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Case Study: 팀블라인드의 글로벌 전략

벽보 붙이고, 발로 뛰었다
모두가 실패할 거라던 미국 시장이 열렸다

275호 (2019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과 ‘물컵 갑질’, 두산인프라코어의 ‘신입사원 명퇴’, 금호아시아나에서의 ‘미투’는 모두 ‘블라인드’라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서비스 채널을 통해 불거져 나왔다. 그런데 이 앱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승승장구하며 최근 미국 가입자만 50만 명을 넘겼다. 블라인드를 만든 스타트업 팀블라인드는 ‘미국에서는 솔직하게 소통하는 문화가 있기에 블라인드가 성공하기 어렵다’는 통념에 도전했다.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가진 백인 남성’만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는 걸 파악해 미국에서도 ‘익명에 기반한 솔직한 소통과 문제제기의 장’을 열었다. 또 거액을 투자받아 규모를 키우고 다시 투자를 받는 ‘실리콘밸리식 커뮤니티 서비스 성공방법론’ 대신 다소 무모해 보이는 방법으로 블라인드 앱 특성에 맞는 꾸준한 성장을 일궈내고 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양성식(경희대 경제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글로벌 IT 기업 마이크로소프트의 임직원 5만 명이 가입한 서비스이자 아마존 직원 4만 명이 활용하는 앱. 또 다른 글로벌 IT 기업의 CEO가 ‘직원들이 그 서비스를 많이 써서 신경 쓰인다’고 자주 언급하는 앱.이 얘기를 듣고도 어떤 앱인지, 무슨 서비스인지 떠오르지 않는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두산인프라코어 ‘신입사원 명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관련 ‘미투’,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이 최초로 알려지게 만든 앱. 그렇다. 직장인 익명 소통 커뮤니티 서비스 ‘블라인드’다.(DBR mini box ’블라인드 앱이란?’ 참고.)


DBR mini box I: ‘블라인드’ 앱이란?
블라인드는 회사 e메일 인증으로 재직 사실을 확인하고 가입할 수 있는 모바일 익명 커뮤니티로 한국에서는 300인 이상 사업장 직원의 가입률은 무려 51%에 이른다. 또한 가입자들의 평균 이용시간은 35분이고, 한 번 가입한 사람이 재방문하는 비율은 80%가 넘는데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페이스북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블라인드에는 5종류의 채널이 있는데 회사, 그룹사 채널이 각각 존재하고 업계와 직군, 그리고 17개 토픽 채널이다. 만약 내가 삼성전자 재직자라면 삼성전자 회사 채널, 삼성그룹사 채널, 업계 채널 중 IT 라운지, 전자라운지, 반도체 라운지를 모두 이용할 수 있으며 토픽별로 채널을 이용할 수도 있다. 회사 채널의 경우 해당 회사 재직자가 100명 이상이면 이용이 가능한데 30명 이상이면 일단 채널은 오픈이 되고 100명이 차면 이용이 시작된다. 그룹사 라운지는 같은 그룹 계열사 사람들끼리, 업계 라운지는 동종 업계 종사자끼리, 직군 라운지는 회사/업계에 상관없이 같은 직군끼리 모이는 채널이다. 토픽 채널은 모든 블라인드 가입자가 이용 가능하며 재테크, 이직/커리어, 여행/먹방, 연애/결혼, 셀소(셀프소개)/미팅, 회사생활, 시사토크, 부동산, 암호화폐, 육아 등 2019년 5월 현재까지 총 17개 토픽이 존재한다. (그림)

얼핏 생각해보면 미국의 글라스도어나 한국의 잡플래닛처럼 회사 평가/리뷰 사이트 등과 유사할 수 있지만 두 회사는 마치 사전처럼 필요할 때 찾아가 정보를 보는 곳이라면 블라인드는 커뮤니티 서비스로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실제 글라스도어 직원 대다수가 블라인드 유저이기도 하다.



블라인드는 흔히 생각하듯 한국에서만 유명한 앱이 아니다. LG그룹, 삼성그룹, 롯데그룹에서 각각 10만, 9만, 6만 명의 직원이 가입해 있고 한국의 3000개 넘는 기업의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블라인드 앱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1년 뒤부터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미국에서도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다. 미국 내 1000여 개 기업에서 약 50만 명의 직원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것. 앞서 언급했듯 마이크로소프트 본사 직원 5만여 명이 현재 블라인드를 이용 중인데 이는 한국과 미국 기업 모두 합쳐서 가입 직원 기준 4위로, 5위를 차지한 한국의 현대차 본사 직원 가입자 수보다 많다. 또한 아마존 본사에서 가입한 직원 수는 4만여 명으로 6위인 한국 SK그룹보다 조금 적고 CJ그룹보다는 많아 7위에 자리 잡고 있다. (표 1)



2013년 12월 한국에서 론칭한 후 2015년 봄 미국에서도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국과 미국을 합쳐 2016년 1월 38만여 명이었던 가입자 수는 2019년 2월 230만여 명에 육박하면서 6배 이상 급증했고 2019년 5월 기준으로는 250만 명에 이르고 있다. (그림 1)



직원 수는 처음 창업 당시 6명에서 현재 미국과 한국에 있는 직원을 합쳐 70여 명이 됐다.

한국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창업을 했지만 본사는 미국에 있는 기업이다. 앞서 언급했듯 비즈니스의 시작은 한국이었고 1년 이상 먼저 한국에서 서비스를 출시했지만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엄연한 글로벌 기업이자 서비스다.

DBR은 창업한 지 6년, 앱을 론칭한 지 5년여 만에 글로벌 플랫폼 회사이자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팀블라인드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고 블라인드의 향후 수익모델 개발과 지속 성장 전략 등을 담았다.


만류와 결행의 반복, ‘선한 영향력’을 믿다

미국 MIT대의 데이터과학 전문가인 앤드루 맥아피 교수와 에릭 브리노욜슨 교수는 2012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실은 그들의 기념비적 아티클 ‘Big Data: The Management Revolution’에서 아마존과 같은 ‘본 디지털(Born Digital)’ 기업은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기획과 전략을 통해 고객에게 접근하고 더 큰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단 디지털 기반으로 창업하고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기업들은 모든 내·외부/대고객 활동과 고객들의 구매행태가 디지털 데이터로 남기에 기존 오프라인 기반 기업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전략을 쓸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본 디지털 기업은 태생적으로 혹은 매우 쉽게 ‘본 글로벌(Born Global)’ 기업이 될 수도 있는데, 이미 글로벌 소비자가 디지털상에서 연결돼 국경 제약 없이 디지털 서비스를 소비하고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인이 창업해 서비스하고 있는 영상 채팅 앱 ‘아자르’는 해외 시장부터 개척해 최근 3억 다운로드를 달성했고 1 한국의 웹툰 서비스를 미국 시장에서 성공시킨 타파스미디어 2 는 아예 창업 자체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했으며 중남미의 고객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Z세대를 위한 오디오 플랫폼 서비스 ‘스푼라디오’ 역시 한국에서 창업한 지 1년 만에 동남아 각국, 일본, 중동 지역까지 진출했다. 3

이처럼 본 디지털이 자연스레 곧 본 글로벌이 되는 현상은 ‘직장에 대한 솔직한 얘기를 익명으로 한다’는 어찌 보면 ‘한국에서만 통할 것 같았던’ 서비스에서도 일어났다.

한국에서는 앞서도 언급한 몇몇 ‘갑질’ 이슈를 통해 화제를 몰며 가입자 수가 폭증했고, 미국에서도 이후 살펴볼 몇 가지 계기로 비교적 빠른 시간에 많은 고객을 확보했지만 블라인드 앱의 출발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다.

1. “커뮤니티 서비스는 안 된다!”

