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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코드 가득한 ‘꽃보다 할배’

이방실 | 134호 (2013년 8월 Issue 1)

 

 

‘꽃보다 할배’. 배우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 평균 연령 76세인할배연예인들이 배낭여행길에 오르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다. 사실여행 버라이어티라는 장르만 놓고 보면 그다지 새로울 게 없다. 하지만 지난 5일 이 프로그램의 첫 방송 평균 시청률은 4.2%, 2회는 4.8%를 기록했다. 케이블TV(tvN)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심지어 동시간대 지상파 방송의 예능 프로그램 시청률에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꽃보다 할배의 성공 원인은 무엇일까. 인간적 얼굴을 가진 혁신에 대해 다룬 <이노베이터의 10가지 얼굴>의 저자 톰 켈리의 주장에 빗대어 본다면 꽃보다 할배는 혁신의 10가지 페르소나 중타화수분자(他花受粉者·cross-pollinator)’이자이야기꾼(storyteller)’이며실험자(experimenter)’의 면모를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타화수분이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아이디어와 콘셉트를 함께 엮어 새롭고 더 좋은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다. 혁신 기업의 대명사인 IDEO의 파트너이기도 한 톰 켈리는 “IDEO의 역사는 타화수분의 역사라고 말한다. 그만큼 혁신을 일궈내기 위해선 이종교배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꽃보다 할배도 타화수분의 공식을 따라 기존 예능의 식상함을 깨뜨렸다. 첫째, 고리타분할 것 같은 노년층을 아이돌 스타들이 판치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끌어들였다. 둘째, 편안하게 효도관광을 받아도 모자랄 이들에게 팔팔한 20대도 고생스러운 배낭여행을 떠나도록 했다. 셋째, 드라마꽃보다 남자의 꽃미남 F4, ‘신사의 품격의 미중년 4인방의 계보를 잇는 꽃할배 ‘H4’를 탄생시켰다. 근엄한 왕이나 장군 역할을 주로 맡아 온 40대 배우 이서진을길이나 찾고, 표나 끊고, 식당이나 수소문하는 짐꾼으로 전락(?)시켜버린 건 보너스다. 이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조합들을 한데 엮어 놓은 결과, 꽃보다 할배는 나영석 PD가 표방한 ‘세상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예능이라는 차별화된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예능에선 보기 드물게 진정성 넘치는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점도 돋보인다. 꽃보다 할배의 제작진은 가식적인 서비스가 판치고 가짜가 넘쳐나는 요즘, 아무리 예능이라도진정성이 없다면 소비자들을낚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간파했다. 이 때문에 캐스팅부터 심혈을 기울였다. 40년 이상 연기자의 길을 함께 걸으며 우정을 쌓아 온 끈끈한 선후배이자 막역한 동료 사이인 배우들을 한데 모은 것. 출연자들끼리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안면을 트게 하는 여타 프로그램과는 출발부터가 달랐다. 그 덕택에 할배 연예인들은 첫 방송부터직진 순재’ ‘미소천사 구야형’ ‘로맨틱 근형’ ‘심통 일섭등 실제 자신들의 성격이 그대로 묻어나는 캐릭터를 드러내며 그들만의 진솔한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 ‘복불복게임 같은 작위적 미션도 없앴다. 대신 배낭여행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출연진 스스로 제한된 예산 안에서 자유롭게 여행계획을 짜면서 자연스레 추억을 쌓아가도록 했다. 제작진은 한발 뒤로 빠져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죽어가면서도 이런 모양이 잔상으로 남을 것 같다는 노배우들의 대화를 조용히 카메라에 담아냈다. 특히나는 요지경에서 끝나지만 젊은이들은 지금 이 시대에 인정을 못 받더라도 새롭고 가치 있는 걸 시도해 보면 훗날 명예로운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배우 신구의 조언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꽃보다 할배가 만약 지상파를 탔다면 시청률이 10∼15%는 족히 달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만약 지상파였다면 아예 프로그램 기획 단계에서 좌절을 맛봤을 수도 있다. 소재와 장르의 다양성 측면에서 지상파보다 훨씬 너그러운 케이블TV에서조차출연진의 연령이 너무 높아 tvN 주 타깃층인 10∼20대 여성들에게 큰 매력을 주기 힘들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었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작진은할아버지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누가 보겠느냐”는 선입견을 뒤로 한 채 과감한 시도를 했고 그 결과 예능 프로그램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모든 혁신의 뒤에는 아무리 리스크가 크더라도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는 실험 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 다만 통하지 않는 방법 1만 가지를 발견했을 뿐이다라는 토마스 에디슨의 명언을 다시금 되새겨볼 때다.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smile@donga.com

필자는 서울대 영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석사)을 졸업했고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한국경제신문 기자를 거쳐 올리버 와이만에서 글로벌화 및 경쟁전략 수립 등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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