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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씨티은행의 소비자금융 디지털 전환 전략

지점 70% 통폐합, 급진적 변화의 성공 비결?
변화챔피언·변화요원으로 구성원 참여 이끌어

배미정 | 292호 (2020년 3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한국씨티은행은 2017년 소비자금융 점포 126개 중 90개 점포(70%)를 통폐합하는 내용을 포함한 급진적인 디지털 전환 전략을 실행했다. 2015년부터 계획한 변화는 2017년 실행해 2018-2019년을 거쳐 안착되고 있다. 한국씨티의 변화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경영진이 위기를 변화의 기회로 삼고, 담대한 변화의 비전과 전략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2. 변화를 선도할 팀을 구성하고 이들에게 변화를 이끄는 역할과 권한을 부여해 팀워크를 구축한다.
3. IT와 현업 부서 등 부서 간 협업을 촉진함으로써 업무 생산성을 높이고 직원들의 융합적 역량을 강화한다.
4. 스마트 오피스로 사무 환경을 전면 개선해 수평적인 소통 문화를 확산시키고 업무 효율을 높인다.
5. 금융 서비스의 양극화, 직무 재배치에 따른 근로 의욕 관리, 일자리 축소 같은 장기적인 과제에 대비해야 한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성근(동국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2017년 3월27일, 한국씨티은행(이하 한국씨티)이 소비자금융 지점의 70%를 통폐합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외국계 은행의 급진적 행보에 여론은 크게 들썩였다. 고용 안정성을 우려한 노동조합이 강하게 반발함은 물론, 동네 지점이 없어지는 데 따른 소비자 불편 우려가 커졌다. 국회에서까지 은행법 위반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제동을 걸었다. 씨티 본사가 한국에서 철수하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로부터 3개월 뒤, 온갖 우려와 반발을 뒤로하고 한국씨티는 신속하게 90개 점포를 통폐합했다. 총 43개 점포가 남겨졌는데 서울 수도권 지역의 34개 점포를 제외하면 시도별로 한 개꼴로 점포를 최소화했다. 90개 점포가 사라지는 데 불과 90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현재, 한국씨티는 디지털 전환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성공한 사례로 타 은행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외국계 은행인 한국씨티는 다른 은행 대비 적은 지점망과 직원 수 때문에 리테일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남은 점포를 대형화하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혁신해 디지털 서비스를 개선하는 등 전사적인 디지털 전환 전략을 추진한 결과, 늘 열위에 있던 소비자금융 부문의 고객 수와 자산이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씨티에 따르면 타깃 고객인 WM(자산 관리) 고객1 수는 2018년 전년 대비 4.1%, 2019년 전년 대비 9.2% 성장했다. 예•적금과 투자 상품 잔액 또한 2018년 전년 대비 각각 10.8%, 12.5%, 2019년 전년 대비 각각 17.6%, 16.2%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 같은 변화와 성과를 직접 보고 느끼며 체험한 구성원들의 생산성과 자신감이 커졌음은 물론이다.

누구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결단을 내리고 실제 실행에 옮기는 일은 굉장히 어렵다. 숱한 저항이 따를 것이고 예상치 못하게 발생할 문제들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수십 년간 오프라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운영된 은행이 디지털 체제로 전환한다는 것은 채널의 확장 이상을 의미했다. 그 밑에 깔린 운영 시스템과 구조, 조직문화 등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과거의 오랜 관행을 타파하고 구성원들의 공감과 동의를 기반으로 그들의 행동까지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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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포의 70%를 통폐합한 한국씨티의 과감한 변화는 실행하는 데 90일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큰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2015년부터였다. 그로부터 지난 5년간 ‘디지털 퍼스트(first)’ 전략을 단계적으로 추진한 한국씨티는 현재까지 변화의 속도를 늦추지 않고 있다. 2014년 취임해 디지털 전환 전략을 최초로 구상하고 주도한 박진회 한국씨티은행장은 “5년에 걸친 노력 끝에 그간 디지털 전환의 유의미한 성과들이 확인되기 시작했다”며 “그동안 디지털로 모든 금융 거래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더욱 개인화된, 디지털이기에 가능한 혁신적인 서비스를 내놓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씨티의 디지털 전환 과정은 국내 은행뿐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도전에 직면해 변화가 시급한 다른 업종의 전통 기업들도 참고할 만한 점들이 많다. DBR이 박진회 행장을 비롯해 WM, 전산, 업무 지원, 커뮤니케이션, 노동조합 등 다양한 부서 구성원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국씨티의 디지털 전환 과정과 시사점을 분석했다.

DBR mini box I 한국씨티은행은?

