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를 통해 본 세상

올빼미식 늑장공시로 다 가릴 수는 없다

135호 (2013년 8월 Issue 2)

 

 

편집자주

최종학 서울대 교수가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회계학을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회계를 통해 본 세상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이 회계를 좀 더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비즈니스에 잘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2012 23일 금요일 저녁, 주식시장이 마감된 후 ㈜한화는김승연 회장 등 한화그룹 임원 5명이 지난 2011 129일 한화S&C㈜의 주식을 저가에 매각하고 위장 계열사의 부채를 다른 계열사에 전가하는 등 전체적으로 회사에 약 899억 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배임)로 검찰에 기소됐다는 내용을 공시했다. 무려 1년도 더 지난 내용을 갑자기 공시한 것이다.

 

이 공시는 주식시장에 상당한 파장을 가져왔다. 한국거래소 규정에 따르면 대기업이 자기자본금액 대비 2.5%(중소기업은 5%) 넘는 금액과 관련해 횡령 및 배임 혐의가 발생하면 이를 공시해야 한다. 공시 시점은 해당 사실이 확인된 때다. 이 사건은 횡령 및 배임 혐의 금액이 자기자본 대비 3.88%에 해당하므로 공시 대상이다. 그런데 검찰에 기소된 후 1년이 지나서야 공시가 나왔다. 심각한 규정 위반인 셈이다.

 

자발적인 공시도 아니었다. 이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이 조만간 내려질 것이라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한국거래소 공시 담당자가 회사에 연락해 요구한 후에야 ㈜한화는 공시를 했다. 거래소 요청을 받고 곧바로 공시한 것도 아니다. 이후에도 시간을 상당히 지체하다가 주식시장이 문을 닫은 후에야 공시했다.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는 주식이 거래되지 않는다. 이 점을 노려 금요일 저녁이라는 시간을 골라 늑장 공시를 한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내용이 다수 언론에 보도됐다.

 

공시가 나오자마자 주식시장은 발칵 뒤집혔다. 횡령 및 배임 혐의 금액이 커서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해당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한화처럼 시가총액 3조 원 규모의 기업이 갑자기 상장폐지되면 한화 주식을 갖고 있는 수많은 소액주주들은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는 셈이다. 주가 폭락은 물론 보유 주식을 처분하는 자체가 아예 불가능할 수도 있다. 금요일 밤, 거래소는 일단 규정에 따라 월요일인 26일부터 상장폐지 실질심사 결론이 날 때까지 거래를 정지시킨다고 발표했다.

 

거래소는 25일 일요일 급하게 회의를 열었고 토론 결과 상장폐지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월요일인 26일 한화 주식은 거래정지 없이 거래됐다. 주식시장이 열리자마자 한화그룹 거의 전 계열사의 주가가 하락했다. 언론은 한화그룹의 경영리스크가 이 사건을 계기로 크게 부각됐다고 보도했다. 비슷한 상황의 다른 기업들은 더 오랜 기간 거래정지를 당했다가 상장폐지 여부가 결정된 데 반해 한화는 휴일인 일요일에 회의를 열어 결정을 내렸다는 점에서 대기업 봐주기가 아니냐는 비난도 거셌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이 사건이 벌어진 후 2012 8월 중순, 배임행위에 대한 법원 판결에 따라 4년 징역 및 벌금 51억 원을 선고받고 구속 수감됐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배임 및 기타 혐의금액이 6400억 원으로 크게 불어났다. 엄청난 금액이다. 처음에는 9년 징역과 1500억 원의 벌금이 구형됐다가 상당 부분이 무혐의 처리되면서 최종 판결은 상당히 경감됐다. 김 회장 외에 한화그룹 고위 임원 2명 역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한화 측에서 항소 의사를 밝혔으니 앞으로 재판은 상당히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사례를 보면 대기업 회장들은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대부분 집행유예 처분을 받아 판결 직후 석방되곤 했다. 수감되더라도 반년쯤 지나면 질병을 이유로 보석을 신청해 풀려났다. 하지만 최근 대기업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유죄판결 받은 내용을 과거 사건들과 비교하면 형량도 상당히 큰 편이다. 이 때문에 비슷한 배임 혐의로 재판을 기다리는 다른 대기업 회장들도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기도 했다. 수감됐던 김 회장은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로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는 바람에 2013 1월 초 구속 집행정지 결정이 내려져 감옥에서 풀려나 병원에 입원한 바 있다.

