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톰 크루즈 주연 영화 ‘미션 임파서블 6(Mission: Impossible - Fallout)’를 보러 갔다가 이번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우리나라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이 떠올랐다. 불가능한 임무. 한국 대표팀이 올림픽이나 월드컵도 아니고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더라도 불가능한 일까지는 아니다. 그러나 대표팀과 우리 국민들이 행복한 성과를 거두는 일은 톰 크루즈가 CIA와 MI6를 등지고 혈혈단신으로 거대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하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임무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적 특징을 극복해야 해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한국 대표팀에게 잘해봐야 본전인 대회다. 이란과 일본 등 한국과 경쟁하는 아시아 축구 강국들은 이 대회를 2020 도쿄올림픽에 대한 준비 단계로 본다. 이들과는 달리 한국은 최정예 멤버로 팀을 꾸렸다. 23세 미만 중 국내외 프로팀에서 뛰는 최고의 선수들을 뽑은 것은 물론이고, 연령에 관계없이 3명까지 뽑을 수 있는 와일드카드로 아시아 최고 공격수 손흥민과 2018 러시아 월드컵 대한민국 MVP 조현우까지 투입했다. 우승 이외의 성적은 매우 실망스러운 결과가 된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돼 우승을 거둔다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기쁠 것 같은가? 기껏해야 “나쁘지 않네”일 것이다. 한국 국민에게 아시안게임 우승은 단지 실망시키지 않는 결과일 뿐이다. 이미 여러 차례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했고 우승하는 것은 현상 유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대표팀이 우승으로 국민들을 기쁘게 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한국 사람 국민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이런 반응은 한국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둔다. 인간의 감정과 행복이 소유와 결과의 절대적 크기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량에 따라 결정되며 인간이 이러한 변화에 곧 익숙해진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대장내시경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곤혹스러움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 검사 때는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다음 중 어떤 옵션을 선택하겠는가? 옵션A는 5분간 검사 후 내시경 카메라를 바로 빼내는 경우다. 옵션B는 옵션A와 같은 5분간 검사를 한 후 내시경 카메라를 2분간 빼내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경우다. 이런 걸 질문이라고 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험 결과는 놀랍다. 환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 무리에게는 A 방식으로, 한 무리에게는 B 방식으로 대장내시경 검사를 했더니 더 오랜 시간 고통을 참아야 하는 B 방식으로 검사를 진행한 환자들이 오히려 덜 괴롭고, 할 만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선택 B는 고통 총량(검사 5분 + 카메라 삽입 2분)이 선택 A보다 크지만 고통이 마지막에 줄어드는 긍정적 변화가 있는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정과 행복이 소유와 결과의 총량보다는 변화량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반직관적인 결과다.
또한 인간은 변화한 환경에 빠르게 익숙해진다. 한국이 처음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1986년을 기억하는가? 모든 국민이 일본과의 지역예선 최종전을 관전했으며 1대0 승리를 거두고 본선 진출을 확정 지은 역사적 쾌거에 기뻐하고 행복해 했다. 지금은 어떤가? 지난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 지은 순간이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없을 것이다.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성과의 절대적 가치가 달라진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월드컵의 세계적 인기가 하락한 것도 아니다. 다만 1986년 이후 한국이 8번이나 더 본선에 진출했고 이러한 결과에 익숙해졌을 뿐이다.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대표팀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처음으로 우승한다면? 베트남 국민들이 느끼는 기쁨과 희열은 아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똑같은 금메달을 받아도 베트남 선수들이 받을 때와 한국 선수들이 받을 때 각국 국민들이 느낄 기쁨은 차이가 크다. 인류의 행복 총량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우리나라가 우승하는 것보다 베트남이 우승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잔인한 유전자(Mean Genes)』의 저자인 진화생물학자 테리 번햄(Terry Burnham)에 따르면 절대량보다 변화에 반응하고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인간의 특성은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을 통한 진화의 결과다. 유전자의 유일한 관심사는 끊임없이 자신을 복제하고 전파하는 것이다. 어떤 유형의 인간이 더 많이 생존하고 왕성하게 번식해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 유리하겠는가? “난 이 식량만 가지면 우리 네 식구 사는 데 별문제 없겠어, 만족해” 아니면, “일단 이 정도 식량이면 우리 네 식구 사는 데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더 있었으면 좋겠어, 아이도 더 가지고 싶고.” 자연선택은 계속해서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을 가지길 원하는 개체들을 선호했으며 현재 인류는 그들의 후손이다.