블라인드 앱의 탄생 배경에는 창업자 문성욱 대표가 네이버에서 일하던 시절의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 2005년 ‘윙버스’라는 여행, 맛집 정보 서비스 스타트업으로 비즈니스를 시작한 문 대표는 2008년 말 네이버가 윙버스를 인수하면서 자연스레 네이버에서 대기업 생활을 잠시 하게 된다. 대기업 특유의 명확한 업무 분장과 역할 분담, 효율성을 위한 여러 위계 시스템은 분명 좋은 면도 있었지만 네 일, 내 일 할 것 없이 서로 뒤엉켜 오직 성공을 위해 함께 뛰는 팀워크와 분위기를 좋아했던 문 대표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대기업 생활에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사내 익명 게시판에서는 직원들이 상당히 활발하게 회사에 대한 이야기, 직장생활과 커리어에 대한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물론 문 대표가 이때부터 이 익명게시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서비스를 만들고 비즈니스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2010년 중반 네이버에서 퇴사하기 전 내부 익명게시판은 이런저런 이유로 폐쇄됐다. 그리고 문 대표의 기억에서도 한동안 잊혔다. 네이버를 나와 새로운 멤버를 찾아 창업을 했다. 작은 에이전시를 만들어 서비스 설계 등을 고민하다가 마침 티몬에서 서비스 분야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수차례에 걸쳐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 왔고, 준비가 다소 지지부진하던 자신의 사업을 접고 일단 티몬에 합류했다. 티몬에서 나름대로 다양한 서비스를 기획하고 추진하고 성공하면서 재미를 찾다가 다시 ‘창업가 DNA’가 꿈틀대 일단 회사를 나왔다.

어떤 사업을 해볼까 고민하던 차에 마음속에 묻어뒀던 네이버의 익명 게시판이 떠올랐다. 그가 생각한 건 바로 세상에 대한 선한 영향력을 가진 서비스였다. 문 대표는 “대학시절에만 두 번 창업해봤고 돈이 되는 서비스는 정말 많이 만들어봤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내가 만들고 싶은 서비스’의 관점에서 고민했다”며 “직장인들의 목소리를 담은 서비스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가 클 것 같았고 또한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분명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이 세상에 작은 변화, 아주 작은 변화라도 생겨날 것 같았다. 이런 직장인들의 목소리로 변화가 만들어지면 개인적으로 아주 즐거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즉 자신이 만든 서비스, 자신이 창업한 회사의 서비스가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에 기반해 비즈니스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물론 스타트업계, 투자업계의 선후배, 지인들은 모두 뜯어말렸다. 문 대표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가 구상한 ‘커뮤니티 서비스’로는 돈을 벌기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너는 초보도 아니고 이 바닥에서 충분히 서비스 만들어 본 사람이 왜 그런 걸 하려고 하냐’고 의아해했고 만류했다. 미국의 익명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이자 커뮤니티였던 ‘시크릿(Secret)’ ‘익약(YikYak)’도 실패했고, 한때 유명했던 ‘마이스페이스’도 몰락한 지 오래다. 한국에서는 한때 가장 ‘핫’했던 커뮤니티 서비스 프리챌과 싸이월드도 최종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서비스가 됐다. 실제로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커뮤니티 서비스, 그리고 그에 기반한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는 사용자의 충성도를 얻기는 좋으나 비즈니스 모델을 붙이는 게 어렵다는 인식이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팽배하다. 거의 독점 상태에 이른 소셜미디어 서비스 몇 개만이 광고와 마케팅 플랫폼으로도 동시에 활용되면서 (수익화 측면에서) 성공했고 여기에 부수적으로 커뮤니티 기능이 첨가됐을 뿐이다.

문 대표도 이런 상황을 모르지 않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엄청나게 큰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의미 있는 서비스를 꼭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럼에도 창업해서 비즈니스를 만들어 가는 것은 자선사업이 아니기에 투자를 받고 궁극적으로 수익모델을 만드는 것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커뮤니티 서비스,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들이 대부분 생각하듯 ‘아무리 어려워도 사람들을 많이 모으면 방법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은 있었고, 특히 타깃이 직장인이었기에 ‘쓸 수 있는 돈’이 있는 사람들이 고객이 되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무엇보다 초기 수익모델은 광고가 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측면에서 주 고객, 주 서비스 가입자층이 직장인일 수밖에 없다는 건 나름 매력적인 포인트였다. 문 대표는 “우리 직원들에게도 항상 ‘최대의 매출’을 강조하기보다 ‘더 많은 사람이 오래 쓸 수 있도록 하자’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단 창업을 하고 2013년 말 블라인드 앱을 론칭한 뒤에는 네이버에서 일하던 동료들에게 1차적으로 홍보를 시작했다. 익명 게시판이 없어져서 아쉬워하던 네이버 직원들이 문 대표를 믿고 대거 가입해 활성화를 시켜줬다. 네이버 퇴사 후 다녔던 티몬 직원들도 서비스 시작 2주 만에 전체 직원의 3분의 2가 들어왔다. 출발이 나쁘지 않았다. 가입자 증가 추세가 주춤할 때가 되면 불행인지 다행인지 ‘블라인드발(發) 대기업 갑질 이슈’가 터졌고 그때마다 블라인드는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가입자 수 증가에 탄력을 받았다.

2. “미국에서는 택도 없다”

본 디지털 기업이자 본 글로벌 기업인 팀블라인드의 본사는 앞서 언급했듯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다. 2013년 말에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후 2014년 초에 곧바로 미국에 본사 법인을 만들었다. 현재 한국의 팀블라인드는 ‘한국 영업사무소’다. 처음부터 미국이나 일본 등 해외에서 승부를 낸다는 게 문성욱 대표의 전략이었다. 그는 “직장인만 대상으로 한다는 게 광고 유치나 이후 수익모델 확보 측면에서는 분명 이득이지만 시장이 작을 수밖에 없다. 한국은 안 그래도 좁은 시장인데 주로 대기업 직원들일 수밖에 없는 타깃으로는 애초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미국이나 글로벌 타깃으로 서비스를 만들어보자고 결심했고, 일단 본인이 익숙한 시장인 한국에서 테스트를 하면서 제품(블라인드 앱)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과 경험을 축적해 그걸 갖고 미국 등 해외에서 승부를 보고 싶었다는 것. 2014년 미국 본사 설립 후 차근차근 준비해 2015년 초에 서비스를 오픈했다. 미국은 특히 블라인드에 중요한 시장일 수밖에 없었는데 미국에는 글로벌 기업들의 본사가 가장 많고 미국에서 서비스가 성공하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본사 블라인드 채널로 세계 각국에서 사용자가 유입될 것이 예상됐던 까닭이다. 그때 트래픽이 많이 발생하는 국가로 계속 진출해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자연스레 미국에서도 투자를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4

이러한 계획을 설명하고 다닐 때에도 주변에서는 역시나 만류했다. 주변에서 회의적으로 보고 뜯어말리지만 결국 문 대표가 실행을 감행하는 패턴은 이번에도 반복됐다.

일단, 미국에서는 직장 내에서도 터놓고 솔직하게 문제점을 말하고 토론하는 문화가 있기에 블라인드 같은 익명 소통 커뮤니티가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런 문제 제기는 본격적으로 미국에 본사를 세우기도 전에 이미 계획을 말할 때부터 나왔다.



