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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경영

게임도 경영도, ‘타이밍’이 승부 갈라

이경혁 | 285호 (2019년 1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경영학의 주요 연구 분야이자 기업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 중 하나인 ‘전략’은 본래 전쟁으로부터 유래했다. 따라서 전쟁을 흉내 내는 각종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도 전략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인데 게임이라는 미디어의 특성상 주로 ‘타이밍’과 연결된다. 이는 스타트업의 성공에서 매우 중요한 블리츠스케일링과 타이밍 경영과도 상당 부분 일치하는 것으로 『손자병법』에서 기상과 천문을 가리키는 ‘천(天)’과도 맞닿는다. 실제 전쟁이든, 그걸 디지털로 시뮬레이션한 게임이든, 전쟁 못지않은 치열한 비즈니스 현장이든, 승리를 위한 전략의 중심에는 바로 ‘타이밍’이 있다.


편집자주
현대사회에서 게임은 세계를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자 많은 사람의 생활 공간이며 동시에 첨단의 미디어이기도 합니다. 게임이 구성되는 원리, 스토리와 캐릭터에 반영되는 철학과 사람들의 행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또 하나의 게임판에서 생사를 건 플레이를 하고 있는 경영자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국내 최고 게임칼럼니스트 이경혁 게임연구자가 ‘게임과 경영’을 연재합니다.



들어가며:
게임은 전략의 어떤 측면을 재현하는가?

전략이라는 말은 오늘날에는 주로 경영학 분야에서 자주 볼 수 있지만 한자어의 본뜻부터 그렇듯 전쟁으로부터 파생된 개념이다. 군사적으로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술보다 큰 개념으로서의 통합 작전 행동을 가리키는 전략은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정의처럼 좀 더 폭넓은 정치로서의 의미와 맞아 있다. 그렇기에 곧 여러 작은 정치의 개념인 경영, 행정과 같은 제반 영역에서 전쟁 이상의 의미로 널리 활용되는 편이다.

비록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여전히 전략이 요구되는 현장은 비유적 표현을 넘어 실제로 ‘치열한 전쟁터’이기도 하다. 성공과 실패가 교차하는 전장의 한복판에서 전략은 ‘실험’의 여지가 없다. 한 전략의 성공과 실패를 논하는 것은 대체로 그 전략의 실행이 완료된 뒤의 성패를 기준으로 한 사례연구 등을 통해서 이뤄진다.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영역, 이를테면 시뮬레이션이나 모의 경영 같은 환경에서는 비록 실전의 그것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일정 부분 현재 진행하는 전략의 장단점을 좀 더 안전하게 논의할 수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아예 시뮬레이션 그 자체로 전략을 다루는 매체라면 어떨까? 디지털게임이 대표 사례다. 온라인을 통해 대전을 지원하는 많은 게임의 최종 결과는 아주 명확하게 승패를 표시하며, 승리를 달성하기 위해 펼쳐 온 수많은 플레이어의 전략은 시간이 지나고 결과가 누적되면서 일련의 체계화 과정을 거친다.

수많은 종류를 자랑하는 온라인 전략 게임이 모사하는 전략들은 결국 현실에 존재하는 전략의 개념을 각자 요약해 재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이야말로 전략이 가지는 여러 측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즉, ‘추상화된 전략 기계’로서의 디지털게임으로부터 어떤 전략의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바로 그러한 아이디어 도출을 위해 당대에 가장 이름 높은 세 개의 온라인게임 속에 녹아 있는 전략의 요소들과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를 제시하고자 한다.



