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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를 위한 시(詩)적 상상력

詩의 8할은 상상, 창조경영의 교과서

황인원 | 148호 (2014년 3월 Issue 1)

 

 

 

편집자주

()는 기업 경영과 별로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는 뻔히 보여도 보지 못하는, 혹은 사람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을 알려주는 지혜와 통찰의 보고(寶庫)입니다. 현대 경영자에게 무한한 창조적 영감을 주는 시적 상상력의 원천을 소개합니다.

 

장면 1

모 유명 강사가 대학교 대강당에서 빽빽이 들어찬 관중을 상대로 강의를 하고 있다. 그의 강의 주제는창의력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강사는 창의력의 핵심 키워드는몰입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사물을 몰입해서 바라보면 나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찾을 수 있고 그것이 창의력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장면 2

한 화장품 회사. 사장은 어느 날부터 직원 모두에게 악기 한 가지씩 배우라며 특별 시간을 할애했다. 직원들은 기타부터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들고 연습을 하다가 오케스트라를 구성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사장이 이런 조치를 취한 이유는 직원 간의 화합도 화합이지만 꽉 막힌 직원들의 감성을 열기 위해서다.

 

장면 3

김 사장은 20여 명의 직원이 있는 IT 관련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최근 어느 미술평론가의 강연을 듣고 직원들과 함께 틈만 나면 인사동에 있는 갤러리에 들리곤 한다. 직원들의 감성이 좋아지고 새로운 분위기를 접하면서 직원들의 작업성과도 나아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최근 기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인문학과 예술 분야의 강의를 듣는 기업인이 많아지고 직원에게도 각종 인문학 관련 강연은 물론이고 악기나 그림 등을 직접 경험하게 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창조 경제 시대에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창조는 인문학과 예술이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아는 얘기이지만 창조는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창조를 할 수 있는 바탕이 있어야 한다. 그 바탕이 인문학과 예술이다. 그러니 기술만 최고로 여기고 앞뒤 보지 않고 외국의 것을 따라 하던 때에 비하면 우리 사회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인문학 아닌 인문학적 상상이 필요

 

그런데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다. 지금처럼 인문학과 예술 분야를 공부하고 체험해도 우리의 미래가 창조의 시대로 다가가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창조는 인문학과 예술적 지식만으로는 안 된다. 지식을 지혜로 바꾸는 통로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사람들 뇌에 창조나 창의적 발상이 들어서게 된다.

 

과거 우리가 인문학을 무시한 것은 지식만 공부했을 뿐 그 지식이 지혜로 넘어가는 통로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통로가 바로 인문학이나 예술을 공부하고 경험하는 목적이 돼야 한다.

 

그러나 모처럼 인문학 붐이 조성된 작금의 상황에서 인문학을 대하는 태도와 목적이 과거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지식 공부만 하고 있을 뿐 그 지식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가인문학 해 봐야 별거 없다는 인식이 다시금 재생될까 은근히 걱정이다.

 

이런 걱정을 덜기 위해서는 인문학을 공부하고 예술을 체험해야 하는 목적을 알아야 한다고 다시금 강조할 수밖에 없다. 그 목적은 당연히 지식을 지혜로 바꾸는 통로다. 그 통로는 무엇일까? 그 통로를 우리는 상상이라고 이름한다. 상상이 도대체 뭔가?

 

 

500년 전 황진이가 쓴 시조다. 이 시조를 보면 황진이는 밤을 떼었다 붙였다 한다. 또 밤을 이불 속에 넣어 보관했다가 꺼내기도 한다. 아무리 겨울밤이 길어도 밤을 베어낼 수는 없다. 하지만 시인은 무 허리를 베듯 밤이라는 시간을 툭 잘라낸다. 자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다시 사랑하는 님이 오는 봄날 밤에다 붙인다.

 

우리가 아는 원래의 시간 개념에 사물을 잘라내는 개념을 붙여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개념을 연결하고, 그로 인해 어떤 결과가 만들어질 수 있는지까지 보여준다. 이게 시적 상상이다.

 

겨울밤이 길고 봄밤이 짧다는 것은 지식이다. 그 지식을 다른 개념과 연결하고 융합하는 것이 상상이다. 그리고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낸다. 다른 개념을 연결, 융합하고 새로운 개념을 창출하는 것이 바로 지혜다. 그러니까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에 다른 것을 붙여 또 다른 하나를 창출할 수 있는 사람이다. 상상이 가능한 사람이다.

