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4. 쑥쑥 크는 실버푸드 시장, 어떤 전략으로
DBR mini box : 이강민 ‘사랑과선행’ 대표 인터뷰 “노인 식습관 관찰해 고령식 개발, 푸드테크는 기술이 아닌 휴먼 비즈니스” ‘푸드테크’는 단순히 새롭고 혁신적인 음식만을 이야기할까. 꼭 그렇지 않다는 게 이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푸드테크는 우리의 생활이 변화하면서 함께 달라지는 식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포괄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즉, 사회구조의 변화나 새로운 가치관의 등장에 따라 나타난 새로운 소비자 니즈를 포착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푸드테크 비즈니스의 핵심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의 주 소비층으로 부상할 고령 인구의 식문화에 대한 고민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2020년 전체 인구의 약 15%가 65세 고령 인구로 구성된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고령 인구의 현재 식문화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혁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요양원을 운영하던 이강민 대표가 2011년 설립한 사랑과선행은 노인들이 건강과 맛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고령식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노인들의 식습관과 영양 상태를 세심하게 연구해 개발한 고령 인구 표준 식단을 토대로 저렴하면서도 질 좋은 식사를 제공해준다. 한국에서 운영 중인 약 500여 개 요양원을 고객으로 확보했으며 최근 개인이 신청하면 집으로 매일 식사를 배달해주는 B2C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매출도 꾸준히 늘고 있다. 2019년 매출은 2018년 50억 원에서 2배 늘어난 100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성장 가능성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에서 증명됐다. 2019년 1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투자를 공모했는데 약 2억3000만 원에 달하는 투자금이 몰렸다. 일반인들이 투자하는 규모치고는 이례적인 수준이었다. 고령친화식 시장의 전망과 사랑과선행 서비스의 경쟁력을 모두 높이 평가한 결과다. 이강민 대표는 푸드테크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것은 꼭 기술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꼭 세상에 없는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푸드테크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먹는 것’의 영역 안에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대표는 “새로운 니즈를 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이해와 이들의 행복을 증가시키기 위해 실질적으로 노력하는 태도가 푸드테크 비즈니스의 전제 조건”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에게 새롭게 성장하고 있는 고령식 시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작은 스타트업이 어떻게 경쟁력 있는 푸드텍 비즈니스 사업의 토대를 만들 수 있었는지 등을 물었다. 이강민 대표는 사회복지와 경영학을 전공한 후 사회복지사로 활동했다. 졸업 후에는 노인 복지 사업과 봉사 활동에 힘썼다. 2008년부터 노인 돌봄 서비스를 시작한 이 대표는 2010년 노인 전문 요양원 원장으로 활동했다. 노인 요양 사업을 하면서 노인 식단관리의 중요성을 깨닫고 직접 고령 친화식 사업에 뛰어들었다. 2010년 성남시 노인복지시설협회 부회장, 2011년엔 한국장기요양협회 지회장을 역임했다. 고령식 관련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2008년부터 노인 전문 요양원을 운영했다. 노인들의 가장 고질병이 바로 욕창이다. 욕창은 단순히 소독을 잘하고 관리한다고 해서 낫는 게 아니다. 단백질을 잘 공급해야 상처가 잘 아문다. 단백질을 잘 공급하려면 영양소를 잘 소화시켜야 한다. 그런데 노인들 중 3분의 1이 삼킴 장애를 앓는다. 식사를 제대로 못하거나 쌀로 만든 죽 형태의 음식만 섭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면 병이 나을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노인들의 건강을 관리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가 식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2011년부터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당시만 해도 고령 전문 식단이나 식품이 많지 않았다. 그렇다. 가장 황당했던 것이 바로 정부가 제시한 65세 이상 고령 인구에게 필요한 표준 칼로리다. 실제로 그 칼로리대로 음식을 구성해 노인들에게 제공하면 바로 비만이 됐다. 활동성이 많이 떨어져 칼로리를 소모하지 못하는데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노인들을 위한 전문화된 식단과 식품을 개발하기 위해선 자체 연구·개발(R&D)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보통 식품 관련 R&D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대기업 중심으로 이뤄지지 않나?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 일본에서는 ‘개호 식품’이라고 해서 노인 전문 식단과 식품에 대한 연구가 이미 많이 진행되고 있었다. 한국보다 관련 기술이 10∼15년 정도 앞서 있다고 봐야 한다. 이 중에서도 SLC(Senior Life Create)라는 일본 시니어 도시락 전문 업체가 눈에 들어왔다. 