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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Insight Biology

40억 년 생명불씨 간직한 불멸의 DNA 우리 기업에는 과연 Meme 있나?

이일하 | 179호 (2015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세대에서 세대로 조상의 특성이 자손에게 전달되게 하는 생명의 불씨는 DNA 속에 저장된 정보다. DNA는 매우 엄밀하게 복제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몇 억 년이라는 긴 시간 속에 복제 에러가 발생하고, 이것이 축적되면서 새로운 기능을 가진 유전자가 출현해 진화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유전자는 기본적으로 세대에서 세대로 수직적 전달이 이뤄지지만 서로 아무 관련이 없는 생물체끼리 수평적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 곰팡이의 색소 유전자가 진딧물에게 전달되기도 하고, 고사리가 이끼로부터 광수용체 유전자를 전달받기도 한다. 모든 생명체는 각자 독립적으로 진화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수평적 유전자 전달에 의해 유전자군을 공유하는 상호 의존적 진화를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영속하는 기업이 되려면 기업의 가치와 철학을 세대를 걸쳐 전달할 수 있는 문화복제 유전자(meme)’이 필요하다.  

 

편집자주

흔히 기업을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 합니다. 이는 곧 생명에 대한 깊은 이해가 경영에 대한 통찰로 이어질 수 있음을 뜻합니다. 30여 년 동안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천착해 온 이일하 교수가 생명의 원리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이 생물학과 관련된 여러 질문들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기업 경영에 유익한 지혜도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1665년 영국왕립학회의 실험 큐레이터였던 로버트 후크는 당시 발명된 현미경의 쓰임새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코르크 마개의 미세구조를 들여다보면서왜 코르크 마개가 그토록 가벼우며 물에 뜨는지 과학적으로 밝혀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의 통찰력은 적중했고 코르크 마개 절편에서 속이 텅 빈 공간들로 보이는 미세구조를 발견했다. 이 텅 빈 공간을 수도사들의 독방 공간이라는 의미의 셀(cell)이라 명명했다. 최초로 세포를 발견하게 된 계기다. 이후 네덜란드의 금속세공 기술자이던 레이벤후크는 안경렌즈를 연마하던 중 보다 개선된 현미경을 개발하게 되고 맨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에 푹 빠졌다. 그는 무수히 많은 동·식물, 미생물들의 미세구조를 관찰하면서 세상의 모든 생물체는 그것이 코끼리건, 대장균이건 모두 세포라는 작은 단위체로 구성돼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리하여오타쿠(御宅)’ 아마추어, 레이벤후크는 미생물학의 아버지가 됐다.

 

레이벤후크는 특히 정자와 난자를 들여다보는 것을 즐겨했는데 정자 속에는 축소된 인간이 들어 있다는 잘못된 주장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통찰력과 무수히 많은 관찰 기록들은세포론이라는 새로운 과학적 패러다임을 발견하게 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세포들은 기왕에 존재하던 세포들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지금 관찰하는 세포는 그전의 어떤 세포가 세포분열에 의해 증식한 것이지 새로이 창조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새로이 세포가 창조되는 일은 아득히 먼 과거 40억 년 전에는 있었겠지만 지금은 일어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내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는 태고 적부터 기왕에 존재했던 세포에서 유래된 것이란 얘기다.

 

불멸의 복제자, DNA

내 몸 속 불멸의 세포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생명의 불씨를 빌려온 수정란에서 비롯된다. 한 개의 세포였던 나는 세포분열을 통해 지수 함수로 세포의 수를 늘려나갔다. 대략 40회가량의 세포분열을 통해 올챙이만 해졌을 때 나는 생식세포들을 만들어 다음 성화 봉송 주자에게 넘겨줄 생명의 불씨를 마련한다. 이 불씨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궂을 때나 화창할 때나 쉴 새 없이 타오른다. 언제든지 다음 세대에게 이 불씨를 넘겨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생명의 불씨를 간직한 불멸의 세포는 내 아버지가, 그리고 내 어머니가 나를 위해 준비해둔 세포이기도 하다. 남성의 정자는 끊임없이 만들어져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생명의 불씨를 지필 준비를 하지만 여성의 난자는 태아 때 한꺼번에 모두 만들어진다. 태어날 때 이미 평생을 사용할 난자를 다 가지고 태어난 여아는 꺼진 듯 꺼지지 않은 생명의 불씨를 십여 년간 참을성 있게 간직하고 있다가 내 아버지의 생명의 불씨를 만나면 활활 불타오른다. 그렇게 해서 내가, 내 몸 속의 세포들이 만들어졌다.

