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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첩'과 '조급'의 결정적 차이

이치억 | 203호 (2016년 6월 lssue 2)

 

 

외국인에게 더 유명한 우리나라의 문화, 바로빨리빨리. 느린 것은 참지 못하는 한국인의 성격, 뭐든지 빨리 해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초스피드의 생활양식은 이제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리나라의 특징이 됐다. 자판기 커피가 다 내려오기도 전에 컵을 빼내고, 배차 간격이 몇 분 되지도 않는 버스나 전철에 마치 막차인 듯 달려들며, 신호대기 시간에 정면의 신호보다 측면 신호를 주시하여 한발 빠르게 출발하는 모습 등은 우리에게는 익숙하겠지만 이방인의 눈에는 매우 신기한 광경이다.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그렇게 성질이 급했던 것은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시절까지만 해도 우리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느리고 여유로운 사람들이었다. 만일 그 당시 오늘날처럼 빨리빨리 문화가 우리를 지배했었다면 외세의 침입을 당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과연 같은 피를 공유하고 있지만 북한이나 중국 조선족자치구에는 그러한 문화가 없는 점을 볼 때, 시간적으로는 현대의, 지역적으로는 대한민국 사람들만이 빨리빨리 문화를 형성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빨리빨리는 고도 경제성장의 부산물이다.

 

시간적·지역적으로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은 빨리빨리 문화양태가 사실 인간의 본성과는 맞지 않다는 점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기에 경제적 고도성장의 원동력이 된 한편으로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게 심했다. 굳이 열거할 필요도 없이 과거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사고는 빨리빨리 습성에 의한 부실공사가 원인이었고, 비교적 최근의 세월호 사건이나 스크린도어 작업 사망사고도 결국은 그랬다. 교통사고 사망률 세계 1위도 모자라 스스로 목숨을 재촉하는 자살률 1위까지, 이 모든 것이 직간접적으로 빨리빨리 문화가 가져온 비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빨리빨리 문화의 장점도 없지 않다. 덕분에 우리는 단시간에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고, 세계에 자랑할 만한 IT 강국이 되었다. 우리가 누리는 편리한 생활도 불편한 것을 못 참는 한국인의 빨리빨리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쨌든 빨리빨리는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이며, 쉽게 고칠 수 없는 우리의 성격이기도 하다. 또 고친다고 만사가 해결될 것은 아니다. 현대와 같은 초고속 정보화 사회에 가진 자원이 없는 우리로서는 빨리빨리 해치우는 능력마저 버린다면 현실적으로 살아남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빨리빨리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특히 일처리가 빠르다는 것은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공자 역시 군자에게 필요한 덕목 중 하나로 일처리에 민첩한 것을 꼽았다. 군자라면일처리는 민첩(敏捷)하되 말은 신중해야 한다.”<논어학이> 이쯤에서 우리는 빨리빨리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민첩과 조급의 의미 구분할 필요가 있다. 민첩의()’은 그냥 행동이 빠르다는 의미가 아니라 빠르고 영민하게 한다는 것, 즉 요즘 말로는 일을 빠르되야무지게한다는 의미이다. 얼렁뚱땅 빨리만 해치우자는 것이 아니라 게으름과 미적거림 없이 일처리를 정확·신속하게 한다는 것이다. 반면조급은 일처리 그 자체와는 관련이 적고 주로 결과와 관련된다. 그러니 할 일은민첩하게 할 것이지조급하게 할 일은 아니다. 빨리빨리 문화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민첩이 아니라조급이다. 가령 씨를 뿌리는 일을 민첩하게 할 수는 있지만 수확물을 거두는 것은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고쳐야 할 것은 조급함이지 민첩함이 아니다. 민첩함은 얼마든지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민첩하게 일을 한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빨리 해내는 것이다. 반면 효과나 성과는 내가 내는 것이 아니라 일의 결과로 드러나는 것이다. 즉 그것은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영역, 즉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 사실을 망각한 채 과정은 소홀히 하고 결과만 빨리 드러내려고 할 때 일이 잘못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우리가 매번 우려하면서도 반복되는 부작용의 발생근원처가 된다.

 

공자도 말했다. “정말로 훌륭한 임금이 나와도 반드시 한 세대는 지나야 세상이 밝아진다.”<논어자로’> 아무리 훌륭한 리더가 나타나더라도 성과는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하물며 요순이나 세종과 같은 성군이 리더로 있지 않은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겸허히, 윗사람에게든 아랫사람에게든, ‘성과에 조급하지는 않은지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이치억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 연구교수

 

필자는 퇴계 선생의 17대 종손(차종손)으로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면서 유교에 대한 반발심으로 유교철학에 입문했다가 현재는 유교철학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성균관대 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성균관대·동인문화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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