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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관점에서 본 신뢰

욕심을 벗어나 변하지 않는 마음 信이 곧 창의력의 원천이다

이기동 | 149호 (2014년 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의 정의

: 사람의 말. 말은 곧 마음의 표현으로 신()본래의 마음이자한마음이며인의예지(仁義禮智)’라고 할 수 있음

()의 중요성

: 한마음을 가진 사람은 손해를 보더라도 마음을 바꾸지 않고 남과 경쟁하지 않음

: 모두가 하나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살면 서로 사랑하는군자의 삶을 살지만 만물일체의 진리를 잊어버린 사람은 욕심에 사로잡혀 서로 경쟁하는소인의 삶을 살게 됨

: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잠들기 직전에 가장 왕성해 지는 이유는 잠을 잘 때가 욕심이 가장 적은 때이기 때문. 결국 한마음, ()이야 말로 창의력의 원천임

 

 

 

 ()은 사람()과 말()을 합한 글자다. 글자 그대로 사람의 말을 뜻한다. 말은 곧 마음의 표현이다. 마음 중에는 본래의 마음도 있고 욕심도 있다. 본래의 마음은 본심, 양심, 진심, 충심, 성심, 공심(公心), 인의예지 등으로 불린다. 본래의 마음은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가지고 있는 마음이므로 한마음, 천심(天心) 등으로도 불린다. 욕심은 탐욕, 욕정, 탐심, 사심(私心), 사심(邪心)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본심은 변하지 않는 마음이지만 욕심은 이해득실에 따라 늘 변하는 마음이다.

 

 

()은 만물일체를 뜻하는한마음의 다른 말이다

말이 마음의 표현이라고 했을 때의 마음은 욕심이 아닌 본심을 뜻한다. 본심에서 나오는 말은 변하지 않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므로 언제나 믿음직스럽다. 본심에서 나오는 말은 한마음에서 나오는 말이므로 하나임을 확인하는 듬직한 말이다. 어느 드라마에서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을 했다. “제가 아버지에게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러고는 아버지를 향해아버지!” 하고 불렀다. 그러자 그 아버지도 말을 했다. “아들아. 내가아들아하고 부르는 것은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아들을 향해아들아!” 하고 불렀다. 사람의 말이란 그런 것이다. 한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말이다. 그래서 가장 미더운 것이 사람의 말. ()이다.

 

본래의 마음은 한마음이지만 맹자는 특히 이를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네 글자로 설명했다. 네 글자로 설명했다고 해서 마음이 넷인 것은 아니다. 한마음은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마음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부모는 자녀를 남으로 여기지 않는다. 자녀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부모의 마음이 인()이다. 그러나 때로는 자녀가 잘못을 저지를 때 회초리로 때리기도 한다. 그때 부모의 마음이 의(). 맹자는 의를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라 했다. 자녀를 때리는 부모의 마음은 잘못을 저지르는 자녀의 행동이 밉고 부끄럽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양보를 한다. 맛있는 음식도, 좋은 옷도 양보한다. 그 마음이 예(). 또 부모는 자녀를 보기만 해도 어떤 상태인지 안다. 자녀에게 좋은 일이 있는지, 어려운 일이 있는지, 배가 고픈지, 어디가 아픈지, 금방 안다. 그러한 마음을 지()라 한다.

 

이 네 가지로 설명된 마음은 하나의 마음일 뿐 넷인 것은 아니다. 하나의 마음뿐이지만 평소에는 따뜻하게 안아주다가도 잘못을 저지르면 회초리로 때리기도 하고 먹을 것이 있으면 양보하기도 한다. 또 자녀가 처한 상황을 보기만 해도 어떤 상황인지 바로 알아차린다. 이를 맹자는 인의예지의 네 가지로 설명했을 뿐이다. 부모와 자녀는 하나이기 때문에 부모는 자녀를 믿고 자녀는 부모를 믿는다. 인의예지는 다 믿는 마음이므로 신()이다. 인이 신이고, 의가 신이며, 예가 신이고, 지 역시 신이다.