 

필자의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이어진 불멸의 세포는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 인조 때 병부상서를 지내셨다는 필자의 시조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그 불멸의 세포는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우랄 알타이 지역에서 시베리아 추운 동토를 지나 한반도로 무리지어 들어온 한 떼의 씨족 그룹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프리카에서아웃 오브 아프리카1 를 준비하던 20만 년 전의 인류 조상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일을 계속하다보면 불멸의 세포는 더 이상 인간이라 할 수 없는 600만 년 전의 인간과 침팬지의 공통 조상, 사헬란트로푸스를 만나게 될 것이고, 5억 년 전 간신히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동물의 시조를 만나게 될 것이며, 20억 년 전 정교한 세포 내 분업을 이제 막 수행하게 된 진핵세포 한 마리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세상과 나를 구분 짓는 경계가 흐리멍덩한지구상 모든 생물의 조상2 이었던 억세게 재수 좋은 한 세포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 불멸의 세포는 대대손손 이어지면서 생명의 불씨를 내 손에 넘기는 순간까지 단 한 번도 불씨를 꺼트리는 일이 없었던 세포다. 복권 1등 당첨보다 수억 배나 더 어려운 경이로운 기적이 내 안에서 행해진 것이다.

 

지난 40억 년간 단 한 번도 꺼지지 않고 나까지 이어져 내려온 생명의 불씨는 무엇일까? 이 불씨의 본질은불멸의 복제자’, DNA. 태초에 분자가 생성과 소멸의 헛바퀴를 반복하고 있을 때 어느 모험심 강한 분자가 스스로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됐고, 이들이 세상과 자신을 구분 지을 수 있게 되면서 생명성을 가지게 됐을 것이다. 이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사건은 무려 20억 년의 긴 시간 동안 천천히 진행됐다. 일단 세포가 만들어진 뒤에는 불멸의 복제자가 자신의 형태를 바꾸어 가면서 주변 환경에 적응·진화하는 게 가히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끊임없이 복제하는 가운데 간혹 발생하는 변이들이 축적돼 새로운 외피를 가진 생명들을 출현시켰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생명의 불씨가 이어져 내려가는 원리를 우리는 유전이라고 한다. 세대에서 세대로 조상의 특성이 자손에게 전달되게 하는 생명의 불씨는 결국 DNA 속에 저장된 정보다. 이러한 정보를 가진 DNA는 매우 엄밀하게 복제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비교적 짧은 시간의 범주, 몇 천 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서는 어떠한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듯 보인다. 그러나 긴 시간의 범주, 이를테면 몇 억 년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는 복제 에러가 조금씩 축적돼 새로운 기능을 가진 유전자가 출현한다. 이것이 진화의 동력이다.

 

 

 

수평적 유전자 전달

멘델이 유전법칙을 발견한 후 우리는불멸의 복제자인 유전자가 어떻게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되는지 그 원리를 잘 이해하게 됐다. 그러나 최근 분자생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유전자가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수직적 전달만 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 , 통상적인 유전, 생식세포를 통한 유전이 아니라 아무 관계없는 생물체 간에 유전자 전달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를 수평적 유전자 전달(horizontal gene transfer)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짝짓기가 불가능한 진딧물과 곰팡이 간의 유전자 수평전달이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유전자 수평전달의 아주 좋은 사례가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해초 분해 유전자다. 2000년대 초반 일본인의 유전자와 미국인의 유전자를 비교하던 과학자들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미국인이나 유럽인에겐 없는 유전자를 일본인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일본 열도는 엄청난 면적의 해안가를 가지고 있어 해조류는 일본인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식량원이었다. 따라서 일본인들이 해조류를 분해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게 이상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미국인과의 유전자 정보를 비교하던 과학자들은 미국인에게는 없는 해조류 분해 유전자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궁금했다. 결국 그 기원을 추적한 과학자들은 이 유전자의 기원이 일본인들의 대장 속에 공생하는 박테리아에서 온 것임을 알게 됐다. 즉 장내미생물이 가지고 있던 해초 분해 유전자가 수평적 유전자 전달에 의해사람’, 즉 일본인들의 염색체 속으로 옮겨온 것이다.

 

