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학생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는다. “교수님께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 누굽니까?” “우리 역사에서 최고의 장군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래전 한국형 전투기 생산 모델을 두고 F16과 라팔이 경쟁할 때, 인터넷에는 두 전투기의 속도, 항속 거리, 무장 등을 제시하며 네티즌의 의견을 묻는 투표까지 돌아다녔다.
우리는 경제력이나 문화 수준, 군사력에서 세계의 어떤 나라도 무시하지 못하는 상위권의 국가로 떠올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몇 번이고 한국의 교육과 인재를 언급할 만큼 교육열도 높아 대졸자 비율이 웬만한 나라의 고졸자 비율보다 높다.
그러나 이 높은 지적 수준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교육과 지식 사회가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이 사고력과 분석력이다. “F16과 라팔 중 어느 게 더 좋은 전투기일까?”라는 질문 자체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 무턱대고 역사상 최고의 장군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른 예를 통해 이런 질문 방식의 오류를 살펴보자.
2차 대전 최고의 탱크는 타이거?
제2차 세계대전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2차 대전 당시 최고의 탱크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독일의 타이거 탱크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타이거 탱크는 대략 1943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했다. 타이거에 장착한 포는 2차 대전 때 사용된 대포 중에서 최고의 명품으로 꼽히는 88mm 포였다. 88mm 포는 원래 대공포로 개발한 무기였는데, 아프리카 전선에서 대(對)탱크 포로도 사용됐다. 그런데 이 포의 위력이 대단해 영국이 믿고 자랑하던 중형 탱크까지 단숨에 파괴해버렸다. 가뜩이나 장갑이 약해 지포라이터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까지 얻고 있던 미군의 셔먼 탱크는 말할 것도 없었다. 88mm 포를 장착한 타이거 탱크는 현존하는 모든 탱크를 파괴할 수 있었다. 그것도 2km 이상 먼 사정거리에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독일군 엔지니어들은 타이거에 최강의 방어력이라는 선물까지 얹어줬다. 탱크의 방호력은 여러 가지 기술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지만, 원시적으로 접근하면 갑옷을 덧대어 입을수록 튼튼해진다. 타이거 탱크는 엄청난 중장갑을 갖췄는데, 덕분에 무게가 56t에 달했다. M4 셔먼보다 20t이나 무거웠다.
타이거는 금세 유럽 전선에서 공포의 대상이 됐다. 탱크 부대끼리 격돌하는 탱크전은 러시아 평원에서 제대로 벌어졌다. 최대의 기갑전이라 불리는, 1943년의 쿠르스크 전투다. 독일군은 약 200대, 소련군은 600여 대의 전차를 투입했다. 이 전투에서 독일군 기갑부대는 타이거 탱크 대대를 독립 부대로 편성해 운영하지 않고 다른 기종으로 구성된 여러 부대에 분산 배치하는 전술을 사용했다. 타이거 탱크가 주는 공포감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오토 카리우스 중위는 종전 때까지 타이거 탱크로 150대의 러시아와 연합군 탱크를 파괴하는 기록을 세웠다.
일부 임무에만 유용한 타이거 탱크
그렇다면 타이거가 최강일까? 전쟁이란 수많은 구성 요소와 필요와 목적으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지휘관이 작전에 필요한 탱크를 선정할 때는 어느 탱크가 최강이냐는 질문 대신 이번 작전의 목적이 무엇이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적합한 기능을 지닌 탱크는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타이거로 돌아와보자. 타이거는 여러 장점이 있었지만 중량이 너무 무거웠다. 따라서 기동력에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타이거는 너무 느려서 제한된 시간 안에 이동하거나 신속하게 보병을 지원해야 하는 임무에서는 거의 쓸모가 없었다.
88mm 포가 지닌 공포의 파괴력 역시 한편으로는 치명적인 약점이 됐다. 포의 반동이 너무 심해 포를 발사하려면 탱크를 세워야 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느린 전차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싸워야 했으니 더 느림보가 됐다. 느린 속도 때문에 공포의 파괴력도 공갈포가 되기 십상이었다. 타이거를 보고 적 탱크가 도망가거나 우회하면 구경만 해야 했다. 88mm 포의 사정거리로 느린 기동력을 보완하기를 바랐지만, 사정거리가 길다고 해도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3, 4km 밖에서 움직이는 탱크를 맞추는 일은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