 

중국 한나라 때에는 음양오행설이 발달했는데 인의예지를 오행으로 배열하기 위해 신을 첨가해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으로 부르고, 이를 오상(五常)이라 했다. 오행은 오방(五方), 오장(五臟), 사계절 등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때 인의예지신으로 이름 붙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조선시대 때 동쪽의 대문을 흥인지문(興仁之門), 남쪽의 대문을 숭례문(崇禮門), 서쪽의 대문을 돈의문(敦義門), 북쪽의 대문을 홍지문(弘智門)이라 이름 붙이고 가운데에 보신각(普信閣)을 둔 것이 그 예다. 다만 풍수지리학으로 볼 때 동쪽에 있는 산인 낙산이 산세가 약해서 동쪽의 문을 강조해 한 글자를 덧붙여 네 자로 하고, 동쪽에 무묘(武廟)인 동묘를 세웠다. 동묘는 관우를 모신 사당이다.

 

  

모든 존재는 본디 하나다

모든 존재는 본래 하나로 연결돼 있다. 하나의 나무를 여러 토막으로 잘라 꺾꽂이라는 형태로 심어 여러 그루의 나무로 만든 경우를 생각해보자. 원래의 나무는 여러 그루의 나무로 바꼈다. 한 그루의 나무가 여러 그루의 나무이고, 여러 그루의 나무가 한 그루의 나무다. 이를 망각하지 않고 있다면 여러 그루의 나무 각각은 다음과 같이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다. 그러므로 서로 믿고 서로 사랑하는 것은 본질적이다. 모두가 하나이기 때문에 한두 그루의 나무가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다. 한 그루의 나무가 살아 있으면 다 살아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알고 그렇게 사는 것이 영생(永生)이다. 영생의 삶을 살면 죽음이 없다. 죽음이 없는 삶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다.’

 

그런데 모두 하나라는 사실을 망각해버리면 정반대의 삶이 되고 만다. 우리 모두는 각각 남남이 된다. 남남이기 때문에 남이 먹어버리면 나는 굶어야 한다. 경쟁하고 싸우는 것이 삶의 본질이다. 남남끼리는 믿을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다. 모두 남남이 돼 각각의 삶을 살면 어쩔 수 없이 늙어야 하고 죽어야 한다. 늙어 죽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영생이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산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행하다.

 

사람의 삶도 그렇다. 사람도 원래 모두 하나다. 형제는 남남인 것 같지만 한 부모의 세포를 나눠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다. 사촌도 하나고 육촌도 하나다. 이렇게 확대해 가면 모든 사람이 하나다. 하나인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다.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하나다. 사람의 유전자와 아메바의 유전자가 97% 정도 같다고 한다.중국 송나라 때 발달한 성리학(性理學)에서는 모든 동식물이 하나일 뿐만 아니라 모든 물체가 하나라고 설명한다. 성리학에서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모든 사람은 본래 하나이기 때문에 한마음을 가졌다. 그 한마음이 본마음이고, 그 본마음이 인()이다. 한마음은 하나마음이고 하늘마음이며 천심이다. 하늘마음은 모든 존재에게 다 들어 있다. 하늘마음은 만물을 살리는 마음이므로 하늘마음을 받아서 생긴 모든 생물체는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 살고 싶은 마음을 성()이라고 한다. ()은 마음()과 삶()을 합한 글자이므로살고 싶은 마음이란 뜻이 된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모든 사람은 공통적으로 하늘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두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본마음은 성()이지만, 특히 사람에 국한해서 말할 때는 인()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모든 생물체의 본마음이 성()이기 때문에 인()이 성()이다. 인을 성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성을 인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성은 모든 생명체에 통용되는 용어고 인은 사람에게만 통용되는 용어기 때문에 사용범위가 다르다. 본래 하나인 관계는 모든 생물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물체와도 하나다. 모든 물체의 본질은 리()라는 말로 표현한다. 물리(物理)란 모든 물질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생물체에 포함되고 모든 생물체는 물질에 포함되므로 인()은 성()에 포함되는 개념이고 성()은 리()에 포함되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인()을 성()이라고 해도 되고, ()을 리()라고 해도 되며, ()을 리()라고 해도 된다. ()을 리()라고 한다는 뜻에서 성리학(性理學)이라는 명칭이 나왔다. 그러나 성()을 인()이라 하면 안 되고, ()를 인()이라 해도 안 되며, ()를 성()이라 해도 안 된다. 역시 사용범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생물체가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물질에 관성이 있는 것과도 같다. 물체의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관성이 살아 있는 존재의 살고 싶어 하는 마음과 통한다. 모든 생물체는 추우면 몸을 웅크리고 더우면 몸을 편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삶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이는 물체에도 적용된다. 모든 물체는 더우면 펴고 추우면 웅크린다.