하지만 문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구글 일본 사무소에서 일하는 지인의 한마디에서 실마리를 얻었다. 구글 아시아 전체와 미국 본사와 화상회의를 할 때 벌어지는 일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였다. 이런 회의가 진행되면 보통 아시아 총괄이 나와서 발표를 하고 질문이 올라오면 실시간으로 답변을 하는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백인 남성이라는 것. 이 실마리를 갖고 미국의 글로벌 IT 기업 내부의 소통 문화에 대해 취재를 하기 시작했다. 미국에 본사가 있는 글로벌 IT 기업에 다니는 지인들, 지인의 지인들을 수소문해 내부 사정을 들어봤다. 분명 미국 IT 대기업에는 솔직하게 소통하는 문화가 존재했다. 그런데 사실 그런 문화는 다분히 마케팅 차원에서,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홍보 차원에서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들을 알게 됐는데 미국에서 과감하게 내부 문제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은 영주권이나 시민권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 최소한 비자에 문제가 없어서 당장 회사를 나가도 미국에서 쫓겨나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뿐이라는 것이었다. 이미 가족까지 다 미국으로 건너온 인도계, 중국계, 한국계 개발자나 엔지니어들 중 앞서 말한 문제가 전혀 없는 경우가 아니면 나름 부당하거나 문제라고 느끼는 게 있어도 침묵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논쟁과 소통이 일상화된 실리콘밸리’의 이미지에 가려져 있었다. 이 과정에서 문 대표는 ‘직장인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똑같다. 아무리 수평적이고 소통하는 문화가 있더라도 결국 상당수는 불만이 있고 이를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말하기는 쉽지 않다’는 걸 확실하게 깨달았다. 많은 이가 말렸지만 이 정도 감을 잡으니 ‘일단 실험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미국은 달라, 실리콘밸리에서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만 할 뿐 실제로 실행하고 검증해서 실패한 결과라도 낸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에 스스로 해봐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막상 시드(seed) 유저를 제대로 확보해 가입자 수가 늘어가자 미국에서도 통한다는 확신이 섰다. 굉장히 미국적인 블라인드 활용 사례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미국, 특히 실리콘밸리의 첨단 IT 기업에서는 ‘다양성 이슈’는 항상 뜨거운 감자다. 즉 성별이나 인종, 종교, 성 정체성 등에 따른 차별은 매우 ‘미개한 것’으로 취급되고, 외부로 이슈화할 경우 회사 이미지에 심대한 타격을 미칠 수 있기에 말과 행동에 있어 매우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칫하면 ‘차별주의자’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 그렇게 지나치게 조심하는 문화는 오히려 솔직한 소통을 가로막아 오해를 낳는 경우도 있다.

블라인드가 활성화한 한 미국 IT 기업에서는 실제로 해당 기업 블라인드 채널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비무슬림 직원이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짜 미안한데, 항상 무슬림 직원분들은 특정 시간마다 회의실에 모여서 한쪽 방향을 보고 기도하지 않냐. 그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우리 회의실이 부족한데, 꼭 그렇게 매번 거기서 그렇게 해야만 하는 거야?”라는 글을 올린 것. 그러자 그 회사 무슬림 직원이 답을 달았다. “아, 종교적으로 꼭 해야 하는 건 맞는데, 우리는 일부러 피해 안 주려고 가장 작은 회의실을 잡아서 모두 모여서 한꺼번에 그걸 하고 있어. 불편했다면 미안하고 회의실 부족한 건 우리도 아니까 함께 대안을 고민해보자”라는 답변이었다. 익명이 아니었다면 비무슬림 직원은 특정 종교인에 대한 차별적 발언이 될 소지가 있기에 애초에 이에 대한 질문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고, 그러다가 오히려 무슬림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만 쌓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블라인드가 바로 그 지점에서 순기능을 한 셈이었다.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에는 필요 없는 서비스’라는 선입견은 문 대표가 스스로 다양한 시장조사와 취재를 통해 깰 수 있었지만 사실 비즈니스를 시작하던 시점에는 다른 지적도 많았다. 블라인드 앱 UI와 디자인 자체를 문제 삼는 사람들이 특히 많았다. ‘아시아스럽고, 한국스럽다’는 것. 심지어 ‘수준 낮은 서비스다. 로고도 이곳 감성이 아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스타일, 미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디자인이나 UI, UX가 아니다’라는 말도 들었다. 미국에 본사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미국에서의 비즈니스를 준비하던 내내 지속된 문제 제기였다.

문 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하시는 많은 한국인 벤처캐피털리스트분들이 이 문제를 계속 지적했다. 처음에 2명을 파견해 준비시키고 나도 계속 미국을 오갔는데 ‘팀도 이런 식으로 짜서 운영하면 여기에선 안 통한다. 여기에선 여기 스타일로 해라’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며 “그런데 나는 ‘알겠는데, 안 해봤으니까 좀 해보기라도 하자. 해보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겁을 주기만 하나’ 싶어 오기로라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막상 50만 명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하고 많은 글로벌 IT 기업 CEO가 자주 블라인드를 언급하고,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입사자 교육에 블라인드에 올라온 직원들의 글을 보여주는 일이 벌어지자 앞서 나왔던 지적과 비판은 쏙 들어가 버렸다. 오히려 ‘너희 BI 진짜 유니크하다’ ‘여기에 없는 스타일이다. 당신들 같은 유니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많아져야 한다’ ‘어디서든 너희 서비스 로고는 바로 알아볼 수 있다. 멋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50만 명 회원 가입과 미국에서의 초기 성공 혹은 잠재적 성공 5 의 ‘씨앗’이 된 시드 유저, 영향력자들은 어떻게 확보한 것일까?


3. 미국 최첨단 IT 기업에 붙은 전단지, 그리고 100번을 끓인 김치갈비찜

처음 미국에 가서 샌프란시스코에 사무실을 차린 뒤 무작정 인근에 있는 회사 직원들을 찾아갔다. 회사 차원에서 홍보 기회를 달라고 하거나 각 회사에서 쓰게 해달라는 B2B 차원의 접근도 하고, 지인의 지인을 동원해 ‘회사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을 만나 블라인드 앱을 소개하고 권유하는 등 다양하게 접근했다. 거의 성과가 없었다. 2015년 상반기를 지나면서는 거의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렀다. 다들 ‘역시 미국에선 안 되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짐을 쌀 생각까지 하던 차에 한 번만 더 해보기로 했다. 페이스북 광고를 활용했다. ‘우리는 회사별 채널에서 익명으로 소통하는 커뮤니티 플랫폼 서비스다. 이런 걸 잘 쓸 수 있는 회사가 있을까? 그런 니즈가 있는 회사가 있다면 양식에 남겨달라’는 방식으로, 주로 IT 기업 종사자들 대상으로 묻는 방식의 타기팅 광고였다.

그런데 시애틀에 본사가 있는 아마존에서 문의가 꽤 많이 들어왔다. 팀블라인드는 곧바로 아마존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고, 아마존의 조직문화가 다소 경직된 측면이 있고 소위 ‘빡세다’는 걸 알게 됐다. 곧바로 시애틀로 뛰어갔다. 역시나 모든 인맥을 동원해 사람을 만났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무작정 소개받아 만났던 사람들이 별다른 홍보를 해주거나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않았던 걸 교훈 삼아 주로 한국인 직원을 소개받아 그들로부터 다른 한국인 직원을 계속 소개받는 방식으로 아마존 직원들을 만났다. 아마존에는 생각보다 한국인 직원들이 많았다. 그렇게 연결에 연결을 거쳐 만난 사람이 50명이 넘었다. 그들도 아마존에 한국인이 50명이 넘는 줄 몰랐다고 할 정도였고 팀블라인드는 일단 아마존에서 일하는 한국인 개발자, 엔지니어, 직원들의 오프라인 연결고리가 됐다. 그들은 한국에 대한 향수도 있어 한국에서 건너온 스타트업 사람들이 뭔가 해보겠다고 하니 오히려 먼저 도와주겠다고 나서기 시작했다. 팀블라인드에 드디어 기회가 찾아온 셈이었다.

일단 사무실을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애틀로 옮겼다. 아마존에 다니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사는 아파트에 터를 잡았다. 그곳에서 아마존 한국인 직원을 하루도 안 빼놓고 매일 만나며 팀블라인드의 숙소와 사무실을 언제든 아마존 한국인 직원들에게 열려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아마존 한국인 직원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기 위해 미국에서 비즈니스를 총괄하는 김성겸 이사가 한국식 갈비를 넣은 김치찜을 끓여서 제공했다.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문 대표와 함께 창업하기 전 티몬에서 비즈니스 조직을 이끌던 현직 팀블라인드 이사였지만 시애틀에서는 ‘김치갈비찜을 잘 끓이는 아저씨’였다. 진심이 통했다. 아마존의 한국인 직원들은 감동했고, 적극적으로 팀블라인드를 도왔다. 일단 아마존 내부에 블라인드 앱을 알려줬고 동료 직원들에게 사용하도록 적극 유도했다. 팀블라인드에서 만든 블라인드 소개 전단지를 회사 곳곳에 놓아주기도 했다. 또 회사 내부자만 들어갈 수 있는 아마존 내부 카페에 데리고 들어가 작은 홍보 이벤트를 열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아마존 내부에 자주 들어갈 수는 없었기에 주변 전봇대에 홍보 전단지도 붙였다. 그렇게 시드 유저가 확보됐다. ‘빡센 아마존 문화’에 지친 많은 아마존 직원들이 블라인드에 가입하고 블라인드 앱 내에서 소통하기 시작했다.