스타크래프트:
물고 물리는 타이밍의 승부

1998년에 세상에 첫선을 보인 게임 중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역으로 활발하게 돌아가는 게임을 찾는다면 정말 딱 하나만 꼽힐 정도로 압도적인 생명력을 자랑하는 게임이 있다. 오랜 세월 속에 이제는 이른바 ‘아재 게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게임, 바로 ‘스타크래프트’다. 사실상 e스포츠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어낸 주인공이자, 특히 한국에서는 ‘민속놀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오래된 게임이다. 2000년대 초반을 휩쓴 게임이기도 했던 ‘스타크래프트’는 2019년 지금까지도 PC방 인기 게임 순위에서 ‘TOP 10’의 자리를 내려놓지 않을 정도로 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이러한 생명력은 전략들의 무한한 확장 가능성과 전략 간 오묘한 밸런스로부터 나왔다. 광물과 가스를 생산하고, 이를 바탕으로 건물을 지어 공격과 수비에 활용할 유닛을 만들어 적의 기지를 무너뜨리면 승리하는 게임 방식은 각각 테란, 저그, 프로토스라는 세 종족 안에서 서로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발현된다. 각 종족이 가진 건물과 유닛은 기초 특성부터 생산시간, 소요자원, 공격력까지 모든 것이 다르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자신이 선택한 종족의 가장 강한 시점을 적의 가장 약한 시점에 맞추기 위해 주어진 자원과 건물, 유닛을 최대한 활용하게 된다.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누적된 승패 결과는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체계화돼 왔다. 이른바 ‘빌드오더(Build Order)’라는 개념은 스타크래프트에서 주어진 자원을 이용해 어떻게 생산하면 적보다 강한 타이밍을 언제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목적에 최적화된 전략이다. 이는 다시 말하자면, 주어진 자원을 미래를 위한 생산에 쓰느냐, 아니면 좀 더 가까운 현재 시점의 공격력을 강화하는 데 쓰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림 1]은 ‘스타크래프트 2’의 빌드오더 캡처 화면이다. 어느 건물을, 어느 타이밍에 지어야 하는지를 타임라인 중심으로 정리한 것인데, 이를 통해 최적의 공격 타이밍을 만드는 것이 ‘스타크래프트’ 전략의 기초다.

각 종족에는 자원을 채취하는 일꾼 유닛이 있는데, 이를 생산하는 데도 50의 광물이 들어간다. 만약 이미 충분한 공격 유닛 생산 체계를 갖추고 있다면 선택지는 간단히 요약할 경우 50의 광물로 일꾼을 늘려 더 많은 자원을 생산하고 이를 통해 기반 시설의 확장을 노릴 것인지, 아니면 공격 유닛을 뽑아 바로 공격력을 강화할 것인지의 양자택일이 된다. 그리고 이 양자택일에 대한 해답은 최종적으로 내가 상대방과 언제 싸울 것인지에 대한 계획과 관련돼 있다. 당연히도 그 시점은 내가 강하고 상대방이 약한 타이밍일 것이고, 이 타이밍을 상호 간에 조절하면서 싸우는 것이 ‘스타크래프트’ 전략의 핵심이 된다.

‘스타크래프트’에서는 이러한 플레이를 통해 전략이라는 개념이 ‘타이밍’에 관한 상호 간의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정의된다. 매 순간, 일꾼과 건물 확장을 통해 더 미래의 타이밍을 볼 것인지, 아니면 지금 당장 적의 약한 측면을 향해 더 강력한 공격력에 투자할 것인지를 위한 의사결정이 게임 내내 두 플레이어 사이를 오고 간다. 타이밍을 두고 벌이는 대화가 키보드와 마우스의 움직임, 그리고 게임상 유닛들의 전투를 통해 이어진다.



리그 오브 레전드:
기승전결의 흐름 속에 강약의 타이밍을 찾아라

타이밍의 운용을 놓고 벌였던 ‘스타크래프트’의 전략 개념은 현시점 인기 게임 1위를 놓치지 않으면서 전 세계적 e스포츠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2009년 처음 출시돼 어느새 10년이 된 ‘리그 오브 레전드’는 5명으로 구성된 두 팀이 각자 조종하는 ‘챔피언’을 활용해 세 개의 공격라인에서 공방을 반복하며 최종적으로 적 팀의 기지를 파괴함으로써 승리를 달성하는 규칙을 기본으로 한다.

