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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Sloan Management Review

환자가 주도하는 ‘공짜 혁신 활동’

헤럴드 드모나코(Harold DeMonaco),페드로 올리베이라(Pedro Oliveira),앤드루 토런스(Andrew Torrance),크리스티아나 폰 히펠(Christiana von Hippel),에릭 폰 히펠(Eric von Hippel) | 275호 (2019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질문
환자들은 무엇을 위해 스스로 공짜 혁신을 추진할까?

연구를 통해 얻은 해답
1. 환자 혁신가들은 일반 생산자들과 달리 자신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해 혜택을 보지 않는다.
2. 대신 자신이 개발한 결과물을 사용하고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스스로 보상받는다.
3. 이 때문에 환자 혁신가들은 자신이 개발한 결과물을 남들이 공짜로 베끼는 것을 흔쾌히 허락한다.


편집자주
이 글은 MIT 슬론 매니지먼트 리뷰(SMR) 2019년 봄 호에 실린 ‘When Patients Become Innovators’를 번역한 것입니다.




환자가 자신이 원하는 조건에 맞춰 직접 정교한 의료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개발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 이런 성과는 의료기기 회사의 도움 없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환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공짜’ 혁신은 현재 상업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중요한 제품이나 서비스의 진전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환자들에게 이익이 된다. 또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기업들에도 혜택을 준다. 환자들이 DIY(Do-It-Yourself) 방식으로 추진하는 혁신이 회사 내부 연구개발(R&D)을 더욱 촉진할 수도 있고 R&D에 필요한 정보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의료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짜 혁신의 두 가지 예를 살펴볼 것이다. 첫 번째는 1형(type 1) 당뇨병 관리와 관련된 이야기고, 두 번째는 크론병 치료와 관련된 사례다. 필자들은 이 두 사례를 공짜 혁신이라는 넓은 맥락에서 살펴볼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이 최근 여러 산업에서 추진 동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1 그리고 공짜 혁신과 관련해 일반적인 교훈을 환자 중심 의료 혁신이라는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해 볼 것이다.


사례1 1형 당뇨병 관리하기

2013년, 건강 커뮤니케이션 관련 일을 하는 다나 루이스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한 명, 1형 당뇨병 환자 몇 명과 함께 의료기기 업계가 수십 년간 개발을 약속했던 인공 췌장을 직접 만드는 작업에 돌입했다. 환자인 그들은 밤사이에 혈당 수치가 낮아지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당뇨병 환자들이 흔히 겪는 증상이지만 자칫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1∼2분마다 혈당을 자동 체크하는 시스템을 설계해 혈당을 정상 수치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적정 인슐린 용량을 찾으려 했다.

루이스와 동료 혁신가들은 몇 달 만에 직접 개발한 컴퓨터 코드로 인공 췌장을 설계할 수 있었다. 혈당 모니터링 기기와 인슐린 펌프는 물론 이 둘을 연결하는 하드웨어까지 모두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기성품을 사용했다. 루이스는 이 기기를 이용해 자신의 혈당 수치를 훨씬 더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됐다. 이들은 직접 개발한 인공 췌장 설계도를 온라인에 올려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개하고 소프트웨어를 오픈 소스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인공 췌장 오픈 시스템(OpenAPS, Open Artificial Pancreas System) 운동은 이렇게 시작됐다. 2 오늘날에는 훨씬 많은 커뮤니티가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고 비영리 목적의 DIY 인공 췌장 디자인도 여러 개가 공유되고 있다. 또 수천 명의 당뇨병 환자들이 자신의 건강을 확인하고, 관리하고, 개선하기 위해 이런 DIY 시스템을 활용한다.



사례2 크론병 관리하기

버클리대에서 컴퓨터과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션 아렌스는 20대 초반 좌절에 빠졌다. 갑자기 발병해 심신을 공격하는 크론병 증세를 완화하고 싶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인 의학 정보를 전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크론병 치료용으로 나온 약들이 여러 개 있었지만 전부 독성이 심했고, 모든 환자에게 효과적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식이요법으로 증상을 관리하고 개선하려는 환자들이 많았다. 열두 살에 크론병 진단을 받은 아렌스는 환자들이 느끼는 이런 결핍을 채워주기 위해 2011년에 크로놀로지(Crohnology)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그리고 웹사이트를 찾은 크론병 환우들이 온라인 설문을 통해 자신이 받은 치료법과 그 결과를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설문 결과를 정리해 다른 환자들에게는 어떤 치료 조치가 문제를 일으켰는지, 어떤 조치가 효과적이었는지 등을 방문객 모두가 확인할 수 있게 했다. 3 오늘날 크로놀로지 사이트는 1만 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사이트를 방문하는 전 세계 크론병 환우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병을 관리할 수 있는 귀중한 정보를 얻는다.