일본 시장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이 업체는 노인의 기호와 영양 상태에 맞게 식단을 구성하고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직 아무도 시도하고 있지 않았다. 우리가 한번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제품 R&D를 주도한 SLC 회사 ⅰ 대표를 만나 기술을 전수받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지만 대표님께 정성스러운 편지를 전달해 마음을 움직여보기로 했다. 일본어를 전혀 못했던 상황이라 전문 번역사를 구해 번역비 50만 원을 주고 번역한 편지를 부쳤다. 혹시나 하고 해본 시도였는데 신기하게도 다카시 대표에게서 답장이 왔다. 그리고 내가 운영하던 요양원을 둘러보더니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겠다고 결정하셨다. 다카시 히로시 대표가 한국의 무명 기업을 도와주기로 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다카시 대표가 한국에 와서 내가 운영하던 요양원을 둘러본 후 왜 노인 전문 식품 사업을 하려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봤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그 자리에서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나중에 이유를 물어 보니 요양원 사업을 한 경험이 있어 노인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고, 어떤 부분이 개선돼야 하는지를 명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했다. 사실 사랑과선행이 다카시 대표에게 연락했을 때 이미 한국 대기업에서도 기술 제휴를 제의했던 상황이라고 했다. 그런데 단기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대기업에서는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시니어 관련 사업은 노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이 다카시 대표의 철학이었다. 노인들은 자극이나 변화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그만큼 섬세하고 예민하게 접근해야 한다. 또한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특정 소비층이 타깃이라 사업 초기에 다른 사업보다 이익을 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사랑과선행이 아주 작은 기업이긴 하지만 이러한 부분들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 평가했다고 한다. 다카시 대표는 기꺼이 자사 레서피와 생산 공정을 제공해줬다. 식품 사업 관련 노하우가 없어 처음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어떻게 극복했는가? 다카시 대표가 전수한 노하우 외에도 외부 기관과의 협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우선 노인 표준 칼로리와 필수영양소 등을 세팅하는 기초적인 작업부터 시작했다. 권종숙 신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와 함께 요양원에 입소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이를 토대로 우리만의 표준 칼로리, 영양소 등을 산출해 낼 수 있었다. 주나미 숙명여대 교수와는 노인의 삼킴 장애를 연구했다. 노인들이 잘 소화시키면서 영양소를 잘 흡수할 수 있는 시금치나물, 멸치볶음, 가자미구이 등에 대한 특허를 냈다. 대부분 일본의 개호식품 기준인 유니버설 디자인 푸드(Universal Design Food) 1∼2등급 수준을 기준으로 했다. 이렇게 하나하나 연구를 통해 총 100여 개의 메뉴를 개발할 수 있었고, 이를 토대로 사랑과선행만의 노인 전용 식단도 구성할 수 있게 됐다. 식품을 개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이었나? 유니버셜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고령이라고 해서 일반인들과 차별받는다고 느끼면 안 된다. 고령층이 아니더라도 제품을 이용했을 때 똑같은 가치를 누릴 수 있는 것을 주안점으로 둔다. 일본에서는 이미 일반화된 디자인 개념인데 장애인이나 노인이 일반인과 차별받는다고 느끼지 않고 누구나 쓸 수 있는 화장실을 디자인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철학은 우리 제품 하나하나에 다 녹아 있다. 첫째, 고령식이라고 해서 일반 사람들이 먹는 것과 다르게 만들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고령 소비자들은 다른 소비자와 마찬가지로 적정한 가격에 자신의 몸 상태에 맞는 음식을 먹으며 건강도 지키고 맛도 즐기고 싶어 한다. 노인이 됐다고 일반식과 다른 식단을 원하지 않는다. 평소 한국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즐겨 먹는 반찬과 국을 최대한 반영해 고령친화식을 제작해야 하는 이유다. 둘째, 식사의 편의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사랑과선행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제품이 바로 가시를 99.9% 제거한 생선 반찬이다. 노인들에게 가장 위험한 것이 생선 가시다. 가시를 씹으면 구강구조가 약해 바로 상처가 날 수 있고, 뼈가 몸 안으로 들어가도 통증을 못 느낀다. 이러면 욕창과 같은 심각한 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뼈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 한국 시중에 나와 있는 제품 중에 가시를 95% 제거한 생선 제품이 최고 수준이었다. 우리는 SLC와 협업해 뼈를 거의 완전히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 중국에 있는 칭다오 공장에 위탁 생산을 맡겼다. 포장 하나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 도시락 용기는 자체 개발한 것인데 손 감각이 상대적으로 둔해진 노인들이 한 번에 포장재를 잘 열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이 포장재도 특허로 등록했다. 