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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세 철학자 김형석 인터뷰

인격을 높이되 서열을 낮추는 삶, 명예대신 존경을 택할 준비가 됐다

고승연 | 205호 (2016년 7월 lssue 2)

Article at a Glance

우리는 훌륭한 리더의 삶에 대해 끝없이 얘기 듣고 감동받는다. 그러나 막상 이를 스스로 실천하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96세의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이를 인간의 버릴 수 없는 욕심, 그중에서 가장 버리기 어려운 욕심인 바로명예욕때문이라고 말한다. 내 명성을 위해, 칭찬을 듣기 위해 일하면 명예욕의 노예가 되지만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일하고봉사하려 하면 그것은 존경이 된다. 당장 내일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하는 세상, 각박하고 치열한 생존경쟁에 매몰된 우리에게 그는사랑의 경쟁을 얘기한다. 그리고 그것은가능하다고 말한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정우성(연세대 경영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는데,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신은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영혼이란 무엇인가?”

 

철학자나 신학자가 평생을 두고 고민하는 화두이자 연구주제이지만 이 질문이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유난히 많이 회자된 적이 있다. 2012년 차동엽 신부(인천가톨릭대 교수) <잊혀진 질문>이라는 책을 통해() 이병철 삼성 회장이 별세 직전 절두산 성당 박희봉 신부에게 보낸 편지 속 질문이라고 소개하면서 이에 대한 자신의 답변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앞의 3개 질문을 포함해 고 이병철 회장이 다가오는 죽음을 앞두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24개의 철학적, 신학적, 그리고 인생의 본질과 관련된 질문이 담겨 있다.1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사업가로 이룰 것은 다 이룬 것처럼 보였던 그는 왜 죽음을 앞두고 삶과 철학, 그리고 신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까?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비즈니스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보이던 그 사람들이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르고 몰락하는 일을 볼 때마다 우리는 묻게 된다.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누군가 명쾌한 답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100년을 살면서 80년 가까이 이러한 인간, 윤리, 죽음, 그리고 삶의 의미를 고민해왔다면 그의 성찰은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사유의 단초를 제공해줄 것이다. 바로 그런 사람을 만났다. 96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활발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며, 인생을 완성해 가야 하는가. 또 경영계에 몸담은 사람들은, 리더들은, 그리고 CEO는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며 어떤 족적을 남겨야 할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어느 날 문득 한 번씩 해보는, 인생에서의 가장 중요한 질문들을 그에게 던졌다. 그는나도 잘 모르지만, 살아보니 그렇더라라며 아주 겸손하게, 100년에 걸친 그의 삶 속에서, 연구활동 속에서 깨달은 바를 들려줬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1920년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난 김형석연세대 명예교수는 일본의 조치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1944년 송산여중에서 교편을 처음 잡았다. 이후 중앙중학교 교사, 중앙고등학교 교감으로 일하며 시대의 스승이었던 인촌 김성수 선생과 함께 교육에 헌신했다. 이후 미국 하버드대 연구교환 교수, 연세대 철학과 교수 등으로 재직했고, 1985년 국민훈장 목단장(현 모란장)을 받았다. 그리고 2016년에는 한국 HRD 인적자원개발 대상 특별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기업에게, 혹은 기업가에게 윤리란 무엇일까요? 존경받는 기업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기업에게, 기업가에게윤리를 말한다는 게 좀 어색할 수가 있어요. 일단 기업은 이윤을 내야 하는 곳이잖아요. 경쟁도 치열하죠. 10개 회사가 한 분야에서 경쟁을 한다고 했을 때, 10개 기업이 다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윤리성이라는 것을 마구 들이대면 기업들이 곤란할 수 있어요.

 

이해합니다. 하지만 정말 제대로 된 기업, 더 큰 성장을 위해서는 우리가 좀 생각해봐야 할 게 있어요. 기업은 이윤을 내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고,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요.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봅시다. 이윤을 왜 내요? 기업이 지속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죠. 왜 존재해야 하죠? 고용도 하고 사회의 발전도 이끌면서 세상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잖아요. 기업의 윤리성, 사회적 책임성이라는 게 어느 시점부터 기업이우리는 이제 사회에 기여한다고 결심하고 시작하면 되는 게 아닙니다. 사회 전체가 뒷받침돼야 해요.

 

이윤을 왜 내요? 기업이 지속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죠. 왜 존재해야 하죠? 고용도 하고 사회의 발전도 이끌면서 세상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잖아요.”

 

제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을 비롯한 유럽, 미국 등지를 10년에 한 번, 20년에 한 번씩 방문했고, 연구자로서 머문 적도 있어요. 그때마다 느끼는 게 일단 우리가 본격적인 산업화를 하기 전에는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것에 관심 있는, 이런 게 표현이 맞을 진 모르겠는데 사회 전체가게으른 상태였어요. 이런 사회에 신뢰가 구축될 수 없어요. 그런데 당시 고도성장을 하던 일본은근면한 상태단계로, 즉 국민 모두가열심히 일하는 상태였던 거죠. 그렇게 하나씩 자리잡아가면서 사회적 신뢰라는 게 만들어집니다.

 

기업도, 국민도, 사회도 성숙하는 거죠. 그런데 여기에서 만족하면 안 되고 한 단계 더 성장해야 돼요. 일본이 열심히 추격하려던 서구사회, 미국 등은 어땠을까요? ‘일의 가치를 아는 사회였어요. 사람들은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기업은 이윤의 노예가 되지 않는 거예요. 개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의 가치를 중시하고 사랑하고, 기업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에서의사회적 가치를 크게 고민하게 됩니다.

 

일본도 사회 전체가, 다수의 기업들이 아직 이 단계에 올라서진 못한 것 같아요. 우리는 일본의근면한 사회단계로는 분명히 올라섰어요. 하지만 우리 기업인들이 한 단계 더 성장한, 더 발전한 경제와 기업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지금의 상태에서 한 번 더 도약해야 된다고 봐요. 그게윤리라고 말하는기업의 사회적 책임성이겠죠.

 

우리나라 기업인 중에도 이 정도로 성숙한 의식을 가진 분들이 몇몇 계셨습니다. 모두가 잘 아는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선생이 그런 분이셨고요, 한국유리를 창업하셨던 최태섭 회장도 그런 분이셨어요. 그분은기업 자체가 사회에 속한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계셨고 기업 자체를 특정한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항상내가 돈을 사회로부터 얻었으니 사회에 주는 것. 나는 기업을 사회에 맡긴다라는 말씀을 달고 사셨습니다.2 그분 생전에 만나서 대화할 때마다 제가 많이 배웠어요. 서구 선진국의 위대한 기업들이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바로 이런 모습들을 당연시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말씀하신대로 기업은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기업가는 그 누구보다 회사 직원들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기업은 어떤 철학을 가져야 할까요?

 

한 일본 기업 이야기를 해볼게요. 1960년대 고도성장을 달성한 일본 기업의 임원이 한국에 와서 우리나라 기업가들과 좌담회를 가졌어요. 그 내용을 보고 제가기업윤리와 관련해 비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윤리학, 철학 하는 사람이니까 당시 어떤 경영 관련 잡지에서 제게 의뢰를 해온 것이죠. 그 좌담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기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줬습니다. 회사의 존재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 임원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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