이때가 2015년 여름이었다.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으니 노를 저어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이른바 ‘스케일 업’을 생각해야 하는 상황.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를 공략하기로 했다. 한국의 블라인드에는 IT라운지, 즉 IT 업계 채널이 있는데 여기에서 카카오, 네이버, 넥슨, NC 등에 재직하는 직원들이 활발하게 서로의 동향을 물으며 이직도 알아보고 새로운 기회를 찾기도 하는 걸 봤기에 생각할 수 있던 방식이었다. 아마존의 경쟁업체이자 같은 IT 회사/테크 회사인 MS 직원들을 대거 가입시켜 아마존 직원들과 조우하게 하면 역시나 모멘텀이 생길 것이라는 ‘촉’이 왔다. 역시나 MS에서도 아마존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국인 직원들을 만났다. MS에서는 시애틀에 자리 잡은 팀블라인드의 아지트가 아마존보다는 멀었지만 못 올 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김 이사는 또다시 김치갈비찜을 끓였다. 아마존부터 MS까지 김치갈비찜은 그렇게 100그릇이 끓여졌다. 역시나 한국인 직원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아마존에는 (특유의 조직문화로 인해) 블라인드 앱에 좀 더 강한 니즈가 있었지만 MS는 좀 덜했다. 팀블라인드 직원들은 기존 ‘한국인 직원 공략법’ 외에 새로운 방법을 찾기로 했다. MS 캠퍼스에 가보니 버스정류장이 내부에 3개가 있을 정도로 광활했는데 지하주차장 출입이 자유로웠고 상당수의 건물도 지상 2층까지는 오픈돼 있었다. ‘미친 짓’을 했다. A4 용지에 블라인드 앱 소개 내용을 인쇄한 전단지를 엄청나게 붙이고 다녔다. 한국인 MS 직원들이 직접 들어오기도 하고 홍보도 해준 덕분에 어쨌든 MS 채널은 블라인드 내부에 만들어진 상태였다. 확신은 없었다. 통할지 몰랐다.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온·오프라인에서 세련된 마케팅이나 홍보로 뭔가를 할 돈이 없었다. 문 대표부터 김 이사에 직원 몇 명이 미친 듯이 뛰며 전단지를 붙였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렇게 전단지를 잔뜩 붙인 다음 날부터 미국 블라인드 MS 채널에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어떤 미친놈들이 회사에 이상한 전단지를 잔뜩 붙여 놓았길래 뭔가 싶어 왔다” “어떤 미친놈들인지 들어와서 확인해보려고 왔다”는 글이 잔뜩 올라오기 시작했다. 2015년 가을의 일이다.



사실 MS에는 비슷한 시기에 ‘포럼’이라는 내부 익명 커뮤니케이션 툴이 만들어진 때여서 ‘익명 게시판’ ‘익명 커뮤니티’에 대해 MS 사람들이 익숙해진 타이밍이었는데 이것 역시 팀블라인드에는 천운이었다. 그리고 이 블라인드에는 이미 가입자 수가 급속히 늘고 있는 아마존 직원들이 먼저 와 있었다. MS 내부의 그 포럼에서 블라인드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 앱에 들어가면 아마존에 다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데 되게 신기하다’는 내용이 MS 내 포럼 글 10개 중 9개를 차지하는 상황이 됐다. 가을이 지나면서 MS 포럼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블라인드로 넘어왔고 다른 동료들과 함께 왔다. 그렇게 아마존과 MS의 직원들을 가입자로 대거 확보한 뒤 안정화되자 팀블라인드는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왔다. 원래 계획했던 대로 우버,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리프트, 링크트인 등의 회사를 공략하기 위해서였다. 일단 아마존과 MS 직원들이 대거 가입해 사용하는 상황이었기에 훨씬 비즈니스를 하기 편해진 상태였다. 온라인 마케팅에 집중했다. 페이스북 타깃 광고, 구글 애드센스 등 활용하지 않은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역시나 ‘한국인 직원에게 도움 청하기’는 계속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소주 파티’를 열었다. 어느 회사에 다니고 있든 와서 한국식으로 소주 한잔하면서 서로 교류하라고 ‘테크 파티’ 형식의 장을 분기마다 열어준 것.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렇게 지금까지 연 소주 파티만 10회 가까이 된다. (팀블라인드는 소주와 장소만 제공하고 안줏거리는 직접 가져오게 했기에 김 이사는 더 이상 김치갈비찜을 끓이지 않아도 됐다.)

그렇게 꾸준히 가입자가 늘면서 2019년 5월 기준 50만여 명의 서비스 이용자가 생겼다. 중간중간 우버를 비롯한 몇몇 기업에서 한국처럼 ‘사고’를 쳐서 블라인드를 이슈화시켜주기도 했다. 가입 직원이 많은 회사 CEO가 블라인드를 언급하는 일도 많아졌고 그럴 때마다 미국의 가입자 수 증가는 탄력을 받았다.

문 대표는 “‘우리는 첨단 커뮤니티 서비스이기에 아주 세련되고 멋진 방법으로 마케팅하겠다’는 생각은 배부른 소리”라며 “당연히 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건 하지만 소주 파티를 열든, 김치갈비찜을 끓이든, 뛰어다니며 전봇대와 건물 지하주차장에 전단지를 붙이든 그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비즈니스는 ‘폼 나게’ 하는 게 아니라 ‘절박하게’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합법적 수단과 자원을 동원해서 몸으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문 대표는 이러한 ‘절박함’ 혹은 ‘절실함’에 대해 강조한다. 그는 “‘미국에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라는 게 마치 우리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처럼 제시되고, 미국에서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창업가들은 그러면 괜히 위축돼서 현지 사정을 잘 아는 몇 명을 고용해 ‘실리콘밸리 스타일로 해달라’고 주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그렇게 고용된, 혹은 파트너십을 맺은 사람들은 전혀 절박하지도, 절실하지도 않기에 몇 가지 편한 방식으로 해보다가 잘 안 되면 ‘이곳에서 당신의 서비스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하고 떠난다”고 전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절대 절박함을 갖고 전단지를 붙이고 다니지도 않고, 막히면 길을 뚫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보지도 않는다는 것. 결국 어떤 비즈니스든, 어떤 시장에서든 ‘세련되고 깔끔하게 공략하는 방법’이란 딱히 존재하지 않고 절실함으로 우직하게 돌파하는 게 오히려 가장 정석일 수 있다는 얘기다.

4. 생각지도 못한 일본에서의 장애물

미국에 본격 진출하던 2014년, 거의 비슷한 시기에 팀블라인드는 일본 시장의 문도 두드리고 있었다.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수출 입국(輸出 立國)’에 성공한 나라로 그 중심에 ‘(종합무역)상사’가 있다. 미쓰이상사, 이토추상사 등 큰 상사부터 공략하기로 했다. 페이스북에 특정 회사를 다닌다고 정보를 기록해 놓으면 타깃 광고를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착각’했다. 시작부터 어그러졌다. 일본에서는 큰 회사들은 일반적으로 직원들에게 SNS상에서 자신의 소속 직장을 밝히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타기팅 자체가 원천 봉쇄되는 상황이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봤다. 구글의 온라인 광고 중 특정 IP를 기준점에 두고 반경 50m까지를 타기팅해서 모바일광고를 내보내는 방식이 있었다. 마침 일본 멤버 하나가 큰 무역상사 중 한 곳 출신이어서 메인 IP 어드레스를 알아왔다. 큰 기대를 안고 그 IP 어드레스로 타깃 광고를 쐈다. 이상했다. 먼저 돈을 충전해놓고 사람들이 광고를 본 게 시스템상 인지가 되면 돈이 빠져나가야 하는데 충전된 금액이 전혀 소진되지 않았다. 애초에 광고가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광고가 노출됐는데도 클릭이나 터치를 안 하는 상황이라면 광고 문구나 컨셉을 바꾸면서 실험을 해볼 수 있다. 그런데 애초에 노출 자체가 되지를 않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일본 사람들은 회사의 인터넷과 와이파이를 ‘회사 자산’이라고 생각해 사적인 검색이나 모바일 인터넷 활용에 전혀 쓰지 않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활용하는 SNS나 인터넷은 개인 LTE 서비스를 통해 해결하고 있었기에 회사 어드레스로 아무리 광고를 쏴 봐야 누구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

