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글로벌 기업인 GE가 무엇을 만드는 회사인지 한마디로 말하기는 쉽지 않다. 가전, 항공, 전기, 헬스케어, 금융, 미디어, 에너지 등 수없이 많은 사업 부문을 영위하고 있다. 반면 영국의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세계적인 석유회사로 비교적 단순한 영업 부문을 갖고 있다.
업종도, 구조도 다른 두 회사에는 공통점이 있다. 제품의 포트폴리오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 온난화 시대의 요구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새로이 창출되는 신재생 에너지 시장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GE는 풍력 발전 설비, BP는 태양광 발전과 수소 발전 시설의 개발 및 판매에 과감히 투자해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신재생 에너지 시장을 공략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며, ‘리브랜딩(rebranding)’ 전략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리브랜딩은 기존의 기업 정체성을 새롭게 창출해 기업의 무형자산 가치를 높이는 전략이다. BP는 ‘Beyond Petroleum’이라는 리브랜딩을 통해 구글에 이어 세계 2위의 브랜드 가치 기업으로 성장했다.
21세기 리브랜딩 전략의 지향점은 환경 또는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이다. 특히 온실가스 대응 전략은 기업의 생존을 좌우하는 동시에 경쟁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이 위협과 성장의 두 얼굴을 가진 환경 문제에 대한 해법은 무엇인가.
환경 경영 전략이 성공하려면 시장의 메가 트렌드를 읽고 전향적으로 대응하는 최고경영자(CEO)의 혜안과 실행 전략이 필수적이다. 동시에 환경 경영의 목표와 전략을 달성하기 위한 기술과 경영 혁신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전통적으로 새로운 사회·경제적 현상은 규제와 시장의 변화를 가져왔다. 그것이 기업에는 위협과 성장의 기회를 동시에 제공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기술과 경영 혁신에 성공한 기업이 강자로 떠올랐고, 경제와 사회는 발전을 거듭해왔다. 지구 온난화로 대변되는 21세기 인류의 최대 위기는 결국 성공적인 기업의 기술과 경영 혁신으로 극복될 거라 믿는다. 이 같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은 패자로 기록돼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이다. 기업 경쟁력의 원천인 품질 개념은 환경 품질로, 디자인은 환경성을 위한 친환경 설계로 바뀌고 있다. 환경 품질과 친환경 설계로 높아진 원가 부담을 기술과 경영 혁신으로 줄여갈 수 있는 기업만이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다.
필자는 얼마 전 일본 환경경영학회에서 강연을 하던 중 “한국 기업은 오너 중심의 강력하고 신속한 의사결정 체계를 갖추고 있는데도 왜 환경 경영의 대표적인 성공 기업이 없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우리의 초일류 기업이 품질, 디자인, 원가 등 전통적인 경쟁력의 과실에 취해 미래 경쟁력의 원천을 축적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다행히도 최근 삼성전자가 ‘Creating New Value through Eco-Innovation’이라는 야심 찬 녹색 경영 비전을 발표했다. 포스코는 파이넥스 공법의 개발로 원가 및 에너지 사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하고 범그룹 차원의 녹색성장위원회를 구성했다. 한국 기업의 녹색 경쟁력 확보 노력이 본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 환율의 변화에 휘둘리는 가격 경쟁력, 저임금이나 협력 업체의 원가 쥐어짜기 등으로 확보한 원가 경쟁력, 기능성과 편의성 및 미적 감각만을 고려한 디자인 경쟁력, 기능적 품질에 기초한 품질 경쟁력은 더 이상 최첨단(cutting-edge)의 차별적 경쟁 우위 원천이 될 수 없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이라는 거시적 정책 목표는 결국 기업의 혁신으로 현실화돼 그 성공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GE의 ‘에코매지네이션(Ecomagination)’, BP의 ‘Beyond Petroleum’, 도요타의 ‘프리우스’ 신화가 한국에서도 빠른 시일 안에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필자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회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인하대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지속가능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지식경제부 지속가능경영포럼 위원장, 한국환경경영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