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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名에서 使命을 읽다

좋은 생활, 좋은 존재라는 기업 이념. 환경 파괴 상징을 예술의 섬으로 부활시켜

신현암 | 246호 (2018년 4월 Issue 1)
1980년대 후반 CJ제일제당은 이미 즉석밥을 출시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고 있었다. 아쉽게도 시장이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회사 내부에서도 ‘밥은 지어서 먹어야지 사 먹는 게 말이 되냐’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이후 사 먹는 김치 시장, 사 먹는 반찬 시장이 형성되면서 자연스럽게 사 먹는 밥이 시장에 나왔다. 1996년 ‘햇반’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이 상품은 2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즉석밥 시장에서 점유율 70%를 자랑하고 있다.

햇반. 이름이 예쁘다. 만약 브랜드 명칭이 ‘알파미’였으면 어땠을까? 알파는 라틴어의 첫 글자, 미는 쌀미(米)다. 촌스럽다고? 1980년대 말 사내에서 논의됐던 상품명이 알파미였다. 당시 즉석밥 시장이 존재했다면 우리는 햇반이 아닌 알파미라는 상품을 접하게 됐을 것이다. 미(米)는 쌀이다. 반(飯)은 밥이다. 어느 단어가 감성을 입히기 쉬울까? 어느 단어가 문화적인 요소가 강할까? 어느 단어가 개념 확장이 용이할까? 브랜드 네이밍은 이러한 점까지 고려해야 한다.

서점을 운영하는 회사가 있다. 한 회사는 후쿠타케서점(福武書店)이다. 또 다른 회사는 베네세(Benesse)다. 베네세란 단어가 좀 어색할 수 있으니 해석을 붙여 보겠다. 베네(Bene)는 좋음(well), 에세(esse)는 존재, 생활(being)을 의미한다. 합하면 좋은 생활, 좋은 존재다. 후쿠타케서점은 책방 사업에 집중할 것 같다. 전문 서적이 잔뜩 진열된 정갈한 서가대가 그려진다. 베네세는 서점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을 펼칠 것 같다. 책을 중심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겠다는 미션 스테이트먼트(mission statement)도 잘 연결된다. 사실 두 회사는 같은 회사다. 그런데도 연상되는 이미지는 하늘과 땅 차이다. 회사 이름은 이렇게 중요하다.

일본 혼슈 서부 오카야마현(岡山県)의 교사 출신인 후쿠타케 데츠히코(福武哲彦)는 30대 중반이던 1949년에 문제집 위주의 출판사를 운영하다 5년 만에 도산했다. 그 후 후쿠다케서점이라는 상호로 인쇄물에 주력해서 빚을 갚은 뒤, 1955년 이 회사를 주식회사로 전환시킨다. 1963년 우리나라의 빨간펜 선생님 같은 통신 첨삭지도 사업에 뛰어들어 대성공을 거둔다.
1986년 회원 수가 100만 명을 돌파하며 업계에서 발군의 위치를 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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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본인의 또 다른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전 세계 어린이들을 위한 멋진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것. 나오시마(直島)라는 섬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나오시마는 행정구역상 시코쿠 가가와현(香川県)에 속한다. 하지만 거리상으로는 오카야마현이 더 가깝다. 그는 본인의 출신지와 관련 있는 곳에서 무언가 멋진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당시 촌장이던 미야케 지카츠쿠(三宅親連)와 의기투합해 나오시마를 전 세계 어린이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 변신시키기로 합의한다. 그러다 1986년, 후쿠타케 사장은 안타깝게도 급성신부전증으로 사망한다. 장남인 후쿠타케 소이치로(福武總一朗) 회장은 선친의 뜻을 받들어 국제 캠핑장을 개설한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의 자문을 받았다. 1989년의 일이다.

회사를 물려받은 소이치로 회장은 회사의 존재 의의에 대해 고민한다. 우리는 무엇을 하는 회사일까? 후쿠타케서점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민 끝에 만든 컨셉이 앞서 설명한 베네세다. 소이치로 회장은 좀 더 구체적으로 ‘개개인이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교육·어학·생활·복지 분야에서 도움을 주는 회사가 되자’고 결심한다.

