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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DNA와 글로벌 전략

평창 올림픽 마스코트의 스카프 왜 동성애 인권운동으로 비쳐졌나?

조승연 | 149호 (2014년 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인문학

 

삼성 갤럭시 기어 광고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혹평을 받았다. 서구에서는 최첨단 전자제품을 손목에 찬 사람에 대해 별로멋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오래된 역사와 언어습관, 그에 따른 문화 DNA를 이해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국내 톱 기업, 글로벌 기업들도 종종 실수를 할 만큼 서구 언어와 그 언어가 형성된 문화적 조건들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제대로 이해하고 접근한다면 분명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각국, 각 문화권 소비자들에게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문화 DNA에 대한 이해는 현재 서구 여러 국가들은 물론 동남아 시장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는 기업인들에게 필수적인 요소다

 

 

편집자주

인종, 문화, 종교, 정서, 안목 등이 각양각색인 글로벌 시장에서 현지 소비자의 호감을 얻고 수익을 만들려면 인문학적 식견이 필요합니다. 현지의 문화를 이해한 상태에서 만들어내는 디자인, 상품명, 슬로건, 광고 등이 좋은 제품 생산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고객에게는 최고로 아름다운 디자인의 제품이 다른 나라 고객에게는 혐오감을 주거나 엉뚱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영미 지역과 유럽·동남아 문화에 정통한 언어 전문가이자문화 전략가인 조승연 작가가문화 DNA와 글로벌 전략을 연재합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폐막식 때 일이다. 피날레에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하는 행사가 우리나라 주관으로 열렸다. 러시아 소치의 피시트 올림픽 스타디움에 소프라노 조수미 씨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무지개 색 스카프를 감은 평창 올림픽 마스코트가 등장했다. 그때 필자의 미국인 친구가 전화를 했다. 그 친구는 한국이 러시아 같은 동성 연애 탄압 국가에서 동성애자 심벌을 마스코트로 들고 나왔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평창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한다고 했다. 필자는 그의 칭찬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없는 묘한 기분에 빠졌다.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은 동성애를 불법화한 러시아 정부의 인권 문제를 들어 서방 지도자들의 불참 등으로 반쪽 올림픽의 불명예를 안는 등의 어려움을 겪었다. 자칫하면 우리의 마스코트가 목에 두른 스카프가 남의 잔치에 재 뿌리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었다.

 

평창 올림픽 마스코트가 목에 감았던 무지개 색 스카프는 1970년대부터 시작된 동성애자 인권 운동인게이프라이드심벌과 같은 색상과 패턴이다. 지금 대부분의 서양 선진국들은 동성애자의 인권을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기본권으로 당연시한다. 1970년대부터 동성애자의 인권 회복을 위해 싸운 사람들의 얘기가 교과서에 실려 있을 정도다. 서양 선진국의 대도시들은게이프라이드 데이를 정해 놓고 매년 도심 한복판에서 대규모 축제를 벌이기도 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게이프라이드데이 행사 퍼레이드 반주를 군악대가 맡을 정도로 이 행사는 보편적이고 공식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 행사가 열리면 도시가 어느 나라에 속하건 어김없이 무지개 색 깃발들이 도시를 뒤덮는다. 또한 게이들을 위한 음식점, 바 등의 입구 앞에 무지개 색 스티커를 붙여 게이 고객을 환대한다. 이미 서양 문화 속에는 무지개 색 깃발 패턴이 게이의 심벌로 머리에 깊이 박혀 있는 셈이다. 그런 것에 익숙한 외국인들이 평창 올림픽 마스코트의 목에 걸린 무지개 색 스카프를 봤을 때 당연히 게이프라이드를 연상했을 것이며 러시아의 게이 반대 정책에 항의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화DNA가 소비행태를 좌우한다

