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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책임 빠진 ‘사회 책임’ 투자 펀드

최종학 | 39호 (2009년 8월 Issue 2)
녹색 성장(green growth)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환경 위기나 자원 위기로 불리는 현재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는 게 바로 녹색 성장이다. 녹색 성장은 온실가스와 환경오염을 줄이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며, 상당한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 정부는 이미 녹색 성장을 위해 2020년까지 수십조 원의 자금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기업들도 속속 녹색 성장 관련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현대기아자동차는 2013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그린 카 개발을 위해 4조 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금융기관들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있다. 녹색 성장을 추구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들을 만들어 녹색 펀드, 그린 펀드, 에코 펀드 등의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다. 이런 펀드들은 크게 ‘사회 책임 투자(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SRI)’의 일종이다.
 
사회 책임 투자란 기업의 재무 성과만이 아니라 인권, 환경, 노동, 자연보호 등 다양한 사회적 성과를 고려해 투자하는 방식, 즉 지속 가능한 투자(sustainable investment)를 목표로 하는 행동을 말한다. 때문에 투자수익률이 아무리 높아도 술, 담배, 무기 등을 만드는 기업, 환경을 오염시키는 기업, 건전하지 못한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 윤리 경영을 하지 않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들은 다른 기업들에 비해 장기적으로 더 건실하게 성장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러한 기업에 투자해야 투자수익률과 사회 공헌이라는 2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는 뜻이다. 언론에서는 간단하게 ‘착한 투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회 책임 투자 펀드의 역사
선진국의 사회 책임 투자 역사는 50년이 넘는다. 사회 책임 투자가 보편화된 미국에서는 전체 펀드 시장의 10% 정도를 사회 책임 투자가 차지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합한 ESG라는 기준을 세워 기업의 사회적 책임 수행 여부를 평가하는 척도까지 만들었다.
 
한국에서 사회 책임 투자가 등장한 건 2001년 삼성투자신탁이 ‘에코 펀드’를 도입하면서부터다. 그러나 이 펀드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곧 잊혀졌다. 사회 책임 투자가 본격화된 시기는 2004∼5년경이다. 당시 많은 증권회사들은 앞다퉈 사회 책임 투자 펀드를 선보였다. 당시 한 유명 증권회사의 임원은 “사회 공헌에 충실한 기업에 투자하는 일이 단기적으로는 우리에게 비용 지출일지 몰라도, 길게 보면 회사의 브랜드 인지도와 고객 충성도를 높이는 일이다. 사회 책임 투자 의식이 강한 기업은 사고 위험성이나 투명성 문제가 적어 장기간 투자하면 투자수익률이 높을 때가 많다. 이 점은 해외에서도 증명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금융위기 때문에 잠시 주춤했던 사회 책임 투자는 요즘 들어 녹색 펀드나 환경 펀드라는 이름으로 다시 각광받고 있다.
 
사회 책임 투자 펀드의 수익률
그렇다면 사회 책임 투자의 수익률이 일반 투자보다 높다는 게 과연 사실일까? 사회 책임 투자 펀드는 일반 펀드에 비해 여러 제약 조건이 많고, 투자 종목을 선정하는 일도 쉽지 않다. 투자수익률이 높아 보이는 기업이라 해도 사회 책임 투자 조건에 맞지 않으면 투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투자할 만한 기업의 수가 극히 적은 상황에 부딪힌다.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사회 책임 투자 펀드의 수익률이 일반 펀드보다 높기가 힘들다. 일단 사회적 책임을 고려하지 않고 투자 우선순위를 1위부터 10위까지 정한 다음, 이 10개의 종목에 투자를 하는 일반 펀드가 있다고 가정하자. 다른 편에는 1위부터 10위의 10개 기업 중 사회 책임 투자 펀드의 운용 원칙에 맞지 않는 5개의 기업을 제외한 뒤, 11위부터 20위까지의 기업 중 기준에 맞는 5개 기업을 차례대로 선정해 10개 기업에 투자하는 사회 책임 투자 펀드가 있다. 두 펀드의 수익률을 비교하면 당연히 전자가 높을 수밖에 없다. 우연히 1위부터 10위까지의 기업들이 모두 사회 책임 투자 조건에 맞는 기업들일 때만 두 펀드의 투자수익률이 같아진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실제 상당수 해외 연구 결과들은 사회 책임 투자와 일반 투자 사이의 수익률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사회 책임 투자의 수익률이 약간 낮다고 보고하고 있다. 일부 연구는 사회 책임 투자의 수익률이 더 높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극히 소수 의견일 뿐이다. 물론 어느 특정 시점에서 사회 책임 투자 펀드가 다른 펀드들보다 수익률이 높을 수도 있다. 많은 국내 증권회사들은 ‘자사의 A 펀드가 투자수익률 1위’라는 광고를 내보낸다. 이게 거짓말은 아니다. A 펀드의 특정 시점부터 다른 특정 시점까지 기간을 아주 묘하게 선정하면, 그 펀드의 수익률이 1위인 시기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시기는 매우 짧다. 이런 식의 측정 방법을 동원하면 어떤 펀드도 수익률이 1위일 때가 온다. 많은 증권회사들이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펀드를 운용하기 때문에 그중 하나가 특정 기간 동안 1위를 할 때도 다반사다. 물론 이때 해당 증권사는 자사의 모든 펀드 수익률이 1위인 것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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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학

    최종학acchoi@snu.ac.kr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필자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콩과기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을 다수 수상하는 등 활발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숫자로 경영하라』 시리즈 1, 2, 3, 4, 5권과 『재무제표분석과 기업가치평가』, 수필집 『잠시 멈추고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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