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의식과 기업 경영

169호 (2015년 1월 Issue 2)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이 20여 년 전 미국 전자부품업체 AVX사를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두 회사는 오랜 협상 끝에 주식 교환비율에 합의하고 인수 계약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주가가 변하자 AVX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주식 교환 비율을 변경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것도 무려 세 차례나 수정을 요구했습니다.

 

상도의에 벗어나는 무례한 요구라며 얼마든지 거절할 수 있었지만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은 세 번의 요구를 모두 들어줬습니다. 또 회사를 인수한 후에도밉상으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 같은 기존 경영진을 그대로 신임해줬습니다. <불타는 투혼(이나모리 가즈오, 한국경제신문, 2013)>이란 책에서 그는 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는 모든 의사결정에 확고한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인간으로서 올바른 일인가하는 것입니다. 피인수 회사의 무리한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지 결정할 때에도 이 관점에서 생각했습니다. 그는 기업 인수가 결혼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결혼하면 상대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며 이것이 인간으로서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사업적 고려도 했습니다. 상대의 요구를 들어줘도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는지 고민했고, 충분히 가능하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전에도 그는 AVX사가 이미 계약서에 서명까지 한 특정 제품에 대한 일본 내 독점 판매권 보장 조항을 수정해달라고 요구했을 때 수용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도 역시인간으로서 올바른 일이 기준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의사결정의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단기적으로는 손해를 봤지만 상대의 신뢰라는 큰 자산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인수 후 불과 5년 만에 AVX는 뉴욕증권거래소에 재상장했고 성장세를 이어갔다고 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그는 인간으로서 무엇이 올바른지를 토대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경영 철학을 피인수 회사 임직원에게 깊게 각인시켰습니다.

 

인간의 행동을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당근과 채찍, 즉 상벌체계를 손보거나 제도, 프로세스 등을 바꾸는 일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긴 합니다. 하지만 이 효과는 일시적이며 가식적 행동만 유발할 확률이 높습니다. 인간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닙니다. ‘경영의 신이 접근한 방법은 바로 철학입니다. 그는 겉으로 드러난 행동과 의사결정의 바탕이 되는 가치 체계, 세계관, 철학 등에 정면으로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올바른 행동이라는 명확한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행동하도록 유도했습니다. 교세라 경영에서부터 각종 인수합병, 최근 일본항공(JAL)의 극적인 부활에 이르기까지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의 이런 접근은 한 차례도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근본적인 가치관과 철학에 대한 고민은 삶의 목적으로 연결됩니다. 불행하게도 산업화에 성공한 후 우리는 서구의이윤 극대화패러다임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목적의식을 잃고 말았습니다. 실제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100억 원, CEO, 페라리 같은 대답이 돌아옵니다. 불행하게도 이는 모두목적이 아니라수단입니다. 돈을 가졌을 때 돈으로 하고 싶은 일, 최고위직에 올라갔을 때 그 파워를 이용해 하고 싶은 일, 명품을 소비하면서 체험하고 싶은 것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과거 목적의식이란 측면에서 한국만큼 강한 나라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산업화 시대의 사업가들은 사업보국이나 인재제일 같은 명확한 목적의식을 갖고 의사결정을 했습니다. 실제 이나모리 가즈오의 책에도 뚜렷한 목적의식을 보여주는 사례로 한국을 자주 언급합니다.

 

경영 환경이 불확실해졌을 때 목적의식은 더욱 중요합니다. DBR은 우리의 삶을 지켜주는 등대와 같은 목적의식에 대한 고민을 새해 화두로 제시합니다. 개인적 차원에서도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가면 심지어 질병에 걸릴 확률도 낮아진다고 합니다. 오래 가는 조직을 만들고 싶다면 최고경영자는 조직과 조직원들의 목적에 대해 고민해봐야 합니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목적에 대한 지혜와 통찰을 토대로 올 한 해 불황을 이기는 강력한 조직문화를 구축하시기 바랍니다.

김남국 편집장·국제경영학 박사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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