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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4. 쑥쑥 크는 실버푸드 시장, 어떤 전략으로

‘노인용’ 식품, 표면적 접근 땐 낭패
디지털 기술 활용해 소비 행태부터 분석을

이진규 | 283호 (2019년 10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실버푸드 시장도 크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들도 관련 시장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고령친화식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하고 접근한다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우선 고령인구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들의 니즈를 살펴야 한다. 특히 이들에게 먹는 것은 생존을 넘어 ‘삶의 즐거움’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제품 개발에 반영해야 한다. 또한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고령세대의 소비 행태와 구매 행태를 살피고 이를 제품과 서비스에 적용하는 방법도 모색해야 한다.




새롭게 부상한 ‘실버푸드’ 시장

한국은 2017년 8월부터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14% 이상을 차지하는 ‘고령사회’로 진입한 상태다. 2026년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고령인구의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들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고령친화산업 중 실버푸드 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2016년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 조사’에 따르면 실버푸드 시장의 규모는 2011년 5104억 원에서 2015년 7903억 원으로 54.8% 급증했다. 2017년 건강식품을 포함한 실버푸드 시장 규모는 약 1조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이며 2020년에는 16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고령친화식품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관련 시장에서 기회를 적극적으로 살펴야 하는 이유다.

실제 관련 기업과 학계에서도 관련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발 빠르게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표 고령친화식품 브랜드나 기업이 떠오르지 않는 게 한국 시장의 현실이다. 타깃 소비층에 대한 정의는 물론 이들의 니즈도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으로 급성장할 실버푸드 비즈니스에서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 기업들은 어떤 노력을 펼쳐야 할까.



일본은 어떻게 고령친화식품 시장을 키워냈나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선 이미 고령친화식품 관련 산업이 활성화한 선진 시장을 잘 살펴야 한다. 세계 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을 한번 살펴보자. 일본은 고령식품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정부와 기업이 선제적으로 시장을 정의하고 준비해왔다. 고령인구의 식사 행태, 문제점 등을 먼저 파악하고 이를 반영한 솔루션을 식품에 반영한 것이다.

고령친화식을 개발한 계기는 한국과 유사하다. 일본 내 고령화 사회가 심화하면서 고령화에 따른 요양 보호 서비스 수요가 증가했다. ‘단카이 세대’라고 불리는 일본의 베이비붐세대(1947∼1949년 출생)의 구매력도 한몫했다. 고도의 경제성장기를 거친 이들은 연금 수령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다. 이들의 구매를 유도할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필요해 진 것이다.

고령친화식품 시장은 일본 정부와 산업계의 노력으로 점차 정교하고 구체적으로 진화하게 됐다. 2002년 4월 일본 개호식품(介護食品, 곁에서 돌봐 주는 음식이란 의미)협회를 설립해 고령친화식 기준을 보급하고 자체 규격의 개발 및 운용(인증마크를 붙이는 사업) 등을 진행했다. 이로써 당시 제조업체마다 통일되지 못한 규격과 표시로 소비자에게 혼란과 불편을 줬던 상황을 해결할 수 있었다. 1



아울러 협회는 고령자 혹은 환자들이 먹는 식품이라는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개호식품이라는 이름 대신 UDF(Universal Design Food)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편리하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뜻을 담은 것이다. 고령인구를 차별하거나 특별히 여기기보다 차별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건강한 음식을 만들자는 취지다. UDF는 고령자의 저작(음식을 입에 넣고 씹는 상태)와 연하(음식을 삼키는 상태) 등의 섭식 상태를 단계별로 나눈 식품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2


2014년부터 일본 농림수산성은 스마일 케어(Smile-care, 개호(介護)의 일본어 발음이 ‘Care’와 발음이 유사해 사용됐다는 의견이 있음) 제도를 시행해 UDF에 관한 위원회를 구성했고 적극적으로 일반 고령자의 건강증진과 산업 확대를 위해 투자를 집중하기 시작했다. 스마일 케어 제도는 UDF가 병원, 기관에서 특정 계층에만 집중하고 있던 타깃층을 넓혀나갔다. 즉, 고령인구뿐 아니라 누구나 관련 수요가 있으면 부담 없이 제품을 찾고 적용할 수 있도록 제품에 대한 인식을 ‘보편화’한 것이다.

