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3. ‘개·취·존(개인취향존중)’ 트렌드의 나비효과

“BTS 글로벌 인기? 내 일 아닌데…”
Z세대에겐 누구나 좋아하는 취향은 없다

278호 (2019년 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트렌드를 트렌드라 부를 수 없는 시대가 왔다. 요즘 유행은 일시적이고 제한적이다. 최신 트렌드를 모른다고 당황할 필요도 없다. 상당수가 현상에 무관심하며, 재미없다는 의견을 과감하게 내비친다. 거대 트렌드는 죽고, 취향만 살아남은 것이다. 다만 일부 취향이 모여 세를 과시한다. 이러한 경향은 나이가 적을수록 강하게 나타난다. 밀레니얼세대, Z세대 등 젊은 세대일수록 개인 취향이 ‘대세’에 영향을 안 받거나 덜 받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제 ’재미와 의미’는 남들이 좋다고 평가한 것이 아닌, 개인적인 경험이나 취향에 따른 의미 부여라고 할 수 있다.


편집자주
최근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들을 만나보면 “트렌드 파악이 너무 힘들다”고 입을 모읍니다. 왜일까요. 밀레니얼세대, Z세대를 중심으로 자신의 취향을 가감 없이 표출하는 추세 때문입니다. 유행이 유지되는 기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트렌드도 하나가 아닌 여러 개가 혼재된 모습입니다. 전문가들은 트렌드가 과거에 비해 가벼워졌다고 분석합니다. 윤 총괄부서장이 이 양상을 짚어봅니다.



펭귄퀴즈와 괄도 네넴띤의 ‘일시적’이고 ‘제한적 유행’이 말해주는 것

얼마 전 유행한 퀴즈를 하나 내본다.



문제를 끝까지 읽기도 전에 20에서 3을 나누기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일단정지. 당신은 이른바 ‘아싸(아웃사이더)’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문제는 답을 굳이 맞히라고 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답은 이미 문제 속에 있다(정답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세요’). 모든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당혹스럽고 낯선 형태의 ‘무의미 놀이’가 유행하고 있다. 이 ‘펭귄퀴즈의 프사놀이’는 2019년 5월경부터 페이스북을 통해 급속하게 퍼졌고 1 급기야 한 국회의원은 이 ‘펭귄 프사놀이’를 자신의 정치적 발언의 소재로 활용하기도 했다. 2

이 같은 ‘재미’에만 집중한 눈에 띄는 마케팅은 또 있다. 이른바 ‘뉴트로(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라고 소개된 ‘괄도 네넴띤’이다. 이 제품은 지난 2월 팔도에서 비빔면 출시 35주년을 기념해 한정판으로 선보인 제품이다. 팔도는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재미로 읽는 방식인 ‘괄도 네넴띤’(이 글자를 멀리서 떨어져서 읽으면 ‘팔도 비빔면’과 비슷하게 읽힌다. 이런 비슷한 단어가 명작 → ‘띵작’, 멍멍이 → ‘댕댕이’, 세종대왕 → ‘세종머왕’ 등이 있다)으로 명명해서 출시했다. 한정판으로 기획돼 7만5000여 개를 11번가에서 단독으로 출시했는데 23시간 만에 완판됐다. 3