‘스타크래프트’와 달리 대규모 부대를 운영하는 방식이 아니기에 ‘리그 오브 레전드’에는 별도의 자원 채취, 생산, 제작 같은 조작은 없다. 그러나 캐릭터인 ‘챔피언’을 더욱 강하게 성장시키는 방식에는 여전히 ‘생산’의 개념이 들어 있다. 다만 그 방식이 전통적 의미의 채굴에서 적 몬스터를 사냥하는 형식으로 변했을 뿐이다. 게임에 참가하는 플레이어들은 각자 적 캐릭터를 공격해 얻는 골드를 모아 기지 상점에서 더 좋은 아이템을 구매함으로써 캐릭터의 공격력과 방어력을 향상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는 생산이 없는 대신 다른 형식으로 전략의 타이밍 요소가 들어가는데, 각 캐릭터의 강점과 단점, 그리고 게임의 흐름 측면에서다. 게임의 캐릭터는 각자의 성장 곡선을 가지고 있어 게임 초반의 낮은 레벨 구간에서 상대적으로 강력한 경우와 경험치를 모으고 아이템을 누적하면서 점점 강해지는 캐릭터로 구분된다. 나의 팀과 캐릭터가 초반과 후반 중 어디에 무게를 싣느냐에 따라 팀의 전략도 크게 요동친다. 초반에 강력한 캐릭터는 후반에 상대적으로 힘이 떨어지고, 후반에 강력한 캐릭터는 당연하게도 성장이 없는 초반에는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는 각 팀이 가진 최적의 타이밍에 교전을 원하는 전략과 교전을 피하는 전략이 맞부딪힌다. 게임 초반에 강력한 팀에서는 초반에 최대한의 이득을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교전을 기획하고 적을 유도한다. 후반을 도모하는 팀은 가급적 초반의 무리한 싸움을 피하고 안정적인 성장을 도모한다. 게임은 이 두 흐름의 교차 속에서 끊임없이 교전을 만들어내며 ‘스타크래프트’와는 다르게 ‘전략의 타이밍’을 구성한다. [그림 2]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프로게이머 빌드오더다. 실제 경기에서 해당 게이머가 구매한 아이템과 스킬 레벨업을 시간순으로 표현해 이후 참고할 수 있도록 게시된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또 다른 전략적 특징으로는 일종의 ‘인사 관리’라 불릴 수 있는 팀 케미스트리 문제가 있다. 5대5로 대전을 진행한다는 규칙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엮인 5인이 팀을 만들어내는데 전혀 손발이 맞지 않을 처음 보는 사람들과 게임을 하면서 나타나는 ‘조합’ 혹은 ‘궁합’은 실제 게임의 승패를 좌우할 정도가 된다. 당연히 누가 더 잘했고, 누가 승리를 방해했는가 하는 ‘성과 측정’의 문제도 발생한다. 이른바 ‘잘되면 내 탓, 안 되면 네 탓’의 문제가 크게 벌어지는 것이다. 당연히 익명의 참여자들끼리 실시간으로 욕설이 오가기도 하고 재미 삼아 혹은 이런저런 이유로 자신의 팀이 지도록 유도하는 플레이어가 등장하기도 한다. 게임 운영사인 라이엇게임즈도 이로 인해 발생하는 게임 품질 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욕설 이용자 차단, 트롤링(의도적 게임 방해 행위) 방지책을 꾸준하게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잘못된 매너가 완전히 뿌리 뽑히긴 어려운 상황이다.

어쨌든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도 전략이라는 요소를 재해석하는 중심에는 ‘타이밍’이 존재한다. 실제로 게임에서는 초반의 탐색전을 지나 중반부터는 양 팀의 교전을 강제로 유도하는 ‘드래곤 사냥’ 등의 이벤트가 벌어지며 중후반에 이르면 게임의 흐름을 크게 바꾸는 ‘내셔 바론’ 사냥 이벤트 등이 있다. 1대1과 5대5, 생산과 개인 캐릭터 운영이라는 다른 관점에서 다가가지만 ‘스타크래프트’와 ‘리그 오브 레전드’가 내놓는 전략에 대한 재현은 둘 모두 전략에서 가장 중심적인 요소가 타이밍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배틀그라운드:
선점할 것인가, 기회를 노릴 것인가

한편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국산 밀리터리 액션 게임 ‘배틀그라운드’는 앞의 두 게임과는 매우 다르지만 타이밍이라는 전략적 에센스에 대한 재현은 동일하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한동안 글로벌 대작이 없었던 한국 게임의 히트작 가뭄을 뚫어낸 ‘배틀그라운드’는 빠르게 총을 쏘고 움직이는 액션성에 주목하던 슈팅 액션에 ‘배틀 로얄’식 생존 게임이라는 개념을 더하면서 보다 전략의 의미를 강조하는 게임이 됐다. 좁은 맵에서 정해진 인원들이 팀 대결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개활지에서의 무차별 대결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제시하면서 스팀 동시 접속자 수 기네스 기록을 경신하는 등의 대히트를 기록했다.