이러한 수평적 유전자 전달은 사실 우리 주변에서 꽤 자주 발견된다. 예를 들어 진딧물이 가지고 있는 초록색, 빨간색 등의 색소는 곰팡이가 가지고 있던 카로티노이드 생합성 유전자를 진딧물이 물려받은 결과다. 수평적 유전자 전달에 의해 곰팡이의 색소 유전자가 진딧물에 전달된 것이다. 고사리가 이끼에서 빌려온 효율 좋은 광수용체 유전자 역시 수평적 유전자 전달의 좋은 사례다. 대추나무에 빗자루병을 일으키는 마이코플라스마균 역시 식물의 호르몬 생합성 유전자를 수평적으로 전달받아 식물의 형태를 변형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 식물 잎의 형태를 변형시키는 곰팡이, 세균, 곤충들은 대부분 식물의 호르몬 생합성 유전자를 수평적 전달에 의해 물려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수평적 유전적 전달은 현재의 생물학적 지식에 따르면 두 가지 방법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는 박테리아에 의한 매개다. 박테리아는 주변의 DNA 조각을 흡입해 자신의 염색체 속에 집어넣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런 방식으로 박테리아에 옮겨온 어떤 생물체의 유전자가 다른 생물체에 넘겨지면 수평적 유전자 전달이 일어난다. 둘째는 바이러스에 의한 매개다. 바이러스가 어떤 생물체의 유전자를 다른 생물체에 옮겨주는 일은 종종 보고되곤 한다. 수평적 유전자 전달은 오랜 시간에 걸쳐 함께 진화한 생물체 간에 일어나는 드문 사건이긴 하지만 수억 년이라는 긴 진화의 시간을 생각하면 이것이 한 생명체의 유전자원을 풍부하게 하는 기작임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수평적 유전자 전달은

오랜 시간에 걸쳐 함께 진화한

생물체 간에 일어나는 드문 사건이긴

하지만 수억 년이라는 긴 진화의

시간을 생각하면 이것이 한 생명체의

유전자원을 풍부하게 하는

기작임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수평적 유전자 전달의 가장 흥미로운 사례 중 하나는 지난 5월 저명한 과학 학술지 <미국학술원연보(PNAS)>에 실린 고구마 품종에 대한 내용이다. 논문에 따르면 고구마는 아그로박테리아라는 토양 미생물로부터 유전자를 수평적으로 전달받아 오늘과 같은 작물이 됐다. 아그로박테리아는 현재 GMO(유전자변형 농산물, 혹은 유전자개량 농산물)를 개발하는 데 가장 많이 이용하는 박테리아로 작물에 도입하고자 하는 유전자를 아그로박테리아에 실어서 식물체에 전달하고 있다. 결국 이 연구에 따르면 고구마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GMO가 되는 셈이다.

 

모든 생명체는 상호 의존적으로 진화한다

수평적 유전자 전달 현상의 발견은 생물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바꿔 놓았다. 모든 생명체는 각자 독립적으로 진화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수평적 유전자 전달에 의해 유전자군을 공유하는 상호 의존적 진화를 하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오랜 진화 과정의 최종 승리자이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는 하나하나 고귀한 보배다. 이 모든 유전자들이 저마다 쓸모가 있고 모든 생명체들이 진화해 가는 과정에 중요한 재료물질로 이용된다. 이것이 우리가 생명 다양성의 보존에 그토록 힘을 기울여야 하는 생물학적 이유다. 생물권 전체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들은 모든 생명들이 공유하는 유전자다. 지구 생태계의 사실상 지배자인 우리 인간은 이 유전자원들을 보호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이 자원들이 그 효용 가치를 제대로 발휘해보지도 못하고 아마존에서, 태평양에서 사라져 간다면 너무나 애석한 일이다.

 

지난 40억 년 동안 생명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계속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생명의 불씨에 특별한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진화의 역사 속에서 생명의 불씨를 둘러싸고 있던 외피는 끊임없이 형태를 바꿔왔지만 불씨의 본질은 바뀌지 않고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불멸의 복제자, 유전자가 바로 그 본질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세대를 뛰어넘어 수백 년간 장수하는 기업이 되려면 꺼지지 않는 불씨가 필요하다. 바로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을 복제할 수 있는 유전자(meme, 문화복제 유전자)’이다. 밈은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제시한 개념으로, 모방의 뜻이 담겨 있는 그리스어미메메(mimeme)’와 유전자를 뜻하는 단어(gene)’의 조어다. 오랜 세월 기업이 그 생명력을 이어가려면 매출액, 영업이익 등 단순한 재무실적 이상의 그 무엇이 필요하다. 어떤 위기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기업의 근간을 붙들어 줄 수 있는 기업의 핵심 가치와 경영 철학이 계승, 발전돼야 한다. 문화복제 유전자 밈은 모방을 통해 기업의 가치와 철학을 다음 세대로 전달할 뿐 아니라 수평적 유전자 전달 사례처럼 영역과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통해 창조적 확장을 가능케 한다. 가치와 문화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변이와 결합을 통해 내부 구조를 역동적으로 변화시켜 혁신을 이어갈 수 있게끔 하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염두에 둔 기업들이 밈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길 바란다.

 

 

이일하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ilhalee@snu.ac.kr

필자는 서울대 식물학과에서 학사·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생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30여 년간 꽃을 공부해 온 과학자로 1993년 개화유전자 루미니디펜던스를 찾아내는 등 개화 유도 분야의 선구자로서 명성을 굳혀오고 있다. 저서로 <이일하 교수의 생물학 산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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