이를 위해 청(개호 예방을 위한 식품)-황(씹음이 어려운 이들을 위한 식품)-적색(삼키기 어려운 이들을 위한 식품)의 색상으로 분류해 사람들이 제품 겉포장만 보더라도 쉽게 제품을 구분할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할인마트, 백화점, 편의점 등에서도 해당 제품군을 소비자들이 선택해 구매할 수 있도록 제품 유통 활로를 넓혀나갔다. 이 때문에 UDF가 기능에 먼저 중점을 두고 발전한 것이라면 스마일 케어는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맛과 형상 등을 개선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스마일 케어가 기본적으로는 UDF의 기준을 따르고 있는데 여기에 영양 기준을 강화하고 페이스트·무스·젤리형 등 다양한 식감을 기준으로 제품을 세분화했다.

실제 많은 기업이 세분화한 고령친화식품 시장을 겨냥해 다양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삼킴 장애가 있는 고령자들을 위한, 즉 ‘연하식’을 겨냥한 기업, 그리고 이가 튼튼하지 않아 씹는 것이 어려운 것을 보완해 주는 ‘저작식’으로 나뉠 수 있다.

연하식은 쉽게 말해 음료나 젤리 같은 형태의 음식이다. 일본에서 연하식을 선도하고 있는 기업은 뉴트리다. 뉴트리는 음료나 젤리 형태의 음식이 일반식과 형태가 많이 달라 먹은 사람의 식욕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연하식의 외형을 실제 음식과 유사하게 만드는 기술 개발에 집중했다. 예를 들어, 당근으로 만든 당근 퓌레를 실제 당근 모형과 비슷하게 만드는 식이다. 오징어나 햄버그스테이크같이 삼킴 장애가 있어 먹을 엄두도 못 냈던 식품들도 유사한 형태의 모양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이 같은 시장은 주로 병원이나 노인 보호 시설을 중심으로 확대됐는데 최근엔 자택에서 요양하고 있는 고령인구가 증가한 만큼 소매시장으로 확대되고 있다. 일본 내 덮밥 프랜차이즈 식당으로 유명한 요시노야는 2017년부터 노인들을 겨냥한 ‘부드러운 덮밥’을 출시해 호평을 이끌어 냈다.

저작식을 개발하는 대표 기업은 큐피(Kewpie)이다. 2000년 저작곤란자식 ‘야사시콘다테(좋은 식단)’ 시리즈를 출시했는데 기존의 저작식보다 맛이 크게 개선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통 시니어푸드는 짧은 시간에 쉽게 먹을 수 있는 식사의 ‘기능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췄다. 반면 큐피는 노인들이 먹는 즐거움을 잃지 않도록 하는 데 집중했다. 소금 대신 가쓰오부시나 다시마 국물을 사용해 맛을 좋게 하고, 딱딱한 채소를 부드럽게 요리하기 좋도록 하는 메뉴를 개발했다. 현재 큐피의 고령친화식은 약 1만2000개 점포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일본 개호식품 시장의 규모는 2014년 1조2800억 원대에서 2020년에는 2조 원에 달하는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세에 부합해 식품의 경도 표기에 참여하며 개호식 문화에 적극적으로 일조하는 식품 기업은 이제 100여 개를 상회한다. 또한 등록된 제품도 수천여 개에 달한다. 개호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넓어져 호텔, 레스토랑을 비롯한 식당에서도 개호식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며 시장에서의 비중을 넓혀 가고 있다.

한국 시장 상황은 어떨까. 아직 관련 산업은 탐색 초기 단계다. 이를 지원할 정책 역시 걸음마 단계라 특성상 본 시장의 위치를 분석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최근 들어서야 기초 작업이 시작됐다. 2018년 1월 고령친화식품 한국산업표준을 제정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고령친화식품을 건강기능식품과 특수용도식품을 두부와 묵류, 전통·발효식품, 인삼·홍삼 제품으로 분류 및 정의했다. 또한 씹기, 삼키기, 소화 등 섭취와 관련된 단계별 특성상 및 물성 기준((1단계(치아 섭취), 2단계(잇몸 섭취), 3단계(혀로 섭취))과 측정 방법도 정했다.