‘배틀그라운드’가 이끌어낸 새로운 게임 장르인 ‘배틀 로얄’은 1999년의 일본 소설과 동명의 영화 ‘배틀 로얄’에 등장한 개념을 디지털게임으로 끌어온 결과물이다. 외딴 섬에 학생들을 떨어뜨리고 섬 안의 무기를 주워 최후의 1명이 남을 때까지 싸우라고 강요하는 소설 ‘배틀 로얄’은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을 주제로 삼았지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소설의 설정은 비판적 주제 이상으로 흥미로운 소재가 됐다. 다만 게임상으로는 20세기 말의 컴퓨터 기술은 대규모 플레이어의 동시 전투를 그려낼 만큼은 발전되지 못했고, 따라서 이 아이디어는 2010년대 후반에 와서야 빛을 발하게 된다.

게임 ‘배틀그라운드’는 100명의 플레이어가 수송기를 타고 특정 지역 위를 지나가면서 시작된다. 각 플레이어는 맨몸인 채로 지도상의 원하는 지점으로 낙하산을 타고 강하해 폐건물 사이에 떨어진 무기와 방어구, 아이템을 주워 무장한다. 또 100명 중 최후의 1인이 되기 위해 서로 상대를 없애가며 경쟁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안전지대는 점점 한 점을 향해 줄어들고(그림 3), 안전지대 밖에서는 계속 전기장 피해를 입기 때문에 결국 100명 중 살아남은 이들은 최종적으로 한곳에 모이게 된다. 게임은 최종 생존자가 남을 때까지 길어야 30분 안팎에 결말이 난다.

이러한 구조는 게임 승리를 위한 전략에 모든 경우의 타이밍을 계산하도록 강요한다. 수송기의 경로 초반에 내려 빠른 아이템 획득을 노릴 것인지, 최후반에 다른 플레이어들의 낙하 위치를 보고 빈자리를 향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안전지대로의 진입 또한 언제 진입할 것인가를 결정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아예 먼저 정중앙에 들어가면 위기를 맞지 않는 대신 중앙을 노리는 다른 플레이어들과 지속적으로 싸워야 하고, 안전지대의 경계를 따라 안전하게 이동하려면 이미 자리를 잡은 중앙의 플레이어들로부터 강한 견제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언제 진출할 것인가?’라는 타이밍에 대한 질문은 게임 시작부터 최종전까지 끊임없이 플레이어를 물고 늘어진다.



타이밍:
타이밍 경영과 블리츠스케일링의 사례

지금까지 사례로 언급한 세 가지 게임은 현재 온라인에서 플레이어와 플레이어가 맞부딪히는 멀티플레이어 대전 게임의 대표 격이다. 둘 이상의 주체가 모두 각자의 승리를 노리고 그 이해가 서로 충돌할 때, 각 주체는 자신의 승리를 취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을 강구하며 긴장과 갈등을 빚어낸다.

그리고 우연하게도 세 게임이 다루는 전략의 물고 물리는 과정은 ‘최적의 타이밍’이라는 요소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게임이 시뮬레이션하는 전략은 대체로 공평한 기회를 위해 시작 지점의 많은 변수를 통제한 상태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스타크래프트’가 각 플레이어의 시작 지점 자원과 지형, 광물의 개수와 일꾼을 동일하게 규정하고 ‘리그 오브 레전드’가 개별 캐릭터의 밸런스를 맞추는 데 서비스 운영 자원을 상당 부분 투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 모든 외적 요소를 통제한 뒤 남는 것은 전략의 타이밍 요소다. 다시 말해, 타이밍이 곧 전략의 핵심이라는 것이 대다수 멀티플레이어 게임의 결론이다.

물론 이 타이밍은 결코 절대적인 무언가가 아니다. 전제했다시피 이들 전략은 플레이어와 플레이어 사이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수능 문제처럼 절댓값의 정답을 향하기보다는 나의 선택과 상대방의 선택이 맞물리는 와중에 최적의 승리 타이밍도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당연히 게임상 전략의 정답도 역동적으로 변화한다. 매 순간 나와 상대의 의도에 의해 변하는 최적의 타이밍을 향해 지속적으로 전략과 전술을 변경하는 것을 게임 용어로는 ‘운영’이라고 부르는데, 많은 게임이 이른바 ‘운영의 묘’를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이러한 ‘타이밍의 예술’이 비단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만 중요한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적지않은 경영학의 케이스 스터디는 타이밍을 캐치하는 일이 전략적 성패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를 강조한다. 2015년 TED에서 ‘스타트업 성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1 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미국 아이디어랩 대표 빌 그로스는 수많은 스타트업 중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를 구분하고 이들을 특징 짓는 차이점으로 다섯 가지 요소를 꼽았다. 가장 덜 중요한 요소가 비즈니스 모델과 펀딩이었고 그보다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팀 능력과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요소는 바로 타이밍이었다. (그림 4)

