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이 자유롭게 질문하는 식으로 진행되면 면접자가 지원자의 인성을 깊이 평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첫 질문이나 첫인상, 면접 순서 같은 운에 따라 면접 결과가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연구 결과도 비구조적 면접의 직무 성과 예측력이 우연에 가까울 정도로 매우 낮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에서 비구조적 면접이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이유는 ‘사람 보는 눈’을 믿는 경영진의 편견과 권위의식, 조직의 관성 때문이다. 채용의 공정성과 타당성을 높이려면 직무 분석 기반으로 질문을 표준화하는 등 구조화된 절차와 채점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편집자주 | 책 『노력의 배신』과 『함부로 칭찬하지 마라』를 통해 심리학적 시각에서 고정관념을 깨뜨려 온 김영훈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가 채용 과정의 핵심 절차인 면접에 대한 통념을 깨뜨리는 새 기획으로 ‘면접의 배신’ 3부작을 연재합니다. 많은 기업이 당연시해 온 면접 제도의 허와 실을 분석하는 이번 연재에서 진정한 인재를 선별하는 데 필요한 참신한 시각을 얻어가시길 바랍니다. “이전에 이직을 몇 번 하셨네요. 요즘 사람들이 이직을 많이 하는데 이유를 보면 주로 두 가지인 것 같아요. 상사와의 관계가 틀어졌거나 아니면 더 좋은 연봉과 복지를 원하거나. 지원자 분은 어느 쪽인가요?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면접실에 앉아 있던 지원자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사실 이직 관련 질문이 나오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예상할 수 있는 일이기에 그는 이미 답변을 준비한 상태였다. 지원자가 흔히 준비하는 답변은 “더 넓은 기회를 찾고 싶었다”거나 “본인의 역량을 더 발휘하고 싶었다” 같은 설명이다. 여기에 조금 더 전문적이고 전략적인 표현을 더하면 “장기적인 경력 개발과 성장을 위해 체계적인 경험과 훈련 기회를 제공하는 환경을 찾고 싶었다” 혹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비전을 더 잘 실현할 수 있는 조직을 찾고 싶었다” 같은 답변도 가능하다.
생각해 보면 면접관이 제시한 두 가지 이유는 틀린 말이 아니다. 실제로 지원자 대부분은 상사와의 갈등이나 더 나은 조건 때문에 이직을 고민한다. 이 이유 말고 또 어떤 결정적인 이유가 있을까. 그런데도 뻔히 아는 이유를 왜 굳이 묻는 것인지 지원자 입장에서는 난감할 따름이다. 솔직하게 대답하면 부정적으로 보일 게 뻔하고 준비한 답을 하면 거짓말처럼 들릴 수 있다. 결국 ‘거짓말을 하라는 것인가 아니면 정답 없는 시험을 치르라는 것인가’라는 의구심만 깊어진다. 더 난감한 건 면접관이 ‘상사와 갈등’과 ‘연봉 상승’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하면서 지원자가 준비한 답변이 애매하고 어색해졌다. 상사에 대한 불만을 솔직하게 인정하면 불성실한 사람으로 오해받기 쉽다. 그렇다고 연봉과 복지를 언급하면 당장 돈만 좇는 사람이라는 부정적 인상을 남기는 함정에 빠지고 만다.
또 다른 면접 상황을 상상해 보자. 면접관이 이렇게 묻는다. “요즘 많은 분이 다양한 이유로 이직합니다. 지원자분께서 이직을 준비하게 된 배경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같은 질문이지만 훨씬 부드럽고 지원자가 자기 경험을 자율적으로 설명할 여지를 준다. 결과는 어떨까? 지원자는 준비했던 답변을 자연스럽게 풀어낼 수 있고 면접관은 그의 논리와 태도를 있는 그대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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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younghoonkim@yonsei.ac.kr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필자는 사회심리학자이자 문화심리학자이다. 미국 사우스플로리다대에서 학사, 아이오와대에서 석사, 일리노이대에서 사회심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2년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로 부임한 뒤 2013년 ‘연세대 언더우드 특훈교수’에 선정 및 임명됐고 2015년 아시아사회심리학회에서 ‘최고의 논문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차라리 이기적으로 살 걸 그랬습니다』 『노력의 배신』 『함부로 칭찬하지 마라』가 있다. 삼성, LG, 사법연수원, 초·중·고등학교 학부모 연수 등 각종 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칭찬과 꾸중에 관한 강연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