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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165호 (2014년 1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1600년 당시 유럽에서 인도, 인도네시아로 항해하는 것은 매우 위험했다. 폭풍과 해적, 전투 등 변수가 너무 많았다. 출발에서 도착까지 최소 1년 이상이 걸렸다. 여기에 필요한 자금을 한 개인이 부담하기엔 너무 컸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현대적 의미에서 기업의 시초인 영국의 동인도회사다. 네덜란드는 따로 세계 최초로 상장회사인 동인도회사를 세웠다. 기업은 성장하면서 인간에게 필요한 재화와 용역을 제공했다. 기업은 노사 갈등, 투기 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몸집을 더 키우며 성장했다. 또 다른 기업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며 대기업으로 발돋움했다. 그렇다면 기업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기업은 누군가를 살리고 생명체에게 자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존재한다. 기업의 역사에는 숱한 시행착오가 있었고 앞으로도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기업은 인류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며 꼭 필요한 존재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건강한 기업의 철학을 가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반기업정서가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아니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업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이 없는 사회와 국가가 존재할 수 있을까? 만약 한국에서 삼성과 LG, 현대자동차가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게 우리가 원하는 사회일까? 아마 일부 대기업이 사라지면 한국은 아프리카의 후진국과 비슷한 수준의 나라가 될 수도 있다. 우리의 자식들이 직업을 찾아 세계를 떠도는 방랑자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만큼 기업은 삶에 필수적이다. 오늘 소개할 <기업의 시대>는 기업의 탄생과 발전에 관한 책이다. 중국 국영방송 CCTV가 유럽과 아시아, 아메리카 등 3개 대륙을 돌며 취재하고 탐구한 다큐멘터리를 정리한 책이다.

 

인류의 운명을 바꾼 것은 종교도, 정치도, 과학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기업이다. 2009년 현재 기업은 전 세계 인구의 81%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주식회사는 자원을 한곳에 모으고 리스크를 분산시켜 개인이 할 수 없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한다. 193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미국의 철학자 니콜라스 버틀러는기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말했다. 기업이 없었다면 증기기관은 그저 하나의 기계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기업은 인류의 삶을 바꿔놓은 조직이자 제도이며 하나의 문화다. 기업은 돈을 어떻게 벌고 쓰는지를 알려주며 무엇을 먹고 입으며 어떤 집에 살 것인지를 인도한다. 심지어 가장 사적인 부분인 연애와 결혼마저도 점차 기업의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기업에 대해 잘 모른다.

 

기업의 등장

기업이 등장하기 전에도 인간은 끊임없이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받았다. 거래를 했다. 거래는 인간의 본성 중 하나다. 그렇다면 어떤 필요에 따라 기업이 탄생했을까? 개인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기 위해 기업이 만들어졌다. 자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생겨났다.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리스크를 분산시키기 위해 기업이 필요했다.

 

1599년 런던시장에서 후추 가격이 파운드당 3실링에서 8실링으로 급등했다. 향료무역을 독점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때문이다. 동양으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발견한 뒤 각국은 시장에 뛰어들었고 영국도 경쟁 대열에 합류한다. 당시 유럽에서 인도나 인도네시아로 가는 것은 지금으로 말하면 화성에 가는 것만큼이나 위험 부담이 컸다. 폭풍과 해적, 다른 나라 선박과의 전투 등 변수가 너무 많았다. 별다른 사고가 없어도 출발에서 도착까지 최소 1년이 넘게 걸렸다. 개인이 부담하기엔 너무 큰 모험이다. 후추 가격 급등으로 비상이 걸린 상인들은 정부를 상대로 회사 설립을 위한 특별허가와 동방무역 독점권을 요구하며 데모를 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동인도회사다. 이것이 현대적 의미에서 기업의 시초다. 1600 1231일의 일이다. 첫 항해에 무려 72000파운드의 돈이 모였다. 오늘날 3500만 달러에 해당하는 거금이다. 이들은 영국 왕실로부터 15년간 동인도에서 무역할 수 있는 특혜를 받았다. 공동출자방식 형태였는데 유한책임제를 처음으로 실시했다. 투자한 만큼만 책임을 지는 방식이다. 영국의 동인도회사 출범에 위협을 받은 네덜란드는 따로 동인도회사를 만들었다. 형태는 약간 다르다. 작은 회사 6개가 모여 국가의 지원을 받는 형태다. 이들은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주식을 발행했는데 사실상 세계 최초의 상장회사인 셈이다. 암스테르담에서만 1143명이 주식을 구입했다. 투자금액이 많을 때는 영국의 10배에 해당할 만큼 컸다. 그렇게 생겨난 증권거래소와 은행을 통해 돈을 모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네덜란드는 막대한 부를 얻었다.

