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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성'의 원천을 찾아서

애플•구글•아마존… 효율에서 창조로, 시대정신 대이동

신동엽 | 138호 (2013년 10월 Issue 1)

편집자주

모두가창조를 말하는 시대지만 정작 정확한 개념 정의도, 진정한 의미파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창조성에 대해 10여 년 전부터 연구해 온 신동엽 연세대 교수가 여러 학자들과 함께 진행한 각종 인터뷰와 연구결과 등을 토대로 ‘21세기 시대정신, ‘창조성의 원천을 찾아서를 연재합니다.

 

필자는 지난 3년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우리나라 사회과학계를 대표하는 젊은 학자들과 함께 ‘21세기 창조성의 원천이라는 연구를 수행해왔다. 조만간 책으로 출간될 이 연구에서는이구동성으로 중요성은 인정하나 그 원천은 오리무중인 창조성이 어디서 오느냐를 찾아내고자 가장 창조적 집단인 세계적 예술가 등을 심층 인터뷰했다. 왜 경영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이 3년이라는 긴 시간을 투자해 창조성을 연구했을까? 사실 필자는 이미 1990년대 말부터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나 글에서 창조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필자가 DBR 창간 초기에 가장 먼저 기고한 글도 창조성에 관한 것이었다. 수익성 극대화나 효율성 증대, 경쟁전략 등을 강조해야 할 경영학자가 왜 뜬금없이 당시 심리학자들도 잘 다루지 않았던 창조성의 중요성에 대해 10여 년 전부터 열변을 토했을까?

 

2013년 현 시점에서 보면 분야와 국가를 막론하고 창조성이 21세기 초의 핵심 화두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대세인 것 같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기업인 삼성이 미래 경영모델로 창조경영을 2006년에 선언했고 올해 출범한 박근혜 정부도 경제정책의 핵심으로 창조경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창조성이라는 표현은 일반인들은 물론 언론이나 학계에서도 생소한 개념이었다. 왜 지금 창조성이 전 세계적 관심사일까? 그리고 구체적으로 창조경제나 창조경영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최근 넘쳐나는 창조경제와 창조경영에 대한 자료들에서는 대부분 창조를 혁신 창출의 방법이나 유형으로 보거나 ICT와 같은 구체적인 기술 분야, 디자인/엔터테인먼트산업과 같은 특정 산업들의 특성, 또는 경제성장 정책 등으로 보는 것 같다. 물론 이런 기존 접근법들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필자가 볼 때 창조성의 의미를 지나치게 피상적이고 폭 좁게 해석하고 있는 것 같다. 필자는 창조경제나 창조경영과 같은 현재 정·재계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유행어들의 피상적 이해를 넘어서서 창조성이 가지는 시대적 의의와 시사점을 깊이 있고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이런 새로운 화두와 담론이 등장하게 된 역사적 맥락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즉 역사의식에 기반한 깊고 폭넓은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21세기 초인 현재, 창조성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를 설명하려면 19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 현대 산업사회의 탄생 과정을 알아야 한다.

 

 

현대 산업사회 탄생의 전야

1848년 칼 마르크스는 현대 기업의 조상 격인 대규모 공장들이 막 출현했으나 아직 경영의 기본적 노하우도 갖춰지지 않아 노동착취와 같은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던 초기 자본주의를 목도한 뒤 확신을 가졌다. 조만간 공산주의가 자본주의를 대체할 것이라는 굳은 믿음으로공산당 선언을 다음과 같은 섬뜩한 문장으로 시작했다.

 

“지금 한 혼령이 유럽 대륙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혼령이.”

