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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버스’의 아름다운 추억

박용 | 48호 (2010년 1월 Issue 1)
1970, 1980년대 한국의 코흘리개들은 가슴에 손수건을 한 장 달고, 부모님 손에 이끌려 난생 처음 등교란 것을 시작했습니다. 학생은 됐건만, 곧바로 연필을 쥘 영광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손아귀 힘이 정교해질 때까지 색연필로 백지 연습장에 매일 철조망, 별, 원 등을 반복해서 그리는 ‘글쓰기 워밍업’부터 해야 했습니다. 요즘은 한글을 떼지 않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외계인’ 취급을 받지만, 당시에는 한글을 배운 꼬마가 ‘외계에서 온 천재’쯤으로 느껴졌습니다.
 
노란 개나리가 학교 울타리를 물들이고, 신록이 물들기 시작할 무렵에야 기역, 니은, 디귿으로 시작하는 한글을 배웠습니다. 이때쯤 하굣길 풍경도 달라집니다. 부모님은 사라지고, 아이들은 홀로서기에 나섭니다. 선생님은 노란 병아리 같은 아이들을 줄 세우고, 학교 밖의 주택가 안전한 곳으로 단체 하교를 시켜주셨습니다. 골목길 몇 개를 거치면 아이들 숫자는 금세 줄었습니다. 마지막 아이가 자기 집을 향해 떠나면 하굣길은 끝납니다. 말 그대로 걸어 다니는 스쿨버스인 ‘워킹버스(walking bus)’인 셈이죠.
 
기아자동차는 2001년부터 영국에서 건강하고, 안전하고, 교육적인 아이들의 등하굣길을 위해 ‘워킹버스’ 캠페인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아침 9시 교통량의 20%가 아이들 등교 차량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매일 걸어서 등교를 한다면 거리의 차량 5대 중 1대를 줄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이들 건강도 좋아지고, 걷는 동안 두뇌도 잠에서 완전히 깨기 때문에 등교 후 학습 효과도 좋아진다고 합니다. 게다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기 때문에 사회성도 키울 수 있습니다.
 
문제는 안전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홀로 먼 길을 걸어 등교를 하다 보면 교통사고 등 각종 위험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워킹버스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운전기사 역할을 하는 어른 1명이 앞장을 서고, 차장 역할을 하는 어른 1명이 맨 뒤를 단속하며 아이들을 단체로 등하교시켜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아이들은 집 가까운 곳에서 기다렸다가 ‘워킹버스’에 합류하고, 하굣길에는 집 근방의 ‘정류장’에 오면 무리를 떠나 내립니다. 운전기사와 차장 역할의 어른은 범죄 경력이 없어야 합니다. 교통 지도 훈련도 받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아이 8명에 어른 1명, 유아는 4명당 어른 1명을 배치하도록 하고, 워킹버스 아이들과 어른들은 거리에서 눈에 잘 띄는 옷도 입어야 합니다.
 
기아차는 워킹버스 루트를 개발한 주민과 아이들에게 이 프로그램 운용 방법이 담긴 자료와 길거리에서 눈에 잘 띄는 안전 조끼를 나눠줍니다. 2001년 이후 250개 ‘워킹버스’ 루트를 지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차를 한 대라도 더 팔아야 할 자동차 회사가 ‘등하굣길에 자동차를 타지 말자’는 취지의 캠페인을 펼치는 이유가 선뜻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수 멀캐스터 기아자동차 영국법인 홍보 책임자는 “기아차는 영국 내에서 유일하게 ‘워킹버스’ 프로그램을 후원하는 자동차 회사”라며 “불필요한 자동차 운행을 줄여 거리를 더 안전하게 만들고, 운전자에게 운전의 재미를 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아이들의 교육에 기여하고, 어른은 물론 미래의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줄 수도 있습니다. 이 캠페인이 자동차 회사의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인 도로를 쾌적하고 안전하게 만드는 동시에 건강한 아이들을 키워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에도 기여한다는 것입니다. 작은 캠페인이긴 하지만, 이는 지속가능 경영이 비즈니스 생태계는 물론 인류와 사회 전체를 조망하는 시스템적 사고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죽은 별에서는 어떤 비즈니스도 존재할 수 없다.”
 
미국 아웃도어 업체 파타고니아를 설립한 이본 쉬나드는 환경 친화적인 의류 개발을 선언하며 이같이 선언했습니다. 우린 어떤 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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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

    박용

    - 동아일보 기자
    -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부설 국가보안기술연구소(NSRI) 연구원
    -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정책연구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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