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서 배우는 삶, 그리고 경영
Article at a Glance
기업은 100년, 국가는 500년을 넘기기가 힘들다. 그런데 유독 지금 존재하는 종교들만큼은 수천 년을 버텨왔다.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등이 그랬다. 그 놀라운 지속가능성의 원인은 다음 다섯 가지다. 1) 종교는 ‘궁극적인 관심’을 추구한다. 2) 종교는 강력한 소속감을 제공한다. 3) 종교는 늘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개혁된다. 4) 종교는 지역문화에 반드시 토착화된다. 5) 종교는 이타적 삶을 추구하게 만든다. 위 다섯 가지를 자신의 기업에 적용해보자. 지속가능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위 다섯 가지를 다시 자신의 인생에 넣어보자. ‘성공한 삶’ ‘기억되는 삶’의 기준이 보일 것이다. |
기업도 망하고, 나라도 망하는데
기업도 망하고, 나라도 망한다. 세상에 망하지 않는 조직이나 집단은 없다. 이른바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시대는 끝났다. ‘한 방에 훅∼ 간다’는 표현은 단순한 말장난(pun)이 아니다. 공중정원을 자랑하던 바빌로니아제국도 망했고(BC 539년),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단어는 없다’고 기염을 토하던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1 제국(1804∼1815년)도 역사의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철학적 사유에서는 플라톤을 당할 수 없었고, 비극의 장중함에는 소포클레스를 당할 수 없었으며, 의술에 관해서는 히포크라테스를 당할 수 없었던 위대했던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는 왜 망했을까?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던(oikumene) 광활했던 로마제국, 중앙아시아를 종횡으로 오가면서 동서양을 호령했던 칭기즈칸의 몽골제국, 한때는 ‘해 질 날이 없다’고 자신만만해 하던 영국은 왜 지금, 저 모양 저 꼴이 된 것일까? 왜 나라는 망하는 것일까?
회사나 기업도 망한다. 국세청의 2015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4년에 대한민국에서 폐업을 신고한 사람(법인 포함)의 숫자는 총 76만1328명에 달한다. 소상공인들만 폐업을 신고하는 것이 아니다. 거평그룹·율산·고려증권·국제그룹·덕산그룹·동명목재·동아그룹·명성그룹·삼풍·삼미·진로·대농·기아·해태·뉴코아·쌍용·한보·동화은행·고합·우성·벽산·아남·나산·새한·한신공영·STX· 대우 등등의 수많은 대기업 집단도 역사의 무대에서 총총히 사라지거나, 다른 회사에 팔려나갔다.
나라도 망하고 기업도 망하는데, 절대로 망할 것 같지 않은 집단이 있다. 종교집단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아리안족이 인더스 강 유역에 이주를 시작(BC 1800년경)하면서 태동한 힌두교는 기원전 5세기경에 본격적인 종교의 틀을 갖췄는데, 지난 2500년간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중간에 무굴제국(1526∼1857년)의 이슬람 통치기간도 있었고, 영국제국의 기독교 신앙과 영어 공용어 교육이 강제됐던 식민지 통치기간(British Raj, 1858∼1947년)도 있었지만, 인도의 민족 종교인 힌두교는 소멸되거나 쇠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깊이와 넓이를 측량하기 어려운 광활한 힌두교의 품 안에서 불교와 자이나교 등의 자매 종교가 탄생해 종교의 확산까지 초래됐다.
중국의 토착 종교로 출발한 유교와 도교는 또 어떤가? 현실에 대한 기복(祈福) 심리가 강한 중국인들에게 유교와 도교가 과연 고등 종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비판은 많은 학자들에 의해 반복되고 있지만 유교와 도교가 중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에서 여전히 종교적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유희문 한양대 교수(중국학과)의 탁월한 분석에 의하면, 중국을 남북으로 가르는 친링(泰嶺)산맥과 화이허(淮河)를 기준으로 중국의 비즈니스 패턴도 종교의 영향을 받고 있다. 중국 북부의 상인들 사이에서는 ‘유가 자본주의’가 지배적이며 전통과 사회적 규범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반대로 남부 지방의 상인들은 ‘도가 실용주의’적 경향을 보인다.
북방의 유가적 자본가들은 충(忠), 의(義), 신(信)을 중시하는 관우(關羽)를 섬기고, 남방의 도가적 실용주의자들은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의 정신에 따라 창의와 혁신의 가치를 선호하면서 해상의 수호신 마조(?祖)를 최고의 신으로 친다고 한다. 중국의 종교는 북방의 유가적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화웨이(華爲)와 남방의 도가 실용주의를 대표하는 알리바바의 마윈(馬云) 회장에 의해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 이른바 ‘사막 종교’ 혹은 ‘경전의 종교’로 불리는 이 세 종교는 쇠락할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력한 신앙의 힘으로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원히 망하지 않을 것 같은 종교라는 불가사의한 실체 앞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기업도 망하고, 나라도 망하는데, 왜 종교는 망하지 않는 것일까?
물론 개인의 신앙에 대한 문제는 반드시 사적인 영역에서 논의돼야 한다.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절대적 가치를 신봉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종교에 대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게 만들기 쉽다. 따라서 종교는 가급적 공공의 장소에서 논의되지 않는 것이 좋다. 종교가 공공의 영역에서 활동범위를 넓혀가면 우리나라와 같은 다종교 국가에서는 종교 간의 충돌이 일어나기 십상이다. 따라서 이 글은 개인의 영역인 신앙의 호불호(好不好)나 자기 신앙의 배타적 정당성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종교를 마케팅에 이용하자는 말은 더욱 아니다. 이 글의 목적은 종교의 사회적 기능과 현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경영자들에게 ‘지속가능 경영’의 참고자료를 제공하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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