 

혼령이 시공간을 초월해 어디든 스멀스멀 스며들듯이 공산주의로의 전환이 모든 유럽인의 마음에 스며들어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정신이 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자신만만한 예언과 달리 자본주의는 그 이후 여러 차례의 위기를 겪기는 했으나 무너지지 않았고 다양한 형태로 진화해왔다. 오히려 사회주의에서 강조했던 노동자들의 인간적 삶은 사회보장과 복지국가 등 좌파진영의 주장을 유연하게 차용한 자본주의체제에서 더 효과적으로 달성됐다. 반면 계급타파를 외치던 마르크스가 예측하지 못했던 새로운 계급인 공산당의 독재적 권력구조에 발목 잡힌 사회주의 국가들은 1990년대를 기점으로 세계사에서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자본주의의 역사적 진화 과정에서 가장 획기적 전환점은 20세기 초 헨리 포드와 프레드릭 테일러 등이 주도한 포드주의적 대량생산혁명이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과 함께 본격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로의 전환이 가속화됐으나 여전히 생산력의 발전은 답보 상태였다. 특히 19세기에 접어들며 지리상의 발견과 제국주의적 시장개척, 공중보건의 향상, 교통과 통신 기술의 발전, 시장경제 확산 등으로 인구와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전례 없는 대규모 시장수요가 발생했으나 생산방식의 극심한 비효율성으로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 지속됐다. 예를 들면, 1880년대 중반 칼 벤츠와 고틀리브 다임러에 의해 자동차가 발명됐으나 20년이 지난 1905년 통계를 보면 연간 전 세계 자동차 총 생산 대수가 5만 대 내외에 머무르고 있어서 시장수요의 10분의 1도 채 충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된 이유는 기계와 도구는 발전했으나 생산방식이 여전히 전문 기술자들이 자신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상품을 만드는 장인생산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03년에 작은 자동차 제조업체를 창업한 헨리 포드는 장인이나 전문 기술자 같은 특정인의 능력에 의존하지 않아야 효율적인 대규모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고 연구를 거듭한 끝에 닭고기를 부위별로 분리하는 공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전체 생산공정을 비숙련 노동자들이 한두 가지 나사만 조이는 단순 반복작업으로 세분화하고 이를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연결시키는 포드주의 대량생산 방식을 만들어냈다. 결과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생산성이 단숨에 수십 배가 오른 것이다. 예를 들면, 1908년에 생산을 시작한 포드의 T형 자동차는 1927년에 단일 차종이 1500만 대 생산을 돌파했으며 대당 가격 또한 기존 자동차의 10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장인이나 전문 기술자에게 의존하지 않는 대량생산의 시대가 온 것이다. 획일화되고 표준화된 상품을 대량으로 싸게 만들어내는 양적 효율성이 핵심인 포드주의 대량생산의 발명으로 인류는 역사상 최초로 양적 생산력의 한계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20세기 현대 산업사회의 도래 - 효율성 지상주의의 시대

20세기초 현대 산업사회로의 이행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생산성의 문제를 단숨에 해결한 포드주의적 대량생산 시스템의 핵심 논리를 한마디로 정리하면양적 효율성 극대화. 이 같은양적 효율성 극대화는 그 후 산업과 경제뿐 아니라 정치와 문화, 교육 등 사회 모든 부문들로 확산되면서 현대 사회 전체의 발전을 이끈 시대정신이 됐다. 20세기 백 년은 대량생산-대량소비를 중심으로 하는 양적 효율성의 시대였다. 이런 양적 효율성 지상주의의 바탕이 된 철학적 사조는 20세기로의 전환기를 전후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도구주의적(Instrumentalism) 합리주의였다. 과학혁명, 시장경제의 확산, 전통적 봉건제의 붕괴와 시민사회의 도래 등과 함께 등장한 합리주의의 물결은 현대 사회로의 대전환의 철학적 기반이 됐다. 즉 냉정하고 치밀한 계산과 계획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도구주의적 합리성이란 최선의 수단을 선택해서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으로, 20세기 사회 모든 부문의 작동 기저에 깔린 강력한 철학적 사조였다. 따라서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는 말은 과학적이라는 말과 동일시됐고 목적의 효율적 달성과 직접 관계가 없어 보이는 다른 모든 요소들은 비과학적이고 전근대적인 것으로 치부됐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행동은 그 자체가 어떤 어떤 의미나 중요성을 가지기보다는 무언가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석됐다.