씨티그룹은 1812년 설립됐으며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금융 기업이다. 씨티은행의 전신인 First National City Bank(FNCB)가 1967년 9월 서울 소공동에 기업금융지점을 개설하면서 한국에 첫 진출했다. 초기에는 기업 금융에 전념하다가 1986년 외국계 은행 최초로 소비자 금융 업무를 시작했다. 1989년 프라이빗뱅킹(PB) 서비스, 1990년 24시간 365일 ATM 서비스를 한국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2004년 한미은행을 인수해 한국씨티은행으로 출범했다. 한국 진출 이후 지난 50년간 한국 경제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1970년대 석유파동 때 2억 달러 차관을 제공해 한국의 무역수지 개선에 기여한 공로로 수교훈장 ‘숭례장’을, 1998년 외환위기 당시 210억5000만 달러 대외부채 상환 연장에 기여한 공로로 수교훈장 ‘흥인장’을 받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8억 달러를 증자하고 한미통화스와프가 성사되는 데 기여했다. 매년 아시아 유력 금융지인 애셋(Asset)지와 파이낸스 아시아(Finance Asia)지 등으로부터 ‘최우수은행’과 ‘최우수 외국계 상업은행’에 선정되는 등 우수한 금융 서비스를 인정받고 있다. 2014년 10월 취임한 박진회 행장은 소비자금융의 디지털 전환 전략을 추진하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바일 등 다양한 채널을 결합한 ‘옴니채널(Omni Channel)’을 구축하고 있다. 2019년 9월 기준 전국 43개 점포에서 3528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1. 위기를 기회로 바꾼 역발상

‘7.7%.’
현재 국내 은행의 지점 창구에서 입출금이나 자금 이체 서비스가 이뤄지는 비중은 10%가 채 안 된다.2 간단한 금융 거래는 90% 이상이 모바일뱅킹을 포함한 비대면 채널에서 이뤄질 정도로 디지털은 우리 생활의 일부로 완전히 스며들었다. 더 이상 은행 지점은 금융 ‘거래’를 위한 장소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국에 4700개가 넘는 은행 지점과 창구에서 일하는 텔러 직원의 역할은 여전히 인터넷뱅킹이 없던 시절, 고객의 거래를 대신 처리해주던 때에 머물러 있는 게 현실이다.

2015년 한국씨티는 디지털 시대의 도래에 따른 수익성 악화의 위기감을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본사인 씨티그룹이 일본의 소매금융을 매각하는 등 수익성이 악화된 리테일 부문을 구조조정하기 시작했다. 한국씨티도 2014년 대규모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일부 지점을 폐쇄하는 등 수익성 개선의 조치를 취했지만 지점 운영의 근본적인 비효율성을 해소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할수록 소비자 니즈와 지점 서비스 간의 미스매치는 앞으로 더 커질 게 불 보듯 뻔했다. 일시적인 땜질식 처방으로는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2015년은 정부가 인터넷전문은행의 출현을 위한 규제 완화 작업에 한창이던 때였다. 인터넷전문은행의 탄생과 핀테크(Fintech)의 부흥은 막다른 골목에 놓인 은행 지점들을 절벽으로 몰아붙일 게 분명했다.

이처럼 한창 은행업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던 와중에 박진회 행장은 변화의 기회를 포착했다. 2015년 정부는 금융실명제 규제의 완화를 추진했다. 그동안은 고객이 계좌를 개설하려면 금융회사 창구를 방문해 은행 직원과 대면해 실명을 확인해야 했는데, 규제 완화로 비대면, 즉 온라인 확인으로도 계좌 개설이 가능해진 것이다. 1993년 금융실명제가 도입된 이후 20년 만에 이뤄진 변화이자 카카오뱅크 같은 인터넷전문은행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박 행장은 이번의 규제 완화가 금융권 진출을 원하는 카카오나 KT 같은 IT 회사뿐 아니라 전통적인 금융회사인 한국씨티에도 놓칠 수 없는 기회임을 간파했다. 다른 은행 대비 지점망이 취약하다는 고질적인 약점을 디지털로 한 번에 만회할 기회가 열린 것이다. 디지털 환경에서라면 한국씨티도 얼마든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박 행장은 “규제 완화가 발표된 후 신규 사업자뿐 아니라 기존 은행도 적용받을 수 있는지 금융당국에 거듭 확인했다”며 “디지털 전환을 추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전통적 리테일 은행은 물리적인 지점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ATM, 콜센터, 인터넷, 모바일 채널을 추가하는 식의 멀티채널 전략을 운영해왔다. 즉, 은행 비즈니스의 핵심 채널은 여전히 오프라인 지점이었다.

하지만 인터넷 세상에서 태어난 디지털 원주민들에게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구분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들은 필요할 때, 원하는 서비스를 가장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길 원할 뿐이다. 공급자인 은행도 고객 니즈에 부응하려면 온•오프라인의 경계를 없앤 옴니채널(omni-channel)로 변화해야 한다. 그렇다면 미래의 은행 지점은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디지털 뱅킹이 비즈니스의 핵심이 되고, 오히려 지점이 보조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면 지점은 과연 어떤 형태가 돼야 할까? 디지털 뱅크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온 미래다. 모든 것을 완전히 뒤집어서 처음부터 새롭게 생각해야 했다.


2. 전사적 변화 관리의 시작

1. 변화관리운영위원회와 변화챔피언그룹 구성
2014년에 실시한 구조조정을 반면교사로 삼았다. 한국씨티는 수익성 개선을 위해 2014년 기존 190개 지점의 3분의 1에 달하는 56개 지점을 통폐합하고 직원 650명을 희망퇴직시켰다. 최대
5년 치의 급여를 퇴직금으로 지급하면서 2260억 원의 대규모 비용이 발생했는데 물리적인 비용도 컸지만 보이지 않는 비용이 더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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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구조조정은 마이클 코벳 씨티그룹 회장이 방한한 직후, 노조를 포함한 구성원과의 충분한 상의 없이 갑작스럽게 발표하고 실행됐다.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시행된 변화는 남아 있는 구성원들에게는 상실감과 무력감의 상처를 남겼다. 특히 1인당 최대 5년 치라는 고액의 퇴직금을 지급한 희망퇴직은 남겨진 직원들의 업무 의욕도 떨어뜨렸다.