직접적으로 타이밍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타이밍 자체가 경영 전략의 중심에 자리하는 사례들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스타트업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규모의 경제에 도달하기 위해 리스크를 안고서라도 빠른 성장을 추진하는 전략인 블리츠스케일링(Blitzscaling)이 대표적이다. 강력한 집중을 통해 빠른 영향력 확장을 도모하는 블리츠스케일링은 2차 대전 독일군의 공격 교리인 전격전(Blitzkrieg)에서 가져온 개념으로, 기존 전략이 병참과 보급이라는 안정적 후방지원을 통해 전선에서의 진격을 수행한 것과 달리 빠른 기동력을 통해 전략적 목표를 달성했던 방법론을 스타트업의 성장 전략에 적용한 결과물이다.

언뜻 보기에 블리츠스케일링은 집중을 통한 빠른 성장에 주목하는 것 같지만 정작 블리츠스케일링의 주창자들이 주목하는 지점은 ‘언제 집중 성장할 것인가’라는 타이밍에 있다. 새로운 제품 혹은 서비스가 출시된 후, 지속적인 확장을 요하는 자사의 결과물을 너무 빠르게 늘렸다가는 막대한 비용을 버텨내지 못하고, 너무 느리게 했다가는 후발주자들이 촉발시키는 과도한 경쟁 속에서 침몰하고 만다는 것이다.

물론 그 타이밍은 앞서 이야기한 것과 다르지 않게 여전히 객관식의 영역 바깥에 있다. 자사 서비스의 확장 정도와 경쟁사의 성장 정도, 시장의 성숙도가 시시각각 각자의 전략하에 움직이는 과정 속에서 블리츠스케일링의 타이밍은 휴리스틱2 의 영역 안에서 결정된다. 그냥 어림짐작으로서의 휴리스틱이 아니라 그 복잡하고 역동적인 과정 전체를 포괄적으로 읽어내는 의사결정 과정으로서의 의미다.


결론:
언제를 노릴 것인가

병법의 고전 『손자병법』의 첫 장은 ‘오사칠계(五事七計)’에 대한 정리로부터 시작된다. 전쟁을 치름에 있어 검토해야 할 다섯 가지 큰 일과 일곱 가지 계책에 관한 이 내용 중 ‘오사’는 곧 전략의 측면에 대한 이야기다. 손자는 전략적 검토 요소 다섯 가지 중 첫 번째로 대의와 민심을 가리키는 ‘도(道)’를 꼽고, 두 번째로 기상과 천문을 가리키는 ‘천(天)’을 꼽는다.

오사를 통해 손자는 기상과 천문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지만 같은 이야기는 오늘날 정보화 사회에 이르러서는 어느 기회를 어떻게 노리느냐에 관한 타이밍의 전략으로 귀결된다. 결국 ‘언제를 노릴 것인가?’라는 질문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정리한 대원칙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크게 변하지 않는 중요성을 차지해 왔다.

전략이라는 요소가 갖는 승패의 흥분감을 유희의 영역으로 끌어당긴 온라인 대전 게임들은 우리가 ‘전략’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무엇이 그 근본에 자리하는지를 다시금 곱씹게 만든다. 춘추전국시대에도, ‘스타크래프트’에 인생을 걸던 ‘아재’들의 청년 시절에도, 오늘날 PC방에서 소리를 지르며 ‘리그 오브 레전드’에 몰두하는 청년들의 일상에도, 비즈니스 현실이라는 치열한 현장에서 무거운 고민을 하고 있는 수많은 비즈니스맨에게도, 전략의 중심에 자리하는 ‘타이밍’의 무게는 언제, 얼마나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필자소개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grolmarsh@gmail.com
이경혁 칼럼니스트는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등에서 일하다 퇴사한 후 현재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게임문화를 전공하고 있는 게임연구자다. 매체로서의 게임이 현대사회와 인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면서 ‘게임화’하는 사회에 대한 새로운 인사이트를 찾고 전파한다. 성균관대에서 ‘게임과 인문학’이라는 교양과목을 운영하고 있으며 시사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 게임 관련 패널로 출연 중이다. 저서로는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공저)』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8, 공저)』 등이 있다.
  • 이경혁 | 현)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게임문화 연구, 게임연구자
    현)시사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 게임 관련 패널
    grolmar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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