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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의 학습이론

인문학적 사색 실천지향적 특성의 사회과학적 학습과 함께 가야…

신동엽 | 181호 (2015년 7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인문학에서 접근하는 학습 vs. 사회과학에서 접근하는 학습

 

인문학은 학습의 내용에 초점을 두며 지식의 증대, 인간 내면의 성숙과 발전 등에 관심을 둠. 반면 사회과학에선 학습이 발생하는 메커니즘 분석에 초점을 두고 행동의 변화가 핵심 관심사.

 

파블로프 조건반사 실험의 의의

 

오랜 기간행동=고차원적 사고와 가치관, 신중한 선택의 결과로 간주해 왔던 기존 학계에 인간의 행동도 물건이나 기계처럼 일련의 과학적 메커니즘에 의해 제조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임.

 

스키너의 학습모형이 사회과학적 학습이론에 끼친 영향력

 

실제 현실 세계에 적용할 수 있는 행동학습의 원리를 제시. 경영학은 물론 심리학, 교육학, 정신의학, 동물행동학 등으로까지 확산. 특히 경영학 분야에서는 사회적 학습(social learning), 조직학습(organizational learning) 등으로 발전.

  

 

학습이라는 단어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 모두 그 중요성이 강조돼 왔으나 그 접근법은 서로 전혀 다르다. 문학, 역사, 철학, 예술 등을 중심으로 하는 인문학에서 학습은 무엇을 배우느냐는 문제, 즉 학습의내용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사회과학에서는 학습의 내용보다는 학습이라는 현상의 본질과 그 구체적 과정 및 원리를 규명하는 데 무게중심을 둔다. 이에 따라 사회과학에서는 주로 인문학적 학습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에 대한메타 분석(meta-analysis)’ 성격의 연구가 주를 이뤄왔다. 학습에서의 관심사도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판이하게 다르다. 인문학에선 주로 지식 증대와 같은 인간 내면의 성숙과 발전에 관심을 갖는다. 반면 사회과학에선 행동의 변화가 핵심 관심사다. 학습하는 사람의 이미지도 인문학에서는 동양의 고매한 선비나 서양의 고뇌하는 철학자들이 독서하고 사색하는 모습을 떠올리는 반면 사회과학에서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행동패턴이 그 대상이다.

 

역사시대 이래 문사철을 중심으로 한 인문학에서 주로 논의돼 오던 학습이 사회과학적 분석과 연구의 대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건 20세기 초부터다. 지난 100여 년간의 기간 동안 사회과학에서 학습은 행동주의적 학습, 사회학습, 조직학습 등 다양한 분석 수준과 초점, 여러 분야들에서 연구되며 급속하게 발전해왔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학습모형들을 관통하는 공통의 개념 정의가 있다. 사회과학에선 학습을경험의 결과로 발생하는 행동의 변화로 정의한다. , 어떤 개인이나 조직, 사회가 특정한 경험을 한 결과 그 이전까지 하지 않던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 학습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경험이란 개인과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말한다. , 환경의 자극에 대해 인간이 반응하는 상호작용 과정을 경험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사회과학의 학습모형을 자극-반응(SR·Stimulus-Response)이론이라고도 한다.

 

학습을 행동의 변화로 간주하는 이 같은 개념 정의는 행동주의학습, 사회학습, 조직학습을 막론하고 모든 사회과학적 학습이론에서 공통적으로 전제된다. 이 개념 정의를 기준으로 비교해보면, 인문학에서는 어떤 경험이 어떤 새로운 행동을 하게 만드는가라는 경험과 행동의 구체적 내용에 관심을 가지는 반면 사회과학에서는 어떤 원리에 의해 환경과의 상호작용 경험이 행동변화로 연결되는지를 그 과정과 메커니즘에 초점을 맞춰 연구한다.이와 같이 사회과학적 학습이론에서는 인간 내면의 성숙이나 지식의 증가 그 자체보다는 행동의 변화에 주로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학습이론가들의 철학적 기반을 행동주의(Behavioralism)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회과학에는 학습의 원리를 설명하는 다양한 모형들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행동주의 심리학의 거장 스키너(B. F. Skinner)의 이론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스키너의 학습이론을 중심으로 학습에 대한 사회과학적 접근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행동주의와 사회과학적 학습모형의 탄생: 파블로프와 스키너