 

 

당시 기업은 정부의 모습에 가까웠다. 기업의 해외 확장을 위해 영국과 네덜란드는 교전권과 협상권, 사법권, 행정권 등 여러 국가권력을 자진해서 기업에 줬다. 동인도회사는 한때 30만 명이 넘는 병력을 보유했다. 영국 정규군의 두 배에 해당한다. 기업은 국가권력을 바탕으로 식민지에서 전쟁을 일으킨다. 현지 자원을 약탈하고 점유한다. 이들 기업은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중간 지대에 있었다. 이들은 이후 정부의 부담이 된다. 적자를 보면 국가가 나서서 보전을 해야 했다. 1773년 영국의회는 적자투성이의 동인도회사를 살리기 위해 차 조례를 통과시키고 차 무역의 독점권을 동인도회사에 줬다. 이것이 미국 독립전쟁으로 이어졌다. 한 기업에게 줬던 특권 때문에 역사가 바뀐 것이다.

 

기업은 산업혁명과 맞물려 급속하게 발전했다. 기업이 기술을 이용해서 폭발적으로 생산성을 높인 것이다. 많은 재벌들이 생겨났다. 미국의 철도왕 코넬리어스 밴더빌트가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는 뉴욕 일대를 오가는 운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영업정지 명령을 받는다. 정부가 독점운영권을 오로지 리빙스턴 가족에게만 있다고 결정한 것이다. 당시 리빙스턴은 뉴욕 대법관으로 큰 권력을 가졌고 밴더빌트는 제대로 교육조차 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는 5년간 끈질긴 소송 끝에 운송업의 독점권은 누구에게도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미국 역사를 바꾼 소송 중 하나다. 1862년 에이브러햄 링컨은태평양철도법에 서명한다. 노예해방선언보다 두 달 앞서 일어난 일이다. 정부의 위탁을 받은 두 회사가 최초로 북미횡단철도를 건설하면서 이를 통해 막강한 부를 축적했다. 그중 한 사람이 밴더빌트다. 밴더빌트는 여러 개의 단거리 철도를 사들여 하나로 연결한다. 철도망이 구축되자 운송비를 낮춰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고객을 유치한다. 어느 곳이든 철도가 부설되면 발전하기 마련이다. 전국 규모의 철도가 만들어지면서 미국은 비로소 통일된 시장경제가 탄생했다. 앤드루 카네기는 철강산업으로, 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석유로 돈을 번다.

 

기업의 이면

하지만 산업혁명은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했다.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영국의 작가 찰스 디킨스가 쓴 소설 <어려운 시절>은 그런 사회상을 그린 작품이다. 먼저 산업혁명을 경험한 유럽이 산업화에 따른 병폐를 인식하고 회복해가던 시점에서 미국 기업은 거대한 괴물로 변해간다. 미국 인구의 12%가 전체 부의 90%를 가졌다. 산업재해도 많았다. 1888년에서 1908년까지 사망한 노동자가 70만 명을 넘었다. 매일 100명씩 죽은 셈이다. 정점은 1911 325일 뉴욕 트라이앵글 셔트웨이스트 공장에서 일어난 대규모 화제다. 이 화제로 무려 146명이 죽었다. 이후 수만 명의 노동자가 침묵시위를 벌였다. 이날 화제를 기점으로 노동자 보호법이 만들어진다.

 

 

 

중국말로 기업은 생의(生意). 살리는 것에 기여한다는 뜻이다.