 

이렇게지식상상지혜의 과정을 거치면서 인문학 공부의 목적은 완성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맨 앞의 지식만 공부하면서 인문학 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상상 공부 없는 인문학 공부는 지혜로 나아갈 수 없다.

 

‘지식→상상→지혜’의 관계를 좀 더 보자. 지식은 채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혜는? 비우는 것이다. 그런데 비우는 것은 실행하기가 쉽지 않다. 생각해보라. 지식을 채우는 것은 가능하다. 공부를 하면 된다. 그저 외우기만 해도 지식은 채워진다.

 

반면 비우는 것은 어렵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어떻게 버린단 말인가. 예를 들어 ‘1+1=2’. 지식이다. 이 지식을 비우려면 1 더하기 1 2라는 사실을 잊어버려야 한다. 그래야 비워진다. 그런데 이게 지워지는가? 지워지지 않으니 비워지지 않는다.

 

상상의 본질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상상이다. 상상은 고정화된 지식을 용납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식은 움직이지 않고 고정화해 있다. ‘1+1=2’ ‘0’이나 ‘3’이라고 하면 틀린다. 융통성도 없다. 이 고정화한 지식에 다른 생각을 넣어 고정화를 무력화하면 그게 바로 지식을 버리고 비우는 일이다. 우리는 이것을 지혜라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는 지식에서 지혜로 넘어갈 수 있는 통로인 상상을 공부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각각의 지식 공부는 했어도 그것을 융합하고 접목해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방법은 공부한 적이 없다. 이제라도 새로움을 만드는 지혜의 공부, 상상 공부를 해야 한다. 과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바로()’에 답이 있다.

 

시 창작의 8할 이상은 상상으로 이뤄진다. 즉 이것에다 저것을 엮고, 잇고, 붙여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 시적 이미지 창출 과정을 잘 들여다보면 거기에 상상의 경로가 보이고, 그 상상의 경로를 따라 하면 그것이 곧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방법이며,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드는 창조 아이디어법이 될 수 있다.

 

시는 감성을 여는 방법도 다르다

 

상상 역시 감성이 좋아야 잘할 수 있다. 상상의 바탕에는 감성이 자리 잡고 있어서다.

 

그러면 감성이 도대체 뭔가? 감성(感性)은 사전적 의미로자극이나 자극의 변화를 느끼는 성질이다. 이와 비슷한 단어가 있다. 감수성(感受性)이다. 감수성의 사전적 의미는외부 세계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성질이다. 감수성은 감성과 달리 받을 수()가 더 들어 있어 외부 세계의 자극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를 강조한 뜻이 된다.

 

누가 외부 세계의 자극을 받아들이는가. 나 자신이다. 내가 주체가 돼 외부의 어떤 소리나 움직임, 모습 등을 받아들여 느끼는 성질이다. 주체가 된다는 것은 곧 관점이 내 관점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내 관점으로 세상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성질감수성이라고 한다.

 

반면 감성에는 받을 수()가 없다. 그러니 느낌을 내가 받아들이는 게 아니다. 느끼는 주체가 나 자신이 아니라는 말이다. 감수성처럼 관점이 내가 아닌 것이다. 내가 아니라는 말은 관점의 주체가 사람이 아닌 사물일 수도, 자연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대단히 중요하다. 사람의 관점이 아닌 사물이나 자연의 관점에서 무엇인가를 느끼는 게 감성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즉 사물이나 자연이 사람의 행동에 자극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는 것이다.

 

시를 읽으면 감성이 좋아진다는 말은 바로 여기에 근거한다. 세상 모든 것을 사람의 관점으로만 보는 데서 벗어나 자연과 사물의 관점으로 세상을, 사람을 볼 수 있다는 데서 그렇다.

 

세상의 진정한, 그리고 건전한 변화는 사람의 관점에서 벗어난 사물과 자연의 관점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사람의 관점으로 세상이 변화하면 사람에게는 좋은 변화이지만 사물이나 자연을 파괴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사람에서 자연이나 사물로 관점이 변화하는 것이 곧 상상이다. 사람의 관점을 고집하는 것은 사람 관점의, 사람 중심의 지식이다. 이 관점을 파괴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게 바로 상상이다.