‘모든’ 사람에게 이 두 가지 놀이(또는 마케팅)가 이슈가 됐을까? ‘펭귄퀴즈’와 ‘괄도 네넴띤’을 현재의 시점에서 검색해보면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이슈화해서 보도한 시점 이후에 후속 보도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대중적으로 추가적인 반응이 감지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은 빠르게 이슈에서 사라진 이 두 개의 이슈는 공통점이 있다. 이 놀이(또는 마케팅)에 열광하는 쪽과 무관심하거나 비판적인 입장 4 이 구분돼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 한국 사회의 문화적 취향이 현저하게 빠르고, 개인화하고 있다는 단서를 제공한다. 만약 당신이 앞선 펭귄퀴즈나 괄도 네넴띤을 지금 이 지면에서 처음 접한다면 최신 트렌드를 모른다고 당황할 필요가 전혀 없다. 상당수가 이 현상에 무관심하며, 일부는 재미없어 한다. 재미의 요소는 개인별로 취향에 따라 취사 선택되는 것이 일종의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중(mass)이라는 의미에 부합하는 규모의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는 ‘재미(혹은 마케팅)’는 없다. 이 주장에 대한 직접적인 근거는 방탄소년단(BTS)에 대한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세계적인, 역대급 아이돌, ‘BTS’… but, 나는 관심 없다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장을 매진시킨 12번째 가수. 영국 오피셜 앨범 차트 1위.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를 11개월 동안 무려 3개의 앨범이 연속해서 1위. 설명이 필요 없는 글로벌 보이 그룹의 아이콘, 방탄소년단(BTS). 유튜브에서 BTS를 치면 조회되는 영상물의 조회 수는 ‘급’이 다르다. 조회 수 1억∼2억 회는 기본으로 넘어가며 최근 앨범의 타이틀곡인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uv)’는 2019년 7월 기준으로 조회 수가 4억6000만 건이 넘는다. 이 정도의 글로벌 팝스타라면 국내에서 ‘국민 가수’ 타이틀을 부여받는 것은 당연하다. 국내의 반응은 말하나 마나. 대다수 국민이 BTS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어디에서나, 어딜가나 이들의 노래를 즐기는 것이 예상된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을 깨는 흥미로운 결과가 있다.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최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만 16세부터 64세까지의 응답자들 중 절반이 넘는 52.8%의 응답자들이 ‘BTS의 이름은 뉴스에서 들어봤으나 노래나 멤버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그룹 이름 및 멤버, 노래도 잘 알고 있음 44.2%) 5 . 아예 BTS를 ‘모른다’고 응답한 3%를 더하면 55.8% 정도의 사람들이 BTS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6 방탄소년단의 팬클럽인 아미(ARMY)가 들으면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응답은 이 밖에도 많았다. BTS의 음악이 다른 아티스트들에 비해 현저한 차이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현저하게 높은 수준이 아니었고(BTS 음악은 다른 보이 그룹과는 차별화된다/구분된다 - 동의 38.4% vs. 비동의 17.5% vs. 잘 모름 44.1%, BTS의 군무(댄스)는 다른 보이 그룹과는 차원이 다르다 - 동의 34.3% vs. 비동의 20.7% vs. 잘 모름 45.0%), 심지어 음악만으로는 다른 보이 그룹과는 큰 차이를 못 느낀다는 사람들도 상당수가 있었기 때문이다(나는 음악만으로는 솔직히 BTS와 다른 보이 그룹과 큰 차이를 못 느낀다 - 동의 41.5 vs. 비동의 25.4% vs. 잘 모름 33.1%) 7 . 그래서 종합적으로 보면, 어딘지 국민 다수가 가지는 일반적인 ‘대세’의 느낌과는 달리 호감도가 현저하게 높지는 않았다(호감 54.8%, 보통 36.9%, 비호감 8.3%) 8 . 뉴스에서는 글로벌한 반응을 소개하고 대세라고 보도는 하지만 ‘좋아하는 팬’과 ‘무관심한 일반인’이 현저하게 구분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좋고 싫음에 대한 태도는 세대에 따라 현저하게 나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취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Z세대’에게는…

조사에서 나타난 호감도 차이를 세대별로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눈에 띄는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BTS에 대해 가장 높은 호감도를 보여주는 세대는 이른바 1차 베이비붐세대라고 일컬어지는 55세부터 64세까지(55∼64년생)다. 이 세대 응답자의 65.0%가 BTS에 대해 호감도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이번 조사에서 Z세대로 구분한 9 95년생부터 2003년생까지의 세대들은 호감도가 44.0%로 가장 낮았다. 그다음으로 호감도가 낮은 세대는 Y세대로 불리는 밀레니얼세대(본 조사에서는 87∼94년생으로 구분)였다(51.0%). 세대에 따라 호감도 순위는 현저하게 다르게 나타나고 있었다.