  

 

공시지연 이유와 상장폐지 실질심사

 

필자는 한화그룹이나 김승연 회장이 범한 배임 사건에 대해서는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하고 전문가도 아니다. 그 부분에 대해 보다 자세한 정보를 원한다면 판결문을 구해 읽어보면서 법률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다만 배임 혐의에 대해서는 무엇이 배임인지를 명확히 규정하는 방식으로 법률이 개정돼야 할 것이라는 개인적인 의견 정도 갖고 있을 뿐이다.

 

사실 과거 배임죄에 대한 재판 결과들을 검찰 기소 내용과 비교해 보면 검찰 기소는 상당히 부풀려져 있다. 결과적으로 배임죄는 무죄판결 받는 비율이 다른 죄와 비교할 때 상당히 높고 유죄판결을 받을 때 유죄로 인정되는 내용이 검찰이 기소에서 언급한 내용과 차이가 많아 보인다. 경영자가 경영상 판단으로 투자했더라도 실패하기만 하면 배임죄를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법률이 애매모호하고 포괄적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향후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 전문 지식을 갖고 있지는 않으므로 논의의 대상을 법률이 아닌 회계, 그중에서도 공시에 제한하도록 하겠다.

 

먼저 한화그룹이 공시를 1년 이상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보자. 한국거래소 상장규정에 따르면 경영상 중요한 사건은 공시 대상이다. 2011 41일 이전까지는 대주주가 횡령이나 배임으로 판결된 시점에 공시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그러다 41일자로 규정이 개정되면서 자기자본 대비 2.5% 이상의 횡령 또는 배임 혐의가 확인되면 상장폐지 실질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이 강해졌다.

 

한화그룹은 공시를 1년 이상 하지 않은 이유를 규정에 대한 해석이 달랐다고 변명했다. 2011 1월 검찰이 기소하기는 했지만횡령이나 배임 혐의가 확인된 시점법원의 확정 판결을 받았을 때로 받아들였다는 주장이다. 또한 회사 입장에서는 검찰의 기소 금액이나 내용에 동의하지 않고 재판에서 승리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공시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공시규정 개정에서 변경된확인된 시점조항이 2011 1월 벌어진 사건에 소급 적용된다는 점을 연결해서 인지하지 못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2012 2월 한화그룹에 대한 재판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됐고 거래소에서 공시해야 한다는 점을 알려온 후에야확인된 시점의 해석을 잘못했고 본 사건도 소급해서 해당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규정이 바뀐 것을 실수로 몰랐다고 하더라도 규정이 바뀌기 전에 벌어진 일에 소급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반론도 제기했다.

 

필자는 이 주장의 진위 여부를 알지 못한다. 다만기계가 아닌 사람이 하는 일이니 그런 실수를 하거나 규정에 대한 해석상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점은 이해한다. 또한 한 회사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그룹의 여러 계열사가 동시에 관련된 일인 만큼 어느 주체가 공시를 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도 본다. 하지만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에서, 일반 임원이 아니고 회장과 관련된 일에 이렇게 중대한 실수가 있었다는 점은 한화그룹이 공시 인력과 조직을 대폭 보완해서 앞으로는 이런 일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한화 말고 다른 대기업에서, 특히 대주주와 관련된 일로 이렇게 큰 공시 관련 사건이 벌어진 사례는 본 적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언론에서 이 사건을 접한 사람들 상당수가 한화의 설명을 믿지 않는다.