 

시는 이러한 관점의 변화가 기본이다. 그래야만 시적 이미지가 새로워진다. 이래서 시를 읽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를 지배했던 사람 중심의 관점으로 고착화한 감수성에서 벗어나 다른 주체의 관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에게는 감성의 문이 열린다.

 

감성의 문이 열리면 세상이 달라진다

 

감성을 활용한 시는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김용택 시인의 시가을이 오면을 보자.

 

이 시는 내가 꽃을 보고 자극받거나 느낀 내용을 쓴 게 아니다. 시인이 자신의 관점을 버리고 꽃이 돼 꽃의 관점으로 쓴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꽃을 볼 때 사람의 관점으로 꽃을 평가한다. 감수성이다. 외부의 꽃이라는 자극을 받아들여서 사람이 느끼는 성질이다. 그런데 이 시는 사람의 관점을 벗어나 꽃이 주체가 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기존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기가 꽃이 돼 꽃의 관점으로 서술했다. 감성이다.

 

시에서의 감성은 사람인 내가 주인공으로 한정돼 있지 않다. 시적 소재인 사물이나 자연이 주인공일 경우가 많다. 시를 읽으면서 이런 관점의 차이를 익히게 되면 자연스럽게 내가 아닌 사물이나 자연 혹은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세상을 읽고자 하는 자세가 생기게 된다.

 

사물이나 자연의 관점이 돼 표현을 하게 되면 기존에 사람 관점으로 보고 표현한 것과는 확연히 다른 이미지가 나타난다. 이때 이 이미지가 사물의 마음이고 자연의 마음이다.

 

우리 눈으로는 전혀 볼 수 없고 보이지도 않던, 그래서 세상 그 누구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물의 마음을 읽고 자연의 마음을 읽게 된다. 이것이 감성의 힘이고, 상상의 힘이다.

 

사물이나 자연의 마음을 본다

 

진짜 감성의 문이 열려 사물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만약 가구회사 사장님에게 감성의 문이 열렸다고 해보자. 이 가구 회사 사장은 그동안 지금까지 책장의 신제품 개발을 위해 노력했지만 모두 사람 관점으로 책장을 봤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사람의 관점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말하자면 감수성 측면으로는 이미 사람의 불편을 해소할 많은 제품이 출시됐다. 이제 사람의 관점을 벗어나야만 기존에 없던 제품이 나올 수 있다. 감수성이 아닌 감성적 측면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감성적 측면이 책장의 관점이 되는 것이다. 앞의 김용택 시인의 시처럼 가구 회사 사장이 책장이 돼 그 가구의 마음을 읽어보는 것이다.

 

책장이 무슨 생각을 할까. 세상 모든 가구는 고정돼 있다. 한번 태어나면 스스로 움직이지도, 몸을 바꾸지도 못한다. 책장도 마찬가지다. 한번 태어나면 절대 움직일 수가 없다. 얼마나 답답할까?

 

감성의 문을 열면 이렇게 책장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게 된다. 그러면 그 고통이나 아픔을 해결해주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책장 칸의 사각 모서리에 연결고리를 달아 접힐 수 있게 만들면 필요에 따라 사각형의 책장이 접혀지기도 하고 마름모 형태로 변하게도 하고, 삼각형 모양으로 변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런 제품이 디자이너에 의해 전시된 적이 있다. 그 디자이너는 책장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만든 것일 테지만 그 때문에 아이디어 짜는 데 참으로 오랜 시간을 소비했을 것이다. 그런데 시인처럼 책장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불편하고 아픈 마음을 해결해줄 방도를 생각하는 데 집중하면 간단히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다.

 

다음 편에서 사물이나 자연의 마음보기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실제 사례를 추가하면서 설명하기로 한다.

 

황인원 문학경영연구원 대표 moonk0306@naver.com

필자는 성균관대 국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에서 기자로 재직했다. 경기대 국문과 교수를 거쳐 현재 문학경영연구원 대표 및 원장을 맡고 있다. 시 전공자와 경영학자가 함께 만나 창조 시대를 이끄는 문학경영학회를 만드는 게 꿈이다.

 

 

  • 황인원 | - (현) 문학경영연구원 대표 및 원장
    - (전) 중앙일보/경향신문 기자
    - (전) 경기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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