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엽편 소설: 우리가 만날 세계

60년 후 미래에 깨어난다면

347호 (2022년 06월 Issue 2)

편집자주

올해 데뷔한 신예인 이경 작가가 SF 엽편소설을 연재합니다. SF 장르의 인기는 인공지능, 로봇과학과 같은 과학기술이 바꿀 미래에 대한 대중들의 큰 관심을 보여주는 문화적 트렌드입니다. ‘콩트(conte)’라고도 불리는 엽편소설은 ‘나뭇잎 한 장’에 비유할 정도로 아주 짧은 분량에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담아내는 문학 양식입니다. 짧은 스토리를 읽으면서 작가의 SF적 상상력을 따라가는 동시에 신선한 영감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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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한 빛 속에서 눈을 몇 번 깜빡이면 침대를 둘러싸고 선 가족들의 초조한 얼굴이 선명해진다. 방금 의식을 회복한 환자가 힘들게 웃는다. 비로소 안심한 가족들은 그제야 반쯤 웃고 반쯤 우는 듯한 얼굴로 서둘러 팔을 내밀고 감격의 포옹을 나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그렇게 우아하고 품위 있는 기상은 고전 영화에서나 가능하다는 걸.

실제로 내가 겪은 것은 정확히 그 반대다. 60년의 동면(凍眠)을 끝낸 냉동 인간의 각침(覺寢)은 좋은 말로 사무적이고 솔직히 말해 자잘하게 민망스러우며 다소 추잡스럽기까지 하다.

“앞에 빛 보시고 따라가세요, 옳지. 왼쪽, 이상 없습니다. 오른쪽, 각막이 혼탁해졌네요. 흔한 일입니다, 걱정 마시고요. 인공각막 이식 스케줄 잡을게요. 동면 패키지에 포함돼 있어서 추가 비용은 없어요.”

“선생님, 저 앞에 보시고. 네, 네. 팔 여기까지, 더, 더, 더! 네, 좋습니다. 자, 다리도, 여기까지, 더, 더, 더, 더! 아, 힘드세요. 네, 그렇죠. 침 닦아드릴게요, 괜찮아요. 지금 선생님은 커다란 신생아나 마찬가지니까요. 자, 저 따라 주먹 쥐어 보세요. 옳지, 잘한다. 이거 떼면 절대 안 돼요.”

“네. 물, 커피, 술, 기타 등등 다 안 됩니다. 21일간 절대 금식이시고요, 영양은 수액으로 투여받으실 거예요. 선생님 지금 뭐 한 입이라도 드시면 난리 나요. 네, 장난 아니고요. 60년 동안 아무것도 안 들어가서 안이 다 멈춰 있는데 거기 지금 뭐 눈곱만큼이라도 들어가면 놀라서 선생님 아래위로 다 쏟아내시다 돌아가세요. 네, 진짜 장난 아닙니다. 신체 활성화 프로그램 성실히 이수하셔야 합니다.”

눈을 뜬 첫 사흘간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수시로 드나들면서 내 몸을 이리저리 뒤집고 누르고 문지르고 까보고 찍어보는 신체검사가 이어졌다. 내 주치의는 방에 들어올 때마다 각침 직후가 회복에 가장 중요한 시기이니 의료 스태프들의 지시를 반드시, 토씨 하나 빼놓지 말고, 뭐든 그대로, 의문을 갖지 말고, 뭐가 어떻게 됐든, 꼭 시키는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매번 신신당부를 했다.

그 얘길 백삼십 번쯤 듣고 나니까 사흘이 지나 있었다.



신체가 원만한 회복 과정에 들어갔다는 판정을 받은 후, 상담사와의 면담이 잡혔다. 잠들어 있던 오랜 시간 동안 달라진 세상에 원만히 적응하기 위해선 누구나 전문적인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건 인간 냉동 기술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상식이 된 지 오래다.

