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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Z세대’는 누구인가

독보적 디지털 네이티브 환경서 성장한 Z세대
현실-가상을 분리하는 것도 구시대적

이경혁 | 269호 (2019년 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태어날 때부터 세상은 이미 연결된 상태였던 Z세대는 미국, 유럽, 한국 등에서 각기 유사한 행동과 사고 패턴을 보이지만 어쩔 수 없이 지역적 특성과 차이를 갖고 있다. 문화와 사회 인프라 측면에서 한국의 Z세대를 이해하고 이 새로운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를 염두에 둬야 한다.
첫째,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더 강한 디지털 리터러시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을 이해하라. ‘인강’을 통해 교육받고 자란 세대, 영상 소비 방식은 향후 한국 사회의 중심 콘텐츠와 문화 소비패턴이 될 것이다.
둘째, 그동안 한국에서 강조됐던 ‘단일 민족 국가’ 개념은 거의 희미해지고 ‘다양성’에 수용도가 완전히 달라졌음을 이해해야 한다.
셋째, Z세대나 청년세대 등을 지칭하는 용어는 그 대상을 특정하고 호명하는 방식인데 결국 기업 입장에서 어떤 의미로 이들의 개념을 구성하고 호명해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2019년에 주요 화두로 떠오를 여러 개념 중 하나가 바로 Z세대다. Z세대는 대략 1990년대 중후반 이후 출생해 2019년 기준으로 10대에서 20대를 보내고 있는 새로운 젊은 세대를 가리키는 용어인데 사실 상당히 논쟁적이다. 다가오는 새로운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키워드가 될 수도 있지만 ‘한순간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표현’이라는 지적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Z세대에 대해 얘기할 때 가장 먼저 주의해야 할 점은 세대라는 개념을 이야기할 때 따라붙는 지역적 특징의 문제다. 보통 이것 때문에 혼란이 초래된다. Z세대의 특징은 때로는 전 세계적인 트렌드로서 이야기되지만 동시에 한국에서는 다시 한국적 상황하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을 묶어 논의되기도 한다.

디지털 환경하에서 Z세대는 분명 공간적 한계를 넘어서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지역적인 특성들을 따로 고려하지 않을 경우 자칫 공허한 담론으로만 남을 수도 있다. 따라서 Z세대 스토리를 다룰 때 서구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시각을 갖추되 한국적 상황도 반드시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을 감안하면서 본고에서는 Z세대, 그리고 한국의 Z세대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날 때부터 세상이 네트워크화돼 있었던 Z세대의 이야기
2014년 KOTRA에서 정리한 미국 내 Z세대의 개념부터 알아보자. 1 KOTRA는 가장 먼저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s)’라는 특징을 강조했다. ‘디지털 원주민’ 정도로 번역이 가능해 보이는 이 개념은 Z세대로 통칭되는 세대가 디지털 기반의 새로운 시대를 어떻게 접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최초의 디지털 원주민’이라는 이야기는 다시 말해 Z세대 이전의 세대들은 디지털 원주민이 아니라는 뜻이다. Z세대 이전 세대들에게 디지털 환경이라는 것은 ‘원래 없다가 생긴 것’이었지만 Z세대에겐 이미 ‘태어나 보니 그냥 원래부터 놓여 있던’ 그런 것이었다. 여기서 디지털이라는 개념은 다소 좁은 의미로 쓰인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디지털 네이티브에게 디지털이란, 디지털 전자계산기나 인터넷 네트워크 접속이 없는 단일 PC 환경이 아니다. 인터넷 네트워크 환경하에 마련된 사회 환경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을 관통하는 시기에 오늘날의 월드와이드웹(WWW) 기반 인터넷 체계가 확립되고 또 보편화됐다. 광대역망을 통해 보편적으로 누구나 손쉽게 인터넷망에 접속할 수 있게 된 시기가 2000년대 초반임을 생각한다면 Z세대의 출생 시기, 아동기, 유년기가 디지털 환경의 보편화와 맞물리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는 단지 PC를 이용한 네트워크 접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신용카드, 버스카드 혹은 인터넷 결제와 같은 네트워크 기반의 전자상거래 등 실생활 전반에 걸쳐 이뤄진 변화를 통틀어 가리키는 게 바로 디지털 네이티브의 개념이다. 1980∼1990년대 초반만 해도 플라스틱 카드에 돋을새김으로 새겨진 성명과 카드번호를 프레스 같은 기계에 넣고 찍어내어 영수증을 만드는 방식으로 카드 서비스가 이뤄졌다. 이후 POS 단말기를 이용한 네트워크가 구축되면서 신용카드의 이용이 좀 더 보편화됐고, Z세대는 어릴 때부터 과잣값을 결제하는 부모가 현금 화폐 대신 카드를 꺼내 긋는 모습을 보며 자라났다.