 

칼 마르크스와 더불어 고전 사회과학이론의 양대 거장으로 평가되는 막스 베버는 20세기 초에 바로 이런 도구주의적 합리성에 기반해 기계처럼 움직이는 피라미드형 관료제 조직들에 의해 사회가 조직화되는 것이 현대성(modernity)의 핵심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효율성을 다른 어떤 가치보다 우선시하는 도구적 합리주의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거부할 수 없는 전 세계적 시대정신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설적 거장은 그의 마지막 저술인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의 마지막 장에서 도구적 합리주의에 기반한 현대 조직들은 전대미문의 효율성을 달성했기 때문에 전 세계적인 합리화의 추세는 결코 되돌릴 수 없을 것이며 영원히 인류와 함께 지속될 수도 있다는 섬뜩한 예언을 했다.

 

20세기 100년은 전반적으로 베버의 예언이 적중한 시기였다. 기계처럼 철저하게 계산되고 계획돼 설계된 조직이나 행동이 아니면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으로 폄하됐다. 또 양적 효율성 극대화를 추구하는 최고의 수단인 현대적인 기계적 관료제 조직이 기업이나 정부뿐 아니라 교육, 문화 등 사회 모든 분야에 확산됐다. 효율성 지상주의라는 20세기적 시대정신은 인류 역사상 본 적이 없는 물질적 풍요를 가져오며 현대 산업사회의 발전을 주도했다. 또한 소수의 왕족이나 귀족과 같은 특권층이 사회의 모든 의사결정 권력을 독점하며 임의적 호불호에 따라 전횡하던 과거 전통 사회와 달리 최소한 객관적인 법과 규칙, 제도에 의한 지배가 사회 전체를 주도해야 한다는 합리화의 물결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인류의 5000년 역사시대를 둘로 나누는 가장 중요한 기준인 전통 사회와 현대 사회 간 구분의 기준에서 볼 때 합리성이 지배하는 효율적인 현대 사회가 드디어 도래한 것이다.

효율성 지상주의적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것들

인류는 합리적 현대 사회로의 전환과정에서 중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숨가쁜 현대화와 합리화의 과정에서 인류공동체는 효율성과 합리성 못지 않게 중요한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현대 사회에서 희로애락의 감정과 감성, 우정, 연민, 상상력, 직관, 쾌락, 욕구, 인간관계, 공동체 정신 등의 인간적 요소에 의한 의사결정과 행동은 조직과 사회의 합리적 운영에 걸림돌이 되는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것으로 치부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현대 산업사회는 효율적이고 합리적이기는 하나 차갑고 비인간적인 사회가 돼버렸다. 이런 현대 산업사회의 양면성을 막스 베버는강철 우리(iron cage)’라는 절묘한 개념으로 표현했다. 강철은 강하고 반짝이며 현대적이지만 동시에 차갑다. 게다가 우리를 강철로 만든다는 것은 그 속에 갇힌 사람들을 옴짝달싹할 수 없게 옥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전대미문의 양적 효율성으로 과거 수천 년 동안 그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던 생산력의 문제를 단숨에 해결한 합리적인 현대 사회는 그 과정에서 인간도 하나의 기계 부품으로 취급할 정도로 비인간적인 사회였다. 찰리 채플린은 걸작 영화모던타임스에서 이를 천재적으로 묘사했다. 즉 효율성과 합리성의 원리가 지배하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인간은 스스로 사고하고 의사결정하는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기계와 같이 치밀하게 설계된 조직에서 정해진 일을 정해진 규칙과 절차에 따라 반복하는 하나의 부품이 돼버린 것이다.