전통적으로 인문학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던 학습이라는 현상이 사회과학의 연구 대상이 된 것은 1902년 러시아의 생리학자인 이반 파블로프(I. Pavolv)의 유명한 개 실험이 계기가 됐다. 파블로프는 음식물을 줄 때 본능적인 생리반응으로 소화액인 침을 흘리지만 메트로놈 소리에는 침을 흘리지 않던 개에게 한동안 음식을 줄 때마다 메트로놈 소리를 들려줌으로써 이 두 가지 자극을 서로 조건화하면 이후로는 개들이 메트로놈 소리만 들어도 과거와 달리 침을 흘린다는 실험결과를 발표해 전 세계 학계에 충격을 줬다. 그 후 파블로프와 제자들은 이런 조건화를 통한 행동학습이 개나 동물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다양한 실험으로 증명했다.

 

파블로프의 실험은 마르크스(K. Marx)의 유물론적 역사관, 프로이트(S. Freud)의 정신분석학, 다윈(C. Darwin)의 진화론과 더불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걸친 현대사회로의 대전환기에 인류 지성사를 근본적으로 뒤흔든 엄청난 지적 혁명 중 하나였다. 그 이전까지는 인문학적 관점에서행동=고차원적인 사고와 가치관, 신중한 선택의 결과로 보고 바람직한 행동을 하도록 영감을 주는 학문이나 예술을 공부하는 데 주력해왔던 학계에 인간의 행동도 마치 물건이나 기계처럼 일련의 과학적 메커니즘에 의해 제조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파블로프는 나중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자연과학자였으나 그 이후 학습이론을 발전시킨 것은 주로 사회과학자들, 특히 심리학자들이었다. 파블로프의 학습모형을 정교화시킨 심리학자들에는 왓슨(J. B. Watson), 손다이크(E. Thorndike) 등이 있다. 하지만 사회과학적 학습이론의 전무후무한 최고의 거장이 전설적 심리학자 스키너(B. F. Skinner)라는 데는 논란이 있을 수 없다. 스키너는 사회과학적 학습모형의 골격을 완성했을 뿐 아니라 그 이후에 출현한 후속 학습이론들과 사회과학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20세기 인류 지성사에 가장 중요한 거장이다. 스키너는 파블로프의 학습조건 설계가 개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는 데 주목했다. 이는 학습 주체()에게 무조건적으로 실험자가 의도한 행동을 하도록 강제하는 모형이다. 스키너는 파블로프의 학습모형은 극단적인 전체주의 통제사회에서만 적용할 수 있는 비현실적 이론이라고 비판하면서 실제 세계에 적용 가능한 자신만의 독특한 학습모형을 제시했다.1  반면 스키너의 학습모형은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실제 세계에서의 행동학습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정도로 실용성이 높으며 그 결과 심리학과 경영학은 물론 교육학, 동물학, 정신의학 등에 광범위하게 활용돼 왔다.

 

동물원이나 수족관에서

흔히 보는 동물들이 재주를 부리는 쇼는

거의 100% 스키너의 강화학습을 통해

훈련된 결과다.