 

사람은 원래 만물과 하나다. 독립된 개체가 아니다. 이를 만물일체라는 말로 표현한다. 사람 중에는 원래가 모두 하나라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이를 잊어버리고 각각 남남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도 있다. 모두 하나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사는 사람은 한마음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며 살지만 잊어버린 사람은 욕심을 가지고 각각 남남이돼 무한히 경쟁하며 산다. 전자가 군자이고 후자가 소인이다. 군자는 영생하고 소인은 사멸한다. 군자는 행복하고 소인은 불행하다. 군자는 진실하게 살고 소인은 거짓되게 산다.

 

 

개체로서 독립한 인간이 직면한 건 무한 경쟁뿐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대부분 소인의 모습으로 살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본주의 시대에 개인주의로 살고 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서구 근대정신에서 왔다. 그것은 서구의 르네상스 운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르네상스 운동은 신()으로부터의 해방운동이었다. 신은 사람과 사람을 하나로 이어주는 끈이었다.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형제이듯이 사람들은 하나의 신으로 연결돼 있었으므로 모두 형제였다. 형제 중에는 부모의 권위를 이용해 권력을 독점하는 사람도 있고 부모를 내세워 다른 형제들의 재산을 가로채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속아 넘어간 다른 형제들은 실상을 알지 못하고 부모 때문에 고통을 받게 됐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부모가 싫어지고 부모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진다.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난 것도 이와 같다. 중세 때의 성직자들 중에는 신의 권위를 이용해 권력을 독점하는 사람도 있었고 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들의 재산을 가로채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 속은 사람들은 실상을 알지 못하고 신 때문에 고통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을 싫어하게 됐고 신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신으로부터의 해방운동은 그래서 일어난 것이다.

 

신은 마음속에 있다. 신이 사람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은 마음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다. 대밭에서 자라고 있는 대들이 지하에서 하나의 뿌리로 연결돼 있는 것처럼 사람들도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로 연결돼 있다. 하나로 연결돼 있는 마음이 본마음이고 한마음이며 하늘마음이다. 신으로부터의 해방은 하늘마음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신으로부터의 해방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연결고리를 끊는 것이다. 연결고리가 끊어지면 사람은 모두 개체로서 독립하게 된다. 개인주의가 성립한 것은 이 때문이다.

 

사람이 개체로서 독립을 하면 몸이 중심이 된다. 개체로서 독립하는 것은 사람의 몸이기 때문이다. 몸을 본질적인 것으로 판단하면 마음은 몸속에 들어 있는 몸의 한 요소로 파악된다. 오늘날 물질주의가 발달한 까닭은 몸이 물질이기 때문이고 자본주의가 발달한 까닭은 몸이 살아가는 데 돈이 가장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개체로서 독립을 하면 사람은 모두 남남이 된다. 남남끼리 살아가는 기본 방식은 경쟁이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투쟁이 되고 전쟁이 된다. 르네상스 이후 개인주의가 발달하면서 나타난 가장 뚜렷한 현상은 경쟁이 치열해졌다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발전에 가속도가 붙는다. 근세에 들어와 가공할 살상무기가 개발되고 과학과 산업이 놀라운 속도로 발달한 까닭이 바로 이 때문이다. 서구인들은 발달된 무기와 과학의 힘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됐고 서구문화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다른 지역 사람들의 발전의 지름길은 서구문화를 좇아가는 것이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서구문화가 삶의 기준이 되고 있다. 서구식의 학교에서 서구인들이 만든 이론을 배운다. 서구인들이 만든 이론으로 교육을 하고 서구인들이 만든 이론으로 정치를 한다. 서구인들이 만든 이론으로 경영을 하고 서구인들이 만든 법으로 살아간다.