바로 포기할 순 없었다. ‘맨땅에 헤딩’하는 방식으로 다시 시작했다. 스타벅스 카드를 왕창 구매했다. ‘블라인드 앱을 깔고 그걸 보여주면 스타벅스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드를 드리겠다’고 홍보했다.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쉽게 스케일 업이 일어나는 방식도 아니었다. 스타벅스 카드는 절반도 소진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미국에서 뭔가 조금씩 비즈니스가 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문성욱 대표는 “솔직히 미국은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블라인드 진출이 굉장히 어렵고 일본은 상대적으로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며 “그런데 의외로 미국에서는 뭔가 되고 일본은 너무 지지부진해서 놀랐다”고 말했다. 비즈니스란 결국 직접 시장에 부딪혀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얘기다. 어쨌든 일단 잘되기 시작한 쪽에 좀 더 힘을 싣기로 하고 일본에서는 철수했다. 팀블라인드는 앞서 언급했듯 글로벌 기업의 본사가 대거 위치해 있는 곳이 미국인 만큼 미국에서 퍼지면 각 국가에 진출해 있는 지사에서도 자연스레 가입하고 블라인드에서 활동할 것으로 예측했고, 실제로 최근 캐나다, 영국, 인도 등 미국 기업이 많이 진출해 있는 곳에서도 가입과 트래픽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팀블라인드가 당분간은 미국 시장 공략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다고 일본 시장 진출의 꿈을 접은 건 결코 아니다. 문 대표는 “일본은 포기한 게 아니고 잠시 중단한 것”이라며 “실패라고 할 순 없다. 성공할 때까지 안 한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미국은 일단 이 기간 내에 이 정도 궤도에 오를 줄은 잘 몰랐다”며 “모든 산업을 커버하면서 1000만 가입자를 넘길 때까지 미국 시장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팀블라인드’가 바라보고 있는 현재와 미래

팀블라인드는 실리콘밸리의 커뮤니티 혹은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플랫폼 비즈니스 스타트업의 전형적인 공식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았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디지털 플랫폼이나 블라인드 같은 커뮤니케이션 서비스의 경우 일단 투자를 받으면 그 돈으로 대대적인 마케팅을 해서 트래픽을 얻고, 그렇게 급증한 트래픽을 레버리지 삼아 또 투자를 받고, 그걸로 다시 트래픽을 사는 방식을 반복하며 규모를 키우는 경우가 많다. 문성욱 대표에 따르면 이는 일종의 ‘실리콘밸리 공식’이다. 문제는 블라인드는 이 공식을 따르기 어렵다는 것. 무엇보다 한국인 몇 명이 한국에서 먼저 서비스를 시작해 들고 온, 다분히 한국적인 앱이라 초기에 미국에서 투자를 크게 받기가 어려웠다.

더 중요하게는 블라인드 서비스 특성이 만들어내는 ‘시드 유저’의 독특함 때문이기도 했다. SNS든, 커뮤니티 서비스이든, 아니면 또 다른 플랫폼 비즈니스든 초기에 사방팔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야 서비스가 활성화된다. 그런데 블라인드는 ‘기업별 채널’이 가장 기본이 되는 커뮤니티 서비스다. 한 기업에서 일단 왕창 사람들이 몰려 들어와 회사에 대한 얘기를 하고 다시 전체 그룹사나 업계 사람들을 그 안에서 만나러 ‘라운지’로 나가야 한다. 아예 자기 회사 사람들이 몰려 있지 않고, 업계 사람들을 볼 수 없으면 굳이 블라인드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 코카콜라 사람 10명이랑 구글 다니는 직원 10명, MS 다니는 직원 10명, 홈디포 직원 10명, 이런 식으로 1000명이 모여 봤자 활발한 소통이 일어나기 어려운 게 블라인드의 특징이라는 뜻이다. 서로 할 얘기가 없기 때문이다. 문 대표가 항상 ‘1000개 기업에서 1명씩 들어오는 것보다 1개 기업에서 1000명이 가입해 활동하는 게 블라인드한테는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블라인드의 성장은 꾸준하되 느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초기에 ‘느린 성장’을 하다 보니 주변에서 역시나 많은 말이 나왔다. 문 대표는 “너희들 성장속도를 봐라. 미국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안 된다고 얘기했지 않나. 지금이라도 마케팅 비용 때려 부어서 트래픽을 올려라”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문 대표가 자금이 부족하다고 말하면 다시 “그러면 여기에서 사업 못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경영에 공식은 없었다. 블라인드는 블라인드의 특성에 맞게 꾸준하고 우직한 방식으로 성장했다. 아니, 앞서 설명한 블라인드 앱의 서비스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화려한 실리콘밸리의 공식을 따르고 싶어 하고 세련된 방식의 마케팅에 현혹되는 사람들, ‘팬시’한 UI와 UX, 현란한 알고리즘과 기술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팀블라인드의 팀원이 될 수 없다. 대표부터 임원, 모든 직원이 스스로를 잡부 6 로 호칭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블라인드 앱이 가진 ‘선한 영향력’과 철학을 믿고 동의하며 그 어떤 잡일도 마다하지 않고 주도적으로 일하는 사람들. 문 대표에 따르면 그런 사람들이 팀블라인드의 인재다.


1. 현재의 관리 원칙: “알고리즘과 인간이 함께 움직여야 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

블라인드 앱은 익명으로 회사와 업계에 대한 이슈를 중심으로 소통하는 서비스이기에 개인 익명성 보호를 위한 정보 보안과 그에 대한 사용자들의 신뢰, 오가는 정보 자체에 대한 신뢰 등이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우선 어떤 인터넷 커뮤니티든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건·사고들은 최대한 빠르게 대응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익명성 뒤에 숨어서 욕설을 날리거나, 쪽지로 성희롱적인 메시지를 남길 경우 신고와 함께 즉각 퇴출이 이뤄진다. 허위 사실 유포, 회사 기밀 유출, 회사의 특정인에 대한 비방은 알고리즘을 통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동시에 굉장히 예민한 신고 시스템을 갖춰놓고 24시간 대응한다. 하지만 절대 모든 걸 자동화하지는 않는다. 미국에서 한때 잘나가던 커뮤니티 서비스는 사용자를 4000만 명까지 확보했지만 어느 순간 욕설과 광고로만 도배돼 최근에는 완전히 몰락했다. 문성욱 대표는 그 회사의 CEO를 직접 만나 ‘왜 이렇게 됐냐’고 물었는데 그 CEO는 “나는 너무 기술만 믿었다. 엄청 뛰어난 개발자, 엔지니어를 고용해 1년에 걸쳐 최고의 필터링 시스템을 만들어냈는데 그게 실제로 잘 작동하지 않았다”고 답했다고 한다. 너무도 변수가 많은 ‘언어의 세계’에서 모든 뉘앙스를 파악하고 심지어 ‘회사 내 누군가를 특정해서 모욕하는 하는 건 아닌지’ ‘지금 오가는 정보가 회사의 기밀은 아닌지’ 등을 걸러내는 것은 결코 자동화된 알고리즘만으로는 해낼 수 없다. 유저들의 신고와 팀블라인드 직원들의 즉각적 대응과 모니터링이 계속 상호작용해야 하고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다. 업무시간과 무관하게 즉각적 대응을 할 수 있도록 팀을 짜서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 몇 번 사건·사고가 있었지만 꽤나 일찍 수습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렇게 기술과 인간이 함께 움직이는 대응 시스템 덕분이었다.

