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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a & Business

업무중독, 탈진으로 가지 않으려면…

김상균 | 119호 (2012년 12월 Issue 2)

 

 

A사 이야기

 

올해로 창업 10년을 맞은 A사는 150여 명의 종업원이 근무하고 있는 IT 분야 벤처기업이다. 탄탄하게 확보한 시장이 있고 재무상태와 경영권도 꽤 안정된 상태로 새로운 분야로의 진출도 꿈꾸는 기업이다. 벤처기업의 성장단계상 성공에서 도약 단계로 넘어서고 있는 기업이라 할 수 있다. 창업 때부터 A사를 이끌어 온 L 사장은 아직도 회사 내 그 어떤 직원보다 업무량이 많기로 유명하다. L 사장은 평일에는 오후10시 이후에 퇴근하며 휴일에도 거의 사무실에 나온다. 다만 휴일에는 가족과 저녁을 먹기 위해 6시 전에 사무실을 나선다. L 사장은 하루에 50여 통 이상의 e메일을 보내고 두세 시간 이상 휴대전화를 사용한다. 안으로는 직원들을 독려하고 진행 상황을 체크하며 미진한 부분이 보이면 부서를 가리지 않고 본인이 개입해 업무를 지휘한다. 밖으로는 이전고객, 영업 중인 고객, 미래 고객 등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자사의 제품을 홍보하며 안부를 챙긴다. 일주일에 술을 거르는 날은 고작 하루이틀 정도다. A사의 급여 수준은 동종업계 평균을 조금 상회하고 있으나 L 사장은 창업 초기의 헝그리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본인의 급여 수준은 매우 낮게 유지하고 있다. 직원들은 L 사장의 이러한 업무 방식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L 사장이 일에 역동적으로 관여하고 있으나 일을 대하는 자세가 늘 배수진을 치고 싸우는 전장의 장수와 비슷하며 일을 하며 함께 웃을 수 있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

 

P 이사는 5년 전부터 A사의 경영지원실을 맡고 있다. 스태프 조직의 확장을 극도로 꺼리는 L 사장의 성향 때문에 6명의 직원으로 총무, 재무/회계, 인사를 꾸려가고 있다. 기술이 뿌리가 된 회사 특성상 경영지원을 담당하는 P 이사의 급여는 다른 부서 임원에 비해 낮은 편이다. P 이사는 업무량이 꽤 많은 편이지만 L 사장과 같은 패턴으로 근무하지는 않는다. 일주일 중 야근을 하는 경우는 한두 번 정도이며 주말근무는 극도로 꺼린다. 업무 특성상 사내 여러 부서 사람들과 많은 소통이 필요한데 P 이사는 저녁 술자리보다는 점심식사나 티타임을 통해 사람들과 돌아가며 어울리는 편이다.

 

L 사장은 P 이사의 업무적 능력이나 인간적 성품을 높게 평가하지만 이러한 근무 패턴, 즉 회사를 위해 좀 더 헌신적으로 뛰지 않는 모습에는 많은 불만을 갖고 있다. P 이사가 가진 능력이라면 회사를 위해 좀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텐데 P 이사는 일정 업무 이상을 넘어서지 않으려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L 사장은 P 이사가 늘 밝은 표정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면 회사에 딱히 큰 불만은 없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P 이사는 L 사장의 헌신적 노력은 인정하지만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 L 사장의 업무 연락에는 많은 불만을 갖고 있다. L 사장은 자정을 넘은 시간에도 매우 소소한 일을 체크하기 위해 P 이사에게 전화를 한다. 이는 휴일에도 예외가 없는데 때로는 매우 신경질적으로 P 이사를 몰아붙이곤 한다.

 

중독(Workaholic)과 자족(Satisfied) 사이

 

A사의 상황을 읽고 누군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여러분 또는 주변의 누군가가 L 사장이나 P 이사와 오버랩되지 않는가? 이번 글에서는 업무에 빠진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현재진행형이 아니라 과거에 업무에 빠진 적이 있다면 이 글을 좀 더 심도 있게 읽을 필요가 있다.

 

 

러셀(Russell, 2003)은 개인의 정서 상태를 <그림 1>1 과 같이 분류했다. 이 그림에서 가로축은 업무에 임하는 마음이 즐거운 상태인지, 불쾌한 상태인지를 의미한다. 세로축은 활기가 있는지 무력한지를 나눈다. 이렇게 나눠보면 업무에 임하는 당신의 상태는 크게 A, B, C, D의 네 가지 영역으로 분류된다. 원 테두리에 적힌 정서 상태는 각 영역에서 느끼는 감정을 대표한다.

