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2000포인트를 넘어섰던 종합주가지수가 2년째 하락을 거듭하니 여기저기서 탄식 소리가 들린다. 퇴직금을 몽땅 펀드에 털어 넣었다가 날린 퇴직자, 남편 몰래 비자금을 투자했던 주부, 결혼 준비 자금을 넣었다는 젊은이 등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간 걸핏하면 주식을 사라고 권하던 유명 애널리스트나 증권회사 대표들을 요즘 언론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은 한때 종합주가지수가 3000포인트까지 올라간다고 주장했다. 종합주가지수가 1000포인트까지 떨어졌는데도 항상 지금이 바닥이라고 매수를 권유한다. 양치기 소년도 이런 양치기 소년이 없다.
증권정보업체 Fn가이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증권업계 애널리스트가 2008년 하반기 발표한 9000개 보고서 중 ‘매도’ 의견은 단 하나도 없었다. ‘비중 축소’ 의견도 단 7건에 불과했다. 반면 ‘적극 매수’ 또는 ‘매수’ 의견은 전체 보고서의 84%에 달했다. 주가가 폭락하는 상황에서도 애널리스트들은 계속 주식을 사라는 보고서를 쏟아내고 있었던 셈이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최근 발표되는 보고서의 숫자가 대폭 줄었다는 것이다. 주식시장이 호황일 때는 한 달에 발표되는 보고서만 1500개에 육박했다. 하지만 요즘 이 수치는 400∼500개에 불과하다.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져 일반 투자자들의 궁금증은 더욱 커지고 있지만, 기업 정보를 공급하는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 수는 대폭 줄고 있다.
매도 보고서가 사라진 이유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애널리스트들은 해당 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여서 그렇다고 변명한다. 해당 기업의 전망이 좋지 않으니 주식을 팔라는 보고서를 내놓으면, 그 기업이 애널리스트의 회사 출입을 막거나 정보를 주지 않으므로 매도 보고서를 낼 수가 없다는 설명이다.
애널리스트가 직접 밝히기 힘든 이유도 있다. 애널리스트가 속해 있는 증권회사는 주식거래 중개 업무 외에 기업 상장, 증자, 인수합병(M&A), 자사주 매입 대행 업무 등을 수행한다. 이때 중개 업무를 맡고 있는 고객 기업의 전망이 좋지 않으니 주식을 팔라는 보고서를 내기란 쉽지 않다. 해당 기업이 엄청난 비난을 제기하며 중개 업무 계약을 파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매도 보고서는 종종 주가 하락의 악순환을 가져온다. 애널리스트가 팔라고 추천한 주식을 사는 투자자는 많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면 주가는 더욱 떨어지고, 증권회사의 수수료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M&A 중개도 마찬가지다. M&A 대상 회사가 고평가 상태라는 보고서를 냈다가 그 보고서 때문에 매수자가 사라지거나 매수 가격이 떨어지면 역시 증권회사의 손해는 막심하다. 연기금 등의 기관 투자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형 기관 투자자가 대규모로 투자한 회사에 부정적 의견을 내놓는 것도 망설일 수밖에 없다. 적극적으로 매수 보고서를 발표하는 증권업계가 매도 보고서를 꺼리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내용은 애널리스트들이 이런 행동을 할 만한 요인을 갖고 있다는 뜻이지, 실제로 그렇게 행동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필자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열심히 일하는 대다수 애널리스트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절대 없음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다.
한국 증권회사와 외국 증권회사의 차이
외국 증권회사의 상황은 어떨까. 애널리스트의 보고서 발표 이후 해당 기업 주가 변화를 살펴보면, 외국 증권회사가 보고서를 발표한 뒤에 주가가 움직이는 폭이 더 크다. 투자자들이 외국 증권회사의 보고서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뜻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증권회사의 국적에 관계없이 긍정적 보고서보다 부정적 보고서가 나왔을 때 주가가 반응하는 정도가 더 크다는 점이다. 즉 긍정적 보고서가 나온 후에는 주가 상승폭이 별로 크지 않은 반면, 부정적 보고서가 발표된 후에는 주가가 많이 떨어진다. 일반적으로 외국 증권회사가 한국 증권회사에 비해 부정적 보고서를 훨씬 자주 내놓는 편이다. 외국계 증권회사의 보고서가 나올 때 시장 반응이 더 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