문 대표는 “일반적인 커뮤니티나 SNS보다 훨씬 더 빡빡한 기준으로 욕설이나 비방 등을 감시하고 있다”며 “정말 초성 몇 개만 잘못 써도 맥락상 욕설이면 곧바로 이용정지에 들어가고, 분위기가 그렇게 잡히니 신고도 활발해지는 선순환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계속 강조했듯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비즈니스의 목표가 아니라 ‘오랫동안 이 서비스가 지속되면서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 목표다. 관리에 소홀하면 그게 안 된다. 그래서 민감하다”고 덧붙였다. 간혹 이 민감한 대응 체계를 역이용하려는 시도도 있다. 문 대표는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기업에서 블라인드에 올라오는 글을 모니터링하고 대응하고 싶어서 뭔가 회사에 대한 안 좋은 글만 올라오면 조직적으로 신고하면서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며 “그런데 우리는 그걸 자동화해서 감지하는 시스템이 있고 바로 적발이 되니 제발 그런 엉뚱한 일은 하지 말고 그냥 포기하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개인정보의 경우 어차피 회사 e메일 하나만 입력돼 있는데 이게 처리되는 과정 자체는 자동화돼 있고 누가 누구인지는 팀블라인드에서도 모른다. 그럼에도 안심하지 않고 ‘보안’ 문제만큼은 크게 신경 쓰고 있다는 게 문 대표의 전언이다. 그는 “메일을 하나 받은 적이 있는데 ‘내가 당신네 서비스 해킹해보려고 노력했는데 쉽지 않았다. 잘 안 됐다. 보안 정말 잘해놨더라’는 내용이었다”며 “아무래도 테크기업 가입자가 많다 보니 이런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어쨌든 계속 유저들로부터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경찰 수사 같은 게 시작되면 내 정보는 다 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블라인드가 사실 개인정보를 돈 내면 알려주기도 한다더라’는 ‘가짜뉴스’가 돌기도 하는데 문 대표가 가장 황당해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문 대표는 “영원히 해킹되지 않는 데이터는 없는데, 영원히 정보를 보호하는 방법은 있다. 바로 개인정보라는 데이터 자체를 저장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개인정보란 단독으로 혹은 결합해서 누군지 식별할 수 있는 정보를 통칭하는데 블라인드에는 애초에 그런 정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엄청난 해커가 와서 시스템을 통째로 들고 가도 글을 누가 썼는지는 알 수 없는 구조다.


2. 미래 비즈니스 원칙: “고객에게 이용당한다는느낌을 주지 말자”

블라인드 앱은 아직 광고 이외의 수익모델은 없다. 사실 각 회사의 장단점에 대한 솔직한 얘기가 오가는 곳이기에 기업 채널별로 텍스트마이닝만 해도 전혀 익명성을 건드리지 않고 각 기업 조직문화의 장단점, 개선점을 도출해 해당 기업을 찾아가 관련 컨설팅을 해줄 수 있다. 누구든 블라인드 앱을 들여다보면 곧바로 떠올리게 되는 비즈니스이자 수익 모델이다. 그런데 팀블라인드는 그런 사업화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내가 솔직하게 남긴 글이 다시 기업에 팔리는 기분’을 유저들이 느낄 수 있고 이는 배신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오히려 회원 개개인에게 도움을 주면서도 돈을 버는 방식을 고민 중이다. 각 개인에 대한 정보는 전혀 저장된 게 없지만 특정 업계 채널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일단 어느 업계에 있는지가 분류된 상태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해당 유저의 활동 패턴이 어떤 직군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몇 번의 실험적 설문이나 메시지를 던지면서 제대로 니즈를 파악해 이직을 돕겠다는 것. 지금까지 이직 시장은 ‘적극적으로 이직 의사를 밝힌 사람’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별다른 생각이 없다가 좋은 조건을 제안받으면 생각이 바뀔 수 있고 이직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수 있는데 이건 주변 지인이 우연한 계기에 말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블라인드 앱에서 활동하고 소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나름의 자동화된 패턴분석으로 ‘꼭 맞고 더 나은 자리로의 이직’을 추천해볼 수 있다는 것.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 등 다양한 수익원을 찾아 비즈니스 모델화한다면 블라인드는 명실상부한 ‘직장인들의 커리어 관리 플랫폼’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게 문 대표의 생각이다. 익명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다양한 힌트를 분석해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고 결국 많은 사람이 더 좋은 직장, 자신에게 더 맞는 곳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돕고 기업들은 더 좋은 사람, 필요한 직원을 찾을 수 있도록 한다면 이 역시 팀블라인드가 추구하는 ‘선한 영향력’이라 볼 수 있다.

팀블라인드는 앞서 언급한 ‘채용 플랫폼’이자 ‘커리어 관리 플랫폼’으로서의 전환을 이미 시작했고 여기에 더해 온라인 교육 비즈니스를 준비하고 있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자기 계발 욕구가 존재하는데 최근 많은 온·오프라인 교육 스타트업이 바로 이 지점을 공략해 성공하고 있다. 팀블라인드는 블라인드가 이직/채용 연계가 가능한 플랫폼이다 보니 좀 더 유리한 입장에서 교육을 추천하고 결제와 수강을 유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직장인들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자기 계발 관련 고민들을 토대로 엄밀하게 꼭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구성할 수 있다는 것 역시 큰 장점이다.

채용과 커리어 관리, 직무 교육과 자기 계발 등이 합쳐진 교육 서비스까지 얹어진 ‘범직장인 커뮤니티 플랫폼’이라는 팀블라인드의 비전은 과연 달성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DBR mini box II: 온라인 커뮤니티 서비스 관점에서 본 성공 요인


직장 생활에서 동료 몇몇과의 술자리는 비공식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낮에는 상명하복 조직문화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조심을 하게 되지만 술자리에서는 술기운을 빌려 폭로나 하소연도 하고, 질문을 하고, 정보를 나누거나 고민도 토로한다. 스마트폰 시대의 공간 블라인드 앱은 자신의 회사 익명 게시판과 업종 게시판을 통해 이런 술자리를 대체한다. 이러한 ‘대체’는 생각보다 쉬운 게 아니다. 블라인드 앱의 성공은 ‘정보 비대칭성의 해소’ ‘익명성의 완전한 보장’ ‘온라인 리뷰 시스템의 역할’이 서로 맞물려 이뤄낸 성공이다. 각각을 이론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보비대칭(Information asymmetry)

고전적 이론으로 정보의 비대칭성은 사람들이 보유하는 정보의 분포에 차이가 있어 정보 격차가 생기는 현상을 말한다. 행태주의 경제학에서는 인간은 완전히 합리적이라기보다는 제한된 합리성만 갖고 있으며 정보 비대칭성이 있는 경우, 기회주의 행동을 한다는 이론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중고차 거래에서는 전문 지식의 특성으로 인해 중고차 딜러와 소비자 사이에 큰 정보 격차가 불가피하다. 이 경우, 신뢰성 높은 제3자의 개입이 없다면 거래에서 소비자는 불리해질 수도 있다. 신뢰성 높은 제3자에 의한 면허, 인증, 보증 등이 있어야 거래가 활성화된다. 공인 중고차 제도는 정보 부족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소비자를 위한 제도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업의 인사 관리에서도 경영진과 직원 간 큰 정보 격차가 있어 경영진이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정보 부족을 악용해 경영진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을 취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 폐쇄적인 기업문화를 가진 회사에서 직원들은 부족한 정보를 얻기 위해 사적인 시간과 비용을 쓰는 역선택이 발생하게 된다.

블라인드 앱을 유명하게 만든 ‘땅콩 회항’ 사건이나 신입사원에게까지 희망퇴직을 강요한 대기업 사례를 보더라도 정보가 부족한 직원들이 인증받은 회원만 쓸 수 있는 익명 게시판을 이용, 정보를 확보해 정보 불균형을 해소하게 되는 것이다.