급진적인 변화를 추진할수록 고객과 직원 등 이해관계자들의 불편이 커지고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에 단계적으로 구성원 간의 긴밀한 소통과 협의를 거치는 과정이 중요하다.

한국씨티는 우선 소비자금융그룹의 주관하에 변화를 선도적으로 추진할 협의체를 만들었다. 그룹장의 주도하에 2주에 한 번씩 회의를 진행하며 차세대 소비자금융 전략의 밑그림을 그렸다. 이 협의체는 2017년 3월 은행 차원의 전사적 공식 협의체인 변화관리운영위원회(Transformation Steering Committee)로 발전한다. 디지털 전환은 곧 전사적인 채널 전략의 변화를 의미했다. 은행장이 직접 운영위원회를 주관했으며 소비자금융뿐 아니라 기업금융그룹 등 다양한 관련 부서의 임원과 관계자 40여 명이 참석해 준비 단계에서부터 실행까지 변화의 모든 과정을 관리했다. 회의 참석자와 주기는 상황과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정해졌는데 특히 대외적인 전략 공개 발표를 앞두고는 주 1회 이상 수시로 회의가 열렸다.

변화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구성원들의 태도다. 한국씨티의 대다수 직원은 앞선 구조조정의 경험 때문에 변화에 소극적인 편이었다. 회사는 직원들이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동참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전환하는 데 특별히 신경 썼다. 예컨대, 과거 구조조정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서 내부적으로 구조조정이란 말 대신 ‘영업점 통폐합’ 같은 미래 지향적인 용어를 쓰기로 정했다. 또 2016년 6월 변화챔피언그룹(Engagement Champion)을 출범시켜 직원 커뮤니케이션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역할을 맡겼다. 전사적으로 챔피언들에게 변화를 선도하는 역할과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챔피언은 현장의 소리를 직접 듣고 소통하기 위해 실무자 위주로 부서장, 본부장의 추천을 받은 다음에 개인의 자발적인 참여 의사를 확인해서 선발했다. 최종적으로 행원에서 부부장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급과 부서의 리더 15명이 챔피언으로 선정됐다. ‘챔프’라고 불린 이들은 매달 소비자금융그룹장과 만나 은행의 전략과 방향성을 논의하고 동료들의 피드백과 의견을 공유했다. 직원들은 자발적으로 변화의 아이디어를 냄으로써 주도적으로 변화 과정에 참여할 기회를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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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보의 장벽을 제거
박 행장은 2014년 취임 후 맛집 탐방, 지점 방문, 열린 소통, 워크숍, 타운홀 미팅 등 다양한 형태로 직원들을 만나 은행의 전략을 적극적으로 공유했다. 2017년 말까지 다양한 종류의 미팅이 총 110여 회에 걸쳐 진행됐으며 누적 약 5000여 명의 직원이 참여했다. 특히 ‘열린 소통(Open Communication)’ 프로그램은 직급별, 연령별, 부서별로 경영진이 다양한 직원을 만나 회사의 전략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2016년과 2017년 총 31회에 걸쳐 약 1300여 명의 직원이 성북동 한국씨티은행 뱅크하우스에 초대돼 경영진과 식사하면서 은행의 미래를 두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 그에 앞서 2014년 9월 한국씨티는 은행권에서 선제적으로 은행장을 포함해 직급 대신 호칭을 ‘님’으로 통일하는 제도를 시행했는데 수평적인 호칭 문화는 경영진과 직원들이 격식의 구애를 받지 않고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는 데 도움이 됐다.

