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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회를 만들고 사회는 질병을 키운다

138호 (2013년 10월 Issue 1)

 

 

 

병원을 가면 괜히 주눅이 든다. 종합병원에 가면 종합적으로 주눅이 든다. 아픈 사람을 보면서 혹시 나도 아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이 치료를 받을 때는 의료인이 그렇게 높아 보일 수가 없다. 필자가 의료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때 항상 하는 질문이 있다. 사람들에게 병원이란 한마디로 무엇인가. 필자는 이 질문의 대답이 한마디로인생(人生)’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사람들이 태어나는 곳()은 안방과 건넛방이 아니라 병원이다. 늘 곁에 있는 질병()과 싸우기 위해 병원으로 향한다. 게다가 나이 들면서() 나타나는 여러 몸의 현상을 상담하러 병원으로 향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병원에서 삶을 마치고(), 병원 장례식장에서 다른 곳으로 마지막 여행을 간다.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인생인데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 모두 병원에서 일어나고 있다. 병원이 인생의 한가운데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과 의료인의 책임이 점점 더 막중해지는 것 아닐지. 의사 출신인 김철중 의학전문기자는 이러한 병원과 건강의 문제가 우리의 삶에 어떻게 들어와 있는지내시경으로 들여다보고,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현미경으로 살펴봤으며,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지망원경으로 내다보려는 시도를 했다. 김 기자가 병원과 사회, 인생의 관계를 정리한 책이 <내망현(內望顯), (MID 출판사, 2013)>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병원에 가면 즉, 누구나 병을 앓으면 철학자가 된다고 했다. 실연의 아픔이 정신의 성찰을 가져다주듯 질병의 고통은 육체에 대한 자성을 안겨준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병원은 신체와 정신이 만나는 수련원이라고 정의했다. 이렇게 의료는 삶과 사회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피할 수 없이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사람은 사회를 만들지만 사회는 질병을 키운다는 것이다. 이것을 의학과 사회학이 결합된 메디컬 소시올로지(medical sociology)라고 부른다. ‘건강인이나질병인인 모두 메디컬 소시올로지에서 개인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메디컬 소시올로지는 먼저 질병에 대한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다.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개인의 질병은 반드시 개인 탓일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메디컬 소시올로지에서는 개인의 질병도 사회생활의 산물이라고 했다.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암의 완치율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암에 대한 걱정은 여전하다. 그런데 유독 대장암은 한국 중·장년층에서 급속히 늘고 있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몇 가지 사회 현상이 맞물려 있다. 첫째는 대장암 증가 속도와 고기 소비량의 증가 추이가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한국인의 하루 1인당 고기 소비량은 1976 26g이었으나 2003 107g으로 4.1배 늘었다. 대장암은 11배 껑충 뛰었다. 둘째는 누구나 인정하는 한국인 특유의 잦은 회식(會食)과 외식(外食) 문화 때문이다. 1985년 도시 노동자 가정에서 외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식품 관련 지출액의 8%였다. 2005년에는 48%에 달했다. 20년 동안 6배가 늘었다. 식비 중 절반이 외식비다. 10년 전 30조 원이던 외식시장의 규모는 현재 50조 원으로 급성장했다. 셋째는 먹은 만큼 움직이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하루 30분 이상 매주 3번 이상 운동하는 성인은 7명 중 1명에 불과하다. 결국 대장암은 경제 성장과 특유의 회식 문화,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직장생활 구조 등이 맞물려서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고기 맛을 본 50·60대는 이제 세월이 흘러대장암 세대가 됐다. 보릿고개를 벗어나니 그 자리에 대장암이 들어선 셈이다.

 

위암의 경우에도 사회적인 요인이 크다. 1950년대 냉장고가 보편화되면서 서구에서는 위암이 종적을 감췄다. 소금에 절이는 음식이 줄고 신선한 채소나 과일을 오래 보관해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위암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 한 해 신규 위암 환자가 3만 명이다. 과잉 진단으로 평가받는 갑상선암을 제외하면 위암은 여전히 한국인이 걸리는 암 중에서 부동의 1위다. 위암은 짜고, 소금에 절이고, 간장으로 삭힌 음식을 많이 자주 먹으면 발생 위험이 커진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이런 음식을 선호한다. 또 여러 사람들이 찌개 등 한 가지 음식을 공유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헬리코박터균 감염률을 높인다. 이것도 위암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