익명성(Anonymity)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의견 교환과 의사소통이 활발해지는 이유로 익명성을 꼽을 수 있다. 익명성은 ‘특정 개인의 신원이 다른 사람들에게 확인될 수 없어 평가, 비판, 처벌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 또는 ‘대중이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이 누구인가를 모르는 현상’으로 정의된다. 온라인 환경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개인들은 특정 개인들을 유추할 수 있는 여러 단서를 노출하게 되는데 이러한 단서들은 개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최근 연구들은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실명보다는 ID나 닉네임을 쓰는 등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실행 사례를 참조해 [표 2]에서 정리된 바와 같이 익명성을 가상 ID, 지속 ID, 자기소개, 세부 프로필 공개와 같은 차원으로 구분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실제 개개인들의 사회적 지위, 성별, 인종 등에 따른 편견을 배제할 수 있다. 익명성 상황에서 참여자들은 비난받을 수 있는 위험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익명성 뒤에 숨어 허위 사실이나 막말, 악플을 남기는 단점도 있다.

익명성의 이러한 양면적 효과 때문에 선행연구들 또한 상반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익명성의 장점을 부각하는 연구는 개인적 차원에서 개인의 안전, 정체성을 보호하고, 조직/사회적 차원에서 창의성, 유연한 조직문화를 진작하는 긍정적 측면을 강조한다. 반면, 익명성이 지나치게 많이 또는 적게 보호될 경우, 개인적 차원에서는 사생활 노출, 신상 털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돌림, 맹목적 비난이 발생할 수 있으며 조직/사회적 측면에서는 사회적 태만(Social loafing), 책임감 분산으로 인한 무관심, 방조 행위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연구 또한 많다.

하지만 블라인드 사례에서의 익명성은 매우 효과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데 이는 균등화 가설(Equalization Hypothesis) 및 탈개인화 이론의 사회적 정체성 모델(Social Identity Model of Deindividuation Effects)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균등화 가설은 익명성이 제공하는 공평한 소통의 장을 제공한다는 것이고, 탈개인화 이론의 사회적 정체성 모델은 익명성에도 불구하고 개개인들의 사회적 정체성이 부정적 결과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이론이다.

블라인드 사례에 균등화 가설을 적용해 보자면 회사 메일을 통해 인증된 사용자들은 그 회사의 직원으로서 사람들이 선입견에 휘둘리지 않고 평등한 정보 공유의 장으로 블라인드를 활용하는 것이다. 탈개인화 이론의 사회적 정체성 모델은 사회적 상황에서의 자아에 대한 정형화(Self-stereotyping)에 따라 개인들의 행동이 변화할 수 있다고 하는 내용으로, 블라인드 앱을 통해 각 개인은 같은 직장, 직종의 집단의 특징을 대변하는 전형이라고 생각해 해당 집단의 정체성에 맞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봉사집단에 속한 개인이 봉사활동을 할 때 익명성 환경에서도 남을 돕는 행위를 하는 것이 개인의 신원은 감춰지고 봉사집단의 사회적 자아가 개인의 행위를 통제하는 역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온라인 리뷰 시스템(Online Reviews)

온라인에서 리뷰의 힘이 얼마나 큰가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온라인 쇼핑을 할 때, 이미 구매해서 사용해본 사람들이 남긴 리뷰를 보게 되는데 단 한 건의 리뷰라도 부정적인 리뷰가 있다면 구매를 망설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리뷰 또한 아주 긍정적이거나 아주 부정적인 상황에서 남겨지는 경우가 많아 일반적 의견을 대표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블라인드 사례에서 회사 내에서 직원들에게 제한된 정보가 어떤 이벤트에 대한 온라인 리뷰를 통해 알려지는 메커니즘을 차용해 회사를 다니는 직원들에게 보다 적절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기업 입장에서는 부정적 리뷰가 익명으로 직원들끼리 공유되고 때때로 외부로 유출돼 회사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생기기 때문에 블라인드 게시글과 댓글을 챙겨볼 수밖에 없다.

특히, 소셜네트워크를 통한 입소문(Word of Mouth)이 신속하게 전파되는 시대에 자칫 회사의 평판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블라인드에 올라오는 회사 정보에 대한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마치 고객의 온라인 리뷰에 대응하듯이 기업이 블라인드에 올라오는 직원들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서 블라인드에 불만을 올리면 얼마 되지 않아 문제가 개선되는 ‘블라인드 효과’가 생기게 된다는 얘기다.

요컨대, 블라인드는 익명 소셜플랫폼을 활용해 폐쇄적인 기업문화를 혁신하고자 하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직장인들에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쳤던, 현대판 ‘대나무 숲’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부족한 정보와 결집력 부족으로 말미암아 흘러 사라질 목소리가 블라인드를 통해 정보를 나누고 소통하면서 더욱 커질 수 있다. 이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대학원생 및 대학생들이 익명 게시판을 통해 교수를 평가하는 시스템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직장인 익명 소셜플랫폼의 특성상 초기에는 울분을 토할 수 있는 ‘사이다’ 채널로서 사용자에게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지만 사용자 및 유통 정보의 증가와 함께 가짜 정보의 유통 가능성이나 동시에 지나치게 많은 답답한 ‘고구마’ 사연이 많아지는 등 지나친 정보 제공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용자 피로감 등 향후 잠재적 위험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필자소개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 smjeon@gachon.ac.kr
필자는 서울대에서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경영정보 박사 학위를 받았다. IBM과 삼성에서 다수의 IT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서울 및 미국 산호세에서 창업자로 일한 경력도 있다. 벤처회사들의 실증 데이터 분석을 통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P2P 렌딩, 소셜커머스 등 신규 사업 모델을 분석 중이다. 역서로 『페이스북 시대』가 있다.


DBR mini box III: 인사조직론 관점에서 제시하는 블라인드 활용법


식당 메뉴를 둘러싼 논쟁과 소통

직원식당이 맛있기로 유명한 구글(Google)에서 어느 날 ‘초콜릿 마카다미아 코코넛 데이트 크러스트를 곁들인 무료(free) 티베트산 고지 초콜릿 크림파이’라는 메뉴가 제공됐다. 그런데 이 메뉴의 이름에 대해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한 직원이 식당 관리자에게 항의하는 e메일을 전 직원을 수신자로 넣어 발송했다. 티베트 앞에 붙어 있는 free라는 부분이 티베트의 저항 운동을 지지하는 정치적인 선언(자유 티베트)처럼 읽힐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구글 레스토랑에서 모든 음식은 무료이므로 굳이 무료라는 단어를 붙일 필요가 없었고 분명 어떠한 의도가 들어 있는 것으로 읽힐 개연성이 충분하다면서 이 요리사에 대해 인사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본인이 회사를 떠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에 이르렀다. 어쩔 수 없이 이 요리사에게는 사흘의 정직 처분이 내려졌다. 이후 구글에서는 이러한 인사조치가 과연 정당했는지에 대해 매우 활발한 토론이 벌어졌다. 애초 문제를 제기했던 직원의 e메일에 대해 1300여 건에 달하는 답글이 쏟아졌고, 여기에는 이 직원의 항의에 동조하는 글뿐만 아니라 요리사에 대한 정직 처분이 회사가 어떠한 특정 가치를 개인에게 강요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으며, 특히 메뉴의 이름을 마음대로 붙일 수 있는 요리사의 업무상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비판의 글도 많았다고 한다.