 

그러나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성서의 구절처럼 스키너 연구의 출발은 주로 동물행동학습 실험이었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쥐 실험인데 그 자체로는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은 듯이 보였다. 그러나 이 작은 실험이 가지는 시사점은 실로 엄청났다. 그는스키너박스(Skinner Box)’라는 간단한 실험장치를 고안했다. 사방을 외부에서 관찰할 수 있는 유리로 만들었으며 소리나 빛 등 모든 외부 환경의 자극을 실험자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도록 만든 간단한 장치였다. 스키너는 다른 부가적 장치는 없고 단순히 누름판만 박스의 중간 정도 높이에 설치한 간단한 스키너박스를 만들고 쥐를 한 마리 넣었다. 누름판은 다른 어떤 충격이 가해져도 전혀 반응이 없다가 쥐가 정확하게 그 누름판을 앞발로 누르면 먹이가 박스 속으로 떨어지도록 고안된 장치였다. 사방이 아무 것도 없는 지루하고 낯선 환경인 박스 속에서 쥐는 유일한 돌출 시설인 누름판을 깨물기도 하고 잡아당기기도 하고 치기도 하는 등 다양한 행동반응을 보인다. 그러다 우연히 앞발로 그 누름판을 누르는 순간 먹이가 공급된다. 먹이를 먹은 쥐는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지낸다. 그러다 또다시 누름판을 발견하고 다양한 행동반응을 보이다가 누름판을 앞발로 누르면 또다시 먹이가 공급된다. 이런 일이 몇 번만 반복되면 그 쥐는 누름판에 대해 다른 행동은 하지 않고 마치 탁월한 지능을 가진 동물처럼 배가 고플 때마다 능숙하게 누름판을 앞발로 눌러 먹이를 꺼내먹게 된다. 즉 그 쥐가 학습 이전에는 하지 못하던 행동을 하게 되는 행동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스키너의 새로운 학습모형은 사회과학계와 관련 업계 전체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스키너가 현실 세계에도 충분히 가능한 행동학습의 원리를 제시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파블로프의 학습모형과 달리 스키너 모형에서는 학습자인 쥐의 반응이 획일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즉 누름판이라는 환경의 자극에 대해 쥐는 자신이 원하는 다양한 행동반응을 보일 수 있다. 다만 그 다양한 행동반응들 중 보상은 실험자인 스키너가 원하는 특정한 행동, 즉 앞발로 누름판을 누르는 행동에만 주어진다. 이런자극·반응·보상이라는 일련의 경험이 반복되면 쥐는 실험자가 원하는 행동만을 학습하게 된다. 스키너는 실험자에게 주어지는 두 번째 자극인 음식물과 같은 보상을 특정 자극과 특정 반응 간의 관계를 강화시킨다는 의미에서강화(reinforcement)’라고 불렀다. 강화에는 실험자가 선호하는 보상인긍정적 강화(positive reinforcement)’도 있고 반대로 실험자가 혐오하는 처벌인부정적 강화(negative reinforcement)’도 있다. 스키너의 쥐 실험에 나타난 강화학습 모형은 다음과 같이 단계별로 정리할 수 있다.

 

1단계-환경의 첫 번째 자극(stimulus):스키너박스 속에 있는 누름판.

                

2단계-학습자의 다양한 반응(response):누름판에 대한 쥐의 다양한 행동반응들.

 

3단계-두 번째 자극으로서의 강화(reinforcement):다양한 행동반응들 중 실험자가 원하는 앞발로 누름판을 누르는 행동에 대해서만 학습자인 쥐가 선호하는 보상인 먹이 제공.

 

4단계-반복학습:누름판앞발로 누르기먹이라는 인과관계가 반복되면 누름판을 깨물거나, 당기거나, 치는 것과 같이 쥐가 원래 보였던 다른 행동반응들이 모두 소멸되고 누름판을 앞발로 누르는 반응만 강화 학습됨.

 

5단계-행동변화:학습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배가 고플 때 누름판을 앞발로 눌러 먹이를 꺼내먹는 것처럼 보이는 새로운 행동을 하게 됨.