진화를 통해 굳어진 인간의 본성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남자 축구 대표팀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우리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일을 ‘미션: 임파서블’이라 느끼는 것이 과장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대표팀과 한국 시민들은 아시안게임이나 비슷한 종류의 대회마다 잘해야 본전인 저주받은 운명에 처한 것인가? 그렇진 않다.
인간의 본성은 갑자기 바꿀 수 없지만 목표와 기대 수준을 잘 관리하면 지속적으로 행복한 결과를 얻는 것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목표를 달성했을 경우 이전보다 발전했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최고 성적이 우승인데 도대체 어떻게? 결과는 바꿀 수 없지만 그 결과를 달성하는 대표팀의 수준은 조정할 수 있다. 즉, 지난번 우승 당시 23세 최정예 팀으로 나가서 우승했다면 그다음에는 더 어린 선수 위주로 팀을 구성하는 것이다. 우승 확률은 낮아지겠지만 대표팀과 국민들이 느끼는 성취감은 더욱 높을 것이다. 미래 대표팀을 강화하는 데도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이유는 다를 수 있지만 이란과 일본은 이미 그렇게 아시안게임 대표팀을 구성하고 있다. 대부분을 21세 미만 선수들로 꾸렸다.목표의 다양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스포츠 이벤트에서 우승이 절대적으로 가장 가치 있는 성과임은 분명하지만 유일한 목표는 아니다. 우승 이외에도 팀 최다득점(또는 최소실점) 기록 경신 등 다양한 종류의 목표를 다양한 수준으로 설정하면 계속해서 새로운 목표를 달성하는 성취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해 이번 대회에 나가는 한국팀은 ‘젊은 선수들이 한창나이에 운동에 집중하려면 군대 면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금메달을 꼭 따야 한다’는 식으로 우승만을 유일한 절대목표로 삼고 있다. 이는 국민들이 축구를 통해 행복감을 맛볼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면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는 기업에도 시사점을 준다. 최근 많은 기업에서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든다는 이유로 직급 체계를 단순화하고 있다. 이는 계속해서 확산되는 추세다. 수평적 조직문화가 가진 장점도 많다. 하지만 직급 체계 단순화는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간의 본성을 무시하는 측면도 있다. 직원들은 진급이라는 성취를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것이다. 특히 직급에 따라 월급이 자동 점프하는 시스템을 폐기하고 개개인별로 연봉을 책정하는 기업의 경우, 평균 연봉이 높다고 해도 직원들이 금전적 보상에 만족하기가 어렵다. 직원의 보수에 대한 만족도는 연봉 총액보다는 연봉 변화에 더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급 체계 단순화가 조직문화 수평화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음을 생각해 보면 이런 변화는 기업에 따라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
따라서 회사는 직원들의 ‘웰빙’과 동기부여를 위해서 직원들이 꾸준히 긍정적인 변화와 성취를 느낄 수 있는 직급 및 보상 체계를 설계해야 할 것이다.끊임없이 더 많이 가지길 원하는 인간의 본성은 그 자체론 축복도, 저주도 아니다. 조금만 더 합리적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기대수준을 관리한다면 한국 축구 대표팀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행복한 결과를 얻는 것이 ‘미션: 임파서블’보다 조금은 수월한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필자소개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ykim22@snu.ac.kr
필자는 서울대 체육교육과 학사와 석사를 거쳐 플로리다대에서 스포츠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플로리다주립대에서 7년간 재직하며 종신교수직(tenure)을 받았다. 현재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Journal of Sport Management』 『Sport Marketing Quarterly』 『Sport Management Review』 등 국제 저명 학술지 편집위원과 대한농구협회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Journal of Sport Management』 『Sport Marketing Quarterly』 『Sport Management Review』 『European Sport Management Quarterly』 등 국제 저명 학술지에 8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