기업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소이치로 회장은 나오시마 남부 지역을 현대미술의 메카로 만들어보겠다는 거대한 꿈을 꾼다. 왜 남부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오시마라는 섬의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어느 국가든 근대화 과정을 거친다. 근대화 시기에는 광석으로부터 금속을 추출하는 제련산업의 발달이 필수다. 미쓰비시(三菱)는 1917년, 당시로써는 최신 기술을 활용해 전국 각지에서 채굴한 광석을 제련하는 공장을 만들었는데 그곳이 바로 나오시마였다. 20세기 초반은 환경보호라는 개념이 희박했던 시절이다. 공장이 들어선 후 경제적으로는 섬이 윤택해졌지만 그만큼 환경 파괴라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특히 1990년대에는 제련소에서 나온 산업 폐기물을 데시마(豊島)라는 주변 섬에 몰래 갖다 버린 것이 발각되면서 커다란 사회적 문제가 됐다. 이 사건을 교훈 삼아 미츠비시는 ‘나오시마 에코타운 사업’을 전개해 자원을 재활용하는 모범 기업으로 거듭났다. 지난 2017년 건립 100주년을 맞이한 나오시마 공장은 오늘날 일본 굴지의 대규모 임해제련소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둘레 16㎞, 걸어서 4시간이면 한 바퀴를 돌아볼 수 있는 조그마한 섬 나오시마. 미쓰비시 제련공장은 이 섬의 북부에 있다. 반면 남부는 1960년대에 캠핑장이 조성될 정도로 풍광이 뛰어났다. 데츠히코 사장이 이곳에 국제적인 캠핑장을 만들고자 했던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기업은 여러 방법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 소이치로 회장은 나오시마 남부 지역을 현대미술의 메카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섬 주민의 생활이 윤택해지고 현대미술에 종사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제반 여건이 개선되기를 기대했음은 물론이다. 1992년 현대미술 전시공간과 호텔 객실을 갖춘 베네세하우스를 개관했고, 1995년에는 아예 회사 이름을 베네세로 바꿨다.

미술관도 하나씩 늘려갔다. 2004년에는 땅속에 건설했다는 뜻으로 치추(地中의 일본식 발음) 미술관을 개관했다. 이곳에는 모네의 수련이
5점 걸려 있다. 4점은 장기 임대했고, 1점은 소이치로 회장이 직접 구매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한 작품의 가격이 치추미술관 건설 비용보다도 비싸다고 한다. 2010년에는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유명한 이우환 작가의 작품을 모은 이우환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특정 지역이 인기를 끌기 위해서는 그 지역 아니면 만날 수 없는 걸작이 필요하다.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기 위해서는 바르셀로나에 가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탁월한 건축물은 소중한 관광자원이다. 나오시마도 이를 따랐다. 1998년부터 오래된 빈집을 개조해 그곳에 예술작품을 만드는 ‘이에(家, 집)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다. 작품 하나의 무게가 4톤에 달하는 월터 드 마리아(Walter De Maria)의 작품은 일단 작품을 나오시마에 갖다 놓고 그 이후 건축물을 지었다.

나오시마 하나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소이치로 회장은 그 주변의 섬들도 현대 예술의 성지로 만들었다. 1990년대 초반 폐기물로 고통받았던 데시마에는 2010년 단 하나의 작품만을 전시하는 데시마미술관을 열었다. 미술관 건립을 담당했던 니시자와 류에(西沢立衛)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유명하다. 이곳에 설치된 유일한 작품은 나이토 레이(内藤礼)의 ‘모형(母型)’이다. 물방울의 흐름을 통해 엄마, 어머니를 형상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감수성이 예민한 관객은 이 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 건축과 미술의 만남을 강조하는 데시마는 나오시마보다 숙식 및 교통이 훨씬 열악하지만 그 열악함이 오히려 좀 더 조용한 곳을 찾고자 하는 고객에게 매력으로 작용한다. 이 미술관도 소이치로 회장의 예술 사랑 결과물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나오시마를 방문한다. 3년에 한 번씩 예술제가 열리는데 그해에는 100만 명이, 그렇지 않은 해에는 50만 명 정도 방문한다고 한다. 방문하는 사람들은 베네세라는 이름을 알게 된다. 미쓰비시가 근대화의 기수로 나오시마를 변화시켰다면 베네세는 예술의 메카로 나오시마를 재탄생시켰다. 기업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지면에서 솟은 게 아니라 땅에 숨은 듯이 어우러진 일본 나오시마 지추미술관

신현암 팩토리8 대표 nexio@factory8.org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성균관대에서 박사(경영학) 학위를 받았다. 제일제당에서 SKG 드림웍스 프로젝트를 담당했고, CJ엔터테인먼트에서 근무했으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및 사회공헌연구실장을 지냈다. 저서로 『브랜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공저)』 『잉잉? 윈윈!』 등이 있다.
  • 신현암 신현암 | 팩토리8 연구소 대표

    신현암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경영학)를 받았다. 제일제당에서 SKG 드림웍스 프로젝트 등을 담당했고 CJ엔터테인먼트에 근무했으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및 사회공헌실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설렘을 팝니다』 『잉잉? 윈윈!』 등이 있다.
    gowmi1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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