상담 시작 후 첫 사흘간은 내내 울기만 했다. 상담실에서도, 복도에서도, 회복실 침대에 누워서도. 심지어 재활 운동 시간에도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나는 희고 거대한 체력단련실 복판에 깔린 매트에 대자로 누워 눈물을 흘렸고, 재활치료사는 묵묵히 그러나 상냥하게 내 허벅지 근육에 걸릴 중량을 착실히 높였다.

60년 전 동면을 선택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때의 기술로는 살아남을 가망이 없던 이들이었다. 당시 보급 단계에 있던 인간 냉동 기술에 격렬히 반발하는 진영조차 치료 가망이 없는 중대 질환 환자가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동면을 시도할 권리는 마지못해 인정했으니까. 나도 3개월 시한부를 선고받은 말기 암 환자였다. 그러나 그때도 사람들은 제각각의 이유로 동면을 선택하기도, 또 하지 않기도 했다. 미지의 미래에 희망을 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지금에 충실하기로 한 사람도 있었다.

나는 전자였다. 그 말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과거에 두고 왔다는 뜻이다. 눈 뜬 나를 위해 가족이 생전에 맡겼던 앨범을 상담사가 전해주었다. 내가 잠든 사이 점점 나이 먹어간 얼굴들은 아무리 보아도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이들이 이제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말이다. 캡슐에 누워 마지막 인사를 나눈 것이 마치 어제 같은데… 아니, 실제로 내게 그건 어제의 일이다. 그러나 상담사는 그 이별이 벌써 60년 전 과거의 일이며,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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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담실 카우치에 눕는 동시에 눈물 콧물을 흉하게 쏟지 않게 됐을 때, 그러니까 이제 상실 이외의 것을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을 때, 상담사는 내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됐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재무관리사는 내가 각침 후 만난 사람 중 가장 쾌활한 사람이었다. 이 발랄한 20대 여성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활기찬 어조로 내가 동면 전 가장 커다란 금액을 묻어놨던 바이오주가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연구 윤리 부정행위로 회자되는 모 사건을 일으킨 결과 30년 전 상장폐지됐으며,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두 번째로 커다란 금액을 묻어놨던 미장 에코주는 한 40년 전부터 경쟁사에 밀려도 아주 옴팡지게 밀려난 나머지 지금은 시장 퇴출 직전인 빈사 상태고, 물론 주가는 유사 이래 최저 수준을 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지금 환율은 사상 최악이라 손절이고 뭐고를 고려할 상황 자체가 되지 않으며, 나름 야망을 갖고 세 번째로 커다란 금액을 묻어놨던 비트코인 역시 최저점에서 매수했다는 나의 희망과 달리 60년 전 반의 반의반 토막으로 꺾였던 바로 그 수준에서 내도록 소폭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다 마침 일주일 전 딱 그 반의반의 반 토막이 났다고 종알종알 알려주었다.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붉은들장미 개량종의 보급이 이번 비트코인 폭락의 원인이라는데 도저히 무슨 이야기인지 따라잡을 수도 없었다.

“에이, 선생님.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부동산 불패 신화만 믿고 전 재산을 강남 아파트에 투자하셨는데 하필 한강이 범람해서 강남 집값이 엄청 떨어진 뒤에 깨어나신 분도 계셨는데요, 뭘. 그런 케이스에 비해 선생님 정도면 아주 선방하신 편이에요.”

나의 망연자실한 얼굴을 보고 재무관리사가 활짝 웃었다. 기운 내라는 듯 환자복에 감싸인 내 어깨를 툭툭 두들기기도 했다. 아직 지나치게 연약하고 민감한 내 피부에 그의 손길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인간에게 품은 신의 진노처럼 느껴졌다.

“예금 금리의 경우 지금은 마이너스인데요, 선생님 동면하시고 34년간 플러스였다가 전환된 거기 때문에 선생님 예금은 원금 정도 유지하신 거라고 보시면 돼요. 그런데 인플레이션이 워낙 있었어 가지고…….”