정리하면, BTS에 대한 세대별 호감도 순위는 1순위 - 1차 베이비붐세대(55∼64년생), 2순위 - 2차 베이비붐세대(65∼74년생), 3순위 - X세대(75∼86년생), 4순위 - Y세대(87∼94년생), 5순위 - Z세대(95∼03년생) 순이었다. 10

전문가들은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공감과 긍정의 메시지’가 BTS 열풍의 배경이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이 조사 결과는 BTS의 영향력은 젊은 세대의 딱 절반 정도에게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대별로 타인의 태도에 영향을 어느 정도 받는지는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는 행태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여기 아주 재미있는 자료가 하나 있다. 요즘 유행하는 ‘리액션’ 영상에 대한 태도인데(그림4) 예를 들어, ‘×× 반응’이라는 키워드를 유튜브 검색창에 치면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조사 결과에 BTS 관련 영상을 보는 ‘해외 팬들’의 리액션 영상에 대한 결과다. 아주 흥미롭게도 예상과는 달리 55년생부터 64년생 사이의 1차 베이비붐세대들이 이런 영상들을 가장 자주 찾고 있었다(시청 경험 1위. 63.0%).11 다음으로 65∼74년생의 2차 베이비붐세대(49.0%)였고, X세대(75∼86년생, 41.0%), Y세대(87∼94년생, 40.0%) 순이었다. 12 BTS에 관한 리액션 영상에 관한 시청 경험으로만 보면 Z세대는 관심이 가장 적은 것 같았다(33.5%). 13 비율이 높지는 않지만 그 리액션 영상을 보면서 외국인들의 반응에 공감하지 못하는 비율도 Z세대가 가장 높게 나타난 것이다(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보이 그룹에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진 않는다 - Z세대 14.9%, Y세대 13.8%, X세대 7.3%, 1차 베이비붐세대 7.9%, 2차 베이비붐 7.1%). 14

‘다른 사람’에 대한 반응을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1차 베이비붐세대(55∼64년생)’였고, 가장 덜 궁금해 한 것은 ‘Z세대’였다.

나이가 어려질수록 ‘개인 취향’이 ‘대세’에 영향을 안 받거나 덜 받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좋고, 싫고의 개인적 판단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세대별 특성은 BTS에 대한 태도에서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1, 2차 베이비붐세대(55∼64년생, 65∼74년생)들은 BTS를 자랑스러워 했다. BTS가 외국에서 인정받고 있어서 자랑스러웠고(1차 베이비붐세대 92.0%, 2차 베이비붐세대 88.0%), 외국에서 인정받고 있는 걸 보니 ‘내가’ 기분이 좋았다(BTS는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평가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 1차 베이비붐세대 85.0%, 2차 베이비붐세대 80.0%). 15 반면, Z세대는 BTS가 외국에서 인정받고 있는 것이 좋은 일이긴 하지만(69.0%), 내가 크게 기분 좋을 일은 아닌 것 같아 보였고(BTS는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평가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42.5%), 심지어 외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사실에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나는 BTS가 외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Z세대 41.5%, Y세대 38.0%, X세대 25.5%, 2차 베이비붐세대 18.0%, 1차 베이비붐세대 17.5%). 16


즉, 1, 2차 베이비붐세대들에게 BTS는 ‘외국에서 인정받아’서 뿌듯하고 기분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아티스트였고, Z세에게 BTS는 콘텐츠(음악, 메시지, 퍼포먼스, 공연 등) 자체가 좋은 아티스트였다.