 

무엇보다 20세기 산업사회의 압도적 효율성 논리는 단순히 인간의 기계화와 소외 등과 같은 인간적 문제를 넘어서서 각자 독창적이고 자율적으로 새로운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는 창조적 역량을 인류공동체로부터 박탈해버렸다. 예를 들면, 생산 분야에서 대량생산 산업사회는 기존에 존재하는 상품이나 서비스, 가치를 어떻게 더 싸게 대량으로 만들어낼 것인가라는 양적 효율성의 극대화를 지상과제로 삼았기 때문에 가장 많은 소비자가 원하는 획일적이고 표준화된 물건만을 대규모로 만들어 왔다. 따라서 수요가 많지는 않으나 필요한 물건이나 시장 수요보다 더 뛰어난 품질이나 디자인을 가진 물건, 그리고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는 행위는 비효율적이라는 낙인하에 주변부로 밀려났다.

 

즉 기존에 하지 않던 행동이나 미리 정해져 있지 않은 행동을 시도하는 창조적 행위는 효율성 지상주의의 현대 사회에서 필요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효율성 저해 요인으로 억압되기까지 했다. 사람이 이런 창조적 시도를 하도록 만드는 출발점이 되는 자율성이나 다양성, 감성, 비판적 사고 등도 효율성 저하 요인으로 간주돼 현대 사회의 설계과정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됐다. 그 결과 대다수의 구성원들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사고를 할 기회 없이 맡겨진 일을 정해진 절차에 따라 매일 반복하는 단순 반복작업만 수행하는 수동적 존재로 전락했다. 창조성은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영역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에 대해 런던정경대의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 교수는 장인정신에 관한 연구에서현대문명이 생각하는 손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한다.

 

20세기형 산업사회의 종언

효율성 논리가 지배한 20세기 산업사회로부터 21세기로의 전환기인 2000년을 전후해 전 세계의 역사발전을 주도하는 시대정신에 또다시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분배의 문제는 여전히 존재했지만 단순한 인류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물건을, 필요한 양만큼 만들어내는 양적 기준에서의 생산력은 수요를 훨씬 초과하게 됐다. 즉 빈곤국 국민들의 기아와 같이 분배의 불균형은 여전히 해결돼야 할 문제지만 단순히 양적 효율성만 놓고 보면 공급과잉의 환경이 도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의 구매패턴도 변화했다. 소비자들의 휴대폰 교체 주기의 예에서 명확히 나타나듯이 기존 상품이 더 이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해서 새로운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상품 또는 개인별로 각자 서로 다른 다양한 상품들을 원하게 됐다.

 

또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국가 간, 시장 간, 지역 간, 산업 간 모든 경계가 사라지고 하나의 글로벌 시장이 형성되면서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수요들이 폭증하고 동시에 기존 상품의 수명주기는 급속히 단축됐다. 또 기술혁신이 상시화되면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가 세계 각처에서 매일같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게 됐다. 게다가 인터넷과 SNS 등으로 정보와 지식이 물리적 거리에 상관없이 전 세계로 실시간 확산되면서 과거처럼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가 지역이나 시장별로 순차적으로 확산되던 패턴이 붕괴되고 모든 혁신이 동시에 글로벌 시장 전체로 확산됐다. 즉 경제의 원리가 기존 상품이나 사업, 강점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던 ‘20세기 산업사회형에서 끊임없이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가치와 상품, 강점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상시 창조적 혁신으로 근본적으로 바뀐 것이다.

 

그 결과 기존에 존재하던 표준화된 상품이나 서비스, 가치를 대규모로 생산하는 양적 효율성 극대화를 선도하던 GM, 포드, 파나소닉, 노키아 등의 기업들이 급속히 몰락하고 전혀 다른 새로운 논리를 추구하는 애플, 구글, 아마존 등의 신생 조직들이 순식간에 세계 경제의 패권을 차지했다. 21세기 경제의 새로운 승자들의 핵심 논리는 양적 효율성 극대화가 아닌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 가치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창조성이다. 따라서 21세기로의 전환기를 전후해 전 세계 기업들에서 끊임 없이 변화와 혁신을 시도하는 원천인 창조성이 경쟁력의 새로운 기반으로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20세기에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 요소로 치부됐던 상상력, 직관, 감성, 다양성, 관계, 공동체 등 창조성의 원천으로 추측되는 요소들이 21세기 경제의 핵심 가치로 강조되고 있다. 세계 경제를 상징하는 시대의 아이콘도 양적 효율성의 개척자 헨리 포드로부터 창조적 혁신의 대명사 스티브 잡스로 바뀌게 됐다.