 

어쨌든 검찰에서 최초 기소한 금액 899억 원은 자기자본금액 대비 2.5% 이상인 3.88%에 해당하기 때문에 공시 대상이 될 뿐 아니라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해당됐다. 상장폐지 여부가 최종 결정될 때까지 거래가 정지되기 때문에 한화는 26일 월요일부터 거래정지가 될 예정이었다. 상장폐지 실질심사 제도는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하는 심사가 아니다.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할 심사가 필요한지 살펴보는 1차 심사다. 몇 가지 내용을 간단히 조사해서 상장폐지할 정도가 아니라면 거래가 신속하게 재개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다. 그렇지 않다면 좀 더 자세한 내용을 2차로 심사해서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한다. 따라서 상장폐지 실질심사를 통해 상장폐지 심사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반드시 상장폐지되는 것은 아니다. 이 제도가 만들어진 2009년 이후 한화 사건이 벌어진 2012년 초까지 상장폐지 실질심사를 받은 기업 중 실제로 상장폐지된 기업은 50% 정도라고 한다. 한화처럼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결정을 받은 기업도 상당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1차 심사를 받은 기업 중 약 3분의 1 정도가 상장폐지까지 이르는 셈이다.

 

한화 사건의 파장이 커진 것은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해당하는지 판단한다는 보도내용 자체가 상당한 혼란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자세한 절차를 알지 못하는 필자도 처음에는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하는 심사가 진행될 것이며 심사를 받으면 상당수 기업이 상장폐지될 수 있는 것으로 오해했다. 실제 상장폐지가 결정되면 개인 소액 투자자들이 주식을 거래할 수 없기 때문에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된다. 한화 사건에서도 많은 소액 투자자들이 곧바로 상장폐지되는 것으로 알고 놀라서 민감하게 반응했을 것이다. 이 일 이후 거래소는 혼란을 줄이기 위해 이 제도의 이름을상장 적격성 실질심사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상장폐지라는 용어를상장 적격성으로 바꾼다고 해서 투자자들의 인식이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일이 되풀이된다면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을 만큼 제도를 자세히 소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2013 5월부터 제도의 명칭이 변경됐다.

 

신속한 거래재개 결정의 배경

 

거래소 규정에 따르면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이 되면 15일 이내에 심사를 종료하고 거래를 재개하든지 더 자세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2차 심사인 상장폐지 실질심사로 넘어간다. 1차 심사를 마치는 데 최대 2주라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실제로 한화 사건이 발생한 지 두 달 후 벌어진 하이마트 사건을 보면 이런 과정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어 2차 심사인 상장폐지 실질심사에 들어가면 다시 15일 이내에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한다.

 

하이마트 사례를 잠시 보자. 2012 416, 검찰은 하이마트 선종구 회장 및 몇몇 고위 경영진이 무려 2590억 원을 횡령 또는 배임했다며 기소했다. 이는 하이마트 자기자본의 18%가 넘는 막대한 금액이다. 유진그룹과 선종구 회장 사이에 경영권 분쟁이 벌이지면서 선 회장의 비리에 대한 제보가 접수돼서 검찰이 수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소는 신속하게 하이마트 주식 거래를 정지시켰다. 그리고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해당되는지 심사를 시작했다. 거래정지 14일째인 430, 거래소는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거래가 재개됐다. 거래정지부터 거래재개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14일이 소요됐다. 하지만 한화의 경우 금요일에 사건이 발생하자 일요일 회의를 통해 삼일 만에 거래가 재개됐다. 대기업에 대한 특혜라는 비난이 거세게 제기된 이유다.