‘개·취·존’ 사회와 ‘사회적 본능’ 사이의 괴리

Z세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 세대가 상대적으로 자신의 취향을 분명히 하는 경향은 있지만 개인의 취향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고, 상호 존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세대와 관계없는 일종의 시대정신으로 보인다. 수많은 사람이 취향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실제하고 있기 때문이다(개인의 취향은 존중돼야 한다 93.9%). 17 사람들은 개인의 취향을 중시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으며(82.8%),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을 겨냥한 서비스나 상품이 많은 것 같다고 체감했고(78.1%), 많은 사람이 자신의 호불호를 드러내는 것이 분명하다고 이야기했으며(57.4%), 이런 다양한 취향이 드러나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의미 있는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80.3%). 18 수많은 사람이 현재의 한국 사회는 분명 ‘개·취·존(개인 취향 존중)’ 사회로 진행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런 인식은 ‘1인 체제 19 화’ 돼가고 있는 지금의 시대 흐름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지금은 뭐든지 혼자 하는 게 속도 편하고, 몸도 편한 1인 체제의 시대다.

2015년부터 추적해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20 현재 사람들은 집에서 오래 머문다. 과거에 비해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집에서 머물고 있다. 뭐든 혼자서 하는 활동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21 혼자 밥 먹고, 술 마시고, 영화보고, 놀고, 심지어 소송도 혼자서 찾아보고 한다. 22 여기에서 파생된 소비 트렌드도 많다. 예를 들면, ‘홈트(홈+트레이닝)’라고 하는 트렌드가 있다(조사에 따르면 현재 정기적으로 운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82.5%가 이 홈트의 경험이 있었다). 집에서 스타 트레이너가 나오는 유튜브만 틀어놓고 매트 하나 깔아놓으면 근처 헬스장에 안 가도 된다. 내 방이 시간, 공간 제약이 없는 헬스장이 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집안에 대한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다거나, 유튜브의 영향력이 급증 23 하고, 여행사들이 파산24 하는 것은 대부분 사람이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1인 체제의 시대에 ‘개인 취향 존중’이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인간이라는 동물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본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던바의 수(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의 실질적인 수적 한계, 150)’로 유명한 세계적인 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여러 영장류를 연구하면서 사회적 무리의 평균적인 크기는 그 종의 뇌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것을 밝혀낸다. 즉, 큰 사회적 무리에서 생활하는 영장류일수록 뇌의 크기가 크다는 것이고, 영장류의 사회적 무리의 평균 크기는 고등 사고 기능을 하는 뇌의 신피질 크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고등 사고가 가능하게 된 핵심이 바로 그 무리 속에서 상호작용의 양, 즉 ‘사회적 집단의 크기’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인간은 사회생활을 통해 고등 사고가 가능하게끔 진화(사회적 뇌 가설)해왔다. 로빈 던바는 진화론의 관점에서 영장류가 창조한 최고의 발명품으로 이 ‘사회성(sociality)’을 꼽는다. 25



인간이 가진 이 본능(사회성)을 전제하면 현재 한국 사회에서 ‘1인 체제’는 본능에 역행하는 체제다. 인간의 사회성이라는 본능과 현재의 삶(1인 체제) 사이에 큰 갭이 존재하는 것이다. 현재의 1인 체제 삶의 형태는 필연적으로 사회성에 대한 결핍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개·취·존’ 사회의 나비효과: 동창회는… 큰 불만은 없지만 재미없다

