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많은 철학자들은 감정을 이성적 판단의 적으로 여겼습니다. 감정에 치우치다 보면 이성적이고 합리적 판단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감정적 충동을 잘 조절해야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게 상식처럼 여겨졌습니다. 감정을 이성의 노예로 치부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과거의 상식이 완전히 깨지고 있습니다. 뇌에 종양이 생겨 감정을 담당하는 부분을 제거한 환자들에 대한 연구 덕분입니다. 일부 환자는 기억, 언어, 연산, 지능 등 완벽한 이성적 능력을 갖고 있었지만 종양 제거로 감정만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분노나 기쁨, 슬픔 등 감정을 겨냥한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았고 심지어 자신이 직접 겪은 비극적 사고를 떠올리게 해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과거 패러다임으로 보면 감정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이성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상적’ 인간이 된 셈입니다.
예상과 달리 이들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직장을 잘 다니지 못했고 배우자와 이혼하거나 비참한 삶을 살기도 했습니다. 자세히 연구해 보니 감정이 마비된 환자들은 합리적 의사결정을 잘하기는커녕 아예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환자들은 어떤 문제 상황에서 여러 대안을 도출하고 각 대안의 장단점을 생각하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었지만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물도 먹고 싶고 귀리도 먹고 싶었던 당나귀가 끝내 어느 것부터 먼저 먹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해 굶어죽었다는 우화처럼 이들은 합리성의 덫에 빠져 큰 고통을 받았습니다. 감정이 배제된 채 이성만으로는 결코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입니다. 이후 후속 연구를 통해 감정은 인지와 의사결정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이성보다 감정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분명히 맞는 이야기지만 무미건조하게 자신의 주장만 펴는 친구에게 사람들은 대개 이런 반응을 보냅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실제로 한 정치인은 옳은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동료 정치인으로부터 “저토록 옳은 소리를 왜 그렇게 싸가지 없이 할까”란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감정적 측면에서 타인에게 다가가지 못하면 이들의 지지를 얻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타인과 감정적 유대관계를 잘 형성하는 사람은 논리가 부족하더라도 상대의 지원을 잘 받아냅니다. 어쩌면 이성의 주인은 감정일지도 모릅니다.
많은 한국 조직들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성과주의 인사관리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주요 성과주의 인사정책의 대부분은 서구식 합리성에 기초했습니다. 철저한 성과 평가 및 보상, 직무에 따른 차별, 역량에 따른 차등 대우 등 감정적 요소는 완전히 배제됐습니다.
사람은 무척이나 감정적인 존재입니다. 한국인은 더욱 그렇습니다. 한국인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잘 행동하지 않습니다. 또 구별이나 차별을 매우 싫어합니다. 너와 나의 구별이 크지 않기 때문에 나와 똑같다고 생각했던 사촌이나 친구가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심리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감정적 유대감이 형성되고 공동의 목표가 주어지면 놀라운 성과를 내기도 합니다.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이나 월드컵 응원 및 4강 진출은 이런 기적의 상징입니다. 이런 응집력은 어떤 나라도 경험해보지 못한 한국 특유의 현상입니다. 기업도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내려면 한국인의 특성에 맞는 새로운 성과주의를 모색해야 합니다.
DBR은 이번 호 스페셜 리포트로 전문가 그룹과 함께 한국형 성과주의의 방향과 모델 및 사례들을 제시했습니다. 과거 성과주의의 모델을 제공했던 일본이나 미국과 다른 새로운 체계를 수립하기 위한 원칙과 방향에 대한 전문가들의 제언을 전해드립니다. 특히 우리나라 조직이 성과를 극대화하려면 한국인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감정적 유대감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조직원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모두가 힘을 합해 목표를 향해 나아가며 성과를 나눌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한다면 ‘감정 에너지’가 극대화돼 불가능한 과업을 성취할 것입니다. 이번 스페셜 리포트가 한국형 성과주의 모델 정착에 기여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김남국 편집장·국제경영학 박사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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