생선, 고기 등 각종 반찬류도 노인들이 먹기 좋은 양인 손가락 두 마디 크기로 만들어 모두 소포장한다. 여전히 대기업이 진출해 있는 고령식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처음부터 노인 개개인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는 B2C 사업을 먼저 시도할 순 없었다. 인력도, 자원도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B2B 서비스로 시작해 사업 기틀을 마련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이전에 요양원 사업을 했었다. 그러면서 요양원에서 가장 힘들고 어렵게 느끼는 것이 바로 노인들을 위한 식사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사랑과선행의 고령식 전문 영양사가 식단을 짜주고, 그 식단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대신 구매해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했다(맛상 FS사업 ⅱ ). 여러 요양원을 고객으로 확보하면 대량 구매를 통해 보다 질 좋고 안정적인 식재료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요양원의 니즈를 잘 파악하고 시작한 사업이기 때문에 단시간에 반응이 왔다. 하나둘씩 계약이 맺어지더니 어느덧 500여 개 요양원이 사랑과선행의 식단과 식재료를 받아본다. 전국 요양원의 80%가 우리가 짠 식단표를 참고해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맛상e배려식은 서비스를 온라인 플랫폼으로 옮겨 온 것이 특징이다. 사랑과선행의 전문 영양사들이 짜놓은 식단을 보고 각 요양원이 온라인으로 주문으로 하면 자동으로 필요한 식재료를 구성해 배송한다. 이때부터 우리가 제조한 식품을 급속 냉동해 해동하는 RTH(Ready to Heat) 제품을 시도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19년 초 노인들의 집까지 도시락을 배달하는 B2C 사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효도쿡123). 대기업에서도 고령친화식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사랑과선행의 확실한 경쟁 우위는 무엇인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가격경쟁력이다. 사랑과선행 도시락 구성에는 연어와 같이 비싼 생선도 제공하고, 탕이나 국도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그럼에도 가격은 6500원을 유지하고 있다. 6500원이 저렴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새롭게 개발한 식단에 직접 배달까지 매일 해주는 점을 고려하면 비싼 가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향후에도 이 가격을 최대한 유지하고자 한다. 노인들이 매끼 부담 없이 건강하게 챙겨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고령친화식 시장에 진출한 일부 대기업의 경우 프리미엄 시장을 겨냥해 단가를 높인 경우가 많다. 각종 약재가 들어가 영양소가 풍부하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매번 사 먹기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둘째, 노인들이 맛으로 느끼는 행복을 포기하지 않도록 노력했다는 점이다. 고령친화식 하면 필수영양소를 잘 배합해 만든 파우더나 죽 형태의 제품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 이 제품을 먹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간이 기본적으로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사라지는 느낌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평소에 먹던 음식을 그대로 즐기고자 하는 노인들의 욕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줘야 한다. 그리고 이 음식들을 보다 고령친화적으로 R&D하는 것이 우리 몫이다. 마지막으로, 도시락을 매일 배달하면서 돌봄 서비스까지 추가로 제공한다는 점이다. 요즘은 혼자 사는 노인들이 많다. 사랑과선행은 직원들이 매일 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면서 근황을 살핀다. 안색은 어떤지, 거동은 어떤지 등을 통해 위험신호를 감지해낸다. 사랑과선행 직원 대부분은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어 어느 정도 전문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사회복지사가 아닌 경우에도 사내 교육을 통해 역량을 갖춘다. 사랑과선행이 푸드테크 기업이 아니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푸드테크라고 해서 신기술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고령친화식이라는 신시장에서 노인들이 건강을 지키고 맛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는 도시락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노인들이 쓰기에 적합한 레서피나 용기를 R&D하는 것도 분명 혁신이다. 게다가 도시락 배달과 돌봄 케어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를 고안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도 만들어냈다. 재밌는 것은 앞서 언급한 e배려식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고객 데이터가 계속 축적되고 있다는 점이다. 500여 개의 요양원에서 주문한 식단 데이터를 빅데이터로 축적해 알고리즘화한다면 새로운 서비스 확대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노인들에게 특화된 식단 및 음식 소비 패턴을 분석해 정교한 ‘맞춤형 식단’ 개발도 가능할 것이다. 현재 사랑과선행은 데이터베이스 전문가, 프로그래머 등 IT 인력 3명을 영입해 노인 건강 및 돌봄 통합 솔루션을 개발 중에 있다. 