 

의학적으로 암을 일으키는 요인이 25∼30년 축적되면 암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사회학적 제도와 환경이 맞물린다. 한국인은 1970년대 시내버스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있을 정도로 흡연에 관대했다. 하지만 이런 흡연 문화는 폐암 환자의 급증으로 이어졌다. 1990년부터 늘어난 여성 흡연은 2020년 이후부터 여성 폐암 환자를 양산할 것이다. 유방암은 초경이 빠르고 출산을 하지 않으며 모유 수유를 기피하고 지방질을 과다 섭취할 때 발생률이 높다. 한국 여성은 영양 상태가 좋아지고 초경은 빨라졌다. 여성의 사회 진출로 저출산 시대가 왔고 모유 수유는 이전과 비교하면 줄어들었다. 또 지방이 많은 음식을 과다하게 소비하고 있다. 그 결과 30∼40대에서 유방암이 급증하고 있다. 이렇게 모든 질병의 70%는 사회·경제 구조와 문화에서 나온다. 이른바 질병의 사회학이다. 사회가 질병을 생산하는 시대에서는사회가 건강해져야 개인이 건강해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메디컬 소시올로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몇 십 년에 걸쳐 나타나는 사회와 개인의 질병관계에만 메디컬 소시올로지가 적용될까? 그렇지 않다. 의료용품 등에서 보이는배려의 메디컬 소시올로지는 동시적으로 효과가 나타난다. , 장애인과 노인, 환자를 위해 개발된 의료 제품들이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주요한 도구가 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요즘 버스 출입구가 낮은 저상(低床) 버스를 탈 때마다 승하차가 참 편해졌다고 생각한다. 저상 버스는 원래 휠체어 장애인을 위해 도입된 것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쉽게 버스에 오를 수 있도록 차체 바닥을 낮추고 출입구 폭을 넓혔다. 그 덕분에 장애인의 이동이 한결 수월해졌다. 하지만 그 혜택은 노인과 어린이에게도 돌아갔다. 아울러 비나 눈이 와서 길거리가 미끄러운 날 버스에서 내릴 때 일반인의 낙상 사고를 크게 줄여줬다. 장애인 덕분에 비()장애인도 혜택을 본 것이다.

 

요즘 웬만한 건물에는 자동문이 설치돼 있다. 자동문은 사람이 들어서는 것을 인식하고 미리 문을 활짝 열어준다. 이것도 처음에는 휠체어 장애인을 위해 개발됐다. 하지만 이제 자동문은 짐을 많이 갖고 다니는 공항이나 호텔, 대형 마트에서 없어서는 안 될 시설이 됐다.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는 관절이 불편한 사람이 애용하고 휠체어 승객을 위해 만든 넓고 가로막이 없는 개찰구는 고도 비만인이 이용한다. 휠체어가 들어가기 편한 큰 화장실은 아기 기저귀를 교체하는 모자(母子)의 화장실로도 사용된다. 길거리의 배수구를 덮는 쇠창살은 발이 빠지지 않을 정도로만 만들어져서 엉성한 것이 많았다. 휠체어 바퀴가 지나갈 때 충격을 주고 노인의 지팡이가 끼기도 했다. 배수구 쇠창살을 보다 촘촘하게 바꾸자 이에 따른 혜택은 하이힐을 신은 여성과 어린이에게도 돌아갔다. 애초 장애인을 위해 만든 제품들을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는 사례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차량의 자동 기어 장치다. 자동기어 장치는 가속기와 클러치를 조화롭게 조작하기 어려운 팔·다리 장애인을 위해 개발됐으나 현재는 그 편리성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다.

 