기존 세대는 “세상이 인터넷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다니 놀랍군!”이라고 감탄했다. 하지만 Z세대는 원래부터 세상이 그렇게 연결돼 있던 시절에 태어났다. 당연히 기존 세대와는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과 시공간 개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물리적으로 만져지는 세계를 현실로, 디지털 안의 세계를 가상으로 여겼던 앞세대들과 달리 Z세대부터는 이 둘을 현실과 가상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디지털은 본래부터 존재하던 세계 안에 포함돼 있는, ‘물리적이지 않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네트워크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가상’이라는 이름으로 현실로부터 떼어내 사고하는 방식은 Z세대의 등장 이후 구시대적 사고가 되고 있다.

Z세대 이전의 세대는 자신들이 디지털 네트워크를 만들어 내긴 했지만 오랫동안 자신들이 살아온 세계를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따라서 새로 만들어진 가상공간의 네트워크를 말 그대로 현실이 아닌 가상으로만 받아들인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이미 세상의 일부였던 디지털 네트워크와 함께한 Z세대에게 이는 가상이 아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면 심지어 당일 저녁에 집 문 앞에 상품이 도착하고, 스마트폰 검색창에 목소리로 방탄소년단 뮤직비디오를 검색하면 바로 관련 영상을 재생해주는데 이걸 가상이라고 생각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디지털 원주민으로서의 Z세대를 이해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것은 디지털 공간을 자꾸 가상이라는 개념과 연결하려는 습관을 버리는 것이다.

현금 결제를 받지 않는 스타벅스 매장이 등장하고 점점 확대돼가는 것을 보며 ‘세상이 바뀐다’고 느끼는 세대는 원래부터 현금을 받지 않는 매장이 존재하던 세계에 태어난 세대와 인식의 기반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Z세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계가 내 기준에서는 ‘변화한 세계’지만 그들에게는 ‘원래 그렇게 존재하던 세상’이라는 걸 먼저 깨달아야 한다. Z세대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바로 세계를 바라보는 그 차이를 인식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유년기의 위기가 만든 자기주도적 소비 성향
다시 앞서 언급한 2014년 KOTRA의 미국 Z세대 분석으로 돌아가 보자. 보고서는 Z세대의 범위를 대략 1995년 이후 출생자 정도로 언급하며 이들 세대가 겪은 주요 공통 경험을 짚어낸다. 풍요로운 경제 성장의 시대를 겪었지만 이후 9·11 테러, 금융위기, 기후 변화, 학교 내 총기사고 증가와 같은 사건들을 목도하며 성장했음을 거론한다. 이러한 사건들은 상대적으로 평화로웠던 미국 사회에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Z세대의 부모 세대는 상당히 풍요로운 경제 환경 속에서 자라났지만 Z세대가 유년 시절에 경험했던 미국 사회의 안전성을 흔드는 사건들을 성인이자 경제 주체의 입장에서 겪은 세대이기도 하다.

같은 사건이라도 세대가 다르면 조금씩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Z세대에게 미국 금융위기는 부모가 갑작스럽게 직장과 집을 잃어 자신의 삶마저도 흔들리는 과정이었다. 이는 부모 세대에게는 직접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었는데 당연하게도 직장과 집을 잃은 당사자는 바로 그 부모였기 때문이었다. Z세대는 한창 잘나가던 부모 세대의 몰락을 보며 ‘내가 성인이 됐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를 이때부터 생각하기 시작했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비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는 계기였던 셈이다. 부모 세대에게는 가족중심주의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미국 사회에서 가족 부양의 힘을 잃은, 너무도 힘든 ‘고난의 과정’으로 의미가 남았을 것이다.