 

이와 같은 스키너의 학습모형은 실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면에서 획기적이었다. 예를 들면 신입사원이 회사 생활에 적응해가는 과정을 스키너모형으로 설명해보자. 신입사원은 회사라는 낯선 환경에서 수많은 자극들을 받게 된다. 이에 대해 그 사람은 다양한 행동반응들을 보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사고만 저지르지 않고 무사히 생존하기 위해 복지부동으로 소극적 순응을 할 수도 있고, 회사 일보다는 자기 개인적 일들에 근무시간을 낭비하는 태업행동을 할 수도 있으며, 자신의 과업에서 탁월한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자기계발과 성과향상에 노력할 수도 있다. 이때 상사가 첫 번째와 두 번째 행동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세 번째의 바람직한 행동을 할 때 칭찬과 보상으로 반복적으로 강화를 제공하면 점차 앞의 두 행동은 소멸되고 세 번째의 바람직한 행동만 학습되게 된다. 바로 기업의 표창제도나 성과급의 원리다. 자녀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며 심지어 애완동물 길들이기도 동일한 스키너적 학습모형의 원리를 따른다.

 

 

 

1930년대 중후반에서 1940년대에 걸쳐 주로 발전된 스키너의 학습모형은 그 타당성과 정밀성이 과학적으로 반복 검증돼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마치 원하는 물건을 공장에서 제작하듯이 원하는 행동은 무엇이나 과학적으로 학습시킬 수 있다는 의미에서 행동공학(behavioral engineering)으로도 불린 스키너의 행동주의적 학습모형은 경영학은 물론 심리학, 교육학, 정신의학, 동물행동학 등으로 확산되면서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면, 동물원이나 수족관에서 흔히 보는 동물들이 재주를 부리는 쇼는 거의 100% 스키너의 강화학습을 통해 훈련된 결과다. 스키너는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 중 미 국방부와 함께 다양한 동물들을 정교하게 훈련시켜 사람이 수행하기 어려운 위험한 전투 임무를 수행하도록 만드는, 당시로서는 최첨단 동물무기를 개발하는오콘(ORCON)’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했다. 이런 시도는 최근 개봉한 영화쥬라기월드에서 재조명되기도 했다. 또한 정신의학계에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돼 소멸된 지 이미 오래이지만 여전히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는 사회과학적 정신치료법은 스키너 모형에서 발전한 행동요법(behavioral therapy)이다. 어린이들의 행동발달을 다루는 교육학에서 스키너의 영향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여전히 강력하다.

 

스키너의 야망: 학습모형으로 이상적 인간과 유토피아를 제조하라!

스키너는 자신의 학습이론이 단순히 행동교정이나 동물훈련에 사용되는 것으로 만족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더 큰 야망을 가진 거장이었다. 일단 원하는 행동을 무엇이든지 학습하도록 만들 수 있는 과학적 원리와 메커니즘을 정립한 스키너는 자신의 학습모형에 기반해 이상적이고 완벽한 인간을 과학적으로 만들어내는 인간공학(human engineering)에 착수하게 된다. 인간 내면의 심리나 관념은 관찰 불가능하고 공허한 블랙박스이며 진정 중요한 것은 실제 행동이라고 믿는 행동주의자인 그에게 오직 바람직한 행동만을 하는 인간은 완벽한 인간 그 자체였다. 그리고 바람직한 행동만 하도록 만들고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은 하지 않게 만드는 학습방법은 그의 모형을 통해 이미 정교하게 정립돼 있었다.

 

이런 생각에서 스키너는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킨 유명한 공개선언을 발표한다. 즉 자신에게아직 때묻지 않은 갓난 어린아이 한 다스를 주면 원하는 인간형 12명을 만들어주겠다는 어찌 보면 엽기적인 선언을 했다. 즉 갓난아이 때부터 스키너박스와 같은 통제된 환경에서 과학적인 자극과 강화만을 받으며 자라면 바람직한 행동만 하는 이상적 인간이 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지만 자신의 학습모형에 대한 스키너의 확신은 확고했다. 그는 갓난 어린아이 모집공고에 대한 반응이 부정적이자 자신의 친딸을 스키너박스에 넣어 양육했다고까지 전해진다.