 

 

한마음을 챙기지 않으면 남는 건 욕심뿐이다

오늘날에는 신()이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고 하느님에 관한 것이 학문의 중심이 되지 못한다. 사람이 신으로부터 해방되면서 한마음을 챙기지 않게 됐다. 한마음을 챙기지 않으면 마음속에는 욕심만 남는다. 오늘날 사람들은 욕심을 마음의 전부로 안다. 욕심은 내 것을 챙기는 마음이고 남과 경쟁하는 마음이다. 현대인들에게는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 남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거짓말도 서슴지 않고 한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될수록, 사람들은 더욱 거짓말을 한다. 이제 사람의 말이 더 이상 믿음을 의미할 수 없게 됐다. 오늘날은 사람의 말을 의미하는 신()믿을 신이 아니고못 믿을 신이 됐다.사람이 사람의 말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말을 할 때는 확실한 증거를 대면서 해야 하고 글을 쓸 때도 증거를 달아()’ 처리를 해야 한다. 말로 하기보다는 문서로 작성해 서명을 하는 것이 좋다. 문서나 계약서도 가짜가 아닌지 정밀하게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신으로부터의 해방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연결고리를 끊는 것이다. 연결고리가 끊어지면 사람은 모두 개체로서 독립하게 된다.

남남끼리 살아가는 기본 방식은 경쟁이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사람들은 더욱 거짓말을 한다.

 

사람의 마음이 욕심이라면 욕심을 없애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욕심을 없애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없애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욕심은 없애는 것이 아니라 채우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욕심 채우는 것을 행복으로 안다. 욕심을 채우려면 다른 사람과 경쟁해야 한다. 경쟁은 투쟁과 전쟁으로 이어진다. 물질에 대한 욕심을 가장 빨리 채울 수 있는 것은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다. 근대 이래 유럽인들은 무기를 개발해 온 세상을 휘저어 놓았다. 남북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로 진출해 원주민을 죽이고 그 땅을 차지했다. 동남아시아를 지배했고 아프리카를 초토화시켰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유럽을 닮은 일본도 유럽인들처럼 이웃나라를 침략해 유물을 약탈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러시아, 일본 등의 박물관에는 남의 나라에서 약탈한 유물들이 그득하다. 지금 선진국으로 불리는 나라들이 다 그런 나라들이다.

 

유럽인들은 더 이상 차지할 식민지가 없어지자 자기들끼리 세계대전을 두 차례나 일으켰다. 전쟁의 피해는 막대했다. 패한 나라만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니라 승리한 나라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전쟁을 겪으면서 유럽인들은 깨달았다. 욕심을 채우되 싸우지 않고 채워야 한다는 것을 안 것이다. 물욕을 채우는 것을 직접 연구하는 것이 경영학이고 싸우지 않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법학이다. 오늘날 대학교에서 각광받는 전공과목은 거의 예외 없이 경영학과 법학이다. 몸을 강조하기 때문에 의학이 중시되는 것은 기본이다.

 

경영의 내용은 제한된 물질적 가치를 남보다 먼저 쟁취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어떻게 벌어들이느냐에 경영의 성패가 달려 있다. 말하자면 경영이란 무한경쟁을 통해 무한한 욕심을 채워가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법을 어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법질서만 지킨다면 어떤 짓을 해도 된다. 법을 지키는 경영자는 지지를 받지만 법을 어기는 경영자는 용서받지 못한다. 법을 지키는 경영자가 정직한 경영자이고 법을 어기는 경영자가 정직하지 않은 경영자다. 그래서 경영자들은 늘 법전문가들을 가까이한다.

 

유럽인들의 문화가 늘 앞서가기만 한다면 온 세상 사람들은 유럽 문화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불공평하다. 서구 근대문화는 출발점에서부터 잘못된 문화였다. 사람은 하늘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무의 잎이 뿌리로부터 독립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잘못된 서구의 문화가 계속 앞설 수는 없다. 다른 나라를 침략해 약탈을 일삼던 나라들이 계속 잘살 수는 없다. 서구적 경영방식이 계속 올바른 경영방식으로 군림할 수는 없다.