Z세대는 유년 시절에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목격하면서 부모 세대와는 다른 소비 행태를 익히게 된다. 위기는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른다는 걸 깨달았고, 그런 위기에 대한 경계는 Z세대의 소비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복잡한 금융지식이나 자산 관리의 방법을 몰라도 그럭저럭 살 만했던 부모 세대와 달리 Z세대는 매우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금융 관련 지식들을 접하게 됐고, 이를 상대적으로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됐다.

2017년 포레스트컨설팅의 소비자 조사에서는 상당수의 Z세대가 소비와 구매에 있어 신중하면서도 자기주도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음이 관찰된 바 있다. 2 풍요 속에 자란 부모 세대의 유년기 소비가 그리 복잡하지 않아도 됐던 반면 Z세대의 소비는 꽤나 일찍부터 자기주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연령대 문제로 Z세대의 구매력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주도적이라고 판단하기는 이르겠지만 이 세대가 경제 활동의 중심에 들어서게 될 경우 소비자들의 소비 계획과 금융상품 접근방식은 전 세대와 또 다른 양상을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 기업들이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다양성: 다양해지는 현실이 Z세대의 ‘다양성 감성’을 만든다
미국 사회에서 다양성의 가치는 갈수록 국가적 차원에서 강조되고 있는 추세다. 20세기 초중반의 인종문제가 ‘흑인에 대한 차별’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이슈였다면 현재 미국의 이슈는 훨씬 더 다양하게 나타난다. 흑인 차별, 히스패닉과 아시안에 대한 차별, 여성의 사회적 지위 문제, 젠더 다양성의 부상과 그에 따른 성적 소수자 문제, 장애인 이슈 등이 복잡하고 다양하게 얽히고 있다.

다인종 국가로서 미국은 사회 통합을 위해 다양성의 가치를 국가 주도의 교육 커리큘럼에서 꾸준히 강조해 왔다. 또한 21세기 들어 이러한 교육은 더욱 다양해지는 소수자 문제와 다양성 이슈를 커버하기 위해 확장되는 추세다.

Z세대는 바로 그 교육의 직접적인 대상이 된 세대이고, 이전 세대에 비해 애초에 세대집단을 구성하는 인종과 성별의 다양성이 이민, 인종 혼합 등에 의해 더욱 강해진 세대이기도 하다. 미국 인구통계청의 예측으로는 이르면 2043년에 미국 인구의 과반수가 비백인, 즉 흑인과 히스패닉, 아시안 등으로 구성될 것으로 보이며 실제 2012년 미국 5세 미만 영아 인구의 49.9%는 비백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면 미국 Z세대들에게는 과거와 같이 백인 중심으로 공유되는 단일한 문화의 중심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서로 다른 배경과 문화를 가진 이들이 각자 자신들의 관심사에 집중하고, 그런 개별 관심사에는 우열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문화적 다양성은 실제 미국의 대중문화에서도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미국 최대의 대중문화 콘텐츠 기업이라 불러도 무방할 디즈니는 20세기 초반만 해도 인종 차별, 성차별적 콘텐츠의 대명사로 꼽히며 평단의 지속적인 비판에 시달렸다. 서구 중심의 등장인물 묘사, 남녀 성 역할의 명확한 구분과 고착화로 끊임없이 비난받던 디즈니는 21세기 들어 완전히 변신한다. 폴리네시아라는 제3세계 출신의, 남성도 아닌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모아나’와 같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회사로 탈바꿈했다. 디즈니가 판권을 획득한 이후 만들어진 ‘스타워즈’ 시리즈의 스핀오프 작 ‘로그 원’에서는 시각장애인 캐릭터가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여성 등장인물들이 스토리의 메인을 이끌어 가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갑자기 사회 구성원들이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에 천착해서가 아니라 미국 사회의 인구 구성이 그렇게 변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대중문화의 주요 고객인 소비자층의 인구 구성이 바뀌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과거와 같은 백인 중심의 대중문화 콘텐츠로는 더 이상의 시장 장악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계산에 도달한 셈이다. 인구 구성의 변화는 Z세대의 달라진 문화가치를 인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시사점으로 작용한다.

