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를 대표한 디자이너인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 1917∼2007). 소파, 의자, 테이블, 책장, 캐비닛 등 모든 작품에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접근 방식을 도입한 디자이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는 1969년 올리베티(Olivetti)사를 위해 만든 휴대용 타자기 발렌타인(Valentine). 새빨간 립스틱을 연상시키는 파격적인 컬러가 특징이다. 웬만한 디자인 역사책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이 제품은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역발상의 법칙>의 저자 로버트 서튼(Robert Sutton)은 소트사스야말로 ‘뷰자데(vuja de)’의 시각을 가진 대표적 인물이라고 설명한다. ‘데자뷰(deja vu)’가 실제로는 과거에 본 적도, 체험한 적도 없는 일을 마치 예전에 보고 경험한 것처럼 익숙하게 느끼는 기시감(旣視感)을 가리킨다면 뷰자데는 이미 수백 번 보고 경험했는데도 마치 처음 접하는 것처럼 느끼고 행동하는 걸 말한다.
서튼은 늘 해오던 일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뷰자데 사고방식이야말로 혁신에서 가장 필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강조한다. 동일한 문제라도 남과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고 부정적인 요소도 긍정적으로 바꿔 생각하는 뷰자데 감각이 혁신과 창의성, 역발상의 발현을 위한 핵심 요소라는 설명이다.
역발상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뷰자데 사고방식을 갖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이노베이터의 10가지 얼굴>의 저자인 톰 켈리(Tom Kelley)의 주장에 빗대보면 ‘인류학자(anthropologist)’의 면모를 갖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진정한 인류학자는 제 아무리 높은 교육적 배경과 풍부한 현장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해도 자신의 고정관념을 뒤로 한 채 초심자의 마음가짐(beginner’s mind)을 견지할 줄 아는 사람이다. 열린 마음으로 사물을 관찰하며 판단이 아니라 관찰과 공감에 주력한다. 오래 전부터 주위에 있었지만 너무나 당연시돼 여태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을 새롭게 보는 능력, 이른바 뷰자데 감각을 갖춘 이들의 전형적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켈리는 이렇게 인류학자의 모습을 갖춘 혁신가들이 조직에 새로운 학습과 통찰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 행동에 대한 면밀한 관찰을 통해 사람들이 제품이나 서비스와 물리적·정서적으로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깊이 있게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켈리의 또 다른 저서 <유쾌한 이노베이션>에서도 잘 설명돼 있듯이 혁신 기업의 대명사로 꼽히는 IDEO가 일하는 방식은 크게 다섯 단계로 나뉜다. 시장, 고객, 기술에 대해 이해(understand)하고 실제 생활 속에서 사람들을 관찰(observe)한다. 그 후 브레인스토밍, 스토리보드 작업 등을 통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시각화(visualize)한다. 이를 기반으로 여러 가지 형태의 시제품을 제작해 솔루션을 평가하고 개선(evaluate & refine)한 다음, 상업화를 통해 실행(implement)한다.
이 다섯 단계 가운데 핵심은 관찰하기다. 혁신은 눈에서 시작하고 충실한 관찰에서 영감이 떠오른다는 게 켈리의 주장이다. 이는 <관찰의 힘>의 저자 얀 칩체이스(Jan Chipchase)의 논지와도 일맥상통한다. 원제에서도 잘 나타나 있듯이 혁신은 일상적으로 너무 잘 드러나 있어 전혀 특별하다고 깨닫지 못한 통찰들을 하나씩 밝혀나가는 작업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물건으로, 평범한 일을 하는 모습 속에서 세계 시장의 문을 열어젖힐 도화선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변(辯)이다.
켈리는 관찰에도 연습이 필요하며, 이는 노력을 통해 충분히 개발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관찰력을 키울 수 있는 한 가지 유용한 방법으로 그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의 관점에서 제품을 생각해 보라”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를 볼 때 휴대 ‘전화하기’로 바꿔 생각하라는 뜻이다. 제품을 고정돼 있는 명사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 녹아드는 활기찬 장치로 동사화시켜 생각할 때 소비자들이 제품이나 공간,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제품에 대한 개선책도 더 잘 찾아낼 수 있다는 게 켈리의 생각이다.
혁신적인 생각과 시도의 대부분은 사람들이 당연시하며 간과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인 덕택에 탄생했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늘 있어 왔던 일이지만 그로부터 만유인력의 법칙을 이끌어낸 건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2∼1727)에 이르러서였다. 똑같은 것을 보더라도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는 혜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smile@donga.com
필자는 서울대 영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석사)을 졸업했고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한국경제신문 기자를 거쳐 올리버 와이만에서 글로벌화 및 경쟁전략 수립 등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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