핑크색 색안경을 낀 사람에게는 세상이 온통 핑크색으로 보인다. 문화는 소비자들의 눈에 걸린, 그러나 벗길 수 없는 색안경이다. 문화 색안경은 자라온 환경, 접해온 미술, 음악, 전통, 전설, 소설 등 읽은 책들, 학창 시절의 교과 과정 등을 총망라한 인문학적 기반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의 인문학적 배경 지식에 따라 같은 상품 디자인, 상품명, 광고 문구도 완전히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문화생활에서 얻은 지식 프레임 안에서 사물과 상황을 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화제를 모은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꽃보다 할배에서 스위스 마테르혼 산에 도착한 할배들은 산의 높이 등 제원(spec.)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산이 파라마운트 영화사 로고에 나온 산이라는 사실에 기뻐하며 아이들처럼 즐거워했다. 출연자들 모두 배우라는 점을 알면 그들이 왜 파라마운트 로고에 사용된 산의 실물을 그토록 반겼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기때문에 소비자들은 자신이 자라면서 듣고 보고 배우며 자란 것, 집에서 자주 들은 말, 학교 수업시간에 읽은 소설과 시, 라디오에서 들었던 음악과 TV 쇼 같은 것과 관련이 있는 상품을 만나면 자기도 모르게 호의가 생기고 구매 욕구가 발동하는 법이다. 소비 행태를 결정 짓는 이러한 문화들은 대체로 가풍을 따라 대대로 유전된다. 그래서 필자는 한 소비그룹의취향을 결정 짓는 소비자들의 문화 배경 지식과 안목을 그 소비 집단의문화 DNA’라고 부른다.

 

 

요즘을 디자인의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문화 DNA가 서로 다르면 미적 기준도 달라져 같은 디자인도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프랑스 사회학자 고()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구별짓기(La Distinction)>라는 저서에서 사람의 교육배경에 따라서 안목과 취향에 얼마나 큰 격차가 생기는지를 연구한 내용을 실었다. 그중 한 가지를 소개한다. 그는 실험 대상군을 인텔리, 전문직, 노동자 계층으로 나눠 각각 3곡의 클래식 음악을 들려줬다. 3곡은 바흐의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에서 발췌한 퓨가, 바그너의발키리의 행진’, 스트라우스의푸른 도나우 강이었다. 조사 결과 인텔리 계층은 바흐, 전문직은 바그너, 노동직 계층은 스트라우스의 음악을 가장아름답다라고 답했다. 브르디외 박사는 이 조사를 통해 사람들의 안목과 소비 취향이 그 사람의 문화 수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타깃 고객층을 세분화하는 데는 연령, 국적, 성별보다 문화 취향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로큰롤 팬들은 남녀 구분 없이 Converse 브랜드 신발을 선호한다. 그리고 로큰롤 팬들은 부모도 로큰롤 팬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경우 소비 취향의 세대 간 분류가 부정확해질 수 있다. , 그 사람의 음악적 취향이 성별이나 나이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문학 전공자와 공대 전공자가 구매하는 물건이 확연히 다른 것도 그런 예가 될 것이다.

 

사람의 DNA는 세포 속 게놈 지도 속에 들어 있다. 한 문화권의 게놈 코드는 그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대를 이어 사용해온 어휘 속에 들어 있다. 외국인의 취향을 제대로 파악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글로벌 비즈니스의 경우 외국어 어원 속에 숨어 있는 문화 DNA를 발견하는 안목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 갤럭시 기어 광고의 실패

그런 안목을 가지면 얼마 전 삼성 갤럭시 기어 광고가 미국에서 왜최악의 광고라는 혹평에 시달렸는지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 광고는 한 남자가 스키 리조트에서 리프트 옆 자리에 앉은 여성에게 갤럭시 기어를 보여준다. 여자는 갤럭시 기어를 보자마자 남자에게 반한다. 미국 누리꾼들은 이 광고를 보고삼성이 애플하고 경쟁하는 줄 알았더니 오케이 큐피드(미국 온라인 커플 사이트)와 경쟁하는 것이었어?’ 등 조롱의 리플을 수도 없이 달았다. 미국 잡지와 영국 신문에서도 이 광고에 대한 혹평이 잇따랐다.