 

거래소 심사 조건에는 크게 세 가지 항목이 있다. ‘공익과 투자자 보호’ ‘기업의 계속성’ ‘경영투명성 제고. 거래소는 세 가지 기준에 따라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한다. 이 기준에 비춰볼 때 한화가 상장 유지 결정을 받은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공익과 투자자 보호라는 측면에서 볼 때 상장폐지가 미칠 파장이 상당했다. 상장폐지까지 이르는 기업의 대부분은 코스닥에 상장된 규모가 작은 기업들이라서 소액주주 숫자나 피해 금액이 많지 않다. 반면 한화는 우량 대기업이므로 소액주주가 많고 시가총액이 크다. 만약 한화가 상장폐지된다면 많은 소액주주들의 자금이 그대로 묶일 것이다.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을 테니 공익과 투자자 보호를 위해 상장 유지를 결정했을 것이다.

 

둘째, ‘기업의 계속성측면에서도 이유가 있다. 검찰이 기소한 횡령이 실제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한화는 망할 염려가 없는 우량 기업이므로 회사가 망해서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별로 없다. 셋째, 사건이 발생하자 한화는 금요일 밤부터 주요 임원과 직원들을 소집해 밤샘 작업을 강행, 일요일 오전까지 경영투명성 제고 방안을 마련해서 거래소에 제출했다. 특수관계인과의 거래 승인을 담당하는 내부거래위원회를 설치해 사외이사가 운영하도록 하고 준법지원인 제도의 운영과 이사회 권한, 공시조직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한다.

 

전술한 것처럼 거래소가 이틀 만에 거래 재개라는 결정을 내린 데 대해 대기업 봐주기라는 비난이 여기저기서 제기됐다. 필자는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2010보해양조마니커가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해당하는지 심사할 때 한화보다 훨씬 오랜 기간 거래가 정지됐다가 재개 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 하지만 보해양조나 마니커는 모두 회사 규모 면에서 한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중소기업이고, 당시 회사가 계속 생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매우 컸다. 또한 회사가 투명성 제고를 위한 방안을 마련해 거래소에 제출할 때까지 시간이 상당히 걸렸다. 반면 한화는 첫째나 둘째 조건에 문제가 없었고 투명성 제고 방안을 이틀 만에 제출했으므로 회의를 신속하게 열어 거래 재개를 결정했다는 거래소 설명에 타당성이 있다.

 

한화가 상장폐지 대상이 아니라는 결정은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이다. 검찰이 당시 주장했던 대로 899억 원 모두 증발해버렸다고 하더라도 회사 생존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화보다 작은 회사인 하이마트에서 자본금의 18% 이상을 횡령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거래 재개 결정이 내려진 것과 비교해 보면 한화 자본금의 3.88%가 횡령으로 사라졌다고 해도 상장폐지 결정이 내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누가 봐도 명백하다. 이렇게 명약관화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에서한화가 상장폐지될 것 같다는 식의 기사를 내면서 소액투자자들이 혼란과 공포에 떨어야 했다.

 

누가 혜택을 봤나

 

일요일에 회의를 소집해 거래 재개 결정을 내린 것은 일반적인 일이 아니다. 월요일에 회의를 열어도 되는데 굳이 일요일에 개최했다는 것은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내리겠다는 거래소 의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직원들은 주말에도 출근해서 일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외부 전문가들이 다수 참여하는 상장폐지 실질심사 회의를 일요일에 소집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많은 외부 인사들이 골프나 등산 등의 취미 활동과 가족 모임, 종교 모임 참석 등 개인 일정을 취소하고 일요일에 회의하러 모인다는 것은 매우 특이한 일이다.

 