우선 타깃층을 제대로 정하고 이해해야 한다

이미 한국은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기업들은 이들의 소비행동 패턴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때다. 우선 타깃층부터 제대로 설정해야 한다. 현재 소비층뿐만 아니라 미래 실버 시장의 주축이 될 수 있는 세대에 주목해 이들의 특성을 제대로 살피고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업들이 주목해야 할 세대는 현재 50대다. 이들의 소비 행동 패턴과 구매력, 여가활동 등을 잘 살펴보면 외식, 오락, 문화 등 가치소비를 즐기는 성향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즉, 이들이 미래의 소비시장을 이끌 주축 세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계동향조사에서 소비지출 항목 중 식료품·비주류 음료, 주거·수도·광열, 보건을 필수재적 소비로, 주류·담배, 의류·신발, 가정용품·가사 서비스, 교통, 통신을 중립재적 소비로, 그 밖의 오락·문화, 교육, 음식·숙박, 기타상품·서비스를 사치재적 소비로 분류한다. 현재의 50대는 기존 고령층과 달리 음식료품이나 주거비 등의 필수재적 소비지출에 치중하지 않고 외식, 오락, 여가, 문화 활동에 대한 소비지출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식품산업에서도 실버푸드 분야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단순 영양이나 기능만 공급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이들은 여생을 소일거리를 하며 보내거나 집안에 갇혀 손주를 돌보며 많은 시간을 보내 온 기존의 시니어들과 다르다. 액티브(Active)와 ‘연장자’를 의미하는 시니어(Senior)가 합쳐진 신조어로 불리는 ‘액티브 시니어’는 ‘건강하고 활동적인’을 삶을 원한다. 이들의 니즈와 라이프스타일은 소비 패턴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 고령친화산업 카테고리는 4가지로 정의될 수 있다. 1) 시니어 프렌들리(‘노인 전용’이 아닌 시니어의 불편 해소 차원의 설계 제품 및 서비스), 2) 웰니스(건강관리 관련 니즈에 대응하는 헬스케어 비즈니스), 3) 펀(적극적 여가 및 문화를 소비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엔터테인먼트 비니지스), 4) 매니지먼트(삶의 질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둔 금융 및 일상의 총괄적 관리) 등이다.



식품산업도 이러한 카테고리를 고려해 디자인해야 할 것이다. 건강상태에 맞춤화된 영양 제공은 기본이고 씹고 삼킬 수 있는 저작력을 고려해 설계된 식품군, 아웃도어 등 여가생활 등에 대응할 수 있고 일상적인 생활(원격 구매, 심부름 등)에 편리함을 줄 수 있는 콘텐츠가 실버푸드 비즈니스에 녹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시장에 접근한다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이 맥락에서 일본의 세븐일레븐 사례를 주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세븐일레븐은 실버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해 이들의 생활을 지원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 시장을 확보했다. 2015년 세븐일레븐 자체 조사 결과 50대 이상 편의점 이용객은 45%에 이르고 그 가운데 65세 이상 고객이 무려 60%에 달했다. 고령층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실버세대를 직원으로 채용하고 고령자용 도시락도 새로 개발했다. 그뿐만 아니라 고령 고객들을 위한 약과 식재료 배달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과 고령친화식품

디지털 기술은 고령화식품 비즈니스를 고도화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결국 고령화 식품도 사람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시니어 개개인의 식성, 건강상태, 선호도 등을 고려한 개인화한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니즈가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란 얘기다.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다. 관련 시장이 성숙할수록 고객 데이터가 쌓일 것이고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고객을 좀 더 세밀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 등과 같은 유통체인도 이제 기존의 온라인 쇼핑 플랫폼에서 구축화한 빅데이터와 AI를 내세워 새롭게 식품산업, 특히 실버 푸드 산업을 정복해 나가려 하는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다국적 기업들이 함께 힘을 합해 디지털 기술을 적용한 고령친화식품 개발에 한창이다. PERFORMANCE가 대표적인 예다. 3


주된 목적은 고령자, 특히 씹거나 삼키는 것이 어려워 건강이 취약한 계층을 대상으로 개인 맞춤의 영양식을 개발하는 것이다. 고객 데이터를 취합해 중앙에서 관리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자동화된 공정을 통해 개인 맞춤형 제품을 생산해 무인으로 배달, 공급할 수 있는 식품 공급 체인을 개발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Biozoon이라는 독일 3D 식품 프린터 기업이 제안해 이뤄졌다. 국제적인 산학연 공동 연구에 의해 고령자들의 영양 보충이라는 주목적과 더불어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제조된 식품의 개발에 역점을 두고 솔루션 개발에 집중했다고 한다.