변화를 앞둔 직원들의 관심사는 연령이나 직급별로 크게 달랐다. 관리자급 직원들은 실적이나 희망퇴직, 점포 폐쇄 같은 당면 이슈에 주목한 반면 상대적으로 젊은 직원들은 승진과 경력 개발, 육아, 여행, 스마트 워크, 해외 근무 등 본인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컸다. 경영진은 디지털 전환에 따라 은행업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설득하면서도 직원들의 서로 다른 관심사를 충족시키려고 노력했다. 직원들은 경영진과의 소통을 통해 앞으로 닥칠 디지털 전환에 관한 회사 정보를 미리 파악함으로써 스스로 변화에 대비할 수 있었다. 내부 소통을 통해 경영진과 직원 모두 디지털 전환의 비전과 방향성에 차츰 정렬(align)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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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비대면 디지털 서비스의 선제적 개선
지점 통폐합에 따른 가장 큰 우려는 바로 지점 내방에 익숙한 고객의 불편이 커지는 것이었다. 한국씨티는 예상되는 고객 불편에 대응하기 위해 지점 통폐합에 앞서 선제적으로 2016년 인터넷과 모바일뱅킹 등 비대면 거래의 접근성과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특히 모바일뱅킹은 소비자를 만나는 가장 가까운 접점으로서 ‘디지털 퍼스트’ 전략의 핵심 채널이다. 한국씨티는 우선 기존 은행, 카드로 구분돼 있던 앱을 하나로 통합하고, 앱의 UI와 UX를 사용자 중심으로 전면 개편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글로벌 뱅킹 서비스를 벤치마킹하는 한편 기획 단계에서부터 로그인, 공인인증서, 신규 상품 가입 등 처음 방문하는 사용자 입장에서 불편한 요소들을 찾아내 개선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또 모든 고객이 영업점을 방문하지 않고도 웬만한 거래는 모바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앱에 대부분의 금융 서비스와 기능을 탑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 같은 노력 끝에 2016년 말 국내 최초로 로그인 없이 계좌 조회가 가능한 ‘스냅숏’ 서비스, 공인인증서 없는 이체 서비스를 탑재한 앱 ‘씨티 모바일’을 선보인다. 특히 한국씨티는 고객 중 자산가 비중이 높은 점을 감안해 WM 서비스를 앱에 반영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WM 고객도 디지털을 통해 본인의 자산 현황을 한눈에 파악하고, 자산 관리에 필요한 내용을 안내받을 수 있도록 디지털 서비스의 접근성을 높였다. 그렇게 탄생한 앱 ‘씨티 모바일’은 다른 은행보다 앞선 혁신적인 모바일 금융 서비스를 인정받아 2017년 한 해에만 멀티미디어기술대상 미래창조과학부장관상, 이노스타 인증 모바일뱅크 부문 혁신상품 1위, 모바일어워드코리아 금융 서비스 분야 대상 같은 외부 상들을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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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씨티가 점포 통폐합에 따라 발생할 고객 민원에 사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민원 관리 시스템을 개선한 점도 눈에 띈다. 한국씨티는 해마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하는 은행별 10만 고객당 가중 민원 건수에서 항상 은행권 최다 건수를 기록해 소비자 보호에 꼴찌 은행이라는 오명이 따라다녔다. 이런 불명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박진회 행장은 취임 직후 2015년 새해 첫 일성으로 ‘민원 없는 은행을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민원 감축 실적을 직접 챙겼다. 매월 금융소비자보호총괄책임자가 주재하는 금융소비자보호협의회, 소비자금융그룹장이 주재하는 CGF(Complaint Governance Forum), 은행장이 주재하는 임원 회의 등을 통해 ‘민원 없는 은행(Complaint Zero)’을 고정 의제로 삼아 논의했다. 내부적으로 민원 관리(VOC, Voice of Customer) 시스템을 도입해 글로벌 표준에 맞게 민원 관리 시스템을 전면 개편3 하는 한편 외부적으로 제보자에 대한 포상금을 인상하고 은행 사칭 불법 대출 광고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 소비자 민원을 해소해나갔다. 금융감독원의 금융회사별 민원 건수 발표 자료에 따르면 한국씨티은행의 민원 건수는 매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가장 최근 발표 연도인 2018년도의 경우 개별 회사의 민원 건수가 적어 아예 발표에서 제외될 정도로 민원이 눈에 띄게 줄었다. (그림 2) 박 행장은 “민원 응대 시스템을 사전적으로 개선함으로써 2017년 영업점 통폐합에 따라 발생하는 고객 불편 민원을 관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모바일 앱의 혁신, 민원 감축 같은 프로젝트는 본격적인 디지털 전환에 앞서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이처럼 대외적으로 인정받은, 작지만 유의미한 성과들은 임직원들이 확신을 갖고 더 큰 변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3. 거대한 변화, 신속한 실행

2017년 3월27일 한국씨티는 ‘성장을 위한 차세대 소비자금융 전략’을 발표하면서 점포 통폐합의 구체적인 계획을 처음 외부에 공개했다. 차세대 소비자금융 전략은 자산가 고객층, 중소기업 고객, 디지털 친화 고객을 타깃으로 했다. 씨티모바일 앱의 성공적 출시와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발판으로 △WM센터 확대 △ 고객가치센터 및 고객집중센터의 신설을 통한 비대면 역량 강화 △여신영업센터 개점 등 급변하는 디지털 금융 서비스 환경에 발맞춘 조직 개편을 골자로 했다. 이를 위해 수익성이 떨어지는 소형 점포를 통폐합해 전체 영업점 수를 40여 곳 이하로 최소화하고 해당 인력을 대형화된 WM센터와 여신영업센터 등으로 재배치하겠다고 밝혔다. 가능한 모든 업무를 디지털 채널로 전환하는 동시에 오퍼레이션 업무 프로세스는 본부로 집중시키는 한편, 영업점은 WM이나 여신 같은 주요 고객 응대 서비스에 집중하는 쪽으로 개편하겠다는 의미였다. 브랜단 카니 당시 소비자금융그룹장도 “영업점보다 디지털이 더 중요하다. 디지털을 중심으로 WM센터, 여신영업센터, 고객가치센터, 고객집중센터를 통해 고객의 변화하는 니즈를 지원하겠다”고 분명한 변화의 비전을 공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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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과연 몇 개의 점포를 남겨둘 것인가, 그리고 얼마나 빠르게 통폐합 절차를 진행할 것인가는 고객과 직원 모두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감하고도 중요한 전략적 의사결정이었다. 디지털 환경에서 수익성이 악화하는 소형 점포들의 통폐합은 불가피하지만, 과격한 변화는 고객과 직원 모두의 반발을 키우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한 번에 많은 점포를 통폐합할 것인지, 시간을 두고 서서히 통폐합할지를 두고 경영진 사이에서 오랜 고민이 이어졌다. 정답이 없는 문제였다. 경영진은 결국 한 번에 많은 점포를 없애는 쪽으로 결정했다. 점포의 축소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 여러 번의 작은 충격을 겪기보다는 한 번의 큰 충격을 감당하는 것이 오히려 조직의 피로도를 줄이는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향후 최소 3년 정도는 점포를 더 없애지 않아도 될 수준으로 선제적으로 조치하는 게 최선이라는 판단이었다.