그가 또각또각 계산기를 두들겨 내게 보여준 숫자는 형편없었다. 내가 그 자리에서 오열하지 않은 건 성인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 있어서였다.

“실질 가치로 따지면 선생님 예금도 손해를 좀 봤죠.”

“좀…이요? 이 정도면… 이건 좀… 이걸로 케이티엑스 정기권은 살 수 있나요?”

혼이 나간 내 앞에서 그는 큰소리로 거리낌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에이, 케이티엑스를 요즘 누가 타고 다녀요. 선생님 재사회화 수업 열심히 들으셔야겠다.”

내가 화를 내야 할지 아니면 따라 웃어야 할지 헷갈려 잠시 입을 다문 동안 재무관리사가 서류를 한 장 넘겼다.

“자, 이제 좋은 소식을 전해드릴게요!”

그리고 그는 명랑한 목소리로 내가 자투리 돈 돌리기 귀찮아 대충 사서 포트폴리오에 방치했던 페니주 하나가 바로 3개월 전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했고, 동면 직전 동생이 스쳐 지나가며 권하기에 그럼 한번 사볼까 해서 샀던 조잡한 이름의 코인이 3000배 상승했으며, 행정 수도 3차 이전이 7년 전 확정되면서 내가 보유한 지방 아파트 가격도 50배 상승했다고 알려줬다.

“또 소액 투자긴 하지만 선생님이 골랐던 ETF들도 소소하게 올랐어요. 두 개는 운용사 도산으로 상장폐지됐지만요. 그래서 지금까지 말씀드린 걸로 계산해보면….”

최종적으로 재무관리사가 내민 핑크색 고급 종이 위에 몇 자리 숫자가 인쇄돼 있었다. 나는 이 숫자가 동면 패키지 비용을 제한 것이 맞는지 두 번 확인하고, 그게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인지도 두 번 확인한 후, 이 정도면 고향으로 돌아가 집을 손보고, 신형 전기차 한 대를 사고, 옷도 몇 벌 사고, 장도 보고, 운동도 하고, 적응도 좀 하며 쉬다 일자리를 찾아 나서기에 충분히 여유 있는 금액인지를 세 번 확인했다. 그는 시종일관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네, 선생님! 그럼요! 요즘 소형차 좋은 거 많아요! 한 이삼 개월 쉬시고 취직하시면 너무 좋겠다! 이제 연금 납부도 재개하셔야죠! 축하드려요! 하고 매번 자기 일처럼 기쁜 목소리로 확인해주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의 손을 잡고 성인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 따윈 내다 버린 채 시원하게 오열했다.



“자, 자! 조시면 안 돼요! 여기 시험 나옵니다!”

강사는 나이가 천차만별인 열두 명의 수강생을 노련하게 얼러가며 지난 시간 동안 한국 사회가 겪은 변화를 가르쳐줬다. 우리들은 10대부터 60대까지 골고루 섞여 있었지만 퇴원 전 마지막 단계인 재사회화 수료 시험에서 FAIL을 받게 되면 이 지루한 강의를 처음부터 다시 이수해야 하는 공통 운명에 처해 있었다. 지난 100년을 요약한 역사와 화폐, 법, 노동 같은 기본 사회 인프라에 발생한 변화, 뉴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인권•시민권•성 인지 감수성 교육, 직업 교육부터 소소하게는 휴대폰 조작법(자판이 사라져 있었다!)과 의료 스캐너를 이용한 무인 자가 처방 시스템 사용법까지, 평균 50년을 자고 일어난 우리가 따라잡아야 할 변화는 끝이 없었다.

우린 미래를 배우기 위해 지루한 강의록을 복습하는 대신 매일 저녁 식사 후 시간 되는 사람들끼리 모여 넷플릭스를 시청하기로 했다. 정확히 말해 이 넷플릭스도 우리가 알던 그 넷플릭스는 아니었지만 강의보다 재미있기는 60년 전과 마찬가지였다.

