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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Insight from Biology

아주 작은 바이러스가 흔든 대한민국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메르스

이일하 | 189호 (2015년 1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지난 5월 초 평안했던 대한민국에 메르스라는 생소한 바이러스가 유입되면서 우리 사회는 공황 상태에 빠졌다. 보건 당국은 우왕좌왕했고, 일반 국민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메르스 사태 발생 후 근 6개월이 지난 이 시점에서 차분하게 당시의 대처들을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메르스 사태는 비즈니스 세계에도 시사점이 크다. 철저한 위기관리 시스템을 마련해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편집자주

흔히 기업을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 합니다. 이는 곧 생명에 대한 깊은 이해가 경영에 대한 통찰로 이어질 수 있음을 뜻합니다. 30여 년 동안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천착해 온 이일하 교수가 생명의 원리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이 생물학과 관련된 여러 질문들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기업 경영에 유익한 지혜도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병을 일으키는 작은 생물체가 있다. 1300년대에서 1700년대까지 400여 년간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흑사병의 원인 페스트균이나 20세기 중반 온 인류를 공포에 떨게 했던 AIDS의 병원체, HIV 바이러스가 좋은 예다. 이들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생물체가 참을 수 없는 공포를 안겨준다. 보이지 않기에 더더욱 우리 인류를 두려움에 빠뜨린다. 지난 5월에 발발해 3개월 이상 대한민국을 불안에 떨게 했던 메르스(MERS·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중동 호흡기 증후군)도 눈에 보이지 않는 극도로 작은 바이러스가 원인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3개월 이상 지배했던 바이러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바이러스, 얼마나 작은가?

 

19세기 중반 파스퇴르는 백조목 플라스크 속에 고기 국물을 넣고 끓인 뒤 관찰하면 고깃국이 부패하지 않음을 알았다. 반면 백조목에 균열이 일어나면 고깃국은 곧 부패하는 것을 보고 공기 중에 있던 세균이 음식 부패의 원인이며, 생물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게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게 된다. 이러한 이론이 확장돼 세균설(germ theory)이 됐다. 이 이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세균 때문에 병이 생긴다는 과학적 패러다임으로 발전한다. 이후 음식을 철저히 끓여먹고 손을 깨끗이 씻는 습관이 서구인들의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들었다.

 

한편 19세기 말 러시아 과학자인 이바노프스키는 세균보다 더 작은 병원체가 담뱃잎에 모자이크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이러한 병원체가 생물인지, 그냥 물질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를()’이라는 의미의 라틴어바이러스(virus)’라 불렀다.

 

물론 해충이 병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존재는 역시 세균과 바이러스다.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를 서울대 관악캠퍼스 정도로 확대했다고 상상해보자. 세균은 관악 캠퍼스를 구성하는 단과대 중 하나인 인문대 캠퍼스 정도, 바이러스는 인문대 강의실에 들어 있는 책상 하나 정도의 크기로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작은 생물체가 우리 몸속에 침입해 들어와 각종 질병을 일으킨다. 세균성 질병으론 앞에서 예로 든 페스트 외에 결핵, 매독, 한센병, 파상풍 등이 있으며 바이러스성 질병으론 소아마비, 독감, 홍역, 천연두 등이 있다. 이렇게 작은 생물체가 우리 몸 세포 속으로 은밀히 잠입해 병을 일으킨다.

 

세균은 스스로 증식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몸의 세포와 별로 다르지 않다. 모든 세포가 그러하듯이 세균도 DNA로 정보를 저장하고 생명활동에 필요한 다양한 대사 작용을 한다. 반면 바이러스는 정보를 저장하는 DNA(혹은 RNA)를 가지고는 있지만 스스로 증식할 수는 없다. 대사 작용에 필요한 효소들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바이러스가 가지고 있는 것은 게놈에 해당하는 핵산(DNA 혹은 RNA)과 게놈을 둘러싸는 단백질 수백 개, 그리고 인지질막과 지질막에 꽂혀 있는 표면단백질 등이 전부다. 바이러스가 증식되기 위해서는 숙주세포를 필요로 한다. 즉 우리 몸의 세포 속으로 침투해 세포가 제공하는 대사 기제를 이용해 증식한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물질대사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을 숙주와 분리하면 그냥 물질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 때문에 바이러스를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 영역에 있는 존재로 분류하기도 한다.

 

바이러스는 어떻게 인체에 침투하는가?