이 결핍이 만들어낸 유행이 몇 년 전부터 한국 사회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일상적인 사회성을 대리해서 충족시켜주는 TV 프로그램들이다. 등장하는 출연자들은 결혼 생활을 대신해주고, 육아를 대신해줬으며,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다수 출연해서 여행을 가고, 매일 먹는 냉장고의 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한다. 이제 사람들은 멋지고 잘생기고 예쁘고 화려한 연예인의 퍼포먼스를 즐기기보다 나와 비슷한 일반인의 생활과 사연을 궁금해 하고 공감하고 싶어 한다. 지금까지도 이런 프로그램들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보고 싶어 하는 이 욕구는 유튜브라는 플랫폼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사회성이라는 인간의 본능과 1인 체제 사이의 결핍이 한국 사회 문화 콘텐츠 소비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 취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한 가치로 부각되는 시대,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결핍된 사회성’을 충족시키려 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자신의 취향과 공감하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취향과 관련된 최근의 새로운 모임의 형태가 이른바 ‘살롱문화(취향공동체) 26 ’ 같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림5]에서도 이런 유사한 패턴의 결과가 관찰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에 공감받는 것을 기분 좋아했고(84.0%), 반가워했으며(80.7%), 즐겁고(80.0%), 동질감을 느꼈고(76.6%), 소속감도 느꼈다(59.7%). 27 언제든 필요하다면 ‘자신의 취향’과 비슷한 사람들(모임)을 찾아다니며 일상에서의(사회성의) 결핍을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기존의 인간관계(모임)를 맺어온 방식에 대한 궁금증이 하나 생긴다. 사람들이 지금까지 어떤 형태로든 맺어온 모임은 어떻게 되고 있는 걸까. 동창회, 동문회 같은 전통적인 형태의 모임은 기능을 다 한 걸까. 이런 궁금증에 기반한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하나 있다. 지난 3월,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사람 중 80% 이상이 어떤 형태로든 모임에 참여하고 있었으며 28 대다수가 학창 시절에 기반한 동창회였다(현재 활동 중인 정기적인 모임 - 1순위 고교 동창회(43.6%), 2순위 대학 동창회(34.0%), 3순위 중학교 동창회(17.4%), 4순위 초등학교 동창회(16.7%). 29

한국 사회에서 동창회는 모임의 기본적이고 원형에 가까운 형태인 것으로 보인다. 사회생활의 기본은 동창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 동창회의 이런 ‘기본적인 모임’이라는 특색은 뾰족하지 않은 만족도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크게 만족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큰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특별히 불만 없음 - 92.6%). 30

‘모임 ≒ 동창회’라는 도식은 학연과 지연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나 하는 것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은 학연과 지연이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81.0%). 31 여기서 흥미로운 균열이 관찰된다. 이전에 비해 동창 모임에 참석하는 정도가 현저하게 줄고 있었고(동창 모임 참석 정도 - 증가 6.6% vs. 감소 52.1%), 모임의 중요도 또한 크게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동창 모임의 중요도 - 증가 10.7% vs. 감소 38.0%). 32 이유가 뭘까? 직접적으로 사람들이 내세운 이유는 ‘바쁘기’ 때문이었다(동창 모임 중요성 감소 이유 - 1순위 다들 개인의 삶을 살기에도 바쁜 세상이라서 65.8%). 33 그리 피상적인 인간관계보다는 숫자가 많지는 않아도 소수의 가까운 사람과의 밀도 있는 인간관계를 선호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한 것 같다(나는 소수의 몇 명 친한 친구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 79.3%). 34 여기에다 사회적인 관계에 신경 쓰는 것보다 ‘가족’과 ‘진짜 친구’ 몇 명으로 충분하다는 인식이 팽배하고 있다(74.3%). 35 이 생각은 ‘아는 사람’은 많을수록 좋다는 전통적인 관념이 깨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친구는 자고로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동의 32.7% vs. 비동의 50.7%). 36



현재 한국 사회의 동창회는 크게 불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시간을 내서 굳이, 매번 참석할 마음까지는 나지 않는 그다지 재미있는 곳은 아니었던 것이다.