전략 공개 발표 직후인 4월, 회사는 전 행원을 대상으로 ‘직무 설명회(Job Fair)’를 열고 전체 영업점 133개 중 101개의 폐점 계획을 밝혔다. 이에 따라 영업점에서 일하던 직원 1050명의 직무가 재배치돼야 했다. 갑작스런 변화를 앞두고 불안해하는 직원들에게 사측은 디지털뱅크로 변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임을 설득하면서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으며 개인별로 원하는 직무에 최대한 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장 노조와 더불어 정치권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다. 지점의 대거 축소로 소비자 권익이 침해되고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며 반대했다. 일부 소비자도 당장의 불편에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대응해 한국씨티는 ‘씨티 모바일’ 앱의 홍보를 강화하는 한편 타행 ATM 수수료 면제 혜택, 우체국과의 제휴 등을 통해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는 데 총력을 다했다. 또 지점 인력을 고객가치센터와 고객집중센터 같은 비대면 채널에 배치했다. 또 기존 외주 업체 파견직은 순차적으로 계약을 해지했지만 대신 창구 텔러, 사무계약직 등 계약직 35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약속했다. 인력 재배치로 인한 근로시간 연장을 방지하기 위해 당시 은행권 최초로 오후 5시30분에 PC에 차단창이 내려오는 PC-OFF 제도를 신설하고 10일 연속 휴가 제도도 시행하기로 했다. 노조와의 수차례에 걸친 협상 끝에 사측은 당초 계획에 따르면 지점이 한 곳도 남지 않게 되는 제주, 경남, 울산, 충북 등 일부 지역의 점포 11곳의 폐점 계획을 철회, 당초 101개에서 90개로 점포 통폐합 규모를 줄이기로 합의했다. 이렇게 노사는 3개월 만에 최종안에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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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점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은 사내 공모를 통해 본인이 원하는 직무에 지원하고, 전문적인 면접과 투명하고 공정한 평가를 거쳐 새로운 직무를 배정받았다. 사측의 전략에 반대하는 등의 이유로 공모에 참여하지 않은 인원이 약 10%에 이르렀지만 그 외 대다수 직원은 본인이 제시한 2순위 안에서 원하는 직무에 배치됐다.

7월 초 노사 합의가 마무리되자마자 한국씨티는 신속하게 점포 통폐합 작업을 진행한다. 90개 점포가 사라지는 데는 불과 90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일주일에 최대 10개의 점포를 철수한 셈이다. 경영진은 전산 및 기타 지원 상황을 감안하면서도 최대한 빠른 속도로 통폐합을 실행에 옮겼다. 논란과 저항이 큰 사안이었던 만큼 빠른 속도로 실행해야 구성원들이 하루빨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변화의 추진력을 이어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4. 일하는 방식의 변화

1. 팀 기반 WM 자문 체제 구축
한국씨티는 소형 점포들의 통폐합을 추진하면서 점포의 WM 기능은 따로 분리해 ‘메가 점포’로 이전했다. 2015년 반포WM센터를 시작으로 기존 지점의 WM 기능을 권역별로 클러스터화함으로써 WM센터를 대형화했다. 현재 반포, 서울(광화문), 도곡, 청담, 분당, 대구, 부산, 광역(대전, 광주, 안산, 경인) 등 총 8개 WM센터가 권역의 WM사업을 총괄하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개별 지점에 한두 명씩 배치돼 있던 PB들이 센터에 모이면서 센터당 80명 안팎의 PB들이 함께 일하게 됐다. 디지털 서비스를 강화하면서도 WM센터를 남겨두고 대형화한 이유는 무엇일까. 돈 관리에 민감한 자산가들, 특히 고령층 고객들은 전문가를 직접 만나 대화하고 관계를 형성하고 싶어 한다. 그래야 안심하고 돈을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WM센터는 자산가들의 그런 니즈를 충족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편됐다.