 

서양 언어구조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런 실수는 면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갤럭시 기어의 경우 서양인들의 정서상 그것을 소지한 이성에게 한눈에 반할 만큼 멋지고 성적 매력을 발휘하는 제품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마케팅으로는 소비자들을 설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유는 서구인들의 사고 방식의 지도라고도 할 수 있는 언어 구조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인들은 멋진 상품을 보면 ‘classy!’라고 외친다. 이 단어는 멋지다, 고급스럽다, 소위있어 보인다’, 품격 있다, 섹시하다 등의 의미와 뉘앙스로 쓰인다. 이 단어의 어원은사회 계급을 의미하는 단어 class. Class부르다를 뜻하는 call과 같은 뿌리를 가졌다. 로마시대에는 장정들이 20년간 병역 의무를 졌는데 징집된 병사는 마을별로 병무 담당자들이 동네 앞에서 호명을 해서 데려간 데서 나왔다. 병무 담당자들은 징병자를 높은 계급에서 낮은 계급순으로 호명했고 로마 군인의 계급은 아버지의 재산 정도에 따라 정해졌기 때문에 class는 점차 군대에서의 계급과 사회 계층을 동시에 일컫는 말로 발전했다.

 

훗날 로마제국은 시민을 보유 자산 정도에 따라 5개의 법적인 등급, class로 나눴다. 하지만 대부분의 로마인들은 이 5개 등급에 낄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class를 부여받았다를 뜻하던 classicus부자로 의미가 확장됐다. 로마가 멸망하고 유럽은 여러 나라로 분할돼 통치됐지만 그 이후로도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부자들, ‘classicus’의 문화를 변함없이 동경해 왔다. 집을 짓건, 인테리어를 하건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부자 스타일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했다. 그리고 부자들은 이런 스타일을클래식하다며 아낌없는 투자로 재현해 왔다. 클래식한 스타일은 부와 권력, 높은 문화 수준과 안목의 상징이 돼서 오늘날까지 ‘classy’라는 칭찬의 뉘앙스로 남아 있다.

 

이 단어를 수천 년간 그런 뉘앙스로 오랫동안 사용해온 소비자들의 인문학적 배경을 알면 classic classy가 같은 어원에서 온 만큼 이들에게는 한눈에 반할 만한 섹시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예스러움과 뗄 수 없는 개념이라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삼성 광고에서 사용된 언어 회로는 첨단 기기인 갤럭시 기어를 미국 소비자로 하여금섹시할 만큼 고급스럽다라는 이미지와 결합시키도록 강요한다. 그러나 서양인들의 문화 DNA는 첨단 소재로 만든 첨단 기기와 외형적 매력을 연결하기 힘들다. 아이폰을 유리 등 고전적 소재로 만드는 것도 서구 소비자들의 취향을 반영한 것으로 봐야 한다. 또 서구의 보통 여성들에게 공대생이나 첨단 테크놀로지 물건을 너무 많이 가지고 다니는 남자는 인기가 없다. 심지어 고등학생들도 공대 지원생들은 사회성과 패션 센스가 부족해 연애 한 번 변변히 하기 어렵다는 편견의 대상인 경우가 많다. 이런 문화 DNA를 가진 대다수의 사람들로 구성된 미국에서 갤럭시 기어를 보고 예쁜 여자가 한눈에 반한다는 콘셉트의 광고는 현지 소비자들에게 커다란 인지부조화를 일으켜 혹평을 받았던 셈이다.

 

소비자의 문화 DNA를 간과한 광고는 소비자들의 격렬한 거부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초식동물의 DNA는 고기를 먹지 못하는 것으로 인지돼 있어 배가 고파 굶어 죽어도 고기 음식을 외면하는 것과 같다.

 

 