 

인체에 질병을 일으키는 모든 바이러스는 우리 몸속으로 침투해 들어오기 위한 특별한 표면단백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 몸속 세포에는 바이러스의 표면단백질이 도킹할 수 있는 수용체 단백질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HIV 바이러스는 바이러스 표면에 외피 당단백질(envelope glycoprotein) GP120이라는 표면단백질을 가지고 있고, 우리 몸의 면역세포인 백혈구(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T세포, 대식세포, 수지상세포)는 세포막에 CD4(cluster of differentiation 4)라는 수용체 단백질이 있다. 그래서 이 두 단백질, GP120 CD4 간 도킹에 의해 바이러스가 세포 내로 침투해 들어온다. 말하자면 우리 몸의 면역세포도 HIV 바이러스가 침투해 들어오는 데 한몫을 하고 있는 셈이다. 재밌게도 CD4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는 소수의 유럽인들은 AIDS에 걸리지 않는다. 바이러스가 도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의 표면단백질과 도킹을 위한 인간세포의 수용체 단백질 간 관계는 병인 바이러스가 인체의 어떤 조직을 통해 침투하느냐를 결정하는 요인도 된다. AIDS의 경우 백혈구 세포가 침투 장소로 활용되는 이유는 CD4 단백질이 백혈구 세포에서만 발현되기 때문이다. 반면 2009년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했던 독감의 경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표면단백질인 헤마글루티닌(hemmaglutinin)이 인간의 기관지 세포에 있는 수용체 단백질과 결합해 기관지 관련 병을 일으켰다. 이러한 과학적 원리 때문에 괴질이 돌 때 그것이 공기로 전염되느냐, 접촉을 통해 전염되느냐 하는 문제는 중요한 이슈가 된다. 애석하게도 다음에 이야기하려는 메르스는 아직 정확히 인간의 어느 조직을 공격하는지 잘 모르고 있는 상태다.

 

메르스 바이러스

 

메르스 바이러스는 2002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됐던 사스(SARS·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급성 호흡기 증후군)와 친척뻘인 바이러스다. 바이러스 종류로는 코로나(corona) 바이러스인데 바이러스의 표면에 부착돼 있는 표면 단백질이 마치 왕관 모양과 닮아 있어서화관’ ‘화환을 뜻하는 라틴어 corona를 따서 이름을 붙였다. 사스 바이러스는 중국 남동부 지역에서 식용으로 잡아먹던 사향 고양이가 인간에게 옮긴 질병이라 생각된다. 유사하게 메르스는 중동 지역의 낙타로부터 인간에게 전염된 질병으로 파악되고 있다. 현재 중동 지역에서는 메르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낙타에게 직접 메르스 백신 주사를 놓는 처방을 하고 있다. 인간에게 퍼지는 메르스에 대한 백신 개발이 늦어진 탓에 낙타용 백신을 개발해 주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왜 낙타 백신은 쉽게 개발이 되는데 인간 백신은 쉽게 개발되지 못할까?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의약품이 개발되기 위해서는 매우 까다로운 임상 검증이 필요하지만 가축들을 위한 의약품 개발은 비교적 손쉬운 절차만 거치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한창 메르스가 확산 일로에 있을 때 백신을 제때 개발하지 못한 이유도 우리의 의료기술이 선진국에 비해 특별히 떨어져서가 아니라 이런 복잡한 과정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의약품은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초기 대응 실패로 인한 대유행

 

지난 봄, 대한민국에 메르스가 창궐하게 된 것은 누가 뭐래도 방역당국의 책임이 크다. 초기 대응에 실패한 것이다. 국내 첫 메르스 환자는 중동의 바레인에서 입국했다. 당시 환자는 메르스 감염 사실조차 모른 채 여기저기 병원을 전전하다 결국 한 병원에 입원했고, 이 병원 의료진이 환자의 호흡기 이상 증세를 보고 메르스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하고 보건당국에 검사를 의뢰했다. 이미 2012년에 메르스가 중동 지역에서 발발했고 2013년에는 대유행을 해서 전 세계적인 보건 이슈가 돼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는 병원의 거듭된 요구를 두 차례나 묵살했다. 바레인이 발병 지역이 아니라는 게 이유였다. 결국 담당 의사는 질병관리본부에 있는 자신의 지인까지 동원해 검사를 했고, 환자는 그의 예상대로 메르스 양성 판정을 받았다. 질병의 대유행을 막기 위해서는 초기 신속한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초로 확진을 받는 데 허비한 시간이 안타깝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이렇게 확진 판정을 받은 상황에서도 환자가 들렀던 병원들의 정보 공개를 정부 당국이 막았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는 그전 해 에볼라 바이러스 환자가 자국 병원에서 확인됐을 때 재빨리 병원 이름을 공개하고 신속히 대처해 에볼라의 확산을 막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신속한 결단을 내리지 못한 우리 보건당국의 책임은 막대하다. 초기 대응에 실패함으로써 우리가 입은 사회적, 경제적 손실이 너무나 크다.