 

 물질지상주의인의 시대에서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마음의 시대가 온다

사람에게는 마음과 몸이 있다. 그것은 나무에 뿌리와 줄기, 잎이 있는 것과 같다. 마음이 뿌리에 해당된다면 몸은 줄기와 잎에 해당된다. 몸 챙기기에 주력하는 서구 근대의 방식은 과일나무의 잎과 줄기만을 열심히 가꾸는 것과 같다. 과수원을 다른 사람에게 세를 받고 빌려주면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그 과수원은 망가지고 만다. 세를 주고 빌린 사람은 뿌리를 가꾸지 않고 잎과 줄기만을 가꾼다. 과일을 빨리, 또 많이 생산하기 위해 농약을 듬뿍 뿌리고, 비료와 성장촉진제를 투여한다. 벌레 a가 침범해 오면 a가 무엇에 약한지를 연구해 a를 퇴치할 수 있는 농약 A를 만들어 대응한다. 그러고 나면 다시 벌레 b가 침범해 온다. b가 무엇에 약한지를 연구해 b를 퇴치할 수 있는 농약 B를 만들어 대응한다. 그러고 나면 또다시 벌레 c가 침범해오고 농약 C를 만든다. c를 퇴치하고 나면 다시 d가 침범해 오고 농약 D를 만들어 d를 또 퇴치한다. 오늘날의 경영도 이와 같다. 경영자는 늘 바쁘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 늘 새로운 전략을 짜는 일에 매진하다가 기진맥진한다.

 

과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 뿌리를 가꾸는 일을 등한시해 뿌리가 망가지고 나면 아무리 열심히 농약을 개발하더라도 과일나무는 망가지고 만다. 나무는 뿌리도 튼튼해야 하고 잎과 줄기도 건실해야 한다. 그러나 이 중에서 뿌리를 가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 뿌리를 가꾸는 일이 근본이고 가지와 잎을 가꾸는 일이 말단이다. <대학>이란 책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모든 것에는 뿌리와 지엽이 있고 일을 할 때는 처음에 할 것과 끝에 할 것이 있다. 먼저 할 것과 나중에 할 것을 알면 일이 제대로 된다.1

 

나무를 가꾸는 일에는 뿌리를 가꾸는 일이 근본이고 지엽을 가꾸는 일이 말단이다. 그러므로 처음에 뿌리를 가꾸고 다음으로 지엽을 가꾸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간혹 잎에 벌레가 많이 붙어 잎이 바로 죽게 됐을 때는 벌레를 먼저 잡은 뒤에 뿌리를 가꾸는 것이 좋다.

 

오늘날 사람들은 신으로부터 해방된 채로 살고 있다. 그것은 부모에게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가출 청소년과도 같다. 부모에게서 벗어나면 형제가 남남이 되듯이 오늘날 사람들은 모두 남남이 됐다. 본래의 마음을 잊어버리고 무한 경쟁에 돌입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본래의 마음을 회복하는 노력을 거의 하고 있지 않다. 오랫동안 마음을 가꾸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이 황폐해졌다. 양심이라든가, 한마음이라든가 하는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뿌리가 망가지면 나무 전체가 망가지듯이 마음이 황폐해지면 인간문화 전체가 망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에서 경영이 제대로 될 리 없고, 정치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마음이 황폐해진 사람은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경영을 할 수 없다. 자기만 이익을 취하면 된다.미국의 금융위기나 유럽의 경제위기가 마음의 황폐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음이 황폐해진 사람은 정치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정치 권력을 갖고 싶은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하다.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는 정부 부채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재임 중에 많은 빚을 내어 쓰고 임기가 끝나면 떠나면 된다. 속된 말로먹튀라는 용어가 있다. 먹고 튀는 것을 말한다. 정치가 흔들리고 경영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정책이 잘못돼서가 아니고 근본적으로 마음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일찍이 맹자가 말한 적이 있다. “마음에서 문제가 생겨, 정책이 잘못되고, 정책에서 문제가 생겨 일을 망친다.”2