 

스키너의 야망은 그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완벽한 인간들만으로 이뤄진 사회가 완벽한 이상향이라고 보고, 그의 학습모형에 따라 유토피아를 제작하는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에 착수하게 된다. 그리고 또다시인구 1000명 내외의 작은 나라를 자신에게 맡겨주면 유토피아를 만들어주겠다고 선언한다. 물론 스키너에게 나라의 설계를 맡길 국민들이 있을 리 만무했으므로 그는 나라의 설계를 실제로 맡았을 때를 전제하고 완벽한 사회에 대한 치밀한 설계를 제시해 이를 흥미진진한 소설 형태로 발표했다. 이것이 바로 20세기의 대표적 유토피아 소설이며 필자가 경영대학 학부 수업인조직행동론의 부교재로 사용하는 <월든 2(Walden Two)>. 월든이라는 명칭은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철학자인 19세기 미국의 초월주의 철학자 소로(H. D. Thoreau) 1854에 발표한 수필집 <월든, 숲 속의 생활(Walden, or Life in the Woods)>에서 따온 것으로, 인문학자들에 의해 인류역사상 가장 중요한 글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한 걸작이다.2  소로는 19세기 중반 급속히 팽창하던 초기 산업사회의 천민자본주의적 낭비와 사치, 퇴폐, 불평 등에 환멸을 느꼈다. 그리고 검소하고 건강하며 윤리적인 삶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미국 북동부 보스턴 근처의 콩코드 숲 속에 있는 월든 호숫가에 작은 통나무 오두막집을 짓고 3년 동안 원시림 속에서 문명과 완전히 단절돼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았다. 3년간의 생활상을 기록한 명상록이 바로 <월든, 숲 속의 생활>이다. 소로에게 월든은 그가 꿈꾸던 이상향의 상징이었다.

 

스키너가 자신의 사회공학 설계를 <월든 2>로 명명한 것은 이것이 바로 자신이 생각하는 유토피아를 실제 세계에 건설하는 실천적 방법이라는 선언이었다. 1948년에 발표된 이 소설에서 스키너는 완벽한 유토피아적 사회를 만드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특히 행동주의적 학습모형에 기반한 어린아이들의 양육과 교육 방법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으며, 공동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경제적 가치의 생산과 분배 방식도 특유의 강화학습 모형으로 꼼꼼히 설명하고 있다.

 

<월든 2>의 발표는 또다시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대표적인 비판은 <월든 2>가 마치 인간을 가축처럼 길들이고 감시·통제하려는 무시무시한 전체주의적 발상이며, 이 책이 제시하는 바를 그대로 따르면 소로의 유토피아인월든이 아니라 오웰(G. Orwell)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끔찍한 디스토피아(dystopia)를 만들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키너의 학습모형에 기반한 유토피아 설계는 당시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피폐한 사회 분위기에서 많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실제로 1960년대 공동체운동(commune movement)3 에서 압도적으로 인기 있는 공동체 이름 역시월든 2’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스키너의 실천적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사회과학적 학습모형의 확산: 실천지향적 학습을 향해

스키너의 주장은 너무나 혁신적이고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다수의 추종자들 못지 않게 수많은 반대자들이 스키너의 학습이론을 비판했다. 스키너에 대한 대표적 비판은 그가 인간을 마치 스키너박스 속의 쥐처럼 취급해서 마음대로 통제하고 길들일 수 있다고 믿으며, 그 결과 독립적 인격체로서 각 개인 고유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스키너는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정면으로 반론을 제기했고 심지어 공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사회과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논쟁 중 하나로 손꼽히는 스키너와 인본주의 심리학의 거장 로저스(C. Rogers) 간의 공개 논쟁은 <인본주의와 행동주의(Humanism and Behavioralism)>라는 책으로 엮어서 출간되기까지 했다.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스키너의 학습모형은 그 후 다양한 분야들로 계속 확대 발전됐다. 예를 들면, 1960년대에 사회심리학자인 밴두라(A. Bandura)는 스키너의 모형에서 환경을 타인들, 즉 사회적 관계로 보고 주변의 다른 사람들의 행동학습에 대한 관찰과 모방에 대한 강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새로운 행동을 학습하게 되는 사회적 학습(social learning)이론을 제시했다.

