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할배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최윤영(Assumption University 국제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2013년 한 해 동안 인구에 가장 많이 회자된 예능 프로그램을 꼽으라면 단연 ‘꽃보다 할배’를 빼놓을 수 없다. 꽃보다 할배는 배우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 평균 연령 76세인 ‘할배’ 연예인들이 유럽과 대만으로 배낭여행을 떠나면서 겪게 되는 좌충우돌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은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다. 지난 7월5일 tvN에서 처음으로 방송된 후 10월4일 종영되기까지 회당 평균 시청률(케이블 가입기구 기준)은 5.7%에 달했다. 총 14번의 방송 중 6% 중후반대 시청률을 기록한 횟수만 따져 봐도 다섯 번이나 된다. 지상파 방송이 아닌 케이블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심지어 회당 최고 시청률을 따지면 10%에 육박한 적도 두 번이나 된다. (그림 1)
꽃보다 할배는 사실 ‘여행 버라이어티’라는 장르만 놓고 보면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프로그램이다. 여러 명의 연예인들이 어딘가로 단체 여행을 떠나 겪는 에피소드를 담아내는 류의 방식은 이미 대표적인 예능 프로그램의 장르로 구축된 지 오래다. 그러나 꽃보다 할배는 식상한 장르라는 비판을 상쇄할 만큼 독특한 콘텐츠와 차별화된 전달 방식을 통해 시청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DBR이 꽃보다 할배의 성공 요인에 대해 집중 분석했다.
50년 지기 친구들의 생애 첫 ‘추억 만들기’ 여행
꽃보다 할배는 1박2일로 명성을 얻은 나영석 PD가 2012년 말 KBS에서 CJ E&M 산하 케이블 채널인 tvN으로 이적한 후 처음으로 내놓는 작품이었다. 나영석 PD는 “처음 프로그램 기획 회의를 할 때부터 ‘70∼80대가 떠나는 배낭여행’ 콘셉트를 명확하게 잡았던 건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경험 많은 PD, 베테랑 작가들과 몇 달 동안 끊임없이 회의하며 여러 아이디어 가운데 고르고 골라 발전시킨 결과물이라는 설명이다.
꽃보다 할배 제작팀이 올해 초 처음 기획 회의를 할 때에만 하더라도 오디션 프로그램 형식을 취할지, 게임 쇼 형태로 진행할지 등 어떤 장르를 선택할 것인가만 놓고도 상당한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국내 여행 프로그램(1박2일)은 한 번 해봤으니 해외 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해보는 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 후 논의는 “만약 해외로 여행을 간다면 어떤 여행이 가장 흥미로울까?” “누가 가면 제일 재미있을까” 등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배낭여행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70∼80대 노인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전혀 이질적인 요소들 간의 조합이 안겨줄 웃음과 재미에 기대보자는 취지였다.
큰 방향이 정해진 후 제작진은 좀 더 구체적으로 프로그램 기획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단순히 나이만 많은 ‘노인들’이 떠나는 배낭여행이 아니라 한번도 여행을 같이 가 본적이 없는 ‘50년 지기 친구들’끼리 떠나는 추억 만들기 여행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하기로 결정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인들에게 친구들과 같이 떠나는 여행은, 여행을 직접 떠나는 출연진에게나 그 모습을 간접적으로 지켜보게 될 시청자들에게나 모두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오랜 벗들과의 추억 만들기 과정을 진정성 있게 담아낸다면 재미는 물론 감동까지 선사할 수 있는 리얼리티 예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제작진의 판단이었다. 출연 제의를 받는 원로 배우 입장에서도 단순한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지만 호형호제(呼兄呼弟)할 만큼 각별하게 지내는 친구들끼리의 여행 프로그램이라면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는 계산도 한몫했다.
대략적인 기획안이 서자 제작진은 본격적인 섭외에 들어갔다. 우선, 원로 배우 가운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순재 씨를 핵심 인물로 잡고 그가 아끼는 후배 연기자나 친한 동료 연기자 중심으로 출연진을 구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처음 이순재 씨에게 꽃보다 할배 출연 의사를 타진했을 때 그는 “재미는 있을 것 같은데 스케줄이 너무 많아서 난 힘들고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라며 확답을 피했다고 한다. 이후 제작진은 이순재 씨와 각별한 사이인 신구 씨를 찾아갔다. 열심히 프로그램 기획 의도에 대해 설명하는 나영석 PD에게 신구 씨는 “그러니까 됐고, 요는 순재 형이랑 같이 여행을 다녀오라는 거 아니냐”며 “우리 같은 사람한테 그런 추억을 만들어 준다는데 어떻게 마다하겠느냐”며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고 한다. 이순재 씨도 친한 동생인 신구 씨가 출연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스케줄을 적극적으로 조정하며 출연 결정을 내렸고, 이후 백일섭 씨도 합류했다. 박근형 씨의 경우 드라마 촬영 등으로 일정 조정이 어려워 막판까지 출연 여부가 불투명했다. 그러나 박 씨 스스로 “언제 이런 기회가 다시 오겠냐”며 출연 의지를 강력하게 불태워 뒤늦게 합류를 결정했다. 출연진의 평균 연령만 76세에 달하는 ‘꽃할배 4인방’, 이른바 ‘H4’의 탄생이었다. 20∼30대 아이돌이나 스타 연예인이 판치는 여타 예능과는 전혀 다른 출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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