소비자가 주도하는 공짜 혁신의 일반적인 패턴

두 사례에서 모두 눈에 띄는 특징은 도움이 절실했던 환자들에게 의약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나 의료기관이 아무런 솔루션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뚜렷한 동기가 있던 환자들이 직접 나서 상업적인 지원 없이 본인들을 위한 솔루션을 개발했다. 4



의료계에서 일어나는 공짜 혁신 활동도 공예품, 스포츠용품, 가정 및 원예용품, 애완동물용품, 의류 등 다른 여러 분야에서 발견되는 소비자 공짜 혁신의 일반적인 패턴을 따른다. 5 기술, 소셜미디어, 그리고 본인이 필요로 하는 솔루션을 찾으려는 간절한 바람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소비자 스스로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DBR mini box ‘연구 내용’ 참고.)



DBR mini box I: 연구내용

필자들은 환자들에 의한 의료 혁신 활동의 범위와 성격을 탐구하기 위해 두 가지 형태의 조사를 수행했다. 첫 번째로 전 세계 동료 학자들과 함께 10개국에서 국가별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i

이 조사의 목적은 의료 분야는 물론 소비자가 주도하는 모든 유형의 제품 혁신 활동의 특성과 빈도를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두 번째는 의료 분야에서 벌어지는 제품 혁신 활동을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정량조사와 정성조사를 모두 진행했다. 조사에는 환자 혁신가들 및 협력 집단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와 면대면 토론이 포함됐으며 이를 통해 의료 분야에서 부각되는 중요하고 구체적인 문제들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 관련 현안에는 환자 혁신 집단이 자신들이 개발한 솔루션의 의학적 효과를 검증하는 데 타당한 임상 실험 방법을 설계하고 그것을 윤리적으로 수행하려는 강한 의지도 포함돼 있었다.

소비자는 일반적인 생산자들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혁신을 추진하고 퍼뜨린다. 중요한 건 그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림 2) 생산자들은 일반적으로 시장 조사와 R&D로 혁신 활동을 시작한다. 반면 소비자들로 구성된 공짜 혁신가들은 자신이 원하고 필요로 하지만 아직 시장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먼저 파악한다. 소비자 혁신가들은 원하는 솔루션을 개발하기 위해 자신의 돈과 지식, 시간을 투자한다. 이들은 영리 목적의 혁신가들과 달리 자신의 디자인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보호하려 애쓰지 않는다. 필자들은 소비자 혁신가의 90% 이상이 자신이 개발한 제품디자인을 타인에게 공짜로 제공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른 사람들이 오리지널 디자인을 테스트해보고 개선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그렇게 해서 나온 새로운 버전에 대한 사용권도 공짜로 개방한다. 일단 개발만 끝나면 다른 소비자들이 해당 디자인을 활용해 비상업용 복제품을 만들 수도 있고, 생산자들이 소비자 혁신가와 라이선스 계약 없이 그 디자인을 상업화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제품은 더 널리 확산된다. 6



자신의 노동이나 제품디자인으로 돈을 벌지 못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 개인이 왜 굳이 혁신을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지 의아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혁신에 나서는 소비자들은 자신이 만든 결과물을 직접 사용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개발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교훈 등 개인적인 혜택에 이끌린다. 또한 그들은 혁신의 결과물을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데서 만족감을 얻는다. 7 다시 말해, 공짜 혁신가들은 스스로 보상을 받는다.