국가 공교육과 대중문화 등을 통해 다양성의 가치를 중시하게 된 세대답게 Z세대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 또한 전 세대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1990년대 들어 선언적으로만 존재하던 ‘다양성 이슈’는 앞서 잠시 언급했듯 실제 미국 사회가 인구 구성의 측면에서 명백한 ‘다인종 사회’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다양성 이슈가 영향력을 갖고 대중화되고 또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던 그때에 Z세대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었다.(물론 지금도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는 Z세대가 있다.) 이처럼 놀라울 정도의 다양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첫 세대로서 Z세대는 그 이전 세대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점점 더 주류문화보다는 개별적인 하위문화들로 구성된 복합적 문화 양상이 이 세대에서 나타날 것이다. 특히 대량 생산과 집중화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했던 텔레비전과 같은 일방향 대중문화 매체에서 개별 생산과 개별 소비가 가능해지는 유튜브 등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시대로 넘어가면서 이러한 변화는 더욱 강력해 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Z세대: 더 강한 디지털 인프라 속에서 피어나다
Z세대의 문화적 함의를 말할 때, 그 시발점이자 현대 대중문화의 중심축으로 자리하는 미국의 분석을 참조하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러나 문화라는 것이 본래 대단히 지역적이고 지역 집단의 특수성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미국의 사례를 그대로 우리 현실에 꿰맞추는 건 무리가 있다. 당연히 한국에서는 한국적 특수성이 고려돼야 하고, 실제로 한국의 Z세대는 미국 Z세대, 글로벌 Z세대와 유사하면서도 또 다른 면을 지니고 있다.

앞서 미국 Z세대의 의미를 다루면서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개념을 먼저 꺼낸 바 있는데 한국의 경우에서도 이는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어떤 면에서 오히려 디지털 네트워크에 대한 친화력은 한국 문화 환경에서 더욱 강력할 수 있는데 미국보다 좁은 국토에서 강력한 네트워크 인프라 환경을 보유하고 있다는 측면을 고려할 때 특히 그렇다.

2011년 12월의 모바일 초고속인터넷 보급률 조사에서 한국은 102.12%라는 기록으로 OECD 국가 중 최초로 보급률 100%를 돌파한 바 있다. 2017년의 조사에서도 여전히 한국은 무선 기준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전 세계 8위를 마크하고 있다. 모바일을 벗어나 초고속 인터넷만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특히 한국과 미국의 차이는 좀 더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OECD 국가 중 2016년 기준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에서 한국은 1위 일본(72.6%)에 이어 2위(69.4%)를 차지한 반면 미국은 9.4%로 OECD 국가 중에서는 하위권에 속했다. 3