동창회가 재미없는 이유, ‘아는 사람’에 대한 감정노동

동창회가 점점 인기가 떨어지는 보다 직접적인 이유는 불참 이유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피상적인 이유는 ‘불가피한 상황’이었지만(요즘 너무 바빠서 32.6%, 연락이 없어서 19.8%) 적극적인 불참 이유는 바로 ‘내가 잘 아는 사람에 대한 감정노동’을 하기 싫어서였다(사람들을 만나 감정노동을 하는 것 자체가 귀찮아서 - 13.0%,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 11.8%, 친하지도 않던 사람이 친한 척하는 게 싫어서 - 11.8%). 37

이런 경향은 이전부터 관찰돼 오고 있었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보다는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과의 관계를 더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나는 가끔 몇 번 보지 못한 관계의 타인이 좀 더 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 동의 47.9% vs. 비동의 38.9%). 38 많은 사람이 이미 ‘자신을 잘 아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처음 만나게 된 사람들이나 관계가 깊지 않은 사람들을 대할 때, 대부분 ‘자신이 보여지고 싶은 방식’으로 자신을 연출한다. 하지만 자신을 잘 아는 관계에서 이런 연출은 ‘아는 사람’들의 불편함을 수반한다. 이때 오가는 흔한 대화는 ‘너 왜 안 하던 짓 하고 그러냐’ 하는 것이다.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모습’이 나를 잘 아는 친구들에게는 ‘안 하던 짓’이 되는 것이다. 이런 형식의 모임이 반복되면 개인의 취향이 존중받기를 원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에 완벽하게 역행하는 분위기의 모임이 된다.


개·취·존 사회의 사회성은 개인화된다: 개인화된 사회성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본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의 뇌가 그런 방식으로 진화해왔고, 고등 사고의 과정도 사회적 관계의 복잡성과 함께 발달해왔다. 인간은 타인과 관계 맺기를 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 이런 전제에서 보면 ‘나홀로 되기’를 선호하는 현재의 사회 분위기가 유행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그동안 얼마나 ‘의무 혹은 역할’을 명분으로 타인에게 억압적이었는지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한국 사회의 1인 체제 현상은 인간관계의 양상도 바꿔놓고 있다. ‘아는 사람’에 대한 감정노동을 최소화하려고 하고 자신의 취향을 존중받는 곳을 찾아 다닌다. 사람들은 이제 ‘막연한 교류나 친목’을 목적으로 타인과 만나지 않는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개인의 관심사를 위주로 한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고/존중받는 인간관계를 지향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사회성을 타고난 존재이지만 현재의 사회성은 ‘철저하게 개인화된 형태의 사회성’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조사에서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그대로 드러난다. 상당수의 사람이 나와 비슷한 취향과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겠다는 의향을 드러내고 있었고(73.3%), 나와 비슷한 취향과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비용’을 더 투자할 의향이 있었으며(61.2%), 더 많이 만나고 싶어 했고(68.7%), 학연과 지연보다 취향과 관심사에 기반한 이러한 인간관계가 더욱 중요하다고 전망했다(61.1%). 39


유튜브의 폭발적인 성장세 뒤에는 바로 이 ‘공감의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는 개인들의 ‘사회성 결핍’의 문화적 코드도 존재한다. 유튜브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그 콘텐츠가 다양하고, 자체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나와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을 찾는 용도로도 활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유튜브에서는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다 - 63.5%, 유튜브는 이용자 간의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커뮤니티 역할을 한다 - 67.3%). 40

개인 취향을 존중하고 존중받기를 원하는 시대. 사람들은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생활하는 개인이 되기를 원하고 있었고, 여기서 파생하는 사회성의 결핍은 자신과 공감하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다니고, 자신과 유사한 취향을 보여주는 콘텐츠를 소비하며 충족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2019년 한국 사회의 사회성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적으로 맺어지는 형태의 사회성’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모였다가 흥미를 잃으면 바로 흩어지는 형태를 선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사점과 전망

개인의 취향이 존중받고,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압도하는 시대다. 이렇게 되면 첫 번째로 영향을 받는 분야는 기존의 전통적이고 의례(ritual)적인 모임의 형태부터 영향을 받는다. 개인의 관심사에 따라 선택하는 모임이 아니라면 동창회, 동문회, 향우회, 사우회 등 귀속적 지위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돼 온 모임은 타격이 불가피해진다. 회사라는 형태에서 반강제적으로 했던 모임들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 혹은 개인적으로 이런 모임들이 꼭 필요하고,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면 몇 가지 팁은 있다. 그 모임에서의 ‘감정노동’을 최소화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회원 간에 의례적인 경조사를 없애거나 줄이고, 모임의 장(長)을 정기적으로 교체하고, 회원들의 권한을 똑같이 배분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지금의 사람들이 ‘통제 가능한’ 상태 41 에 들어가고, 당연히 관여가 높아져 그 모임은 지속가능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요즘 유행하는 ‘살롱’문화가 딱 이렇게 운영된다).