 

서구문화는 이제 총체적으로 위기를 맞이하게 됐다. 사람들이 경쟁을 너무 하다가 마음이 얼어붙었다. 사람들이 남의 불행을 보면 행복을 느끼고 남의 행복을 보면 불행을 느낄 정도까지 됐다. 이렇게 되면 사람이 외로워진다.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봄을 그리워하듯 사람의 마음이 얼어붙으면 따뜻한 마음이 그리워진다. 따뜻한 마음은 한마음이다. 한마음을 가진 사람은 남을 자기처럼 대한다. 경쟁이 치열할 때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주목받지 못하지만 마음이 차가워진 겨울에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돋보인다. 한국 사람은 마음이 따뜻하고 정이 많다. 오늘날 한국 문화가 돋보이고 한류 붐이 일어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을의 기온과 봄의 기온은 반대 방향으로 간다. 가을에는 온도가 계속 내려가지만 봄에는 온도가 계속 올라간다. 역사도 그렇다. 역사도 순환을 한다. 지금까지가 마음이 차가워지는 가을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봄이 될 것이다. 역사의 가을에는 물질을 중시하고 물질적 가치를 주로 추구했다면 앞으로는 마음을 중시하고 정신적 가치를 주로 추구할 것이다. 역사의 봄이 오면 정치도 한마음 정치로 바뀔 것이고 경영도 한마음 경영으로 바뀔 것이다. 역사의 봄이 왔는데도 가을의 경영을 하고 가을의 정치를 고집하는 사람은 망할 것이다. 앞으로는 한마음을 빨리 회복하는 사람이 리더가 될 것이다.정직의 개념도 바뀔 것이다. 과거에는 법을 지키는 사람이 정직한 사람이었지만 앞으로는 양심을 지키는 사람이 정직한 사람이 될 것이다. 공자는 섭 나라의 임금과 정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섭공이 공자에게 말했다. “우리나라에 정직을 몸소 실천한 자가 있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양을 횡령했는데 아들이 증인으로 나섰습니다.” 이 말을 들은 공자가 말했다. “우리나라의 정직한 자는 이와 다릅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숨기고 자녀는 부모를 위해 숨깁니다. 정직은 거기에 있습니다.”3

 

부모의 죄를 폭로하는 자녀의 마음은 차갑다. 부모의 죄를 폭로하는 자녀의 마음에는 남을 용서하는 마음이 없다. 하늘은 남을 나처럼 사랑하라고 한다. 남을 나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부모의 죄를 숨기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양심의 소리이고 하늘의 명령이다. 양심에 충실한 사람이 정직한 사람이고 하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정직한 사람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다. 법만 지키는 사람은 법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법을 이용하는 사람에게서는 따뜻한 마음이 나오지 않는다.

 

 

창의력은 한마음에서 나온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하는 정치는 과거의 정치와 다르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하는 경영은 과거의 경영과 다르다. 한마음은 변하지 않는 마음이다. 한마음을 가진 사람은 손해를 보더라도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참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남과 경쟁하지 않는다. 여유롭고 느긋하다. 그러면서도 하는 일마다 성공을 한다. 한마음을 가진 사람은 창의력이 넘친다.앞으로의 경영에는 창의력이 중요하다. 창의력이 넘치는 한 사람이 백만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가 온다고도 한다. 그래서 오늘날 경영학에서도 창의력이 화두가 되고 있다.

 

창의력이란 한마음에서 나오는 능력이다. 한마음은 본래마음이고 하늘마음이다. 하늘의 마음은 만물을 살리는 마음이다. 그래서 하늘은 모든 존재들에게 살아가도록 일일이 명령을 하고 인도를 한다. 하늘의 명령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느낌으로 받아들인다. 배고픔의 느낌은 밥을 먹도록 유도하는 하늘의 명령으로 이해하면 된다. 피곤함의 느낌은 쉬도록 유도하는 하늘의 명령이고 졸리는 느낌은 자도록 유도하는 하늘의 명령이다. 그래야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담배 피우고 싶은 느낌을 담배를 피우도록 유도하는 하늘의 명령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그것은 중독에 의한 착각에 기인한다.