 

우리나라가 원래 이렇게 방역에 취약한 나라는 아니었다. 비슷한 상황에서 초기에 신속하게 대응함으로써 사회 경제적 비용을 최소화한 사례가 2001년에 있었다. 그해 우리나라에 콜레라가 유행했는데 이를 국제적으로 숨기지 않고 재빨리 공개해 질병의 확산을 조기에 막았다. 이는 다음 해 중국에서 사스가 대유행했을 때 정부가 나서서 정보 공개를 막음으로써 훨씬 더 큰 사회, 경제적 비용을 치른 중국 사례와 비교되면서 더욱 빛을 발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2002년 전 세계가 사스 공포로 떨고 있었을 때조차 단 한 명의 환자도 발생하지 않아 방역체계의 선진국임을 과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메르스 사태는 우리가 쌓아놓았던 대외 이미지를 한번에 날려버린 사건이 됐다. 국가 이미지 실추를 두려워해 정보 공개를 막은 것이 더 큰 이미지 실추로 이어진 좋은 반면교사인 셈이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의약품이 개발되기 위해서는

매우 까다로운 임상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가축들을 위한 의약품 개발엔

비교적 손쉬운 절차만 거치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

 

메르스 사태를 통해 우리는 전염병의 국내 유입을 차단하고 그 확산을 막는 완벽한 방역체계의 필요성에 대해 절감했다. 돌이켜보면 메르스는 에볼라와 마찬가지로 전 세계가 경계를 하고 있었던 바이러스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서아프리카 지역에 창궐했던 2014, 우리나라는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아서 국내 유입을 원천 차단할 수 있었다. 우선 서아프리카에서 오는 여행객들에 대한 검역을 강화했고, 의심 환자는 추적 조사와 역학 조사를 통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또한 국내 환자 발생과 유입상황에 대비해 국가 지정 입원치료 병원을 지정하는 등 병상 확보에도 선제적으로 나섰다. 덕분에 에볼라 바이러스 환자가 미국에서는 발생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반면 메르스는 너무나도 안이한 대처로 인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사태가 벌어졌다. 메르스의 경우 에볼라보다 1년 빠른 2013년에 중동 지역에서 창궐한 대유행 병이었다. 물론 2014년에는 조금 주춤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전 세계 확산의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는 시기였음을 감안하면 메르스의 국내 유입 가능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못한 보건 당국의 안일함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괴질이 유행할 때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우린 사실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2009년 신종플루가 전 세계적으로 창궐했을 때 우리나라에서도 대유행하지 않을까 온 국민이 긴장했다. 당시 우리는 보건 당국을 포함해 온 국민이 보건 위생에 철저히 대비해 큰 문제없이 위기를 넘겼다. 이때의 경험이 좋은 교훈이 되지 않을까. 당시 우리가 습득한 해결책은 외출 후 열심히 손을 씻는 것이었다. 전 국민이 외출 후 손 씻기를 생활화한 덕분에 신종플루뿐만 아니라 일반 감기 환자마저 급감, “동네병원들은 다 죽게 생겼다고 우는 소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원인 모를 바이러스가 돌고 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어는 위생에 철저히 신경을 쓰는 일이다. 결국 바이러스가 병을 일으키려면 우리 몸속으로 침투해 들어와야 하는데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일이 손 씻기 등 위생 활동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다. 비록 메르스의 경우 아직까지 어떤 조직, 어떤 세포를 경유해 우리 몸에 병을 일으키는지 정확하게 모르는 상태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메르스 사태는 비즈니스 세계에 있어서도 시사점이 크다. 위기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철저한 위기관리 시스템을 마련해 실제 위기 발생 시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 사스가 창궐했을 때 체계적인 시스템에 따라 선제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했던 것처럼 기업들도 불확실성이 날로 증가해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선순위를 정해 침착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두 번째로 투명한 정보 공개의 필요성이다. 지금처럼 SNS가 발달돼 있는 상황에선 무언가를 감추고 싶다고 감출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위기가 닥쳤을 때 잘못을 감추려고 급급하기보다는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함께 신속하게 후속 조치를 내놓음으로써 고객들과 소통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일하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ilhalee@snu.ac.kr

 

필자는 서울대 식물학과에서 학사·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생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30여 년간 꽃을 공부해 온 과학자로 1993년 개화유전자 루미니디펜던스를 찾아내는 등 개화 유도 분야의 선구자로서 명성을 굳혀오고 있다. 저서로 <이일하 교수의 생물학 산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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