특히 WM센터를 대형화하면서 팀 기반의 투자 자문(Team Based Advisory) 서비스 체제를 구축했다. PB 개인이 관리하던 고객을 전담 PB 외에 포트폴리오 카운슬러(PC), 보험, 외환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팀이 관리하도록 시스템을 바꾼 것이다. 고객의 포트폴리오 데이터를 중심으로 보다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체계적으로 컨설팅하기 위한 조치였다. 팀은 종합자산관리시스템(TWA)에 구축된 표준화된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 투자 성향에 따라 최적의 자산 분배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대다수 은행 고객의 자산 관리는 PB 개인의 지식과 역량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칫하면 편향된 고위험 투자 제안이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한국씨티의 팀 기반 투자 자문 체제에서는 PB 개인이 마음대로 특정 상품 비중을 높일 수 없다. PB의 핵심성과지표(KPI)에도 포트폴리오가 얼마나 분산돼 있는지를 평가하는 씨티분산화지수(CDI)가 반영된다. 김기영 WM 서울센터 포트폴리오 카운슬러는 “6개월에 한 번씩 PB 팀장과 개별 고객의 포트폴리오를 리뷰하면서 투자 자산의 배분 리스크를 관리한다. 포트폴리오 카운슬러의 KPI는 상품 실적과 무관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진단과 조언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2019년 일부 은행의 불완전판매 문제가 불거진 DLF 같은 고위험 상품은 한국씨티의 규정상 글로벌 투자위원회가 제시한 모델 포트폴리오 기준에 맞지 않기 때문에 아예 판매조차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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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노베이션팀과 현업 부서의 협업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과정에서 부서 간 협업과 역량 개발이 촉진됐다.
2016년 11월 윤종웅 당시 전산본부 과장은 은행장과의 열린 소통 자리에서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obotic Process Automation, RPA) 프로젝트를 제안했다가 바로 이노베이션팀의 창립 멤버로 발탁됐다. 윤 과장 포함, 30대 중반의 과장급 전산본부 개발자 3명으로 구성된 이노베이션(Innovation)팀은 다른 부서와 달리 굉장히 애자일(agile)한 방식으로 자율적으로 운영됐다. 윤 과장은 “팀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화이트보드를 설치해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을 칸반4 팀원들은 출범 초 한 달 동안 자유롭게 외부 워크숍을 찾아다니며 프로젝트에 필요한 새로운 기술과 빠른 실행에 필요한 애자일 조직문화를 학습했다. 그리고 개별 부서들과의 내부 워크숍을 통해 RPA가 적용 가능한 업무 니즈를 파악했다. 3명의 팀원이 다른 부서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주고받는 e메일 양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팀은 빠른 업무 처리와 의사결정을 위해 줄글 대신 포스트잇을 붙인 칸반 사진을 그대로 찍어 e메일로 보내기도 했다. 윤 과장은 “e메일을 쓰는 데 불필요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며 “일반적인 업무 보고 관행에서 벗어난 파격적인 방식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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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019년 여신심사업무에 RPA 기술을 도입한 사례는 이노베이션팀이 씨티비즈니스의 현업 담당자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해 시너지를 발휘한 성과로 주목할 만하다. 씨티비즈니스의 여신심사역들은 이 프로젝트를 위해 직접 코딩을 배우고 개발 단계부터 참여했다. 전문 개발자가 아닌 실제 소호대출 여신심사를 담당하는 심사역 4명이 약 2주간 현업에서 벗어나 이노베이션팀에서 집중 코딩 연수를 받았다. 심사역들은 40대 초반에서 50대 중반의 중간관리자들로 과거에 전산 개발을 해본 경력이 전혀 없었다. 이들을 교육한 윤 과장은 “스스로 업무의 불편함을 해소해보겠다고 나선 이분들의 용기와 더불어 이분들이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도록 업무를 배려해준 본부장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프로젝트였다”고 말했다. 윤 과장 또한 직접 여신심사팀에서 심사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여신심사의 실전을 익힐 수 있었다. 프로젝트를 통해 IT와 현업의 부서 간 사일로(silo)가 자연스럽게 허물어졌다. 이들의 능동적인 협업 덕분에 통상 6개월 이상 걸리는 소프트웨어 개발은 본사의 도움 없이 한국씨티의 자체 역량으로 2개월 만에 이뤄냈다. 또 실제 기술이 현업에 신속하게 적용되면서 소호대출 여신심사시스템의 생산성이 약 40%가량 향상됐으며 기존 심사역 9명 중 5명을 대체할 수 있게 됐다. 전산 개발에 참여한 4명의 여신심사역은 본사가 IT 개발이 가능한 현업 직원에게 수여하는 파워 유저(Power User)의 명예를 한국씨티 최초로 받았다.

이 밖에도 자금세탁방지(AML) 모니터링, 모바일뱅킹을 통한 대출 연장 등 여러 업무에 RPA를 적용한 성과를 인정받아 이노베이션팀과 파워 유저는 2019년 한국씨티의 고객중심문화 어워드(Client-Centric Culture Awards)뿐 아니라 아태지역 본부에서 지속가능한 성장 어워드(Sustainable Growth Award)까지 수상했다. 또 한국씨티는 더 많은 파워 유저를 육성해 이 같은 선례를 확산하기 위해 2020년부터 씨티 DNA(Digital NextGen Accelerator) 프로그램을 도입해 직원들에게 각종 코딩 교육 프로그램과 해외 디지털 포럼에 참여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박진회 행장은 “직원들이 스스로 디지털 마인드세트를 갖추고 업무 프로세스를 디지털 기반으로 혁신하는 데 성공한 사례”라고 강조했다.