  

사람들이 도박에 빠져 있을 때는 밥을 먹을 때가 돼도 배가 고픈 줄을 모르고 잘 때가 돼도 졸리지 않는다. 그것은 하늘이 밥 먹도록 유도하거나 잠자도록 유도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하늘은 명령을 내리지만 돈을 따고 싶은 사람의 욕심이 그것을 차단한다. 욕심의 방해만 받지 않는다면 느낌은 늘 충만한 법이다. 내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거나 새로운 상품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 하늘은 나를 살리기 위해 느낌을 준다. 느낌이 충만한 사람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야 할 때 새로운 상품을 만들 수 있는 느낌이 떠오른다. 그런 느낌이 창의력이다. 어떤 회사에 어떤 사원이 창의력을 발휘해 새로운 상품을 개발했다면 그는 욕심이 적은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세종대왕 때 창의력이 가장 왕성했던 것은 사람들의 욕심이 가장 적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욕심은 늘 같지가 않다. 때와 장소에 따라서 달라진다. 남과 다툴 때 욕심은 많아지고 혼자 있을 때 적어진다. 잠을 잘 때가 욕심이 가장 적은 때이므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잠들기 직전에 가장 왕성하다. 화장실에서 무심히 앉아 있거나 버스를 타고 무심히 앉아 있을 때도 역시 창의적이 아이디어가 번뜩이기 쉽다.

 

욕심을 없애는 것은 사람의 노력으로 가능하다. 욕심을 없애기만 하면 창의력은 저절로 왕성해진다. 앞으로는 세종대왕 같은 사람이 정치를 하고 경영을 하면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는 욕심을 없애야 하는 숙제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그런 숙제를 해온 사람들이다. 동굴에 들어가 쑥과 마늘을 먹으며 햇빛을 보지 않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욕심을 없애고 본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욕심을 없애는 방법 중에도 믿음이 들어 있다.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속에 있는 진실한 마음과 미더운 마음에 주력해야 한다.”4 본래의 마음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있으며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자는 본래의 마음을 속에 있는 마음이란 뜻으로 충()이라 하고 변하지 않는 마음이란 뜻으로 신()이라 했다. 사람에게는 본마음과 욕심이 있기 때문에 진실하기도 하고 변덕스럽기도 하다. 본심에서 나온 것은 진실하고 미덥지만 욕심에서 나온 것은 거짓되고 변덕스럽다. 그러므로 사람이 억지로라도 진실하게 살고자 노력하고 미덥게 행동하고자 노력하면 마음속에서 욕심이 차츰 사라지고 본심이 충만해진다.

 

본마음을 회복한 사람은 모두와 하나가 된다. 그래서 자기 몸이 늙는 것은 모든 사람이 자라는 것이기 때문에 기쁘고 자기 몸이 죽는 것은 모두가 사는 방법이기 때문에 행복하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죽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것은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하나의 나뭇잎과 같다. 나뭇잎은 쉬지 않고 일을 하다가 가을이 돼 할일을 다하고 나면 곱게 물들었다가 행복하게 떨어진다.

 

자기가 행복한 사람만이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행복한 사람이 경영자가 되면 자기 회사의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고 행복한 사람이 정치를 하면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행복하지 않아도 될 사람은 없다. 욕심을 없애고 본심을 회복하는 것이 수양이고 수신이다. 수신하지 않아도 될 사람은 없다. <대학>이란 책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천자에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모두가 수신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5  앞으로는 개인적 수양이 일반화될 것이다. 한국인들은 개인수양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한국인들은 이제 열심히 노력해야 할 때가 됐다. 한국인들의 주도로 세계의 정치가 바뀌고 경영이 바뀌는 날이 올 것이다.

 

 

이기동 성균관대 대학원장(유학동양학부 교수) kdyi0208@naver.com

필자는 일본 쓰쿠바대에서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대만 국립정치대와 하버드대 옌칭연구소에서 수학했다. 20여 년에 걸친 작업 끝에 2007년 사서삼경을 최초로 완역하는 등 유학(儒學)의 세계적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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