 

A사의 L 사장과 P 이사는 러셀 모델의 어느 영역에 해당될까? L 사장은 활기차게 많은 업무를 추진하고 있으나 업무에 임하는 자세 또는 주변에서 느끼는 에너지가 즐거움보다는 불쾌함에 가깝다. 따라서 L사장은 A영역에 해당된다. P 이사는 주변사람들과 무난한 관계를 갖고 있으며 업무에 임하는 자세가 유쾌하지만 소극적인 업무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따라서 P 이사는 D영역에 해당된다. A사에 있는 다른 직원들의 시각에서 보면 L 사장이 자신들을 날카롭게 몰아붙이거나 업무 현황에 불만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P 이사에 대해서는 스스로의 업무에 만족하고 있으며 크게 돌출돼 나서지 않으려 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고관여로 승화 vs. 직무탈진으로 추락

 

러셀 모델에서 A영역은 업무 중독에 해당되고 D영역은 업무에 대한 자족 상태에 해당된다 (Schaufeli, 2011). , L 사장은 업무 중독이며 P 이사는 그저 자신의 업무에 자족하고 있는 상태다. 이론을 통해서 설명했으나 A사 이야기만 읽어봐도 L 사장과 P 이사의 상태는 이미 충분히 짐작했으리라 본다. 그러면 나머지 B, C영역은 어떤 상태인가? B영역은 업무에 대해 즐거움과 활기가 넘치는 상태, 업무에 대한 긍정적 몰입 상태, 즉 고관여(Engagement) 상태에 해당된다. C영역은 무기력하며 업무에서 즐거움도 없는 상태로 직무탈진(Job burnout)2 상태에 해당된다.러셀의 정서 모델을 기초로 업무에 임하는 정서적 상황을 되짚어 보면

<그림 2>와 같다.

 

당신의 상태는 어디에 해당될까? 다음의 < 1>을 보고 각자 상태를 체크해보자.

 

 

< 1>에서 질문 1∼5번에 대한 응답의 총합을 I값으로 놓고 질문 6∼10번에 대한 응답의 총합을값으로 놓는다. 이 수치를 바탕으로 < 2>와 같이 본인의 현재 상태를 판단하면 된다. 예를 들어 I값이 12, Ⅱ값이 8점이면 자족상태에 해당된다.

 

 

 

업무중독 상태에 있는 L 사장, 자족 상태에 있는 P 이사. 이 둘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또는 어떻게 돼야 할까? 가장 긍정적인 상황은 모두 고관여 상태로 변화되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직무탈진으로 넘어가는 최악의 상황도 가능하다. 직무탈진을 발생시키는 항목에는 업무 부하, 통제, 보상, 교류, 공정성, 직무 가치의 여섯 가지가 포함된다. 각 항목에서 직무탈진을 유발하는 요인과 고관여로의 전환을 위한 처방은 < 3>과 같다(Maslach & Leiter, 1997).

 

직무탈진의 여섯 가지 발생 요인에 기반해 A사의 L 사장과 P 이사가 고관여 상태가 되기 위한 처방을 내려보면 < 4>와 같다. 중요한 점은 여섯 가지의 모든 요소를 일시에 달성하기도 어렵고 그렇게 하라는 의미도 아니다. 회사의 현황에 따라 실천 가능한 순서대로 단계별로 진행하면 된다. L 사장과 P 이사 모두 현재는 직무탈진 상태가 아니다. 또한 서두에 서술된 내용상 업무에서 크게 도출되는 문제점이 없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현재 드러나는 문제가 아니다. 업무중독과 자족 모두 그 상태가 장기화되고 어떠한 보완적 조치가 제공되지 않는다면 결국 그 상태를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 , 아무런 보완적 조치가 없다면 L 사장, P 이사 모두 직무탈진에 빠지게 된다.

 

업무중독에 빠진 직원을 관리하지 않을 경우 어떠한 문제가 생기게 될까. 업무중독 상태에 있는 직원을 바라보는 경영자 시각에서는 당장은 그리 나쁘지 않다고 여길 수 있다. 어찌됐건 일에 몰입해서 미친 듯이 뛰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늘이 아니라 내일의 결과다.

 

업무중독이 장기화되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직무 만족도가 급격히 낮아진다. 열심히 뛰고는 있으나 좋아서 하는 상태는 아니며 결국 이는 업무에 대한 열의에도 영향을 준다. 둘째, 심신의 건강을 해치게 돼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셋째, 사회적인 교류에 악영향을 준다. 직무 수행과정에서 사람 간의 관계를 해치면서도 성과자체에 몰입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긍정의 교감을 느낄 수 없다. 넷째, 직무에 대한 동기부여에 혼란이 생긴다. 앞서 열거한 요인들로 인해 회피의 수단으로 업무에 매달릴 뿐 직무에 대한 긍정적인 동기가 존재하는 상황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이 장기화되면 업무가 없는 상태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느끼게 되며 직무에 대한 긍정적인 동기를 스스로 부여하는 능력자체를 상실한다.요컨대, 당장은 업무중독 상태의 직원에게 별다른 문제점이 없다고 치부할 수 있겠으나 장기적으로는 어떠한 업무도 제대로 하기 힘든, 더 나아가 스스로 어떠한 동기부여도 받을 수 없는 극도의 무력함과 우울함에 빠져드는 상태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결언