소비자 혁신과 상업적 혁신은 패러다임이 서로 다르지만 충돌하기보단 상호 보완 관계에 있다. 실제로 조사 결과를 보면 이 두 가지 패러다임이 동시에 작동할 때 생산자, 소비자, 사회 전체가 가장 큰 혜택을 받는다. 8

먼저, 생산자는 소비자가 개발하고 테스트한 제품디자인을 공짜로 이용함으로써 소비자 혁신의 혜택을 볼 수 있다. 또한, 소비자는 초소형 컴퓨터 라즈베리파이(Raspberry Pi)처럼 생산자가 DIY 프로젝트 지원용으로 개발한 모듈, 혹은 생산자가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개발한 혁신 제품들을 통해 이득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 전체는 소비자와 생산자들이 각자 가장 효율적으로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때 혜택을 얻는다. 9


소비자 혁신의 개념을 헬스케어 분야에 적용하기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환자들에 의한 의료기기 개발은 이미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 영국, 일본, 핀란드, 캐나다, 한국에서 진행한 국가별 설문 조사에서 약 100만 명의 사람이 조사가 수행되기 전 3년 동안 자신의 필요에 의해 의료 혁신 제품을 개발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10 비록 소비자 주도 공짜 혁신의 기본적인 추진 방식은 여러 산업에 걸쳐 공통적으로 적용되지만 혁신가들은 개인적인 상황과 시장 환경을 고려해 맞춤 솔루션을 개발해야 한다. 가령, 환자 주도의 혁신 활동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는 안전성을 보장하고 공짜로 널리 보급되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환자의 니즈에 부합하는 의료 제품이 이미 시장에 있다면 환자들도 시중 제품을 구입하는 쪽을 선호할 것이다. 굳이 직접 제품을 개발하거나 다른 환자가 만든 공짜 디자인을 복제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필요한 솔루션을 시중에서 살 수 없는데다 시간이 촉박할 때 환자들은 직접 제품을 디자인하고 개발하게 된다. 그럼 생산자들은 환자들이 원하는 의료 제품을 왜 개발하지 않는 걸까? 대량 생산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수지 타산이 안 맞을 수 있다.


● 세상에는 환자들이 장기간에 걸쳐 관리하기 어려운 수천 개의 만성 희귀 질환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질병에 걸리는 환자들은 극히 소수다. 생산자들이 수익성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기에는 시장이 너무 작다.

● 똑같은 니즈를 가진 환자들이 많더라도 기업들이 혁신을 감행할 만큼 인센티브가 크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 환자들이 원하는 형태의 솔루션으로는 도저히 이익을 낼 방법이 없는 경우다. 크론병이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크론병 환자들의 증상을 관리하고 완화하는 데는 식이요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나 기업들이 그런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임상실험에 비용을 투자하기는 어렵다. 회사들은 특허받은 식품을 생산하는 등 다른 방법으로 투자비를 회수하는 쪽을 선호할 것이다.

● 혁신 솔루션이 보호될 수 있고 잠재적 수익성이 있더라도 임상 실험 관련 규정 때문에 생산자들이 판매 승인을 받기까지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위험이 낮거나 중간 정도인 의료 제품이라도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으려면 평균 열 달 정도가 걸린다. 인공 췌장처럼 리스크가 높은 장치의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4∼5년이 걸리고 약 7500만 달러에 달하는 비용이 필요하다. 11 그에 비해 인공 췌장을 직접 개발한 환자 사례에서 봤듯이 환자 혁신가들은 몇 주, 혹은 몇 개월이면 아주 적은 비용만으로도 무언가를 개발하거나 생산할 수 있다. 비상업적 목적을 가진 개인들의 활동은 FDA의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제약 때문에 환자들이 필요로 하는 많은 것이 상업적으로 개발되지 않는다. 또한 바로 이런 이유에서 환자들의 공짜 혁신 시스템은 우리가 인정하고 지원해야 할 아주 중요한 자원이다.


환자 혁신 지원하기

환자 혁신가가 되려는 사람들은 과연 혁신 솔루션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게 합법적인지, 안전할지, 환자 혁신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이 DIY 시스템이 얼마나 지원을 받고 개선될 수 있을지 등 중요한 질문들과 씨름한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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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의료 혁신 솔루션을 DIY 방식으로 개발하고 보급하는 게 합법적일까? 환자가 개발한 혁신 솔루션에 대한 법규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물론 서양에서는 많은 나라가 비슷한 지침을 따른다. 미국에서는 환자의 혁신할 자유가 국가의 법률적 전통에 단단히 뿌리를 두고 있다. 일단 사생활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 수정헌법 제4조에 따라 시민들은 가정에서 의료 혁신 제품을 만들 수 있고, 이를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다. 남들이 혁신의 결과물을 효과적이라고 여기든 말든, 활용하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하든 말든 미국인들의 혁신할 권리는 보호받을 수 있다. 게다가 수정헌법 제1조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개발한 혁신적 솔루션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제품디자인 및 사용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도 공유할 수 있다. 또한 미국 헌법의 상거래 조항과 FDA 같은 연방 규제 기관의 법령은 의료 단체들이 비상업적인 혁신 활동을 규제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12