 

이런 패러다임 전환은 경제 분야에서 시작됐으나 곧 경제와 산업의 범위를 훌쩍 넘어서서 교육, 정치, 사회, 문화 등 21세기 사회의 모든 분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창조계급, 창조경제, 창조국가, 창조사회 등 창조를 접두어로 하는 신조어들이 2000년을 전후해 전 세계 학계와 정부, 기업들의 핵심 화두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대 중반 이래 창조경영, 창의시정, 창조경제가 중앙정부와 지자체, 기업 리더들에 의해 21세기 후기 산업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이끌 핵심 패러다임으로 선포됐다. 이제창조라는 단어를 포함하지 않는 비전이나 정책은 기업과 공공 부문은 물론 대학이나 시민운동단체 등 그 어떤 민간 부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즉 지난 100년을 주도한 핵심 논리가 효율성이었다면 21세기 시대정신은 창조성이다. 이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조류다.

 

“지금 창조성의 혼령이 전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창조성으로의시대정신 전환은 정부나 기업과 같은 같은 조직뿐 아니라 각 개인의 삶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됐다. 국가나 조직은 물론 개인들도 성장하고 발전하며 경쟁력을 가지려면 창조성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창조성 앙양이 교육과 인적자원개발의 핵심 목표로 강조되고 있는 이유다. 발 빠른 교육업체들은 앞다퉈창조라는 표현을 포함하는 그럴듯한 제목의 교육 프로그램들을 무더기로 쏟아내고 있으며 백 년 만의 역사적 대전환기의 불확실성 때문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떠는 개인들은 맹목적으로 이런 교육상품들을 구매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창조성이 단순히 각 개인의 경쟁력의 기반으로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창조성은 20세기 100년간의 현대 산업사회의 치밀하게 설계된 사회 구조 속에서 무수한 대중들 중 하나로서 개인성(individuality)을 상실하고 기계부품처럼 획일화되고 익명화된 삶을 살아야 했던 개성 없는 인류에게 각자 독창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을 되돌려준다. 이제 개인은 남들과 같은 정형화되고 획일적인 삶을 살 필요가 없다. 또한 각자 미리 정해진 일을 정해진 절차와 스케줄에 따라 반복적으로 수행하다 인생을 마감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기존에 존재하던 분야들 중에서만 자신의 경력을 선택할 필요도 없다. 이제 자신이 속한 계층이나 학력, 네트워크 등의 구조가 개인의 가능성을 제약하는 힘도 크게 약화됐다. 이 모든 제약들을 단숨에 뛰어넘어 각 개인이 독창적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창조성의 힘이다. 즉 창조성은 한 세기 전에 막스 베버가 인류를 영원히 옥죄일지 모른다고 음울하게 예언했던 현대 산업사회의 합리주의적 효율성 지상주의의강철 우리로부터 인류를 해방시켜줄 새로운 원동력으로 기대되고 있는 것이다.

 

즉 정부나 기업, 다양한 비영리 공공조직들은 물론 각 개인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20세기 현대 산업사회를 근본적으로 대체할 완전히 새로운 창조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창조성을 단순히 경영기법이나 경제성장 정책, 또는 특정 산업이나 기술 분야로만 해석하는 기존의 접근법들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즉 창조성은 20세기 100년을 지배했던 효율성을 대체하는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이해돼야 할 것이다. 150여 년 전 마르크스의 선언을 21세기 초 현재의 역사적 상황에 맞게 재해석한다면 다음과 같이 선포돼야 할 것이다.

 

“지금 창조성의 혼령이 전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 교수 dshin@yonsei.ac.kr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조직이론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직이론 분야의 세계 최고 학술지 등 저명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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