사의 지위까지 내려놓고 규모의 경제를 추구한다. 우리와 인구 규모가 비슷한 영국과 독일, 프랑스는 지금 각각 대표 항공사인 브리티시항공과 루프트한자, 에어프랑스를 두고 소수의 항공사가 국가별로 과점을 형성하고 있다.

우리에겐 생소한 항공업계의 구조조정이 외국에선 지난 수십 년간 계속되면서 산업의 경쟁력을 키워왔다. 이들 M&A는 모두 네트워크로 승부를 거는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경쟁력 확보를 위해 향후 우리 정부의 항공 산업 정책이 어디를 지향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스타항공의 경영 실패가 주는 교훈

이스타항공은 항공업계의 반면교사다. 실패가 때로는 성공보다 좋은 학습의 기회가 된다. 항공은 비행기의 화려한 외형만큼이나 매력 있는 사업이다. 국제여행객의 지속적인 증가세와 좌석 판매로 인한 빠른 현금 흐름, 리스 항공기를 이용한 낮은 초기 투자의 부담 등은 사업가들을 유혹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높은 고정영업비용과 세계적인 공급 과잉, 통제 불능의 환율, 유가, 경기 변동 등 정치•경제적 외생변수, 그리고 사스(2002)와 신종플루(2009), 메르스(2012)에 코로나19와 같은 감염증처럼 사업가들의 환상을 깨는 위험 요소들이 곳곳에 잠재해 있다. 이스타항공의 사례는 노동집약도가 높은 항공 운송업에서 경영 실패가 가져오는 사회적 충격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준다. 자회사뿐 아니라 지상조업사를 포함한 협력 기업들이 함께 어려움에 처했다. 현재까지 코로나19의 위기가 가져온 최대의 실직 사태로 기록될 것이다.

항공업계는 이제 ‘고수요-고위험-저수익’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이는 항공 시장에서 생존과 발전이 예전과 달리 쉽지 않음을 시사한다.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빠르게 성장해 온 우리 항공업계는 새로운 과도기에 들어섰다.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시장의 진화 과정이 코로나19로 인해 앞당겨진 셈이다.

그러나 이번 위기에서도 저력이 드러난 경우가 있다. 대표 국적사인 대한항공이다. 이 회사의 젊은 경영진은 셧다운 된 여객기 객실에 화물을 싣는 발상의 전환으로 영업이익 흑자를 지속하면서 세계 항공업계를 놀라게 했다. 낡은 틀을 깨는 창조적 파괴, 혁신의 일환으로 유동성 위기에 몰리자 알짜배기 기내식과 기내 판매 사업부칼 리무진을 떼어 팔았다. 생살을 뜯는 자구 노력으로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는 이 회사는 최근 결정된 아시아나항공의 인수로 몸집을 불려 초대형 글로벌 항공사로 탈바꿈을 준비하고 있다. 50년 넘게 쌓은 경영의 노하우가 밑천이다.

정부로부터 사업면허를 받아 비행기를 띄우면 쉽게 돈 벌던 시절은 지나갔다. 이제는 항공사마다 생존과 발전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경쟁이 심해질수록 그 나물에 그 밥으론 비교우위를 확보할 수 없다. 국적사 간의 경쟁뿐 아니라 국내에 몰려드는 외국의 LCC들과의 경쟁을 위해서라도 원가 우위 전략과 서비스의 차별화 전략을 놓고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코로나19가 지나간 자리에서 비교 우위 확보를 위한 브랜드 포지셔닝과 마케팅 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 역동적인 글로벌 시장에서 보여준 수많은 플레이어의 등장과 소멸, 그리고 이스타항공의 경영 실패가 항공업계에 주는 교훈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hyhur@kau.ac.kr
필자는 한국항공대 항공관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UMass) 객원 교수를 거쳐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항공대에서는 항공경영대학/대학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한국항공경영학회 초대 회장을 지냈으며 항공사 경영 및 항공 정책 등을 꾸준히 연구해왔다. 저서로는 국내에서 처음 항공경영학의 이론 체계를 정리한 『항공경영학』과 『보잉•에어버스』 『항공운송산업론』 『항공우주산업』 『항공서비스원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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