환자가 주도하는 혁신이 안전할까? 안전은 보장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인공 췌장을 설계할 때 소프트웨어 코딩을 잘못하면 환자에게 투여될 인슐린양을 잘못 계산해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실수는 크론병 환자에게 맥주를 마시지 말라고 잘못된 조언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분명 리스크가 존재하긴 하지만 다행히도 환자들이 개발한 의료 혁신 제품 가운데 FDA가 고위험군으로 지정한 품목에 속하는 제품은 거의 없다. 13


설령 안전성에 상당한 리스크가 있다 할지라도 이런 이유로 정부가 환자 혁신을 제한하는 것은 잘못된 결정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환자 혁신의 위험을 평가하는 적절한 방법은 환자들이 직접 DIY 솔루션을 만들 때 생기는 위험과 이런 혁신 솔루션이 없을 때 고통받을 환자들의 위험을 비교하는 것이다. 인공 췌장의 예를 다시 한번 들어보자. 인공 췌장 개발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지면서 그동안 FDA 승인을 받은 상업적 제품의 부재로 수천 명의 당뇨병 환자가 저혈당으로 죽었고, 또 다른 수천 명의 환자가 열악한 삶의 질로 고통받았다는 사실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14


즉, 환자들이 상업적 솔루션으로 해결되지 않는 의료 문제를 몸소 해결하기 위해 혁신을 할 경우 그 영향을 받는 환자들에게 안전성이나 삶의 질 측면에서 순손실보다는 순이익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저비용의 임상 실험 방법이 개발되면 안전성 문제는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환자 공동체도 자신의 혁신 제품을 검증할 때 대학이나 병원에서 적용하는 수준의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사람 대상 임상 실험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DBR mini box ‘환자에 의한, 환자를 위한 저비용 임상실험’ 참고.)


DBR mini box II: 환자에 의한, 환자를 위한 저비용 임상실험

앞서 언급했듯이 FDA는 비영리적인 환자의 혁신 및 보급 활동을 관할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환자 혁신가들이 자신이 개발한 솔루션을 보급하기에 앞서 안전성과 효능을 검증할 수 있는 임상 실험을 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그러나 환자 본인들은 DIY 방식의 혁신을 추진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수행했던 실험 관련 정보를 알고 싶을 것이다. 다행히 이런 니즈를 아주 적은 비용으로 채울 수 있는 접근법이 존재한다. 또한 개인, 집단 환자들이 윤리적으로 올바르면서 고품질의 실험을 실용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방법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특히 많은 사람이 ‘n of 1’라는 실험 설계 방식을 채택한다. 이는 실험 대상이 환자 한 명이거나 다수인 경우에 ‘개인별 실험 결과가 n개만큼 합쳐진’ 결과라 할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온라인 매체에 당뇨병 관련 글을 기고하는 1형 당뇨병 환자 애덤 브라운의 예를 들어보자. 그는 현재 당뇨 치료를 위해 저탄수화물 식이요법을 하고 있다. 그가 궁금한 점은 혈당 수치를 관리하기 위해 기존 방식을 지속해야 할지, 아니면 탄수화물을 충분히 섭취하되 시간에 맞춰 인슐린 주사만 잘 맞아도 충분할지 여부다. 만약 후자라면 그를 비롯한 많은 당뇨병 환자들이 식사를 할 때 고탄수화물 음식을 더 많이 포함할 수 있다. 그래서 브라운은 개인적으로 n-of-1 실험을 수행하기로 했다. 그는 첫 단계로 2주 동안 섭취하는 음식물과 섭취 시간대를 세심하게 확인하면서 저탄수화물 식이요법을 했다. 그리고 몇 분 간격으로 개인 혈당 모니터링 기기를 이용해 자신의 혈당 수치를 확인하고 인슐린 투입 수치와 시간을 기록했다. 그다음에는 2주 동안 고탄수화물 식단을 섭취하면서 이런 활동을 똑같이 수행했다. 두 식단 결과를 비교한 결과 브라운은 당화혈색소검사(A1C)로 측정한 자신의 평균 혈당 수치가 장기적으로는 두 식단에서 모두 거의 같은 수준을 보였지만 시간당 혈당 수치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기에는 저탄수화물 식단이 더 유리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뇨 환자의 장기적 건강관리를 위해 중요한 정보였다.