위의 사례는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기업으로 손꼽히는 구글 조직 내에서 이뤄지는 소통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구글의 아침은 자유가 시작된다』는 책을 통해 이 사례를 소개한 구글의 HR 담당 수석부사장 라즐로 복(Laszlo Bock)은 이렇게 항상 소란스럽기만 하고 결국에는 아무런 결론도 나오지 않는 구글의 토론 문화는 구글의 정체성을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문제제기’를 막으면 ‘포도넝쿨’이 자란다

많은 조직에서 활발한 종업원 참여와 소통문화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우리 기업문화에서는 가급적이면 아무 말 나오지 않는 조용한 분위기를 더 선호하는 것이 사실이다. 직장 내 어떤 사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잘못됐음을 지적할 경우, 문제 자체보다는 문제를 지적한 사람에게 관심의 초점이 맞춰지고, 심한 경우에는 조직 내에서 ‘골치 아픈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게 된다. 따라서 자신에게 특별한 불이익이 있는 사안이 아니면 대부분 안전한 침묵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파이의 이름처럼) 별일도 아닌 일에 나서서 굳이 자신에 대한 편견을 심어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부 입단속을 한다고, 내부에서 침묵한다고 문제가 덮어지지는 않는다. 조직 내부의 문제들이 SNS 등을 타고 조직 밖으로 퍼져나가는 사례가 흔하게 발생할 뿐 아니라 한 번 디지털 매체에 흔적을 남기면 사후적으로 이를 되돌리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기업은 더 강한 입단속에 나선다. 소통매체의 급격한 발달이 조직 내부의 소통을 더욱 억압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시행되고 있는 보안조치나 핫라인과 같은 예방적 제도들은 사실 종업원들 간 갈등의 발생할 소지를 원천적으로 억압하거나, 혹은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외부에 알려지기 전에 조직 내부에서 해결하는 절차에 집중하고 있다.

이렇듯 조직 내에서의 공식적 소통에 대한 규제와 억압이 강화될수록 소위 포도넝쿨(grapevine)이라 불리는 음성적이고 비공식적 소통채널이 더욱 발달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학이나 경영학에서 사회 네트워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조직 내에서의 공식적인 조직도나 관계, 혹은 공식적인 보고채널보다도 비공식적 네트워크의 중요성이나 영향력이 훨씬 더 크다는 일관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정보 전달 채널로서의 비공식적 네트워크의 위력은 상당하다. 조직 내의 중요한 결정, 특히 조직 개편이나 인사와 관련된 정보들은 대부분 흡연 장소나 술자리 등 ‘포도넝쿨’을 통해 조직 내에 전파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고 전파 속도도 매우 빠르다. 회사의 공식적인 발표는 이렇게 전달된 비공식적 정보를 확인하는 정도의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비공식적 채널을 통한 정보 전달은 조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조직의 관리자들은 이러한 정보들이 조직의 통제 밖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내용상의 왜곡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고, 이렇게 잘못된 정보가 조직 내에 유통되면 의도하지 않게 조직 구성원들의 심리적인 동요나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비공식적 정보, 즉 루머나 소문이 사실로 밝혀졌을 경우도 문제다. 루머로 떠도는 소문이 사실과 부합하는 것으로 밝혀질수록 비공식적 채널에 대한 신뢰도는 더욱 높아지고, 조직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취득한 B급 정보가 설사 근거 없는 뜬소문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사실로 믿는 경향은 강화될 것이다.

따라서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비공식적인 의사소통과 루머의 유통을 차단 혹은 통제하고자 하는데 이러한 노력은 대부분 수포로 돌아간다. 차단과 통제를 시도할수록 오히려 비공식적이고 음성적인 정보의 유통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진정으로 알고자 하는 정보에 대한 목마름, 일상적인 조직생활에서 겪는 불만과 부조리를 표출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욕구는 그것을 억압할수록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블라인드’와 약한 연결

직장인들의 익명 커뮤니티 서비스 ‘블라인드’가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은 오늘날 조직 내에서 억눌려온 조직 구성원들의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를 반영한다. 블라인드는 조직 내 구성원들 간의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동시에 평소에는 쉽게 접할 수 없는 회사 밖의 사람들과의 소통을 가능케 함으로써 조직 내에서 억압된 소통의 울타리를 뛰어넘을 수 있는 ‘광범위한 포도넝쿨’의 채널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블라인드는 특히 직장인들에게 ‘익명성’이라는 무기를 제공함으로써 솔직한 정보의 전달과 취득에 따른 위험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방구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강력한 오너의 왕국이 굳건하게만 보였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블라인드가 제공한 ‘해방된 공간’이 있었기에 벌어질 수 있는 혁명이었다.

사회네트워크이론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그라노베터(Mark Granovetter)의 ‘약한 연결(weak tie)’이론에 따르면, 상호작용의 강도가 높고 지속적인 소위 ‘강한 연결(strong tie)’은 심리적 안정과 집단 내에서의 성장에 유용한 반면 상호작용의 강도와 빈도가 낮지만 다양성이 높은 약한 연결의 경우에는 개인의 학습과 정보 취득에 도움이 되고, 특히 조직의 외부를 통해 자신이 경력 개발을 추구하는 프로틴 경력 개발(protean career development) 혹은 비경계적 경력 개발(boundaryless career development)에 유용하다고 말한다. 블라인드가 제공하는 익명의 네트워크는 기본적으로 서로가 상대방의 신분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교류하는 극단적인 형태의 약한 연결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명함 정도만 교환한 관계’를 통해 맺어진 기존의 약한 연결 관계에서 다뤄 주지 못했던 매우 개인적이고 은밀한 고민까지 털어놓을 수 있는 강한 연결의 역할까지도 일부 수행한다는 점에서 수많은 관계망 속에서도 외로움을 토로하는 오늘날 젊은 직장인들의 해우소(解憂所)라 할 수 있다.


익명성과 책임성

흔히 익명의 정보는 게시판에 올린 글과 정보에 대한 책임성이 약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도 많은 사람(약 250만 명)이 블라인드에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왜 그렇게 많은 이가 블라인드에서의 소통이 문제해결에 도움을 줄 것이라 믿는 것일까. 과거 정보의 채널이 한정돼 있었던 시절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신문, 방송 등 공식적 매체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었고 소수의 정보 제공자는 이러한 매체를 통해 순화되고 정제된 정보만을 제공함으로써 정보의 수용자들을 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정제되고 ‘마사지된’ 정보는 ‘날것 그대로의’ 진실한 정보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는 부족했다. 이는 정보 제공의 독점이 풀린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신분을 그대로 노출하면서 제공하는 SNS의 정보 역시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정보만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진실성의 한계는 여전히 존재한다. 블라인드의 익명 커뮤니티는 네트워크의 참여자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그대로를 진솔하게 풀어내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기반으로 형성돼 있다. 이는 어차피 자신의 소속사 외에는 신분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솔직할 수 있고, 솔직해져야 한다는 암묵적 신뢰관계이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도 솔직해져야 한다는 사회적 교환(social exchange) 관계의 규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블라인드, 막을 수 없다면 활용해야

경영자 혹은 관리자들이 블라인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실제 내 회사의 직장문화나 업무 분위기는 어떤지,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회사를 떠나려고 하는지, 상사나 경영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몇 안 되는 채널이기 때문이다. 블라인드는 평소 공식적인 회의나 회식 때 들을 수 없었던 종업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채널로서 활용 가치가 있고, 이는 조직을 경영하는 데 있어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물론 관찰은 하되 개입하지 않는(monitor but disengage) 자세를 유지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조직 내에서의 자유로운 소통과 정보의 교류를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다면 오히려 확대하고 권장할 필요가 있다. 사내 오프라인에서도 조직 구성원들이 한데 모여 차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비공식적이고 자발적인 소통공간을 늘림으로써 오히려 조직 내의 유대감이 증진되고 창의적인 성과를 높인다는 워터쿨러(정수기) 효과(water cooler) 창출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음성적이고 왜곡된 포도넝쿨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 될 수도 있다.

구글의 라즐로 복은 파이 명칭을 둘러싸고 1300여 개의 의견이 난무하는 현상을 바라보면서 요리사에게 내려졌던 정직 처분을 취소했다고 한다. 이 일을 통해 그는 투명성과 다양성은 구글이 지향하는 조직문화적 정체성이며, 구성원들의 ‘말할 수 있는 자유’와 ‘비판할 수 있는 자유’는 구글이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회고한다. 오늘도 구글의 사무실에 비치된 정수기 앞은 왁자지껄 시끄러운 분위기로 하루가 시작되고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조성준 가천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 sungguri@gachon.ac.kr
필자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네소타주립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인적자원개발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뉴욕주 유티카대 조교수 등을 거쳐 현재 가천대 글로벌경영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인적자원관리, 조직 개발, 리더십 등을 가르치고 있고 사회교환, 사회관계망, 사회자본 등의 분야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미국의 인재경영』 『NCS시대의 진로지도』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81호 Local Creator 2019년 9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