“이제 암은 다 완치되나 봐요.”

동면 중 두개골을 열었기 때문에 머리가 아직 빡빡 밀린 상태인 10대 남자아이가 주스를 쪽 빨고 말했다. 그렇다. 이제 우리 퇴원 동기생들의 신체는 주스를 마실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소변을 볼 수 있을 정도로 회복돼 있었다. 우리는 그걸 축하하기 위해 매일 저녁 시중에 출시된 모든 주스를 하나씩 맛보았고, 누군가 화장실로 향할 때는 크게 박수를 쳤다.

“내가 폐암이었어.”

남자아이 옆에 앉아 있던 60대 할머니가 자기 가슴을 가리켜 보였다.

“전 난소암이요.”

나도 슬쩍 고백 대열에 끼었다.

“아이고, 젊은 나이에 고생했네.”

남자아이는 오오, 전 뇌종양이었는데, 하고는 다른 주스를 컵에 따랐다.

“난 교통사고.”

이번엔 내 옆에 앉아 있던 20대 여성이 입을 열었다.

“아, 그래서 그, 뭐라더라? 다리를 의체로 바꾸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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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도 다린데, 문제는 내장 쪽이었대요. 전부 파열돼서. 인공장기로 다 바꿀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거 아니면 도리가 없다고 바로 급속 냉동했다고 하더라고요. 전 기억 못 하지만…. 저 지금 절반 정도는 인공일걸요.”

“그렇구나.”

그럼… 저 사람은 마지막 인사를 나눌 기회도 없었겠구나.

“수술 잘돼서 다행이네요.”

묵묵히 주스를 마시고 있던 50대 아저씨가 누구에게랄 것 없이 말을 건넸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달에 건설한 도시에서 우주를 관측하던 천문학자를 덮친 드라마 속 치정 삼각 로맨스로 주의를 돌렸다. 삼각관계에 놓인 셋 중 하나는 지구인이 아니었다. 세상에. 이거 실화 기반이라 했는데!

“다시 눈 뜨면 가장 먼저 뭘 하고 싶어?”

60년 전 냉동 캡슐에 누운 내게 엄마가 물었다.

“음… 여행이나 갈까? 미래를 구경하고 싶으니까.”

사실은, 미래에 도착한다면 가장 먼저 내가 더 이상 아프지 않은지 확인하고 싶었다. 잠든 동안 죽지 않고 무사히 치료됐는지, 그래서 진통제 없이도 살 수 있는 건강한 몸이 됐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3개월보다 더 오래 살 수 있을지를 말이다. 그렇게 솔직히 말하면 엄마의 마음이 더 아플 것 같아서, 나는 여행을 가고 싶다고 에둘러 대답했다. 하지만 엄마에겐 미처 말하지 못한 내 마음도 훤히 들여다보였겠지?

내가 동면에서 깨어난 지금, 2122년 한국 사회에선 개인의 의지에 따른 동면 선택이 합헌 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미래를 당겨와야만 죽지 않을 희망이 있는 사람들에 더하여, 지금 여기서 사는 대신 먼 미래의 세상을 희망하는 사람들도 자유롭게 동면할 수 있다. 지금 이 동면 센터에 그렇게 잠들어 있는 이들이 전부 합쳐 40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이제 단순히 현재를 뛰어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동면하려면 신청하고 10년쯤 대기해야 한단다.

이 많은 사람은 왜 미래로 가고 싶어 하는 걸까? 미래에 뭘 기대하고 있을까?

나는 평범한 일상 하나를 바라고 미래로 왔지만…. 아마 각자 지닌 사연만큼이나 다양한 희망이 있으리라. 부디 모두 무사히 도착한 미래에서 그 희망을 찾을 수 있기를. 나처럼.



이경 소설가 plumkr@daum.net
필자는 서울대 국문과에서 현대소설을 공부하고 신소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소설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로 2022 문윤성SF문학상 중단편가작을 수상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50호 Smart Worcation 2022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