전동칫솔은 처음에 손을 잘 놀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위생 칫솔로 등장했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고 있다. 구부러지는 음료수 빨대도 초창기 아이디어는 장애인을 위한 제품에서 나왔다. <베끼고, 훔치고, 창조하라(김종춘 지음, 매일경제신문사, 2011)>에서 빨대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면 담배 종이를 마는 일을 하던 마빈 체스터 스톤은 하루 일을 마치면 위스키를 마시며 고단한 일상을 풀곤 했다. 당시에는 호밀 줄기의 대롱으로 위스키를 빨아 마셨다. 손으로 잡고 마시면 온도가 상승해 맛이 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빈은 호밀 줄기에서 나는 풀냄새가 싫었다. ‘묘안이 없을까?’ 하고 생각한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담배 종이가 번뜩 떠올랐다. 그는 담배 종이를 돌돌 말아 끝이 풀리지 않도록 접착제를 붙였다. 1888년 그는 빨대를 발명했고 그의 빨대는 불티나게 팔렸다. 마빈의 빨대가 널리 퍼져 세계 곳곳에서 사용됐을 무렵 일본 요코하마에 살던 한 여성은 또 다른 문제와 씨름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아들을 간호하던 그녀는 아들이 음료수를 마실 때마다 힘겹게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매우 안타깝게 느꼈다. ‘빨대를 구부릴 수는 없을까?’ 그녀는 어느 날 수도꼭지에 끼워진 호스를 보게 됐다. ‘맞아, 빨대에도 호스처럼 주름을 넣으면 잘 구부러질 거야.’ 이후 주름 빨대가 유행했다. 환자를 위한 아이디어의 혜택을 어린이와 일반인들이 더 많이 누리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휴대전화나 계산기의 올록볼록한 버튼은 원래 시각장애인을 위해 디자인된 것이다. 이 덕분에 일반인도 눈으로 보지 않고 손에서 느끼는 감촉만으로 다양한 기구를 조작할 수 있게 됐다. 시각장애인을 위한듣는 책오디오 북(audio book)은 바쁜 직장인들이 운전을 하면서도 교양을 쌓을 수 있도록 해준다. 가정용 기구나 장비의 사용 설명서에는 알기 쉽도록 그림이 많이 들어 있다. 이것도 처음에는 글자를 읽지 못하는 문맹인을 위해 제작됐지만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그림으로 제품의 사용법을 익힌다. 문고리 대부분은 동그란 손잡이를 잡고 손목을 비틀어야 열리는 방식이었다. 이런 문은 손을 움켜쥐고 팔을 돌리는 힘이 약한 장애인이나 노약자에게 불편하다. 화재가 발생하면 탈출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막대를 위에서 아래로 눌러 여는 레버식 손잡이다. 손이나 팔로 누르고 몸으로 밀어도 열린다. 지금은 레버식 손잡이가 점차 늘고 있다. 레버식 손잡이가 누구에게나 편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환자나 장애인에게 편한 것은 일반인에게도 편하다. 환자에게 좋은 것은 건강한 사람에게도 좋다. 그들의 고통과 불편을 해결하는 시설과 제품, 아이디어는 결국 보편화된다. 그 혜택은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돌아간다. 이런 맥락에서 환자와 장애인을 위한 지원과 투자는 시혜나 선심이 아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더욱이 고령 사회로 갈수록 누구나 잠재 장애인이요, 미래 환자이지 않은가. 이것이 배려의 메디컬 소시올로지다. 지금까지 살펴본 메디컬 소시올로지는 두 가지 결론을 내리게 만든다. 첫째는 사회와 개인의 질병에 관한 것이다. 사회가 개인의 병을 만든다. 습관이 개인의 병을 만든다.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했다. “똑같은 짓을 하면서 결과가 다르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바보다.” 사회와 습관 중 어떤 것 때문에 건강이 나빠졌다면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힘든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한다. 질병을 일으키는 사회적 문제와 개인의 습관은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소중하니까.’ 메디컬 소시올로지의 두 번째 결론은 같이 살아가는 배려에 관한 내용이다. 결국 늙으면서 힘이 빠지고 거동이 불편할 때 우리는 환자와 장애우를 위해 개발한 장치와 도구의 혜택을 보게 된다. 다른 사람을 위하고 조금이라도 약한 자를 위해 노력하는 배려는 결국 그 혜택이 그런 노력을 한 사람에게 돌아온다. 그것이 의료와 사회가 같이 가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개인과 사회, 삶과 병마(病魔)와의 관계를 제대로 알고 보다 건강한 삶을 누리고 싶을 때 꼭 한번 이 책 <내망현>을 읽어보기 바란다. 책 읽고 행복하시길.

 

 

서진영 자의누리경영연구원 대표 sirh@centerworld.com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략과 인사 전문 컨설팅 회사인 자의누리경영연구원(Centerworld Corp.) 대표이면서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경영 서평 사이트(www.CWPC.org)를 운영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51호 Diversity in Talent Management 2022년 08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