한화가 보고서를 제출한 직후 회의가 열렸다는 점에서 한화의 보고서를 검토한 후 회의를 소집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미리 회의를 소집해 놓고 보고서가 도착하자 곧바로 결정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정황을 종합해 보면 의사결정을 빨리 내려달라는, 한화 측의 읍소 내지는 상당한 로비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 후 거래소는 심사제도를 정비해서 우량한 회사에 대해서는 심사결정을 빨리 내리는약식심사제도를 도입했다. 한화에 대한 이틀 만의 결정이 일부에서 비난하는 것처럼대기업 봐주기가 아니라면 이와 유사한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을 때 거래소가 일요일에 출근하고 회의를 열어 신속하게 일정을 진행하는지 살펴보면 정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한화 사건이 벌어진 후 지금까지는 거래소가 일요일에 출근해 의사결정을 내렸다는 뉴스를 아직 접하지 못했다. 심사를 빨리 진행하기 위해 약식심사제도까지 만들었으니 이전보다 더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내리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거래 재개 결정을 빨리 내렸다고 해서 일부 비난처럼 대기업이나 김 회장에게 직접 특혜를 줬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컨대 거래 재개 결정을 1주일쯤 후에 내렸다고 해도 한화라는 기업이나 김 회장 일가가 직접 얻는 이익이나 손해는 아무 것도 없다. 1주일 새 한화가 갑자기 증자를 할 수도 없고 김 회장 일가가 주식을 매각할 수도 없다. 만약 매각에 나선다면 중요 정보를 미리 알고 내부자 거래를 했다는 혐의로 더 강한 처벌을 받는다.

 

소액주주 입장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수천 명에서 수만 명에 이를 소액주주들 중 1주일 사이에 주식을 꼭 팔아야 할 사람도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신속한 거래 재개 결정은 소액주주들에게는 상당히 도움이 되는 결정이다. 거래소가 재빨리 결정을 내린 덕분에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 따라서 거래소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칭찬해야 할 일이다.

 

물론 엄청난 비난에 놀란 한화에서 주주들이나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인 측면도 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한화의 기업 평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직접적인 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틀 밤을 새워서 대책을 마련하고 거래소에 제출한 것이리라. 더구나 이 사건이 일어나기 3년 전, 김 회장의 아들 보복 폭행 사건으로 전 국민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는 만큼 한화 입장에서는 불명예를 빨리 씻어내야 할 절박함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 관심을 돌려 한화가 2012 23일 금요일 저녁, 주식시장 마감 후 해당 내용을 공시한 사실에 주목해 보자. 이런 공시를늑장 공시또는올빼미 공시라고 부른다. 낮에는 잠을 자고 해가 진 후에야 활동을 시작하는 올빼미에 빗댄 이름이다. 투자자들이 공시에 잘 신경 쓰지 않는 밤, 그중에서도 주말인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까지 부정적인 뉴스가 특히 많이 공시된다. 주말에 공시된 뉴스가 시장에 반영되는 월요일만 되면 주가가 떨어지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고 해서 외국에서는 이를월요일 효과(Monday effect)’라고 부르기도 한다.

 

올빼미 공시의 효과

 

투자자들의 주의가 집중되지 않는 시간에 악재를 공시하면 주가가 덜 떨어지기 때문에 기업들이 이렇게 늑장 공시를 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내부 결제를 받다가 시간이 흘러서 주식시장이 마감된 오후 4시 이후에 공시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하는 기업들이 있기는 하지만 유달리 금요일 저녁에 악재 공시가 많다는 점을 보면 기업들이 의도적으로 공시 시점을 선택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반대로 호재를 공시하는 시점은 장 중, 특히 오전일 때가 많다. 당일 저녁 TV뉴스와 다음 날 조간신문에 보도될 수 있도록 오전 중에 기자들을 불러 발표하는 것이다.

 

올빼미 공시는 과연 효과가 있을까. 금요일 저녁은 다수 사람들이 개인적인 모임을 갖는 시간이다. 당연히 공시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는 투자자들의 숫자가 적을 것이다. 주말에는 아무래도 집이나 사무실에서 공시를 보기보다는 야외 활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뉴스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진다. 따라서 금요일 저녁에 악재를 공시하면 월요일 주식시장이 열리더라도 주가가 떨어지는 정도가 다른 날 공시한 것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작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월금요일 사이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 사이로 공시 시간이 정해져 있으므로 이 중 올빼미 공시 효과가 큰 금요일 주식시장 마감 이후(오후 4오후 6)에 악재 공시가 집중된다.

