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수 1600만 명을 돌파하며 역대 흥행 2위에 오른 ‘왕과 사는 남자’는 거대한 정치 서사와는 거리가 멀다. 제목 그대로 왕, 그와 함께 사는 남자가 벌이는 2인극이다. 굴곡진 계유정난의 역사를 ‘청령포 속 생존’이라는 1대1의 인간 관계로 쉽고 단순하게 압축하면서 영리하게 관객을 몰입시켰고, 흥행에 성공했다. 주목할 부분은 흥행 공식으로 여겨지는 ‘승자의 서사’가 아니라 ‘패자의 이야기’로 대중의 열광을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이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소비 트렌드가 크게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대중은 해피엔딩과 승리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패배와 무력감을 함께 확인하는 ‘정서적 동기화’로 시야를 넓혀가고 있다. ‘패배를 어떻게 견딜 것인가’를 묻는 서늘한 동기화의 물결을 주목할 때다.
편집자주 | 권문혁 교수가 대중문화 산업의 트렌드를 읽고 히트 콘텐츠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는 ‘흥행의 비밀’을 연재합니다. 시대와 사회, 대중 정서와 문화 산업의 변화를 포착해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흥행의 역사는 늘 예측 불가능한 반전 속에서 쓰인다. 스펙터클한 대규모 전투신이나 자극적인 정사 장면 하나 없는 팩션 사극,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 이야기다. 4월 23일 기준 1664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흥행 2위, 매출액(1606억 원)으로는 압도적인 1위로 올라섰다.
제작비는 105억 원. 그 두 배가 넘는 235억 원을 투입한 ‘휴민트’(198만 명)를 일찌감치 제쳤다. ‘베테랑(1341만 명, 2015년)’ 등의 시리즈를 연속 히트시키며 한국 액션 영화의 대표 주자로 불리던 류승완 감독의 대작을 압도했다. 투입된 자본의 크기가 곧 대중의 환호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흥행의 역설’을 입증했다. 더욱이 OTT의 공세로 관객이 이탈하고 문을 닫는 극장이 늘어가던 위기 속에 거둔 성과여서 그 의미가 더욱 크고 값지다.
세간에선 ‘왕사남 4대 미스터리’가 회자된다. ① ‘예능 입담’ 장항준 감독이 ‘액션 베테랑’ 류승완 감독에게 완승한 것 ② 제작비 105억 원으로 235억 원의 대작을 이긴 것 ③ 흥행이 어렵다는 ‘패자 서사’로 초대박을 낸 것 ④ 죽어가던 극장가에서 1600만 관객이 터진 것 등이다. 대중의 인기에 힘입어 밈(meme)처럼 소비되는 우스갯소리지만 그 속엔 이번 흥행의 역설이 예리하게 녹아 있다.
왕사남이 자본과 장르적 격차를 이겨내고 흥행을 이끌어낸 진짜 비밀은 놀랍게도 이 영화의 가장 단순한 구조에 숨어 있다. 왕사남은 겉으로는 거대한 정치 서사처럼 보인다. 단종이란 비극적인 군주를 중심으로 유지태(한명회)나 이준혁(금성대군) 같은 쟁쟁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권력에 대한 이야기로 비쳐지기에 충분한 요건이다. 그러나 스토리의 살을 발라내고 앙상한 뼈대만 추려내면 매우 직관적인 구조가 드러난다. 왕과 사는 남자라는 제목 그대로 ‘왕 + 남자’가 벌이는 ‘2인극’에 불과하다. 이것이 이 영화의 초대박 흥행 행진을 이끌어낸 숨은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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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문혁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필자는 MBC-TV 시사교양PD로 ‘인간시대’‘PD수첩’ 등을 제작하고 기획했다. 편성국 프로그램개발TF팀장, ‘PD수첩’ CP,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강원대 초빙교수를 지냈다. 대중문화 흥행 비결을 분석하는 개인 연구소 ‘히트 메카닉스’ 대표로 다양한 킬러 콘텐츠 기획을 자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