브라운은 다른 당뇨병 환자들을 위해 자신이 수행한 실험 방식과 결과를 다이어트리브(diatribe.org) 사이트에 올렸다. i

자신의 정보를 공유해 다른 환자들도 실험을 따라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더 많은 환자가 자신의 실험 데이터를 공용 데이터베이스에 추가하고 데이터가 쌓이면서 비맹검(nonblinded) 방식으로 수행한 단일 환자의 실험 결과가 n개만큼 합쳐졌다. 그 결과 환자 다수에 대한 임상 근거 자료가 나왔다. 전문가 수준의 환자들과 전문 의료진이 분석하기에 충분한 데이터였다. ii



둘째, 이미 언급했듯이 개인 환자들은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갖고 있고 그 권리는 매우 광범위하다. 비유를 하자면 익스트림 스포츠는 매우 위험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은 부상을 입거나 때로는 사망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 익스트림 스포츠를 금지하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일부 환자 혁신가들은 상당히 위험해 보이는 의료기기를 개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가 그런 사례를 빌미로 환자 혁신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환자 혁신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환자가 자신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의료 제품을 개발하는 능력이 점점 향상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몇 가지 중요한 이유로 인해 앞으로 환자 혁신 시스템은 더욱 강력해질 것으로 보인다. 첫째, 환자 혁신가들에게 필요한 DIY 디자인 도구들이 가격은 점점 더 저렴해지고 기능은 향상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주 기초적인 엔지니어링 기술만 있으면 일반 개인용 컴퓨터로도 훌륭한 디자인 소프트웨어를 실행해 아주 저렴하게, 혹은 공짜로 사용할 수 있다. 둘째, DIY 디자인을 가지고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재료와 도구들 역시 가격은 떨어지고 기능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가령, 인공 췌장 시스템의 오리지널 DIY 디자인은 현재 30달러에 살 수 있는 마이크로 컴퓨터로 개발됐다. 특수 목적의 컴퓨터 없이도 새로운 DIY 솔루션을 만들 수 있다. 스마트폰이나 특별히 고안된 앱을 사용하면 된다. 15 셋째, 오늘날에는 인터넷을 이용해 정보를 검색하고 다른 사람들과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에 환자들이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찾을 수 있다. 심지어 희귀 질병에 걸린 사람들끼리도 서로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다. 또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DIY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온라인에서 공동 작업을 추진할 수도 있다. 실제로 수천 명의 환자가 자발적으로 오픈APS와 크로놀로지 웹사이트를 찾아냈고, 프로젝트를 위해 본인의 기술적 재능을 기부했다.

평범한 환자들을 통한 공짜 혁신 시스템을 어떻게 지원하고 개선할 수 있을까? 환자, 의료 제품 및 서비스 생산자, 규제 기관들이 모두 환자 혁신 시스템을 지원하고 그들의 혁신이 의료적,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는 초기 단계의 환자 혁신 프로세스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개발부터 생산자들의 하드웨어 해킹까지 다른 분야의 소비자 혁신에서 쓰이는 툴이나 시스템을 활용하면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임상 실험이나 공짜 보급과 관련해 의료 혁신에서만 볼 수 있는 고유한 특성들이 있다. 이런 요소들 때문에 더 많은 집중력과 개선이 필요하며 혁신을 추진하는 환자들과 생산자, 정부 모두가 각자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