3. 스마트 오피스로 오퍼레이션의 효율화
한국씨티는 일반 영업 점포뿐 아니라 지역에 흩어져 있던 콜센터 세 곳을 포함한 소비자금융 부서와 업무/전산 부서를 서울 문래동 영시티 신사옥으로 통합하면서 대대적인 업무 효율화를 추진했다. 이를 위해 뉴욕, 싱가포르, 홍콩 등 씨티의 글로벌 주요 거점 도시의 오피스에 적용된 글로벌 표준 사무환경 개선 프로그램을 도입, 전체 사무 공간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워크가 가능한 공간으로 전면 리모델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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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시티 신사옥 새로운 사무공간의 가장 큰 특징은 부서, 직급에 관계없이 전 직원을 대상으로 전면적인 공유 좌석제를 실시한 것이다. 전산 시스템과 보안 때문에 고정 좌석이 불가피한 일부 직원을 제외한 821명의 직원이 신사옥의 3개 층에서 지정 좌석 없이, 매일 아침 출근해서 선택한 좌석에서 일하고 있다. 3일 연속 같은 자리에앉을 수 없다. 본부장, 부서장도 예외가 아니다. 일찍 출근한 사람 순으로 본인이 원하는, 예컨대, 채광이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신사옥에서 가장 직급이 높은 소비자금융그룹장의 경우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작은 방이 있긴 하지만 이 방 역시 휴가 기간이나 출장 등으로 빌 때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씨티가 이처럼 직급에 관계없이 전 직원에게 공유 좌석제를 적용한 이유는 공간 개선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바로 수평적인 소통과 협업 문화를 촉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무 환경 개선 프로젝트를 총괄한 RE자산관리부의 조형택 부부장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업무 좌석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한편 필요에 따라 집중 업무실, 방음 회의실, 워크 카페, 개인용품 부스 등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업무 효율성과 근무 만족도를 동시에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한국씨티는 은행의 일평균 휴가 사용률이 약 12%임을 고려해 인원수 대비 92%의 공유 좌석을 제공하는 한편 혹시라도 전원이 출근해 좌석의 부족할 경우를 대비해 각 층 워크 카페에 가상 데스크톱 인프라(VDI)를 갖춘 다양한 종류의 선택 좌석을 설치했다. VDI 덕분에 신사옥 어느 자리에서든지 간에 로그인만 하면 자기 컴퓨터처럼 업무를 처리하고, 본사나 해외 지사와 연결해 화상회의까지 할 수 있다. 사무직 직원들의 건강을 고려해 개당 160만 원에 달하는 최고급 독일 브랜드 의자, 듀얼 모니터, 높이 조절이 가능한 스탠드형 책상 등 씨티그룹이 글로벌하게 사용하는 최고급 사무 시설을 제공했다.

하지만 신사옥으로 이사해 새로운 업무 방식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이사는 2019년 2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각각 800여 명씩 대규모로 이뤄졌다. 특히 이사 후 첫 한 달가량은 직원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일례로, 지정 좌석이 없기 때문에 직원들은 매일 퇴근하기 전에 본인이 쓴 자리를 정리해 물품을 개인 사물함에 보관해야 하는데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안 치운 물건은 커뮤니티 매니저가 매일 한꺼번에 가져다가 창고에 보관해 놓는 데도 불만이 컸다. 초반에는 창고에 물품들이 넘쳐났다. 어떻게 하면 구성원들이 편리하게 자리를 치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끝에 사무용품을 한 번에 정리할 수 있는 정리함(organizer)을 만들었다. 정리함으로 웬만한 사무용품들을 간편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되자 일과 후 책상에 남는 물건들이 크게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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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무공간의 변화가 안착하는 데는 부서별로 1명씩 선정한 변화 요원(Change Agent)의 공이 컸다. 한국씨티는 2017년 3분기 영시티로 사무 환경을 통합하는 프로젝트(Seoul City Plan)를 진행하면서 부서별로 변화 요원 43명을 선정해 참여시켰다. 대리부터 부부장급까지 직급도 다양한 이들은 프로젝트 시작부터 이사 후 약 2개월 이후까지 프로젝트 진행에 관한 정보를 가장 먼저 획득해 부서원들에게 알리고, 또 직원들의 요구 사항을 프로젝트팀에 전달하는 ‘연결 고리’ 역할을 했다. 그 과정에서 10회 이상 온•오프라인으로 만나고 수백 통의 e메일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글로벌 씨티가 추구하는 미래형 사무 환경이 전달하는 메시지부터 이사 계획, VDI 사용법, 공간별 사용 프로토콜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문제들의 해결사 역할을 했다. 조형택 부부장은 “바쁜 현업에도 불구하고 변화 요원들이 자기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해 직원들의 세세한 불만 사항을 해소하고 설득해준 덕분에 대규모 인원이 신사옥으로 무사히 이전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5

현재 서울 서대문의 씨티뱅크센터도 글로벌 표준 사무 환경을 구축하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오는 4월에는 은행장을 포함해 서울 다동 본사에서 일하던 본사 임직원들이 씨티뱅크센터로 이사할 예정이다. 한국씨티는 지난해 영시티로의 이전을 통해 얻은 경험과 직원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최적의 사무 환경을 본부에도 적용해 본부의 오퍼레이션 업무 또한 더욱 효율화하고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5. 디지털 뱅크의 남은 과제