도시락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더 높은 차원의 돌봄 서비스가 가능하다. 도시락 주문 및 일정 관리를 하고, 도시락을 배달하는 직원이 노인들을 직접 만나서 건강 상태를 체크한 후 앱에 기록해 개별 고객의 건강 및 생활 관리를 돕는 것이다. 또한 웨어러블 기기 회사와 협업해 노인 전용 바이탈 체크 웨어러블 기기도 개발했다. 이 기기와 앱을 연결해 고객의 활동성, 수면 등과 관련한 기본 건강 정보도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다. 한 달 정도 시범 운영을 해봤는데 고객들의 반응이 좋았다. 포스코기술투자가 이례적으로 도시락 배달 업체에 15억 원이나 투자한 배경이기도 하다. 푸드테크에서 기술은 수단의 문제다. 어떠한 고객을 타깃으로 할 것인지, 그 고객의 고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이 고민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테스트하면서 서비스를 정교화하는 과정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미영 기자 mylee03@donga.com |
The Column : Behind Special Report “실리콘밸리가 띄우는 새로운 거품 아닐까?” 처음 푸드테크 취재를 시작할 때 삐딱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콩으로 만든 가짜 고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영화 ‘설국열차’에서 경제적 약자들이 끼니를 때우기 위해 먹었던 곤충이 대체 단백질로 각광받을 것이라니.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일인데 굳이 이런 ‘가짜’ 음식을 먹어야만 할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전 세계 최신 기술과 트렌드를 선도하는 실리콘밸리의 ‘선수’들이 새로운 시장을 조성하기 위한 ‘밑 작업’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미래 음식’에 가장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는 Z세대(주로 1995년 이후 출생한 20대)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봤다. 이들은 이런 음식들을 일부러 찾아 먹는다. 음식의 맛보다 영양성분, 만들어진 과정을 더 중시한다. 건강에 좋은 균형 잡힌 식단을 찾고, 식재료 생산 과정에서 환경오염을 최소화한 음식을 더 비싼 돈을 주고라도 사 먹는다. 별나게 보이는 이들의 선택에는 그럴 만한 속사정이 있었다. Z세대는 숨 막히게 가속화되는 환경오염 후폭풍에 죽어가는 동물들의 처지가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미세먼지로 가득한 봄, 지구 온난화로 인해 타들어 가는 여름과 견디기 어려운 혹한으로 이어지는 이상 기후가 그들의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조상들이, 그리고 부모 세대들이 살아온 생활방식을 거부하고 환경을 지키며 함께 살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친환경 제품을 사고, 자원을 공유하는 노력으론 부족했다. 고민은 먹고사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가축을 기르면서 내뿜는 막대한 환경오염을 ‘0’으로 수렴할 수 있는 먹거리를 찾아 나선 것이다. Z세대와 이들의 삶의 방식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비즈니스’로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영리하게도 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유용하고 훌륭한 도구인 디지털 기술을 활용했다. 여기에 실리콘밸리 특유의 과감한 실행력과 시류를 읽는 혜안이 반영된 투자가 맞물리면서 새로운 삶을 실천할 수 있는 동력이 마련됐다. 인공 소고기와 계란을 만들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최소화한 단백질 음료를 개발하는 회사들이 탄생한 것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자율주행 회사도, 플랫폼 회사도 제치고 지난 5월 상장된 콩고기 생산 스타트업의 주가가 최근까지도 매우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들의 생각, 그리고 세상을 향한 외침이 결코 허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마음을 달리 먹고 보니, 나 또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따라 생겨난 푸드테크 서비스를 이미 생활화하고 있었다. 배달 음식 플랫폼과 공유주방이 대표적인 예다. 좀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쪼개 쓰고 싶어 하는 요즘 세대들의 생활방식을 반영한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가정식을 더 맛있고 편리하게 먹기 위해 요리를 ‘외주화’한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음식과 요리의 개념이 바뀌고 있는 것은 물론, 새로운 가사 분업 구조로 변모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쭉 지켜보면서 결국 푸드테크는 인간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라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내고, 이는 곧 사람들을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이동(shift)’하게 만든다. 푸드테크는 인류가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한 결과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인류가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간파해낼 수만 있다면 탄탄하고 확장 가능성도 큰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들이 창출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영 기자 mylee03@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