참여한 기업과 연구기관들은 각자 맡은 역할에 집중해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를 완수하고 있다. 네덜란드 국영 응용과학기술연구소인 TNO에서는 3D프린터로 고령자 식품 출력을 담당했다. 덴마크의 비영리독립연구기관인 DTI(Danish Technological Institute)는 전체 공정의 최종 단계인 포장기술 연구개발에 참여해 전자레인지 감응 효율성 증대, 용기의 편리성 확보 등에 집중했다.

학계의 참여 그룹인 독일의 바이헨스테판-트리스도르프(Weihenstephan-Triesdorf) 응용과학대의 푸드테크 연구소는 고령식품 관련 지식을 IT와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연구했다. 예를 들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개인별로 다른 씹고 삼키는 정도를 파악하고, 이를 어떻게 제품 개발에 반영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솔루션을 제안한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결과물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미래 고령 음식을 개발하는 데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더 나아가 고령인구의 식습관 데이터를 확보해 분석하고 이를 제품 및 서비스 개발에 활용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네덜란드 바헤닝언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인 ‘미래의 레스토랑’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바헤닝언대의 한 구내식당처럼 꾸며진 이 실험실에는 일반 사람들이 평소와 같이 음식을 주문하고 식사를 한다. 사람들이 어떤 식단을 구매하는지, 어떻게 먹는지, 식사 시간은 얼마나 지속되는지 등 먹는 행위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센서를 통해 기록한다. 구내식당 천장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표정이나 음식을 씹고 삼키는 모습까지 감지한다. 이 데이터는 고스란히 연구실 컴퓨터에 저장되고, 이를 바탕으로 타깃층을 위한 식품이나 서비스 개발에 적용한다. 고령친화식 개발에도 이러한 연구 방식이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오히려 특정 타깃층을 대상으로 한다면 보다 견고하고 정밀한 연구 결과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이진규 이화여대 엘텍공과대학 차세대기술공학부 식품공학과 교수 jkrhee@ewha.ac.kr
이진규 교수는 연세대 생명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스크립스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화이자와 공동 연구를 수행했으며 귀국한 후에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의 선임연구원으로 일했다. 2015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 식품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창업보육센터 소장 등을 맡고 있다. 현재 식품 3D프린팅 기술, 고에너지 기반 극환경 미세분말가공기술, 미생물자원유래 발효가공기술 등을 기반으로 스마트푸드팩토리 플랫폼 구축을 위해 힘쓰고 있다. 고령친화식품을 포함한 미래 식품 제조 원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외 학계, 기업, 유관 연구소와 공동연구도 수행 중이다.


DBR mini box : 이강민 ‘사랑과선행’ 대표 인터뷰
“노인 식습관 관찰해 고령식 개발, 푸드테크는 기술이 아닌 휴먼 비즈니스”


‘푸드테크’는 단순히 새롭고 혁신적인 음식만을 이야기할까. 꼭 그렇지 않다는 게 이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푸드테크는 우리의 생활이 변화하면서 함께 달라지는 식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포괄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즉, 사회구조의 변화나 새로운 가치관의 등장에 따라 나타난 새로운 소비자 니즈를 포착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푸드테크 비즈니스의 핵심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의 주 소비층으로 부상할 고령 인구의 식문화에 대한 고민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2020년 전체 인구의 약 15%가 65세 고령 인구로 구성된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고령 인구의 현재 식문화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혁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요양원을 운영하던 이강민 대표가 2011년 설립한 사랑과선행은 노인들이 건강과 맛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고령식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노인들의 식습관과 영양 상태를 세심하게 연구해 개발한 고령 인구 표준 식단을 토대로 저렴하면서도 질 좋은 식사를 제공해준다. 한국에서 운영 중인 약 500여 개 요양원을 고객으로 확보했으며 최근 개인이 신청하면 집으로 매일 식사를 배달해주는 B2C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매출도 꾸준히 늘고 있다. 2019년 매출은 2018년 50억 원에서 2배 늘어난 100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성장 가능성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에서 증명됐다. 2019년 1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투자를 공모했는데 약 2억3000만 원에 달하는 투자금이 몰렸다. 일반인들이 투자하는 규모치고는 이례적인 수준이었다. 고령친화식 시장의 전망과 사랑과선행 서비스의 경쟁력을 모두 높이 평가한 결과다.