한국씨티은행은 2017년 차세대 소비자금융 전략을 발표하면서 2020년까지 자산관리서비스에서 목표 고객 50%, 투자 자산 규모 100% 및 수신고 30%를 증가시키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또 디지털 채널 강화를 위해 신규 고객의 80% 이상을 디지털 채널로 유지하며 고객의 80%를 디지털 채널 적극 이용자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성과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변화의 실천적 노력이 꾸준히 뒷받침된다면 2020년의 목표 달성은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간의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진통을 남긴 과제들도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1. 디지털 금융 서비스의 양극화
금융의 디지털화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은 분명하다. 심지어 스웨덴을 필두로 해외 각국에선 ‘현금 없는 사회’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통한 간편 결제가 확산되면서 현금뿐 아니라 ‘카드 없는 사회’가 머지않았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급격한 디지털화에 따른 부작용도 나오고 있다. 예컨대, 스웨덴의 경우 은행이 현금 공급 창구인 지점과 ATM 수를 축소하면서 현금 의존도가 높은 고령층, 장애인,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의 소비 활동이 제약되는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6 미국에서는 JP모건을 포함한 대형 은행들이 저소득 지역의 지점을 철수하고, 고소득 지역 중심으로 지점을 늘리면서 금융 서비스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화에 따른 혜택이 계층별로 공평하게 배분되지 않는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7

한국씨티도 현재 이 같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씨티의 출장소 포함 43개 점포 중 22곳이 서울에 편중돼 있다. 경기도 9개, 인천
3개, 부산 2개를 제외하면 시도별로 1개 지점이 배치돼 있는 셈인데 그나마 강원도에는 지점이 한 곳도 없다. 지방 고객의 서비스 접근성은 서울 수도권 지역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한국씨티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디지털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하는 한편 원거래 WM 고객을 직접 찾아가는 리모트 뱅킹 서비스(RBS)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당면한 서비스의 격차를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진창근 한국씨티은행 노조위원장은 “한국씨티가 점포를 대형화해 WM 고객과 온라인 신규 고객 창출에만 집중하면서 상대적으로 고령층 고객 등 금융 취약 계층의 불편을 키운 부작용도 있다”며 “매스 고객을 위한 금융 서비스 제공에 소홀한 부분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 직무 전환에 따른 근로 의욕 저하
한국씨티가 추진한 디지털 뱅크로의 변화는 지점뿐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던 직원들의 역할 또한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예컨대, 은행 지점에서 거래를 지원하던 창구의 텔러들은 신규 고객을 유치하고 상담하는 세일즈맨이 돼야 하는 도전에 직면했다. 수년간 쌓아온 역량과 커리어를 포기하고 완전히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은 당사자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부 관리자급 직원들은 20년 이상 축적한 커리어를 접고 완전히 다른 업무에 적응해야 하는 극한 상황에 직면했다. 특히 소형 점포들이 대거 폐쇄되면서 지점장을 포함해 현장에서 대면 영업을 뛰던 50대 이상의 인력들도 대거 고객집중센터(아웃바운드)와 고객가치센터(인바운드)로 배치됐다. 이들은 회사로부터 고용 안정과 직급에 따른 고액 연봉을 보장받았지만 전혀 다른 업무 환경에서 새로운 역량을 요구하는 직무에 적응하고 있다. 회사 측은 집중 연수를 통해 업무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했지만 당사자가 실제로 맞닥뜨린 변화한 일상들은 녹록지 않았다.

한국씨티는 새로운 직무 적응을 위해 기본 교육 외에도 해외 유명 코칭 전문가를 초빙해 대고객 응대 스킬 같은 추가 교육과 실습을 실시했다. 또 앞서 소개한 체계적인 변화 관리 과정을 통해 직원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 결과 매년 실시하는 VOE(Voice of Employee, 직원의 소리 듣기) 조사에서 대형화된 WM뿐 아니라 고객집중센터같이 개편된 채널 직원들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앞으로 디지털 뱅크로의 변화가 가속화될수록 업무 재조정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고 수시로 직무 전환을 요구받는 근로자의 수도 늘어날 것이다. 특히 근로기간이 긴 직원일수록 변화의 흐름에서 소외되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이 의욕을 잃지 않고 새로운 직무에서도 업무 만족도와 성취감을 높일 수 있도록 앞으로도 세심한 마음 관리가 필요하다.

3. 로봇의 인력 대체에 따른 일자리 축소
디지털 전환에 따라 AI 같은 로봇이 많은 인력을 대체하게 될 것이란 우려는 은행업뿐 아니라 모든 산업이 직면한 공통된 문제이다. 한국씨티는 지점 통폐합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하지 않았다. 대신 신규 채용을 하지 않고 기존 인력의 업무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일자리를 유지했다. 한국씨티의 인력은 현재 3500명 수준으로 지점 통폐합과 관계없이 규모를 유지하고 있지만 신입 공채는 10년 이상 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신기술의 적용으로 업무 자동화가 가속화될수록 기존 인력이 필요 없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RPA를 여신심사에 도입한 후 로봇이 하루 평균 100개 전후의 업무를 처리하면서 심사역 5명의 업무를 대체하게 됐다. 한국씨티는 수시로 경력 채용을 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대부분 부서는 30대 중반의 과장급 직원이 막내일 정도로 ‘나이 많은 막내’ 현상이 심각하다. 이에 대해 박 행장은 “이제까지 필요 인력 중심으로 수시 채용을 해왔으며 디지털 전환 과정이 안정화됨에 따라 디지털 역량을 갖춘 인재 중심으로 신입 채용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미정 기자 soya111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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