언어와 문화 DNA

이런 점을 잘 아는 서구의 기업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사 제품을 타깃 고객에게 알릴까? 참고가 될 만한 내용 하나를 소개한다. 프랑스 르노 사가 대주주인 일본 자동차 회사 닛산은 CUV 라인인쥬크에 아날로그 시계를 탑재했다. ‘쥬크의 한국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한 한국인 고객이다 좋은데 웬 최신 자동차에 아날로그예요?’라는 코멘트를 달았다. 그에 대한 딜러의 답변은미국 소비자들의 취향을 고려한 것입니다였다. 정확한 답변이다. 닛산자동차 디자이너들은 이미 미국 소비자들의 문화 DNA 안에 ‘classy’ ‘classic’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돼 있는지 여러 시장 진출 경험을 통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classic classy의 관계는 class, 즉 사회 계급에 민감한 고급 소비자 계층일수록 두드러지기 때문에 서구 디자이너들은 비싼 상품일수록 예스럽게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라이카 카메라, 베스파 스쿠터, 스위스 고급 시계 등의 제품을 알리는 방법을 관찰해 보면 서구의 고급 소비층에게 classic에 대한 갈망은 거의 본능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Classy 외에도 서양 언어에서의고급스럽다의 뉘앙스를 가진 단어들은 반드시남과 다르다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Exclusive의 어원적 의미는벽을 둘러 쳐 밖에 가두다. 즉 남들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 남이 가지지 못하고 나만 가질 수 있는 것이 고급스럽다는 뜻이다. 미국에서는 흔히 고객에게취향이 고급입니다는 표현을 하려면 ‘discriminati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직역하면차별할 줄 안다이다. 다시 말하면 남들 다 쓰는 보편적인 물건을 쓰지 않는 것을 고급 취향으로 여긴다는 얘기다. 특권을 뜻하는 Privilege뜯어내다를 뜻하는 Pry, 또는 단체와 구분된 개인을 뜻하는 Private과 같은 어원이다. 은행도 고급 고객은 일반인과 분리된 Private Banking으로 불러 모은다. 당연히 일반 대중과 차별화된 사람들만을 위한 금융 상품을 취급한다.

 

반대 의미를 가진 단어에서도 서양인들의 문화 DNA는 쉽게 발견된다. Vulgar널리 퍼졌다로 쓰이지만천박하다로도 쓰인다. Mean은 원래수학적 평균이라는 뜻으로 쓰였는데잔인하다, 도리 없다로도 쓰인다. Common보통’ ‘평범한’ ‘흔한이지만지루하다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만큼 우리는 튀지 않는 것을 좋게 여기지만 서양인들은 튀지 않는 것을 천하게 여기는 문화 DNA를 가지고 있어서 우리말로 직역하면 욕으로 들릴 만한 extraordinary(규정에 안 맞는다), remarkable(찍힐 만큼 별나다) 등이 서양에서는 최고의 찬사인 것이다.

 

서구화된 젊은 소비자들은 판매자가 ‘요즘 이런 거 많이들 해요라는 말로 구매를 권하면 짜증을 낸다. 이들은 이미 흔한 것을 천한 것으로 여기는 서구 사고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와 전혀 다른 서구인들의 사고방식은 미국 텔레비전 드라마나 할리우드 영화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 한국 젊은이들의 소비 패턴마저 바꾸고 Point of Sales 행동 형태까지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서구화된 젊은 소비자들은 판매자가요즘 이런 거 많이들 해요라는 말로 구매를 권하면 짜증을 낸다. 이들은 이미 흔한 것을 천한 것으로 여기는 서구 사고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게다가 문화 DNA는 인류 역사가 존재하는 동안 기술과 문화를 발명하고 퍼뜨리는 입장에 있는 강대국에서 배우는 입장에 놓인 개발도상국으로 무의식중에 전파돼 왔으니 우리의 소비자 취향도 서양 문화 쪽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와 전혀 다른 서구인들의 사고방식은 수천 년 동안 일반 대중과 자기 자신을 구분 짓는 언어 속에 남아 있으며 지금도 그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고방식은 서구인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문화 DNA라고 할 수 있다.

 

 

 

역사와 문화 DNA

인체에도 수십만 년 전 인류 초기에는 필수 기관이었지만 문명 발전으로 지금은 쓸모가 거의 없는 맹장 같은 기관이 여전히 남아 있듯 언어 속에 남아 있는 문화도 그 뿌리가 무척 깊다.

 

