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의 대가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인간 문명의 역사를 욕망과 통제의 역사로 봤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더 먹고, 더 소유하고, 더 큰 쾌락을 추구하려는 존재이며, 문명은 이러한 충동을 억제하고 조절하는 과정 속에서 발전해 왔다는 통찰입니다. 현대 자본주의 역시 이런 욕망을 이용해 성장해 왔습니다. 식품 기업은 더 달고 더 짠 음식을 만들고, 플랫폼 기업은 사용자를 더 오래 붙잡아 두는 알고리즘을 설계하며, 광고와 마케팅은 인간의 결핍과 불안을 자극해 왔습니다. 현대 소비사회의 역사는 인간의 욕망을 증폭시키는 데 성공한 ‘욕망 더하기(+)’ 기술과 비즈니스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맥락에서 위고비, 마운자로 등 GLP-1 계열 비만 치료제의 등장은 매우 낯설고도 거대한 사건입니다. 이 약물들은 단순히 체중을 줄이는 다이어트 보조제가 아니라 먹고 싶은 욕구, 즉 갈망 자체를 줄이는 ‘욕망 빼기(-)’ 기술입니다. 심지어 식탐뿐 아니라 술·담배·도박 같은 중독 행동에도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옵니다. 기존의 다이어트가 ‘먹고 싶은 나’와 ‘참아야 하는 나’ 사이의 소모적인 싸움이었다면 GLP-1은 애초에 그 싸움 자체가 일어나지 않게 해 줍니다. 처음부터 덜 먹고 싶어지는 상태를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비만 치료제는 단순한 의약품을 넘어 인간의 갈망을 조절하는 ‘욕망의 스위치’가 됩니다.
미국에서는 수백만 명의 소비자가 동시에 덜 먹기 시작하면서 사회 전체의 칼로리 소비 총량이 줄어드는 ‘칼로리 디플레이션’ 현상이 시작됐습니다. GLP-1 주사제가 빠르게 퍼지고, 복용이 쉬운 경구용 알약까지 더해지며 진입장벽이 낮아진 결과입니다.
GLP-1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소비 효과는 체중감량을 계기로 사람들이 옷차림과 외모, 운동, 취미 생활까지 바꾸기 시작하는, 이른바 ‘디드로 효과’와 맞닿아 있습니다. 실제로 체중 변동이 큰 소비자를 겨냥한 패션 렌털·구독 서비스가 성장하고 있으며 GLP-1 다이어트 약 ‘오젬픽’ 복용 후 얼굴 지방이 감소해 나이 들어 보이게 되는, 이른바 ‘오젬픽 페이스’를 완화하기 위한 리프팅 시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모델 측면에서 GLP-1은 투약을 중단하면 체중과 건강 지표가 다시 악화될 가능성이 높은 만성질환 치료제의 특성상 평생 건강관리 서비스와 데이터를 결합한 ‘구독형 플랫폼’으로 진화할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물론 이 모든 변화가 그대로 현실이 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약물의 안전성과 장기 부작용에 대한 우려, 가격, 윤리적 논쟁 등은 GLP-1 확산의 속도와 범위를 결정할 중요한 변수입니다. 한국은 보험 체계와 규제 환경 등을 감안할 때 미국과 같은 속도로 대중화되기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구용 제품 상용화와 가격 인하가 본격화되는 시점 이후에는 오히려 ‘근육 경제’ 효과가 미국보다 더 빠르고 극적으로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특히 뷰티·패션에 민감한 한국 시장에서는 한 번 임계점을 넘는 순간, 변화의 파고가 훨씬 가팔라질 수 있습니다.
욕망의 방향이 바뀌는 시대, 승자는 단순히 체중감량을 돕는 기업이 아니라 감량 이후의 삶과 라이프스타일을 설계하는 기업일 것입니다. ‘새로운 몸’을 갖게 된 소비자가 어떤 취미와 관계를 선택할지에 대한 상상력과 해법을 제시하는 기업이 이 전환기의 과실을 거둘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이 변화를 몇몇 제약회사만의 과제로만 본다면 자본주의의 다음 장을 읽을 기회를 놓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자본주의의 가장 강력한 연료였던 욕망이 재구성되고 있는 지금, 새롭게 탄생할 시장을 준비하고 싶다면 이번 호가 전하는 변화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