물론 이 자료도 벌써 몇 년 전의 일이고 모바일 인터넷의 전개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의 양상과는 좀 다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Z세대가 성장하던 시기의 인터넷 보급률은 바로 그 세대의 성장 배경을 추론할 수 있는 자료로는 꽤나 큰 의미가 있다. 한국의 Z세대들이 분명 세계 어느 나라의 Z세대보다 어릴 때부터 초고속 인터넷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에 가깝게 자랐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한국 Z세대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바로 ‘PC방 문화’의 존재다. 한국의 10대 놀이문화에서 빼놓기 어려운 존재인 PC방은 그저 PC만 수십여 대 갖다 놓는다고 돌아가는 시설이 아니다. 외국인들이 놀러 왔다가 깜짝 놀랄 만큼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수준의 시설과 퀄러티를 자랑한다. 압도적인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는 같은 시기에 국민 게임으로까지 불리며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스타크래프트’라는 콘텐츠와 맞물리며 PC방의 전성기를 이끌어냈다. 전국의 젊은이들이 모두 함께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플레이하는 놀이문화가 대중적으로 자리 잡았고, 한국의 Z세대는 이렇게 만들어진 디지털/온라인 문화 영향권 내에서 성장했다. 초고속 인터넷으로 방대한 데이터가 오가야만 가능한 디지털 온라인 게임이 세계에서 가장 두텁게 성장한 나라의 Z세대가 갖는 디지털 네트워크에 대한 친화성은 아무래도 특별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단일민족 국가’ 안에서의 다양성
Z세대의 다양성에 대한 수용과 관련해 앞서 미국의 Z세대를 중심으로 논의한 바 있다. 미국 Z세대 사례는 당연히 한국과 크게 다를 수밖에 없고, 어쩌면 바로 그 부분이 미국 혹은 유럽 등의 Z세대와 한국형 Z세대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지점일 것이다. 오랫동안 단일민족국가라는 신화에 기대어 온 한국 문화 안에서 Z세대가 받아들이는 ‘인종적 다양성’ 개념은 애초에 다인종 국가였던 미국, 이민자가 계속 늘어왔던 유럽의 Z세대가 받아들이는 그것과는 좀 다를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인종 다양성이 크게 올라가고 있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단일민족 중심성이 강하게 남아 있다. 재미있는 예로 2015년 한 언론에서 4 는 ‘전체 인구의 3.4%가 외국인’이라는 헤드라인을 달고 특집 기사를 냈다. 인종 집계가 따로 있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숫자라 정확한 수치라고 보기는 다소 어렵지만 과거에 비해 타 인종, 타 민족의 유입이 늘었다는 진단을 다룬 기사의 수치가 불과 3.4%라는 것은 미국과 한국이 갖는 인종 다양성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다양성 논의가 진전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점차 상승하는 인건비 문제, 국제결혼 등으로 인해 한국에서도 이제 ‘다문화 사회’를 거부할 수 없는 하나의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서울에서도 특정 지역을 거점으로 외국인 거주지구들이 자생적으로 형성되고 있고, 국제결혼의 증가 등으로 인해 태어나고 자라나는 다문화가정 아동들이 과거에 비해 확실히 늘어난 상황이다.

이러한 점들은 지속적으로 교육과 문화 전반에 새로운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기성세대들은 크레파스 색깔에서 ‘살색’이라는 이름의 색을 알고 있겠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이 색을 ‘살구색’으로 부른다는 게 대표적이다. 사람의 살색이 하나가 아니라는 걸 한국인들이 사실 모르는 건 아니었으나 단일민족 이데올로기 시대에는 크레파스의 ‘살색’이라는 명명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니, 다들 그걸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못했을 거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명칭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게 중요하다. 다문화가정의 이야기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등도 자주 편성되고, 각종 정책적 지원도 적지 않게 편성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교육과 문화가 특정 세대의 다양성에 대한 수용도를 자연스럽게 지속적으로 높여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의 방향이 늘 순기능으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최근 들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다양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거부감을 표시하는 젊은 층의 반응도 적지 않으며, 이러한 입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두고 격론이 오가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특정한 성향을 섣불리 특정 세대의 경향성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한국에서의 Z세대 내에서도 서로 다른 방향과 입장의 목소리가 섞여 나오고 있다고 판단하는 게 맞다.

인종의 다양성 문제는 비단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라기보다는 선진국의 경계 안쪽에 자리하는 대부분의 국가가 보편적으로 겪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물론 한국도 세계적인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추세라는 건 분명하다.

정리해보면, 한국의 인종 다양성은 분명 증가하는 추세지만 미국만큼의 큰 비율은 아니라는 점은 한국의 Z세대가 가지는 특징들을 좀 더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기도 한다. 특히 오랜 시간 동안 한국 사회가 강조해 온 단일민족의 개념으로 인해, 한국에서는 아무리 Z세대라 할지라도 다양성에 대해 미국보다 더 강한 반발 등이 일어날 수 있다. 이 점은 한국의 Z세대를 이야기하면서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부분이다.