이강민 대표는 푸드테크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것은 꼭 기술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꼭 세상에 없는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푸드테크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먹는 것’의 영역 안에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대표는 “새로운 니즈를 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이해와 이들의 행복을 증가시키기 위해 실질적으로 노력하는 태도가 푸드테크 비즈니스의 전제 조건”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에게 새롭게 성장하고 있는 고령식 시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작은 스타트업이 어떻게 경쟁력 있는 푸드텍 비즈니스 사업의 토대를 만들 수 있었는지 등을 물었다.


이강민 대표는 사회복지와 경영학을 전공한 후 사회복지사로 활동했다. 졸업 후에는 노인 복지 사업과 봉사 활동에 힘썼다. 2008년부터 노인 돌봄 서비스를 시작한 이 대표는 2010년 노인 전문 요양원 원장으로 활동했다. 노인 요양 사업을 하면서 노인 식단관리의 중요성을 깨닫고 직접 고령 친화식 사업에 뛰어들었다. 2010년 성남시 노인복지시설협회 부회장, 2011년엔 한국장기요양협회 지회장을 역임했다.



고령식 관련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2008년부터 노인 전문 요양원을 운영했다. 노인들의 가장 고질병이 바로 욕창이다. 욕창은 단순히 소독을 잘하고 관리한다고 해서 낫는 게 아니다. 단백질을 잘 공급해야 상처가 잘 아문다. 단백질을 잘 공급하려면 영양소를 잘 소화시켜야 한다. 그런데 노인들 중 3분의 1이 삼킴 장애를 앓는다. 식사를 제대로 못하거나 쌀로 만든 죽 형태의 음식만 섭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면 병이 나을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노인들의 건강을 관리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가 식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2011년부터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당시만 해도 고령 전문 식단이나 식품이 많지 않았다.
그렇다. 가장 황당했던 것이 바로 정부가 제시한 65세 이상 고령 인구에게 필요한 표준 칼로리다. 실제로 그 칼로리대로 음식을 구성해 노인들에게 제공하면 바로 비만이 됐다. 활동성이 많이 떨어져 칼로리를 소모하지 못하는데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노인들을 위한 전문화된 식단과 식품을 개발하기 위해선 자체 연구·개발(R&D)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보통 식품 관련 R&D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대기업 중심으로 이뤄지지 않나?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 일본에서는 ‘개호 식품’이라고 해서 노인 전문 식단과 식품에 대한 연구가 이미 많이 진행되고 있었다. 한국보다 관련 기술이 10∼15년 정도 앞서 있다고 봐야 한다. 이 중에서도 SLC(Senior Life Create)라는 일본 시니어 도시락 전문 업체가 눈에 들어왔다. 일본 시장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이 업체는 노인의 기호와 영양 상태에 맞게 식단을 구성하고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직 아무도 시도하고 있지 않았다. 우리가 한번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제품 R&D를 주도한 SLC 회사 대표를 만나 기술을 전수받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지만 대표님께 정성스러운 편지를 전달해 마음을 움직여보기로 했다. 일본어를 전혀 못했던 상황이라 전문 번역사를 구해 번역비 50만 원을 주고 번역한 편지를 부쳤다. 혹시나 하고 해본 시도였는데 신기하게도 다카시 대표에게서 답장이 왔다. 그리고 내가 운영하던 요양원을 둘러보더니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겠다고 결정하셨다.


