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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Trend in Digital

아양 떠는 토스터… 손이 안 갈 수가 없네

유인오,민희 | 249호 (2018년 5월 Issue 2)
전자기기는 인간의 편의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청소기, 냉장고, 에어컨은 인간이 힘을 덜 들이면서 편리한 생활을 추구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인간의 명령이나 작동 지시에 따라 움직이며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다.

최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전자기기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인간과의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시도하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인공지능 등 다양한 로봇 기술을 활용해 인간과 상호작용한다. 이런 제품들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반려동물의 관계 등을 차용해 기계와 사람이 친밀한 관계를 맺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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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하는 상상 속 토스터

2017년 말,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대에 재학 중인 레온 브라운(Leon Brown)은 4가지 컨셉의 토스터 8종을 디자인했다. 브라운은 이 상상 속 토스터들에 ‘새로움을 관리하다(Managing the newness)’는 제목을 붙였다.

첫 번째 관계는 공생(Commensalism)이다. 공생은 둘 이상의 관계에서 서로에게 해를 가하거나 악영향을 주지 않고도 이익을 볼 수 있는 관계다. 공생 컨셉의 토스터는 스스로 사용자에게 더 좋은 이익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며 사용자와 공존한다.

브라운이 고안한 이 토스터는 돈을 내야 빵을 구워준다는 설정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공짜로 빵을 구워서 주인에게 내민다. 빵 위에는 ‘풍요로움을 즐겨라(Enjoy the Rich)’는 응원의 메시지도 잊지 않는다. 이 토스터는 자신의 자원을 아낌없이 활용해 사용자를 즐겁게 해준다. 빵을 구운 후 나온 부스러기를 모아서 사진 찍기에 좋은 아트워크를 남겨 준다. 기한이 지나 버리는 빵을 토스터에 넣으면 그 빵을 태워 전력을 생산해 스마트폰을 충전해주는 그의 상상 속 토스터도 함께 소개됐다.

길들이기(Domestication)란 정서적인 애착을 형성해 서로에게 의지하는 관계다. 이 감정으로 설정된 토스터는 사용자에게 애정을 느끼며 사랑받기 위해 노력한다. 예를 들어, 토스트를 구우려면 사용자는 부드럽게 토스터를 쓰다듬으며 애정을 표시해야 한다. 토스터는 본체를 마구 흔들며 사용자에게 아양을 떨어 관심을 촉구한다.

포식(Predation)이란 동물이 먹잇감이 되는 다른 물을 사냥해 먹는 것을 가리킨다. 포식자로 설정된 토스터는 사용자를 향해 몸을 비틀며 빵을 달라고 요구한다. 또는 자기 주변의 스피커를 해킹해 거기서 빵 굽는 소리를 재생함으로써 사용자가 토스터를 찾도록 유혹한다.

마지막으로 다른 대상과 더부살이를 하는 ‘기생(Parasitism)’을 컨셉으로 제작된 토스터도 있다. 전자레인지 상단에 자리 잡은 토스터는 전자레인지의 열을 사용한다. 주방 상판에 기생하는 토스터는 스스로 움직이면서 사용자의 손길이 닿는 곳을 찾아다니고 다른 물건이 자기 주위에 오면 쫓아낸다. 또 다른 토스터는 고장 났다는 것을 빌미로 사용자가 자신을 안쓰럽게 여기도록 유도한다. 더 나아가 다른 전자제품의 부품을 빼서 자신을 수리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아이처럼 귀엽게 행동하는 로봇청소기, 쓰레기통, 토스터

영국 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를 졸업한 신혜림 작가는 2년 전 귀여운 컨셉의 가전제품 컬렉션 ‘Be My Mother’을 선보였다. 알림 문자나 청각 신호 등 딱딱한 의사소통 방식 대신 귀여운 행동으로 사용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가 디자인한 토스터, 로봇청소기, 쓰레기통은 둥그스름한 모양의 귀여운 디자인과 행동으로 사용자의 시선을 끈다. 사용자는 토스터 안에 쌓인 빵 부스러기를 버리기 위해 받침대 손잡이를 잡아당긴다. 그러면 토스터는 재채기하듯이 빵 부스러기를 뱉어낸다. 쓰레기통은 쓰레기가 가득 차면 스스로 돌아서서 몸을 숨긴다. 마치 눈만 가리면 자신을 사람들이 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로봇청소기는 먼지통이 가득 차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듯이 먼지뭉치를 떨궈낸다.

이렇듯 귀여운 디자인과 설정을 통해 무생물이었던 생활 기계들이 생명력을 얻어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사물과의 관계가 재설정되면서 사용자에게 색다른 사용자 경험을 선사한다. 더불어 기계를 생각하는 인간의 마음을 바꾸기도 한다. 사물을 막 대하고 쉽게 버리는 사람들이 자신이 사용하는 물건에 더 애착을 드러낸다. 인간의 소통방식을 기계에 그대로 적용해 사물에 대해 애정을 갖고 더 오래 사용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위의 작품들은 작가들의 발칙한 상상으로 제작한 것들이지만 이들을 실제로 만나볼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스마트 기술들을 활용한다면 인간과 감정을 나누고, 소통하며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전자기기들이 충분히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조만간 애완동물처럼 감정을 표출하고 애정을 줄 수 있는 가전기기들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지 않을까?

유인오 메타트렌드연구소 대표 willbe@themetatrend.com
민희 메타트렌드연구소 수석연구원 hee@themetatre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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