영국 BBC방송에서는 오랫동안 새내기 창업자들이 파워 있는 CEO 앞에서 사업 설명을 하고 CEO들의 선택을 받아 투자와 경영 지도를 받는 오디션 쇼가 큰 인기를 누렸다. 한번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창업 청년들이 지구 온난화 때문에 원래 프랑스 중부 지역에서 생산되던 샴페인이 영국 남부 지역에서도 생산이 가능해졌으니 프랑스제 샴페인에 맞먹는 고급 영국 거품 와인 브랜드를 탄생시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들고 나와 발탁됐다. 그러나 이들에게 가장 어려운 과제는 소비자들의 기억에 남길 만한 상품명 찾기였다. 사실 샴페인은 라틴어 캄파냐의 발음이 부드러워진 것으로 의미는농사가 잘되는 밭에 불과하다. 샴페인의 어원적 의미는 그냥밭술인데도 전 세계의 소비자들이 그 이름을 고급스럽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단순히 프랑스어여서다. 그런데 이 청년들이 영국의 거품 와인을 와인 시장 진입에 성공시키려면 프랑스 와인과 이름에서부터 차별화가 확 느껴져야 했다. 청년 창업가들은 브랜드 네이밍 과정에서 영국에서 고급스럽게 들리는 단어 중 프랑스어에서 오지 않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고민 끝에 이들은 영국 와인 이름을 우리나라 자동차 이름이기도 한그랜저로 골랐다. 그러나 이 단어 역시 영어로는위대하다지만 프랑스어로 그냥 옷이나 집의크기사이즈를 뜻한다.

 

영국 소비자들의 문화 DNA에 뿌리 박힌 프랑스어 사대주의의 역사는 우리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우리 문화에도 그 영향력이 크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1066년 프랑스의 지방 호족 중 한 명인 노르망디의 공작 윌리엄에게 침략을 당했다. 대부분의 사업가들은 이런 역사적 사실과 회사 상품 이름을 연관 짓기가 힘들 것이다. 이 시기의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역사 배경을 알아야만 프랑스어 브랜드가 가진 세계적인 파급력을 이해하고 해외 소비자들의 취향을 근원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때의 영국 역사 배경을 조금 더 소개하겠다. 프랑스의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은 영국을 정복하자 영국 호족들의 땅을 몰수해 프랑스에서 정복 전쟁에 따라와 공을 세운 기사들에게 나눠 주고 영국 왕이 됐다. 그 후로 영국은 두 개의 언어를 갖게 됐다. 프랑스에서 온 기사계급들이 쓰는 프랑스어와 토착 영국인들이 쓰는 영어가 그것이다. 왕을 비롯한 지배 계급의 언어가 불어다 보니 정부 공문, 법정 판결문, 학술 논문 등은 프랑스어가 됐다. 평민 계급은 조상 대대로 영국 민족이 써 온 고대 영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했다. 당시 프랑스에서 건너온 왕족과 귀족들은 영국의 평민들을 직접 통치하지 않고 오늘날 봉건주의라고 일컫는 피라미드식 조직을 통해 통치했다. 이들이 영어 쓰는 평민들을 직접 대면할 일이 거의 없으니 영어를 익힐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윌리엄 공 이후의 영국 왕 중에서 처음으로 영어를 익힌 왕은 1400년경에 등극한 헨리 5세다. 그가 영어를 배운 경위는 프랑스와 ‘100년 전쟁을 치르게 돼 자기 나라 병사들이 왕인 자신을 프랑스군으로 오인 사살할 것이 두려워서였다고 한다.

 

프랑스어가 왕실 용어로 군림한 300년 동안 영국의 고위층은 프랑스어를 잘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계층이 갈렸다.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영어를 쓸 때도 프랑스어 단어를 많이 사용했고 점차 그 단어들은 영어 어휘로 흡수됐다. 이렇게 프랑스어와 고대 영어가 뒤섞여서 중기영어라는 것이 탄생했는데 영국인의 문화 DNA 코드는 이를 이해해야만 풀어낼 수 있다. 옥스퍼드 어원대사전에 나와 있는 고급 어휘는 대부분 프랑스 어휘에서 건너온 것들이다.

 

이런 영국인들의 문화 DNA는 오늘날까지 유전되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영국의 싸구려 가게에서는 underwear를 팔지만 고급 가게에서는란제리를 판다. 싸구려 음식점에선 plate를 주문하지만 비싼 음식점에선앙뜨레디저트를 주문한다. 싼 빵을 만드는 사람은 베이커, 고급 빵을 만드는 사람은파티시에로 불린다. 일반 시계는워치라고 하지만 1억 원이 넘는 시계는크로노메터라고 불러야 잘 팔린다.