 

기업의 발전은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하지만 이면에는 늘 부작용이 있다. 주식시장의 과열도 그중 하나다. 지금처럼 당시도 주식 때문에 수많은 영국인들이 파산했다. 우리가 잘 아는 영국의 과학자 아이작 뉴턴이 대표적인 인사다. 그는 왕립 조폐국장을 맡기도 했는데 잘못된 주식투자로 무려 2만 파운드라는 거액을 날렸다. 그의 10년치 월급과 맞먹는 액수다. 그는 돈을 잃고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는 예측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 프랑스에서 활동한 영국의 재정가 존 로(John Law)의 미시시피회사도 붕괴해 프랑스 투자자들은 5억 리브르(당시 프랑스의 연간 국가예산보다 많은 금액)를 잃기도 했다. 1927년 미국의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가 단독으로 대서양 횡단에 성공하자 사람들은 항공산업의 무한한 가능성에 주목한다. 하지만 당시 항공회사들은 대부분 항로를 하나도 개통하지 못했다. 그때 주식시장에서 시보드에어라인이라는 회사의 주가가 급등한다. 하지만 그 회사는 항공회사가 아닌 철도회사였다. 명칭 외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만큼 사람들은 주식에 열광했다. 그러다 대공황이 찾아왔다. 1929 1024일 뉴욕 증시가 폭락했다. 별 문제 아니라고 생각한 JP 모건의 아들 잭 모건은 주식시장에 2000만 달러의 유동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날 오후 주가는 크게 반등했지만 그때뿐이었다. 다음날 주식 개장과 동시에 주가는 다시 곤두박질쳤다. 한 달 사이 1800억 달러가 공중으로 사라졌다. 1930년까지 총 1352개의 은행이 파산하고 26355개의 기업이 도산했다. 1930 74, 원자재 가격은 1913년 수준으로 떨어졌고 노동력 과잉과 임금 하락으로 실업자는 400만 명에 달했다.

 

또 다른 부작용은 노조문제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1894 74일 시카고에서는 경축행사가 열리지 않았다. 철도 노동자 125000명이 파업을 벌이고 있었다. 기관총을 소지한 연방 군대가 파견됐다. 군대와 노동자의 충돌로 노동자 13명이 사망했다. 노스웨스턴 철도회사의 변호사 클라렌스 대로는 이 광경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곳은 파업 현장이 아니라 선혈이 낭자한 학살 현장이었다. 대로는 심각한 회의를 느꼈다. “자유와 평등은 종이 위에 쓴 원칙에 불과한 것인가? 기업이 무슨 특권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그는 체포된 노조위원장의 변호를 맡기로 결심하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철도회사 변호사를 그만둔다.

 

대기업의 부상

기업 역사에서 자동차 산업은 빼놓을 수 없는 분야다. 특히 자동차산업에서 헨리 포드의 발자취는 매우 뚜렷하다. 그가 자동차를 발명한 것은 아니지만 최초로 대량 생산에 성공했다. 그 유명한모델 T’. 그는 두 가지 혁신을 만들었다. 하나는 대량 생산을 위한 컨베이어시스템의 발명이고 또 하나는 파격적인 임금인상이다. 당시는 워낙 임금이 싸서 노동자의 이직률이 높았다. 이것은 비용 증가로 이어졌다. 포드는 이것에 주목했다. 1914 16일 미시간 주 하일랜드파크 공장에 새벽 3시부터 일자리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7시 반이 되자 1만 명을 넘었다. 하루 전날 포드자동차는 근로자의 노동시간을 8시간으로 줄이고 매일 5달러의 임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기존 임금 2.34달러의 두 배가 넘는 액수다. 이를 위해서는 매년 1000만 달러를 추가로 지급해야 하는데 포드의 이익은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포드는 임금을 파격적으로 올리면 분명 생산성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 연말 포드의 수익은 3000만 달러로 급증했다. 하지만 성공은 자만을 낳는다. 포드도 마찬가지다. 헨리 포드는 기업과 자신을 동일시했다. 대통령 못지 않은 권세를 누렸다. 18년 동안 오직모델 T’만 생산했고 영원할 것으로 착각했다. 그는 고집불통이었다. 아들 에셀이 신차 개발을 제안했지만 헨리 포드는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한 차례 심하게 싸운 후 마지 못해서 허락했다. 그래서모델 A’를 출시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2차 세계대전 전 시장점유율이 68%에서 20%로 하락했다. 에셀은 예술적 감각을 갖고 있어서 디자인을 중시했지만 아버지 때문에 사장직으로 있던 24년 동안 한 번도 실권을 쥐지 못했고 1943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헨리 포드는 1945년 죽음의 문턱에서 마지 못해 포드자동차를 손자인 헨리 포드 2세에게 넘겨준다.