다카시 히로시 대표가 한국의 무명 기업을 도와주기로 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다카시 대표가 한국에 와서 내가 운영하던 요양원을 둘러본 후 왜 노인 전문 식품 사업을 하려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봤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그 자리에서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나중에 이유를 물어 보니 요양원 사업을 한 경험이 있어 노인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고, 어떤 부분이 개선돼야 하는지를 명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했다.

사실 사랑과선행이 다카시 대표에게 연락했을 때 이미 한국 대기업에서도 기술 제휴를 제의했던 상황이라고 했다. 그런데 단기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대기업에서는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시니어 관련 사업은 노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이 다카시 대표의 철학이었다. 노인들은 자극이나 변화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그만큼 섬세하고 예민하게 접근해야 한다. 또한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특정 소비층이 타깃이라 사업 초기에 다른 사업보다 이익을 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사랑과선행이 아주 작은 기업이긴 하지만 이러한 부분들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 평가했다고 한다. 다카시 대표는 기꺼이 자사 레서피와 생산 공정을 제공해줬다.



식품 사업 관련 노하우가 없어 처음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어떻게 극복했는가?
다카시 대표가 전수한 노하우 외에도 외부 기관과의 협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우선 노인 표준 칼로리와 필수영양소 등을 세팅하는 기초적인 작업부터 시작했다. 권종숙 신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와 함께 요양원에 입소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이를 토대로 우리만의 표준 칼로리, 영양소 등을 산출해 낼 수 있었다. 주나미 숙명여대 교수와는 노인의 삼킴 장애를 연구했다. 노인들이 잘 소화시키면서 영양소를 잘 흡수할 수 있는 시금치나물, 멸치볶음, 가자미구이 등에 대한 특허를 냈다. 대부분 일본의 개호식품 기준인 유니버설 디자인 푸드(Universal Design Food) 1∼2등급 수준을 기준으로 했다. 이렇게 하나하나 연구를 통해 총 100여 개의 메뉴를 개발할 수 있었고, 이를 토대로 사랑과선행만의 노인 전용 식단도 구성할 수 있게 됐다.


식품을 개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이었나?
유니버셜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고령이라고 해서 일반인들과 차별받는다고 느끼면 안 된다. 고령층이 아니더라도 제품을 이용했을 때 똑같은 가치를 누릴 수 있는 것을 주안점으로 둔다. 일본에서는 이미 일반화된 디자인 개념인데 장애인이나 노인이 일반인과 차별받는다고 느끼지 않고 누구나 쓸 수 있는 화장실을 디자인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철학은 우리 제품 하나하나에 다 녹아 있다. 첫째, 고령식이라고 해서 일반 사람들이 먹는 것과 다르게 만들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고령 소비자들은 다른 소비자와 마찬가지로 적정한 가격에 자신의 몸 상태에 맞는 음식을 먹으며 건강도 지키고 맛도 즐기고 싶어 한다. 노인이 됐다고 일반식과 다른 식단을 원하지 않는다. 평소 한국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즐겨 먹는 반찬과 국을 최대한 반영해 고령친화식을 제작해야 하는 이유다.

둘째, 식사의 편의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사랑과선행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제품이 바로 가시를 99.9% 제거한 생선 반찬이다. 노인들에게 가장 위험한 것이 생선 가시다. 가시를 씹으면 구강구조가 약해 바로 상처가 날 수 있고, 뼈가 몸 안으로 들어가도 통증을 못 느낀다. 이러면 욕창과 같은 심각한 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뼈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 한국 시중에 나와 있는 제품 중에 가시를 95% 제거한 생선 제품이 최고 수준이었다. 우리는 SLC와 협업해 뼈를 거의 완전히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 중국에 있는 칭다오 공장에 위탁 생산을 맡겼다.

포장 하나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 도시락 용기는 자체 개발한 것인데 손 감각이 상대적으로 둔해진 노인들이 한 번에 포장재를 잘 열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이 포장재도 특허로 등록했다. 생선, 고기 등 각종 반찬류도 노인들이 먹기 좋은 양인 손가락 두 마디 크기로 만들어 모두 소포장한다.