두 번째로 영향을 미치는 분야는 미디어 콘텐츠 분야다. 자신의 시간과 상황에 맞춘 유튜브와 팟캐스트의 콘텐츠 소비가 광범위하게 일반화되면서(내가 원하는 시간에 유튜브를 볼 수 있어서 좋다 - 85.1%, 내가 원하는 시간에 팟캐스트를 듣거나 볼 수 있어서 좋다 - 65.7%) 42 기존 매체의 영향력(기존의 방송사)은 거의 제로에 가까워 졌고 ‘콘텐츠 자체의 재미와 의미’가 이전보다 훨씬 중요해진 것이다. 여기서 파생된 소비자들의 관심이 OTT 서비스 43 에 대한 관심으로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다(OTT 서비스를 이용하면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언제든지 볼 수 있어서 좋다 - 84.2%, OTT 서비스가 향후 TV시청 습관을 더욱 변화시킬 것 같다 - 74.6%, OTT 서비스로 인해 콘텐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식이 높아진 것 같다 - 74.3%, OTT 서비스를 이용하면 어느 방송사의 프로그램인지 모르고 보는 경우가 많아질 것 같다 - 71.0%). 44 그 ‘재미와 의미’는 남들이 좋다고 평가한 것이 아닌 개인적인 경험과 취향에 따른 의미 부여다.

마지막으로, 이 ‘개인 취향 존중’ 문화가 미치는 가장 중요한 변화는 세대 간 영향력의 차이를 고려한 마케팅이다(특히 문화상품에 대한). 그리고 이 차이에 따라 정교한 타기팅이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대세를 형성하는 드라마나 영화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2019년 상반기를 강타한 ‘기생충’이라는 영화는 외국의 권위(칸 영화제 황금종려상)라는 호재에 힘입어 천만 관객에 육박했지만 인터넷을 찾아보면 영화를 보는 감상평은 100인 100색이다. 호평과 악평의 스펙트럼이 양극단을 오간다. 이전의 천만 영화와 비교해 볼 때 이 같은 평가는 매우 이색적이다. 각자의 시선으로 영화는 보지만 각자의 입장에서 해석하는 것이 일종의 흐름이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비즈니스 차원에서건, 개인 차원에서건 콘텐츠를 다뤄야 하는 분야에서는 재미가 ‘세대별, 개인별’로 정교하게 쪼개져야 한다. 세대를 공략해야 한다면, ‘Z세대’를 우선적으로 타기팅해야 한다. 왜냐하면 Z세대를 움직이면 Z세대에게 영향을 직접 받는(타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 세대이자, Z세대의 부모 세대인) 40대와 50대가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괄도 네넴띤’은 철저하게 10대와 20대를 공략해서 입소문을 내고 40대와 50대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킨, 전 세대를 아우르는 매우 절묘한 마케팅 사례다.


필자소개 윤덕환 마크로밀엠브레인 콘텐츠 사업부 총괄부서장 dhyoon@trendmonitor.co.kr
필자는 고려대에서 문화·사회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마크로밀엠브레인에서 다수의 마케팅리서치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현재 콘텐츠사업부를 총괄하고 있다. 인천대 소비자학과 겸임 교수로도 활동했다. 저서로는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장기불황시대 소비자를 읽는 98개의 코드』 『불안 권하는 대한민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읽는다』와 2016년부터 철저한 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매년 발간하는 『2xxx 대한민국 트렌드』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51호 Diversity in Talent Management 2022년 08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