사회경제적 흐름이 강하게 반영되는 한국의 세대론
미국의 세대론이 X-Y-Z로 이어지는 흐름인 반면 한국의 경우 이 흐름이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는다. 90년대 들어 이른바 ‘신세대’라는 호명이 있었고, 이 흐름은 글로벌 트렌드에 맞춰 X세대라는 이름으로 곧 바뀌었다. 그러나 ‘X세대 마케팅’이 난무했을 만큼 당시 트렌드 키워드로 자리 잡았던 ‘X세대’와 달리 ‘Y세대’라는 이름은 한국에서 그다지 널리 퍼지지 않았다. ‘88만 원 세대’라는 이름이 보다 더 크게 회자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세대론을 이야기한다면 서구나 미국과 다른 방식으로 유행했던 세대 개념들을 순서대로 세워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86세대 - 88만 원 세대 - Z세대’라는 순서다. 한국의 세대를 이야기할 때 오히려 어울리는 것은 이러한 세대 흐름일 수도 있다. 80년대 대학을 다닌 60년대생들이 민주화 이후 시대에 사회의 주력계층으로 성장하면서 저항의 중심에서 새로운 권력의 중심으로 자리를 이동했고, 뒤이은 경제 위기와 저성장의 흐름은 후속 세대에게 같은 ‘8’자 돌림이면서도 전혀 다른 의미인 ‘88만 원 세대’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이러한 한국의 세대론은 미국에서 등장한 세대 개념인 X-Y-Z가 소비, 라이프 스타일에 초점이 맞춰진 것과 달리 상당 부분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함의를 강하게 드러내는 편이다. 특히, X세대의 경우에는 한국에서도 마케팅 차원에서라도 자주 쓰였던 개념이었다는 점을 돌이켜볼 때 Y세대라는 용어가 정착하지 못하고 88만 원 세대로 대체됐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IMF 이후 급격하게 나타난 사회적 불균형의 문제가 일련의 세대 갈등으로도 나타나고 있음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빈부 격차의 문제가 세대 간 갈등으로 나타나는 조짐이 Y세대보다 88만 원 세대라는 이름을 더 부각시킨 것처럼 Z세대 또한 다른 이름으로 부각되며 대체될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국에서의 세대 구분이 보다 사회경제적인 이슈와 맞물린다는 사실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의 Z세대 또한 소비의 측면에서 미국과는 다소 다른 경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경제 위기를 유년기에 겪은 경험은 미국과 유사하지만 한국의 경우 특히 청년 실업, 청년 빈곤 같은 이슈들이 주요 사회 이슈로 두드러지면서 세대 간의 빈부 갈등이 드러나는 추세다. 아직까지는 ‘88만 원 세대’처럼 주로 지금의 30대 중심에서 벌어진 이야기지만 갈수록 악화되는 신규 채용 시장의 현실은 Z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만든다.

이는 두 가지의 극단적 경향으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서의 과시적 소비를 통한 욕구 해소이고, 다른 하나는 ‘N포 세대’라는 말로 드러나는 자조적인 태도다. 성장이 멈춰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다음 세대를 짊어지기엔 부담이 과도해졌다. 이런 부담에 좌절하면서도, 동시에 화려하고 자기과시가 가능한 소비 행태에도 관심을 갖는 양가적인 측면이 Z세대에게는 동시에 존재한다.

이는 디지털 시대의 매체 환경이 과거처럼 단일한 콘텐츠를 중심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과도 함께 생각해야 할 문제다. Z세대의 미디어 환경은 과거처럼 모두가 같은 콘텐츠를 동 시간대에 보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해당 세대가 드러내는 자기 자신의 모습 또한 여러 곳에서 각각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오히려 Z세대의 양상을 보면서 ‘포기와 좌절만이 지배한다’거나, 혹은 ‘과시적 소비에만 매달린다’고 하면서 한쪽 측면의 모습만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이 세대에 대한 가장 큰 오해일 수 있다.


‘한국형 Z세대’를 질문하라
우리는 Z세대라는 개념을 두고 거론되는 주요한 특징들로 미국에서는 디지털 네이티브로서의 속성, 다양성에 대한 폭넓은 이해, 자기주도적 소비 성향을 거론했다. 이는 한국의 Z세대와 비교해 보면 일정 부분 비슷하고 일정 부분에서 차이를 보인다. 한국의 Z세대는 디지털 리터러시 측면에서 미국보다 훨씬 더 친화적인 환경을 겪으며 성장했지만 다양성 문제와 관련해서는 단일민족 국가라는 오랜 통념과 충돌하면서 복잡한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소비와 경제의 측면에서도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굴곡이 만들어낸 그늘이 보다 짙게 드리워져 있으나 한편으로는 디지털 네트워크와 새 매체에 힘입어 굴하지 않는 자기주도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사실 ‘특정한 세대’라는 프레임을 통해 사람을 바라보는 일은 생각처럼 잘 들어맞지는 않는다. 집단으로서의 성향과 개인으로서의 성향은 언제나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특히, Z세대처럼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매체가 훨씬 더 다양해지고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자라난 이들의 문화적 양상은 한두 개의 키워드로 묶어 내기가 더욱 어렵다. 자칫하면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는 이들 세대를 이해하기 위한 요약과 표집이 더 큰 오해를 낳을 수도 있다.