여전히 대기업이 진출해 있는 고령식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처음부터 노인 개개인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는 B2C 사업을 먼저 시도할 순 없었다. 인력도, 자원도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B2B 서비스로 시작해 사업 기틀을 마련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이전에 요양원 사업을 했었다. 그러면서 요양원에서 가장 힘들고 어렵게 느끼는 것이 바로 노인들을 위한 식사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사랑과선행의 고령식 전문 영양사가 식단을 짜주고, 그 식단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대신 구매해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했다(맛상 FS사업 ). 여러 요양원을 고객으로 확보하면 대량 구매를 통해 보다 질 좋고 안정적인 식재료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요양원의 니즈를 잘 파악하고 시작한 사업이기 때문에 단시간에 반응이 왔다. 하나둘씩 계약이 맺어지더니 어느덧 500여 개 요양원이 사랑과선행의 식단과 식재료를 받아본다. 전국 요양원의 80%가 우리가 짠 식단표를 참고해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맛상e배려식은 서비스를 온라인 플랫폼으로 옮겨 온 것이 특징이다. 사랑과선행의 전문 영양사들이 짜놓은 식단을 보고 각 요양원이 온라인으로 주문으로 하면 자동으로 필요한 식재료를 구성해 배송한다. 이때부터 우리가 제조한 식품을 급속 냉동해 해동하는 RTH(Ready to Heat) 제품을 시도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19년 초 노인들의 집까지 도시락을 배달하는 B2C 사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효도쿡123).



대기업에서도 고령친화식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사랑과선행의 확실한 경쟁 우위는 무엇인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가격경쟁력이다. 사랑과선행 도시락 구성에는 연어와 같이 비싼 생선도 제공하고, 탕이나 국도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그럼에도 가격은 6500원을 유지하고 있다. 6500원이 저렴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새롭게 개발한 식단에 직접 배달까지 매일 해주는 점을 고려하면 비싼 가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향후에도 이 가격을 최대한 유지하고자 한다. 노인들이 매끼 부담 없이 건강하게 챙겨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고령친화식 시장에 진출한 일부 대기업의 경우 프리미엄 시장을 겨냥해 단가를 높인 경우가 많다. 각종 약재가 들어가 영양소가 풍부하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매번 사 먹기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둘째, 노인들이 맛으로 느끼는 행복을 포기하지 않도록 노력했다는 점이다. 고령친화식 하면 필수영양소를 잘 배합해 만든 파우더나 죽 형태의 제품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 이 제품을 먹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간이 기본적으로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사라지는 느낌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평소에 먹던 음식을 그대로 즐기고자 하는 노인들의 욕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줘야 한다. 그리고 이 음식들을 보다 고령친화적으로 R&D하는 것이 우리 몫이다.

마지막으로, 도시락을 매일 배달하면서 돌봄 서비스까지 추가로 제공한다는 점이다. 요즘은 혼자 사는 노인들이 많다. 사랑과선행은 직원들이 매일 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면서 근황을 살핀다. 안색은 어떤지, 거동은 어떤지 등을 통해 위험신호를 감지해낸다. 사랑과선행 직원 대부분은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어 어느 정도 전문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사회복지사가 아닌 경우에도 사내 교육을 통해 역량을 갖춘다.


사랑과선행이 푸드테크 기업이 아니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푸드테크라고 해서 신기술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고령친화식이라는 신시장에서 노인들이 건강을 지키고 맛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는 도시락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노인들이 쓰기에 적합한 레서피나 용기를 R&D하는 것도 분명 혁신이다. 게다가 도시락 배달과 돌봄 케어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를 고안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도 만들어냈다.

재밌는 것은 앞서 언급한 e배려식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고객 데이터가 계속 축적되고 있다는 점이다. 500여 개의 요양원에서 주문한 식단 데이터를 빅데이터로 축적해 알고리즘화한다면 새로운 서비스 확대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노인들에게 특화된 식단 및 음식 소비 패턴을 분석해 정교한 ‘맞춤형 식단’ 개발도 가능할 것이다. 현재 사랑과선행은 데이터베이스 전문가, 프로그래머 등 IT 인력 3명을 영입해 노인 건강 및 돌봄 통합 솔루션을 개발 중에 있다.