 

이랬던 영국 역시 19세기가 되자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 세계의 4분의 1을 지배한 대제국이 됐을 뿐만 아니라 영어를 쓰는 미국이라는 또 다른 초강대국 사람들에게까지 문화 DNA를 물려줬다. 미국은 한국 근대화 시대에 건너와 영어 교육과 선교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문화 DNA를 우리나라에도 전파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소비 취향 중 영국 문화 DNA에 뿌리를 박고 있는 것들이 의외로 많다. 다이아몬드 반지가 결혼을 상징한다거나, 결혼식에서 신부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는 것 등이 영국에서 발명하고 미국을 거쳐 우리에게 전해진 대표적인 문화들이다. 학벌로 사회 계급을 나누는 것, 프랑스 명품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도 영국에서 시작돼 미국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문화 유산이다. 사실 우리는한국 소비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한국의 역사와 고전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국내 소비자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특히 최근의 소비에 관해서는 서양 인문학의 영향을 받는 부분이 많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국 기업의 동남아 진출과 문화 DNA

요즘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이 앞다퉈 개척 중인 동남아 소비자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서양 인문학적 관점으로 물건을 구매한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1595년부터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VOC)가 진출해서 각 지역의 호족 왕들을 자사 직원처럼 부리더니 1800년부터는 아예 네덜란드 영토로 편입시켜 250년 가까이 식민지로 통치했다. 네덜란드 문화가 인도네시아인들의 고유 문화 DNA에 결합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은 100여 년 동안 프랑스 식민지여서 국민들은 싫건 좋건 프랑스의 철학, 이념, 라이프스타일, 디자인, 도시 계획까지 문화 DNA에 각인됐다. 필리핀에는 1521, 스페인이 들어왔는데 1898년 미국 식민지로 바뀔 때까지 스페인 왕실의 지배를 받아 스페인어, 문화, 종교, 건축 디자인 등을 자국 문화와 합쳤다. 중국에서 가장 매력적인 상업 지역으로 떠오른 상하이는 영국, 프랑스, 미국의 공동 출자로 만들어진 상업도시고, 칭다오는 오랫동안 독일의 지배를 받았다. 홍콩은 100년간 영국령이었다. 이처럼 중국도 지역별로 나뉘어 약 300여 년간 유럽, 미국에 예속되거나 저항하면서 고유의 언어, 사고방식 등이 서양 것과 뒤섞여 소비자들의 문화 DNA에 유럽 인문학이 서양 대중문화와 함께 고유 문화에 얽혀 들었다. 아시아 시장도 서양 문화 유입과 결합 경로, 과정을 제대로 알아야 현지 소비자와 비즈니스 파트너들의 행동 패턴을 제대로 예측하고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서양 인문학의 배경 지식과 문화 DNA를 이해하는 것이 글로벌 시장 경쟁 시대의 거의 모든 비즈니스 리더들의 필수 덕목이 됐다고 말할 수 있다.

 

필자는 앞으로 서양 인문학이 퍼트린 전 세계의 세대별, 국가별, 문화권별 문화 DNA를 비교·분석하고 이들 문화의 유입과 혼합 경로를 밝혀보고자 한다. 국내 사업가들의 글로벌 시장 이해를 통한 해외 시장 진출에 도움이 되는 논의를 위해서다. 또한 서양 문화를 이전 세대에 비해 훨씬 많이 받아들인 우리나라의 미래 고객 유치에도 도움이 되도록 쓸 생각이다. 비즈니스 리더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린다.

 

 

조승연 문화전략가 scho@gurupartners.kr

고교 시절 미국전국라틴어경시대회에서 우수상(Magna Cum Laude)을 받았으며 미국 고등학생 문예지에 시와 단편소설이 실리기도 했다.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NYU Stern School)을 졸업한 뒤 프랑스 최고 미술사 학교인 에콜 드 루브르에서 2년간 수학했다. 영국계 컨설팅회사 UnfroZenMind에서 외부 상임이사를 지냈으며 한국무역협회 등 국제 마케팅 리서치에 참여했다. 현재 오리진보카 대표로 <피리부는 마케터> <이야기 인문학>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 조승연 | -(현)오리진보카 대표
    -(현)문화전략가
    -UnfroZenMind 외부 상임이사
    -국제 마케팅 리서치 참여
    -<피리부는 마케터>, <이야기 인문학>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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