임상 실험 개선하기. 임상 실험의 경우 환자 혁신가들이 FDA가 지정하는 표준 디자인을 따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환자 공동체가 자체적으로 무작위 이중맹검(double-blind, 판정자를 제외하고 환자와 의사는 치료약과 플라세보를 구별할 수 없게 하는 것-역주) 방식으로 위약(placebo, 실제 약효 없이 환자에게 심리적 효과를 주기 위한 약-역주) 대조 임상실험을 진행하기에는 너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정교함이 조금 떨어지는 디자인으로도 훨씬 싼 가격과 짧은 시간에 질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16 다만, 이때 혁신 성과를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웹사이트와 툴킷을 제작해 실험 디자인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환자들을 위한 지침, 실험 참가자들의 개인정보 보호 및 안전성에 대한 적절한 기준, 통계 분석 관련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초보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검증된 툴과 절차를 알려주는 웹사이트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지금은 DIY 환자 공동체와 푸르프파일럿(ProofPilot) 17 같은 사이트들이 영리 목적 혹은 공동체 주도로 추진되는 실험 등 혁신 활동을 지원하는 툴킷을 개발해 환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보급 프로세스 개선하기. 환자 혁신은 그 결과물이 비상업용으로 보급돼야만 FDA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상업적 판매가 불가하기 때문에 환자들은 공짜 디자인을 바탕으로 직접 비상업적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제약 여건 속에서 기술적 역량이 부족한 개인이 혁신에 더 쉽게 접근하려면 비상업적 보급 프로세스가 더 단순해져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 승인을 받은 의료기기에 DIY 장치를 탑재할 기회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고, DIY 프로젝트에 필요한 오픈소스 구성 요소를 시중에서 구하는 것도 쉬워지면서 앞으로 공짜 혁신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럼 다시 인공 췌장 프로젝트를 떠올려 보자. 2013년만 해도 혈당 모니터링 기기나 인슐린 펌프 등 상업적 의료기기를 통해 수집한 환자 데이터들은 암호화 기술로 보호받았다. 의사만이 이 데이터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다고 여겨졌고, 일반 환자들은 이런 데이터에 접근할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혁신가들은 환자 데이터에 접근하기 위해 생산자 의도를 무시하고 이런 기기들을 해킹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오늘날 기기 생산자들은 제품의 인터페이스를 개방해 DIY 시스템의 일부로 이용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 결과 제품들이 제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18

환자 주도의 혁신이 가져올 이점이 점점 더 분명해지면서 공짜 보급을 지원하는 새로운 유형의 플랫폼과 서비스도 더 많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비영리 목적의 온라인 플랫폼인 페이션트 이노베이션(Patient Innovation)은 질병의 종류와 상관없이 환자가 개발한 혁신 솔루션의 평가와 공유를 촉진하는 웹사이트다. 이 플랫폼은 오픈APS와 크로놀로지같이 특수한 목적을 가진 플랫폼들을 보완해주며 공짜로 이용이 가능하다. 19

공짜 환자 혁신 시스템이 점점 확대되고 강화되면서 환자 주도 솔루션과 상업적 의료 혁신 시스템 간 보완 작용이 앞으로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공짜 환자 혁신 시스템을 지원하고 관련 솔루션이 의료적,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방향으로 개발되기 위해서는 환자, 의료제품 및 서비스 생산자, 규제기관 모두 담당해야 할 중대한 역할이 있다. 경제적 현실을 생각할 때 영리 목적을 가진 생산자와 의료 서비스 기관들이 환자가 필요로 하는 모든 솔루션을 제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절한 지원이 보장된다면 혁신적인 환자들이 그런 간극들을 상당 부분 채울 수 있다. 점점 더 풍부해지고 접근성이 높아지는 일련의 의료 혁신 옵션들은 환자, 영리 의료 서비스 기관, 생산자, 사회 모두에 도움이 될 것이다.

번역 |김성아 dazzlingkim@gmail.com

필자소개
헤럴드 드모나코(Harold DeMonaco)는 MIT 슬론 경영대학원(Sloan School of Management)의 객원 연구원이다. 페드로 올리베이라(Pedro Oliveira)는 코펜하겐경영대학원(Copenhagen Business School)의 교수다. 앤드루 토런스(Andrew Torrance)는 캔자스대 법학대학원(University of Kansas School of Law)의 연구 교수다. 크리스티아나 폰 히펠(Christiana von Hippel)은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보건대학원의 박사 후 연구원이다. 에릭 폰 히펠(Eric von Hippel)은 MIT 슬론경영대학원의 T. 윌슨(1953) 후원 경영학 교수이자 기술혁신 담당 교수다. 이 글에 의견이 있는 분은 http://sloanreview.mit.edu/x/60313에 접속해 남겨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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