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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목표와 성과지표 일치시켜라

최종학 | 30호 (2009년 4월 Issue 1)
2008
년 12월 우리은행은 직원들에 대한 영업성과 평가 지표(Key Performance IndicatorㆍKPI)를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과거 우리은행은 신규 카드 발급 숫자, 펀드 판매 대금, 대출 잔액 등의 지표로 직원들을 평가했다. 전체 평가 점수 중 이 분야의 실적이 총 30%를 차지했으니 직원 입장에서는 순이익 다음으로 중요한 평가 지표가 아닐 수 없었다.
 
은행이 카드 발급 및 펀드 판매 대금과 같은 지표로 직원들을 평가하고, 그 점수를 승진과 보수에 반영하니 직원들은 고객에게 신용카드 발급과 펀드 구입을 열심히 권유할 수밖에 없었다. 대출 잔액을 늘리기 위해 신용 위험이 있는 고객들에게도 마구 대출을 해줬다. 이는 은행의 수익성을 단기간 향상시킬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상당한 해를 입힐 수 있는 요인이다. 하지만 외형 위주의 성장 전략에 집착한 은행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를 성과 평가 측정 지표로 사용했다.
 
필자는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2006년 한국에 돌아왔다. 귀국 초기에 학교 연구실로 찾아온 은행 직원들이 카드를 만들어달라고 사정하는 통에 곤혹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루에도 수차례 카드나 펀드 가입을 권유하는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지금은 이런 방문이나 전화에 익숙해져 처음부터 단호하게 거절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바로 안 된다고 하기 미안해 곧바로 거절하지 못했다. 열심히 듣는 척하다 직원의 말이 끝날 무렵에야 가진 카드가 이미 많아 어렵다고 거절했다. 이때 직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교수님, 신청만 하세요. 카드 발급 후 바로 버리셔도 됩니다.”
 
필자는 이 대답에 매우 놀랐다. 고객 1명이 카드 신청을 하면 은행은 신용 조회, 발급 결정, 발급, 카드 송부 등 상당한 추가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회사 전체로 보면 상당히 많은 비용이 필요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 회사의 직원이라는 사람이 태연하게 카드를 받자마자 버리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회사의 비용이 증가하는 것은 전혀 개의치 않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애사심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 대답을 필자는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어떤 직원은 한술 더 뜨기도 했다. “카드 적당히 쓰시다 회사에 전화해 더 이상 못 쓰겠다고 하십시오. 그러면 카드 연회비도 면제해줍니다.”
 
카드 발급 후 바로 버리라는 직원이 안 나오려면
은행원들의 이런 극단적 행동은 그 직원이 은행의 이익 극대화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서만 행동한다는 의미다. 은행에서 신규 카드 발급 숫자를 기준으로 보너스를 지급하고 승진 점수를 책정하니, 직원들은 당연히 신규 카드 발급 숫자를 늘리는 데만 집착한다. 일단 카드가 발급되면 고객이 카드를 받자마자 카드를 버리건 말건, 그 직원의 평가와 보수에는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애사심이 있는 직원이라 해도 이런 상황에서는 회사의 비용 증가보다 자신의 이익 극대화에 먼저 신경 쓰는 게 자연스럽다. 개인의 양심이나 도덕의 문제가 아니다. 합리적 개인은 당연히 애사심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실제로는 누구나 좋아하는 것이 돈이다. 금전적 동기가 인간의 행동을 바꾸는 가장 큰 요인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이는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회사의 이익 극대화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키지 못한 회사의 탓이 크다. 즉 회사가 적절한 성과 평가 및 인센티브 제도를 설계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 문제는 성과 평가 지표를 조금만 바꿔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신규 카드 발급 횟수가 아니라 카드 발급 후 특정 기간 동안 쓰여진 카드 개수만 성과에 반영한다고 생각해보자. 이 경우 ‘카드를 받자마자 버리라’고 고객에게 말하는 직원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카드 발급 후 고객이 사용한 금액을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면 어떨까. 은행원은 당연히 카드 발급 숫자보다 어떤 고객에게 카드를 발급하는지를 더욱 중요한 문제로 여길 것이다. 즉 별로 중요하지 않은 100명의 고객보다, 큰 수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1명의 주요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다. 이때 해당 고객은 직원에게 계속 수익을 가져다줄 가능성이 높고, 우수 고객을 확보한 직원은 추가 보너스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해당 직원도 이직률이 낮아질 것이므로 은행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카드 발급 후 바로 해지되는 카드 개수를 집계해 이를 평가 점수 차감 요인으로 반영한다고 생각해보자. 회사에 해를 끼치는 은행원들의 행동은 단번에 사라질 것이다.
 
설사 카드 발급을 권유하는 직원이 정직원이 아닌 임시직이나 계약직 직원이라도 상관없다. 고용 계약이 끝나도 실적에 따라 계속 성과급을 받을 수 있게 해준다면, 계약직 직원도 우량 고객을 발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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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학

    최종학acchoi@snu.ac.kr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필자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콩과기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을 다수 수상하는 등 활발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숫자로 경영하라』 시리즈 1, 2, 3, 4, 5권과 『재무제표분석과 기업가치평가』, 수필집 『잠시 멈추고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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