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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Money in the Brain

아이디어가 샘솟는 공간, 따로 있다

정재승 | 54호 (2010년 4월 Issue 1)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창의적인 생각이 용솟음치는 공간은 과연 어디일까? 이 질문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때는 20세기 중반. 조너스 솔크 박사가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하던 1955년 무렵에 있던 일이다. 미국 면역학자 조너스 솔크(Jonas Edward Salk, 1914∼1995)는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해 전 세계 어린이들이 ‘척수성 소아마비(polio)’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해준 장본인이다. 척수성 소아마비란 어린이의 척수 신경에 폴리오바이러스가 침범해 수족 마비 증세를 일으키는 전염병이다. 20세기 초까지 소아마비는 치사율이 5%가 넘을 정도로 어린이들에게 매우 치명적인 질병이었다. (성인도 소아마비에 걸릴 수 있다. 32대 미국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도 성인이 된 후 이 병에 걸려 고통을 당했지만 대통령직을 충실히 수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소아마비 백신 개발을 위해 솔크 박사는 실험실에서 밤 12시까지 실험을 하고 주말에도 연구실에 나와 논문을 뒤적이며 수년 동안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연구에 매진했다. 그러나 소아마비 백신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폴리오바이러스의 활동력이 너무 강력해서, 백신화를 통해 항체 생성만 유도할 정도로 바이러스의 활동 수준을 적절히 억제할 방안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날 그는 가방 하나만 메고 연구실을 나와 2주간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너무 오랫동안 한 가지 생각에만 몰두하다 보니, 해결책도 안 나오고 삶도 황폐해지는 것 같아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는 소아마비 백신에 대한 생각은 잊은 채, 13세기에 지어진 이탈리아의 오래된 성당들을 방문하면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휴식을 취하던 그에게 불현듯 원숭이의 신장 세포에서 얻은 폴리오바이러스의 활동을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이 떠올랐다. 포르말린을 이용해 바이러스 활동성을 줄일 수 있을 거라는 아이디어가 그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성당 안에서 말이다.
 
그는 여행을 중단하고 바로 돌아와 자신의 아이디어를 동물 실험을 통해 테스트해봤다. 결과는 대성공! 결국 그는 이 아이디어로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했다. 여러 제약 회사가 ‘거액의 제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은 소아마비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는 신념으로 이 백신 아이디어를 제약 회사에 팔지 않고 공공기관에 제공했다. 덕분에 전 세계 어린이들이 값싼 백신을 투여받을 수 있게 됐다.
 
그 후 그는 수많은 기부금을 받게 된다. 정부도 그의 연구 지원에 한몫해,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자신의 이름을 딴 연구소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당시 최고의 건축가인 예일대 건축학과 루이스 칸 교수에게 건물 디자인을 의뢰하면서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자신이 수년간 씨름하던 소아마비 백신 아이디어가 연구실에선 안 나오더니 13세기 고성당 안에서 불현듯 떠오른 것으로 보아, 천장이 높은 곳에서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딴 솔크연구소의 모든 연구실은 천장의 높이를 3미터 정도로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우리나라 집들을 포함해 대부분 실내 공간의 천장 높이는 2미터 40센티미터 정도이며 좀 높더라도 2미터 70센티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데, 솔크 박사는 루이스 칸 교수에게 이보다 약 30∼60센티미터 높게 천장을 만들어달라고 제안했다. 루이스 칸 교수는 흔쾌히 그의 부탁을 들어줬고,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솔크연구소는 세상에서 가장 천장이 높은 연구소 중 하나가 됐다.
 
1965
년 설립된 솔크연구소는 생명과학과 생명공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곳으로, 현재 700여 명의 연구원들과 300여 명의 스태프들이 상주해 있다. 절대 규모로 보면 작은 연구소에 불과하지만 노벨상 수상자만 5명을 배출했고 수십 명의 수상자들이 거쳐간 세계 최고 생명과학 연구기관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곳 샌디에이고 솔크연구소에서 연구하는 과학자들 사이에 오랫동안 퍼져 있던 ‘그들만의 미신(urban myth)’이다. 이곳 연구실에선 하버드대나 MIT에 있을 때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더 많이 나오는 데 그 이유가 아마 천장의 높이가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몇몇 신경과학자들과 소비자 행동을 연구하는 경영학자들이 실제로 이 ‘미신’이 사실인지 증명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미네소타대 경영학과 조운 메이어스-레비 교수와 그 동료들은 천장의 높이를 달리하면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창의적인 문제와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문제들을 얼마나 잘 푸는지 테스트해보았다. 천장의 높이는 2미터 40센티미터, 2미터 70센티미터, 그리고 3미터. 실험 결과, 3미터 천장 높이의 방안에서 문제를 풀 때 창의적인 문제(두 개의 서로 다른 개념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문제)를 두 배 이상 더 잘 풀었으며, 2미터 40센티미터 높이에선 창의적인 문제는 잘 풀지 못했지만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문제들(단순하지만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연산 문제)을 잘 푸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8월 세계적인 과학 잡지 <소비자 행동 저널(Journal of Consumer Behavior)>에 실린 이 연구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매우 명확하다. 천장의 높이가 사람들의 창의적인 사고와 집중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넘어, 건축물이 그 안에서 생활하는 인간의 인지 과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영국 심리학자 리차드 와이즈만은 그의 저서 <59초>에서 ‘점화(ignition)’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자극하려면 불을 댕기는 것처럼 창조성을 자극하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해결해야 할 문제를 열심히 생각하면서 마음을 문제 해결에 신경 쓰도록 만든 뒤 완전히 딴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미술관에서 현대 미술 작품을 본다든지, 잡지나 신문을 뒤적인다든지, 인터넷을 무심히 서핑을 한다든지 하는 행동이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에서는 직장 내 직원들이 뒹굴면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있다. 편히 기댈 수 있는 의자, 잡지와 책들, 넓은 유리창, 뇌를 각성시키는 커피나 홍차. 이런 공간이 때론 사무실의 책상과 의자보다 더 생산적인 공간일 수 있다고 창의성 연구자들은 말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란 무심히 고양이의 낮잠처럼 찾아오기 때문이다.
 
편집자주비즈니스에서 성공하려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의식 구조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정재승 교수가 인간의 뇌에 대한 최신 연구 성과 및 경제적 의미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인간 심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필자는 KAIST 물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컬럼비아대 의대 정신과 조교수 등을 거쳐 현재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합리적인 의사결정, 창의적인 문제 해결, 뉴로 마케팅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2009년 다보스 포럼 ‘차세대 글로벌 리더’로 선정되었다. 저서로는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정재승의 도전 무한지식> 등이 있다.
  • 정재승 정재승 | - (현)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부교수
    - 미국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교수
    -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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