도시락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더 높은 차원의 돌봄 서비스가 가능하다. 도시락 주문 및 일정 관리를 하고, 도시락을 배달하는 직원이 노인들을 직접 만나서 건강 상태를 체크한 후 앱에 기록해 개별 고객의 건강 및 생활 관리를 돕는 것이다. 또한 웨어러블 기기 회사와 협업해 노인 전용 바이탈 체크 웨어러블 기기도 개발했다. 이 기기와 앱을 연결해 고객의 활동성, 수면 등과 관련한 기본 건강 정보도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다. 한 달 정도 시범 운영을 해봤는데 고객들의 반응이 좋았다. 포스코기술투자가 이례적으로 도시락 배달 업체에 15억 원이나 투자한 배경이기도 하다.

푸드테크에서 기술은 수단의 문제다. 어떠한 고객을 타깃으로 할 것인지, 그 고객의 고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이 고민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테스트하면서 서비스를 정교화하는 과정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미영 기자 mylee03@donga.com


The Column : Behind Special Report
“실리콘밸리가 띄우는 새로운 거품 아닐까?”

처음 푸드테크 취재를 시작할 때 삐딱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콩으로 만든 가짜 고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영화 ‘설국열차’에서 경제적 약자들이 끼니를 때우기 위해 먹었던 곤충이 대체 단백질로 각광받을 것이라니.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일인데 굳이 이런 ‘가짜’ 음식을 먹어야만 할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전 세계 최신 기술과 트렌드를 선도하는 실리콘밸리의 ‘선수’들이 새로운 시장을 조성하기 위한 ‘밑 작업’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미래 음식’에 가장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는 Z세대(주로 1995년 이후 출생한 20대)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봤다. 이들은 이런 음식들을 일부러 찾아 먹는다. 음식의 맛보다 영양성분, 만들어진 과정을 더 중시한다. 건강에 좋은 균형 잡힌 식단을 찾고, 식재료 생산 과정에서 환경오염을 최소화한 음식을 더 비싼 돈을 주고라도 사 먹는다.

별나게 보이는 이들의 선택에는 그럴 만한 속사정이 있었다. Z세대는 숨 막히게 가속화되는 환경오염 후폭풍에 죽어가는 동물들의 처지가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미세먼지로 가득한 봄, 지구 온난화로 인해 타들어 가는 여름과 견디기 어려운 혹한으로 이어지는 이상 기후가 그들의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조상들이, 그리고 부모 세대들이 살아온 생활방식을 거부하고 환경을 지키며 함께 살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친환경 제품을 사고, 자원을 공유하는 노력으론 부족했다. 고민은 먹고사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가축을 기르면서 내뿜는 막대한 환경오염을 ‘0’으로 수렴할 수 있는 먹거리를 찾아 나선 것이다.

Z세대와 이들의 삶의 방식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비즈니스’로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영리하게도 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유용하고 훌륭한 도구인 디지털 기술을 활용했다. 여기에 실리콘밸리 특유의 과감한 실행력과 시류를 읽는 혜안이 반영된 투자가 맞물리면서 새로운 삶을 실천할 수 있는 동력이 마련됐다. 인공 소고기와 계란을 만들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최소화한 단백질 음료를 개발하는 회사들이 탄생한 것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자율주행 회사도, 플랫폼 회사도 제치고 지난 5월 상장된 콩고기 생산 스타트업의 주가가 최근까지도 매우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들의 생각, 그리고 세상을 향한 외침이 결코 허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마음을 달리 먹고 보니, 나 또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따라 생겨난 푸드테크 서비스를 이미 생활화하고 있었다. 배달 음식 플랫폼과 공유주방이 대표적인 예다. 좀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쪼개 쓰고 싶어 하는 요즘 세대들의 생활방식을 반영한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가정식을 더 맛있고 편리하게 먹기 위해 요리를 ‘외주화’한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음식과 요리의 개념이 바뀌고 있는 것은 물론, 새로운 가사 분업 구조로 변모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쭉 지켜보면서 결국 푸드테크는 인간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라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내고, 이는 곧 사람들을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이동(shift)’하게 만든다. 푸드테크는 인류가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한 결과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인류가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간파해낼 수만 있다면 탄탄하고 확장 가능성도 큰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들이 창출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영 기자 mylee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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