 

최근 스키너의 사회과학적 학습이론을 가장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학자는 아마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의 마치(J. G. March) 교수일 것이다. 조직학습(organizational learning) 분야의 거장인 마치 교수는 조직 내 개인들의 학습이 아닌 조직 자체의 행동학습이 어떻게 이뤄지는가에 대한 독특한 이론을 제시했다. 루틴(routine)의 공유를 통한 조직 자체의 학습을 설명한 마치의 조직학습 이론은 스키너의 강화학습 모형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어떤 환경변화에 대해 조직이 다양한 대응방안들을 폭넓게 탐색(exploration)하고, 이 가운데 성과가 높은 행동은 조직의 루틴으로 자리잡아 반복 활용(exploitation)된다는 마치의 성과피드백(performance feedback) 학습모형은 스키너의 강화학습 모형의 단계들을 조직 수준으로 확대 적용한 것이다.

 

마치는 단순히 스키너의 모형을 응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중요한 수정을 제안하기도 했다. 바로 새로운 행동대안들을 폭넓게 시도해보는 탐색(exploration)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다. 스키너는 궁극적으로 루틴으로 학습되는 바람직한 행동을 제외한 나머지는 단순히 소멸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마치는성공의 덫(success trap)’ 이론을 통해 학습된 행동을 반복적으로 활용하는 행동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행동대안들을 찾는 탐색이라고 강조함으로써 조직이론을 비롯한 경영학 전반에 새로운 장을 열기도 했다.

 

스키너의 학습이론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살펴봤듯이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보는 학습은 문사철 중심의 내용에 초점을 맞추는 인문학적 학습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실천적 학문인 사회과학에서 제시하는 학습모형은 내면적 발전이나 성찰보다는 실천적 행동변화와 이를 통한 조직 및 사회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스키너를 반대하는 인본주의자들이 그를 인간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부정한다고 비판했을 때, 스키너는 1971년에 <자유와 존엄을 넘어서(Beyond Freedom and Dignity)>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을 통해 스키너는 인간의 자율적 의지에 대한 무책임하며 순진하기까지 한 무조건적인 존중은 필연적으로 각자의 이기적 이익추구를 극대화하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게임의 규칙이 되는 정글과 같은 야만사회를 만들 수밖에 없으며, 그 대표적 예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집단 학살하는 것도 서슴지 않게 만들었던 제2차 세계대전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런 스키너의 주장은 비록 40년이 지났지만 신자유주의적 시장만능주의가 전체 사회를 황폐하게 만들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도 큰 시사점을 제공한다.

 

인문학적 학습은 그 자체로서 대체 불가능한 소중한 가치를 가지는 게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맹목적인 인문학 열풍은 자칫 현실회피적 사색과 성찰, 비현실적인 탁상공론, 무기력한 고담준론(高談峻論)에 빠질 위험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런 면에서 심오한 인문학적 사색과 실천지향적인 사회과학적 논리의 만남은 바람직한 지성세계의 필수적 요건이라는 점이 다시 한번 강조돼야 할 것이다.

  

신동엽연세대 경영대 교수 dshin@yonsei.ac.kr

신동엽 교수는 미국 예일대에서 조직이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인사조직학회장이며 서울스프링국제실내악축제 조직위원장을 지냈고 국립발레단 등 여러 문화예술단체들과 기업들을 자문해왔다. 조직이론 분야 최고 학술지인와 문화예술 분야 세계적 학술지인등에 논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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