세대론의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특정한 문화를 공유하는 일련의 연령대를 세대라고 묶어 부르는 것은 그 자체로 일종의 ‘호명(呼名)’이 된다. Z세대라는 공통점을 가진 그룹이 실제로 존재하느냐, 아니냐의 여부는 이미 우리가 Z세대라고 이름을 붙이고 불러냄으로써 무의미해진다. 우리는 Z세대의 존재를 말하고 그 특징을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그 안에 속한 개개인들이 모두 동일하게 Z세대라 불리는 집단의 속성과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집단은 바로 그 집단에 이름을 달고 호명함으로써 나타난다.

모든 사회 현상이 그렇듯이 이러한 세대 현상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지는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Z세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글로벌 트렌드로 호명되는 Z세대와 실제 우리가 한반도라는 문화권 안에서 만나게 되는 Z세대가 갖는 유사점과 차별점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Z세대 담론보다 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질문, ‘한국형 Z세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의 입장과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글의 논의를 따라 정리하자면 한국에서 Z세대를 이해하기 위한 다음과 같은 출발점은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더 강한 디지털 리터러시 환경에 대한 이해다. 비교할 데가 없을 정도로 높은 한국의 교육열은 디지털 리터러시와 맞물리며 인터넷 학원 시대를 열었고, 이제는 주요 학원들이 이른바 ‘1타 강사’들의 무료 강의를 제공하며 경쟁하고 있는 시대가 됐다. Z세대가 현재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10대의 교육 콘텐츠 소비 방식은 이들의 성장과 함께 사회 전반의 소비 양식으로 자리 잡힐 가능성이 크다. 이들에게 디지털 영상 콘텐츠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원래부터 그냥 있었던 것이라는 접근이 필수다.

둘째, 다양성에 대한 접근이다. ‘과거의 한국’에서라면 웃고 넘겼을, 개그맨이 흑인 분장을 하고 나와 연기하는 것은 이제는 시도만으로도 악플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물론 아직까지 한국은 다인종 국가로 불릴 만큼의 인종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다른 인종을 유머 소재로 활용할 경우 거센 역풍을 맞을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소비자의 친구, 가족, 혹은 직장 동료가 그들일 가능성이 과거에 비해 무척 커졌기 때문이다.

셋째, Z세대나 청년 세대 같은 용어가 대상을 특정하고 호명하는 방식임을 이해해야 한다. 세대 구분은 존재하는 현상을 관찰하고 그룹화하는 일이고, 그룹화에는 분명하게도 그룹 짓는 자의 의도가 반영된다. Z세대 또한 누가 어떤 공통점을 중심으로 이들을 묶어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로 작동할 수 있다. Z세대를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하려 한다면 Z세대를 우리 회사 ‘업’의 기반에서는 무엇으로 어떻게 호명해야 하는가부터 고민하는 게 옳다. ‘우리 회사가 바라보는 Z세대, 우리가 호명하는 Z세대’를 먼저 규정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비즈니스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겸 문화평론가 grolmarsh@gmail.com
필자는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등에서 일하다 퇴사한 후 현재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게임문화 연구를 전공하고 있는 게임연구자다. 매체로서의 게임이 현대사회와 인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면서 ‘게임화’하는 사회에 대한 새로운 인사이트를 찾고 전파한다. 성균관대에서 ‘게임과 인문학’이라는 교양과목을 운영하고 있으며 시사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 게임과 문화 관련 패널로 출연 중이다. 게임, 문화, 미디어 관련 다수의 저서가 있다. 최신 게임과 문화를 비평하다 보니 새로운 세대의 행동 패턴과 사고방식에도 익숙한 편이다.
  • 이경혁 | 현)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게임문화 연구, 게임연구자
    현)시사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 게임 관련 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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