 

전 세계적으로 고관여에 대한 국가별 통계를 살펴보면 중남미와 북미지역이 가장 높게 나타나며 그 뒤로 아시아 지역이 전 세계 평균과 유사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유럽지역은 재정위기가 원인이 돼 평균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조사됐다3 (Aon Hewitt, 2012). 특징적인 사항은 특정 국가의 경제지표와 고관여 수준 간에 유의미한 상관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GDP가 높아지고 실업률이 낮아지면 후행적으로 고관여 수준이 높아졌으며 반대의 상황에서는 고관여 수준이 낮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면 그 다음 단계는 어떻게 될까? 현재의 고관여 수준이 낮게 되면 이는 앞날의 경제적 지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 고관여 수준의 추락은 경제적 지표의 추락과 서로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게 된다. 국가 단위로 조사된 이러한 결과는 직장 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직원들의 고관여도는 기업의 재무적 성과로 나타나고 그 재무적 성과가 다시 직원들을 고관여로 이끌 수 있는 자원으로 쓰인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상황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첫째, 자원이 충분한데도 직원들을 고관여로 이끄는 방향으로 자원 배분을 못하고 있는 조직이 있다. 이는 업무중독에 빠진 직원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제적 보상을 높여서 그 상황을 유지하려는 경우다.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금전적 보상이 외적 동기로 작용해 업무중독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상태가 오래 유지되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금전적 보상 외의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보완하기 위해 자원이 쓰여야 한다.4 또 자족 상태의 직원에게 금전적 보상이라는 미끼만 던져준다고 고관여 상태로 변화되지도 않는다. 적절한 보상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고관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여러 요인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둘째, 자원 부족을 핑계로 직원들을 업무중독으로 몰아붙이는 경우이다. 당장 오늘의 먹거리가 부족하기에 직원들의 고관여 수준을 관리할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직원들을 고관여로 이끄는 과정에 꼭 경제적인 자원만이 소요되지는 않는다. < 3>에서 설명했듯이 긍정적 교류, 공정성, 직무 가치 제공 등의 방법을 통해 경제적인 자원의 소요를 최소화하면서도 고관여 수준을 높일 수 있다. 문제는 경영진의 올바른 현실 인식과 변화에 대한 의지다.

 

최근 3년간 조사를 살펴보면 직장 내 직원 중에서 고관여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는 절반 정도다. 나머지 절반은 이미 탈진 상태이거나 현재 업무 중독 또는 자족 상태에 해당된다. , 절반은 긍정적 상황이고 나머지 절반은 이미 절망적 또는 위험한 상황이다. 5 1의 법칙이 있다. 부정적인 감정, 관계는 긍정적인 감정, 관계보다 5배나 강하게 조직에 영향을 준다는 의미다. 조직 내 절반의 고관여 직원만을 바라보고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반대로 현재 탈진된 직원의 10%만 살려내서 고관여 상태로 전환할 수 있다면 조직이 얻는 성과는 10%를 훨씬 상회한다. 업무중독 또는 자족, 그 애매한 위험 선상에 존재하는 당신, 그리고 주변 동료와 상사를 둘러보자.

 

무능력하기 때문에 탈진하는 것이 아니라 탈진했기 때문에 무능력하게 보일 뿐이다.

 

 

참고문헌

 

Aon Hewitt (2012). 2012 Trends in Global Employee Engagement. Aon Hewitt.

 

Maslach, C. and Leiter, M.P. (1997). The Truth About Burnout. Jossey-Bass.

 

Maslach, C., Schaufeli, W.B., and Leiter, M.P. (2001) Job Burnout. Annual Review of Psychology, 52, 397-422.

 

Russell, J.A. (2003). Core Affect and the Psychological Construction of Emotion. Psychological Review, 110, 145-172.

 

Schaufeli, W.B. (2011). Work Engagement: What do we know?, Utrecht University.

 

 

김상균 강원대 산업공학과 교수 saviour@kangwon.ac.kr

 

필자는 중앙대 제어계측공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산업공학, 인지과학으로 석사, 박사를 받았다. IT 분야의 벤처 및 중견기업에서 10여 년간 근무했으며 2007년부터 강원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9년도에 강원대에서 최우수수업상을 받았고 현재 10여 개 국제저널의 부편집장,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주요 관심 분야는 창의적 혁신과 위험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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