 

국내 연구 결과를 보면 이익이 전기 대비 감소했다는 내용이 장 마감 후 공시되는 비율은 무려 65%나 된다. 반대로 이익이 전기 대비 증가했다는 내용은 장 마감 후 공시되는 비율이 44%에 그친다. 악재일수록 장 마감 후 공시 비율이 높다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5일 중에 금요일에 뉴스가 공시되는 비율이 30% 정도로 다른 요일에 비해 상당히 높으며 금요일 공시 내용 중 악재 비중 또한 다른 날보다 높다. 종합하면 결국 금요일 주식시장 마감 후 공표되는 악재의 빈도가 매우 높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과연 기업이 기대하는 대로 악재를 늦게 공시하면 주가가 덜 떨어질까? 실제 연구 결과를 보면 공시시점과 주가와의 관계는 명확하지 않다. 미국 연구 결과들은 늑장 공시를 하면 단기간에는 주가가 덜 떨어지지만 며칠만 시간이 지나면 주가가 계속 떨어져서 장중에 공시한 결과와 크게 차이가 없다는 점을 보인다. 즉 공시 직후에는 과소반응(underreaction)이 나타나지만 시간이 지나 시장에서 공시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게 되면서 주가가 정상 수준을 찾아가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를 주가의 지연반응(delayed response)이라고 한다.

 

주식시장 투자자들은 이기적인 동기를 갖고 행동한다. 그리고 다수 투자자들의 판단이 종합된 결과가 주가로 나타난다. 따라서 주식시장에 대한 연구는 한국이나 외국이나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다. 돈을 벌겠다는 동기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라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주제에 대한 연구 결과는 약간 다르다. 한국에서의 연구는 오히려 금요일 장 마감 후 악재 공시가 공시 직후 주가를 더 떨어뜨린다는 점을 보여준다. 투자자들이 금요일 이후 공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기업 의도와는 정반대의 효과가 나타나는 셈이다. 한국 연구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표본을 사용했기 때문에 앞으로 좀 더 엄밀한 수준의 연구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 만약 미국과 동일한 현상이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올빼미 공시 덕분에 주가 하락폭이 줄어드는 효과는 없다고 봐야 한다.

 

한화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이런 연구 결과는 기업들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국내 기업들은 투자자에게 도움이 되는 중요한 뉴스를 금요일 저녁까지 미뤘다가 공시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그렇게 해도 주가에 미치는 효과가 거의 없거나(미국 연구 결과)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한국 연구 결과)는 증거가 있는데 굳이 공시를 미룰 필요가 없다. 오히려 악재를 일찍 공시해서 아무리 나쁜 뉴스라도 숨기지 않고 제때 공시하는 솔직한 기업이라는 신뢰를 쌓아가는 편이 장기적으로 볼 때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 이후 악재를 호재보다 일찍 공시하는 추세가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법적 책임이 중요시되는 미국 경영 환경에서는 주가를 단 며칠간 유지하기 위해 공시를 미뤘다가 나중에 소송이라도 걸리면 훨씬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번 사건의 결과로 한화그룹 이미지는 김 회장의 폭행 사건 이후 다시 큰 타격을 받았다. 한화그룹이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공시 인력을 보강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으니 약속대로 실천하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한화그룹이 이번 일을 토대로 한걸음 더 발전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앞으로 한화그룹 이미지를 개선하고 투자자들의 신뢰도를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명성을 잃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잃어버린 명성을 다시 찾으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2012 10월로 한화그룹은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해방 직후 탄생해서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발전해 온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다. 여기까지 오는데 한화그룹 임직원도 많이 노력했겠지만 동시에 국민의 지원이 있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앞으로 한화그룹이 약속한 지배구조 개선을 꼭 실천해서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기업으로 재탄생하기를 바란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acchoi@snu.ac.kr

필자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홍콩 과기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을 동시에 받는 등 활발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숫자로 경영하라> <재무제표 분석과 기업가치평가>가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1호 Power of Voice 2021년 05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