 

자동차왕 헨리 포드는 당시 별볼일 없던 GM에 역전을 당한다. GM의 핵심 인물은 전문경영인 알프레드 슬론으로 오늘날의 GM을 만든 사람이다. 그의 목표는 소득 수준에 맞는 차를 생산하는 것이다. 다양한 사업부를 만들고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했다. 1921년 미국의 경제지 <포천>은 이런 기사를 실었다. “많은 척추동물들이 몸집은 크지만 두뇌의 진화수준이 여기에 미치지 못해 멸종됐다. GM이 그런 운명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슬론이 규모에 맞는 복합적인 두뇌를 창조한 덕분이다.” 독창적인 제도를 통해 GM은 붕괴직전에서 단기간에 세계 최대의 자동차회사로 도약한다. 평범한 서민에게 쉐보레, 부자에게는 캐딜락, 비교적 풍족하지만 신중한 성향의 사람에게 올즈모빌, 상류층 도약을 꿈꾸는 이에게 뷰익,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에게 폰티악을 선보였다. 슬론은 이렇게 말했다. “독재자가 다스리는 기업은 성공적인 조직으로 발전할 수 없다. 독재자가 모든 해답을 안다면 독재가 가장 효율적인 경영방식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독재자는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그를 진정한 의미에서 최초의 전문 경영인이라고 칭송했다. 그는 40년간 근무했다. 전문 경영인의 등장으로 소유권과 경영권이 분리됐다. 1956년 슬론이 명예롭게 은퇴하고 신임 사장을 선출했다. 슬론은신임 사장이 내가 원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반대할 수는 없다. 전임자가 후임자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서는 2등 복제품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영국은 사정이 달랐다. 유니레버 같은 대기업이 탄생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전문 경영인 제도를 도입하려는 기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이 영향력을 상실한 원인 중 하나는 전문 인재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창업자일수록 회사에 대한 열정은 신앙에 가깝다. 하지만 그럴수록 기업은 대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권력을 손에 꽉 쥐고 아무에게도 양보하지 않았다. 후계자가 반드시 똑똑하리란 보장도 없다. 가족경영을 유지하던 독일의 지멘스도 1차 세계대전 이후 극심한 적자에 시달린 후 소유권과 경영권을 분리했다. 일본은 다른 기업역사를 갖고 있다. 경영의 신으로 일컬어지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16살 때부터 오사카전등주식회사에서 도제 방식으로 일하며 경영을 배웠다. 당시 오사카의 센바지역 상인들은 장사와 관련해서삼방득리(三方得利)’라는 생각을 했다. 바로 장사를 하면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사회 모두 이익이라는 말이다. 일본 기업인들은 기업이 사회에 이익이 된다는 철학을 가졌다.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치는 이런 철학을 굳힌 사람이다. 그는 <논어와 주판>이라는 책을 썼다. 좋은 상인이 되기 위해서는 철학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 손에는 논어를 다른 손에는 주판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는 사업은 개인이 아닌 사회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피터 드러커도 시부사와 에이치를 통해 기업이 단순히 개인의 이익이 아닌 사회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고백했다. 교세라의 창업주 이나모리 가즈오의 사상은경천애인(敬天愛人)’이다. 그는 좋은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문화는 조직이 실천하는 신앙이자 가치관이고 문화야말로 기업의 매우 강력한 힘이라고 생각했다.

 

기업은 생의(生意)

기업이란 무엇일까? 기업은 누구를 위해 존재할까? 인간은 기업이 없이 살 수 없다. 기업 덕분에 우리는 싼 가격에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중국말로 기업은 생의(生意). 살리는 것에 기여한다는 뜻이다. 스웨덴에서 비즈니스를 뜻하는 말은 ‘nourishment for life’. 생명체에게 자양분을 공급한다는 뜻이다. 기업의 역사에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기업의 철학이다. 이를 잘 실천한 회사가 세계적인 제약회사 머크사의 조지 윌리엄 머크다. 그는의약품은 환자를 위한 것이지 이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이것만 제대로 기억한다면 이윤은 저절로 따라온다. 이것을 잘 기억할수록 이윤은 더 커진다고 말했다. 이 책을 통해 기업은 어떤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 kthan@assist.ac.kr

필자는 서울대 섬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크론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핀란드 헬싱키경제경영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받았다. 대우자동차 이사, IBS컨설팅그룹 상무, 한국리더십센터 소장 등을 지냈고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겸임 교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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